

‘정말이지… 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포스터. 포스터의 문구처럼 금자 씨는 누구보다 착하게 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명을 쓰고 들어간 수감생활에서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복수였고, 혈혈단신인 그녀에게는 내 편이 필요했죠. 내 편 만들기에 들어간 그녀는 수감자들을 악랄하게 괴롭히던 마녀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장소는 감옥, 누군가를 죽일 만한 도구는 전혀 없는 곳입니다. 누구보다 친절하고도 영리했던 그녀는 화장실 청소를 하며 몰래 빼놓았던 락스를 이용합니다.
강한 락스 냄새, 마녀가 몰랐을까
락스는 차아염소산나트륨(NaOCl)을 포함한 염소계 화학복합제입니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강한 염기성(pH11~12)인데다, 체내에서 염소기체와 염산을 만들어내 마실 경우 여러 기관이 부식될 수 있는 물질 입니다. 더구나 락스 속 염소가 공기 중에서 순식간에 염소기체로 기화해 호흡기 질환이나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도 있죠.
여기서 의심스러운 점이 생깁니다. 염소는 워낙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라 금세 기체로 변합니다. 락스의 자극적인 냄새가 바로 이 염소기체 냄새입니다. 화장실 청소를 할때 숨을 훅 들이마시면 코가 찌릿찌릿한 것도 이 때문이죠. 아무리 소량이라지만, ‘마녀’가 정말 락스의 강한 냄새와 코의 자극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락스 든 밥을 먹은 것도 이상합니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워낙 부식성이 강한 물질이다보니, 3년이 되기 전 몸에 이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성호 서울대 의대법의학교실 교수는 “(지속적으로 락스를 마셔) 위나 식도에 심한 부식이 일어나 천공이 발생할 경우, 변의 색깔이 짜장면 색으로 변한다”며 “본인도 몸의 변화를 바로 알아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 역시 금세 알아차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 교수는 “만약 부검을 하면 딱딱해진(섬유화된) 장 상피세포나 부식으로 구멍 난 기관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락스에 의한 사망이라는 것은 쉽게 드러난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주변의 의외의 살인병기는?
만약 금자 씨가 조금만 더 과학을 잘했더라면 의심을 덜 받는 방법을 생각해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전혀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병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소금’입니다. 소금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싶지만, 실제 소금 중독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 과학수사학회지에 실린 논문 ‘소금 중독과 연관된 전해질 이상’에 따르면 국외에서 소금 중독으로 사망한 이들이 섭취한 소금의 양은 최소 20g에서 최대 1000g이었습니다.
소금(NaCl)을 많이 먹게 되면, 혈액의 나트륨 비율이 높아지는 고나트륨혈증이 생깁니다. 이때는 수분이 세포 밖 혈액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세포 안보다 세포 밖 혈액의 농도가 더 높아 삼투압에 의해 물이 이동하는 것이죠.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세포의 부피가 줄어들고, 의식상태 변화, 쇠약, 혼수, 발작과 같은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만에 하나 부검을 하게 될 경우, 소금 중독은 락스 중독보다는 들통날 확률이 적습니다. 소금 중독으로 사망한 경우 일정시간이 지나면 사후변성에 의해 혈액의 전해질 수치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눈 유리체액(vitreous humor)이 생전의 전해질 수치를 비교적 오래 보존하죠.
하지만 소금도 본인이 모르게 먹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락스보다는 쉬웠겠지만요). 밥과 반찬에 소금을 나눠 뿌린다 해도 너무 짤 테니까요. 이러나 저러나 금자씨가 무사히 마녀를 없애는 건 불가능해 보이네요. 안타까워해야 할지 다행스러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