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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

국내 자생식물 연구의 대부 정혁 단장

왠지 전설적인 무술배우 이소룡이 떠오르는 다부진 얼굴. 날카로운 눈매.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고수의 기(氣).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끄는 정혁 단장을 만난 기자의 첫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한켠에 놓인 운동대회에서 수상한 듯한 트로피 한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무술대회가 아니라 테니스대회에서 수상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 범상치 않은 색다른 과학자는 자생식물에 대한 그의 열정을 쏟아내기 바빴다.
 

국내 자생식물 연구의 대부 정혁 단장


실력 있으면 묻지마(?) 투자

정 단장은 원래 인공씨감자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과학자다. 인공씨감자란 콩알만하게 개량한 감자인데 우수한 종자로 외국에 수출까지 됐다. 그런 그가 현재는 1년에 1백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거대한 프론티어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연구에 계속 전념하고 싶었지만 후배를 위해 일할 때라는 주변의 충고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식물은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기 위해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요. 그 속에는 약용물질이 무궁무진하게 포함돼 있죠.” 정 단장이 자생식물의 매력에 듬뿍 빠진 이유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허준의 동의보감처럼 풍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이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을 압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춘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신약 개발에 앞서 검증된 식품의약과 천연화장품 등을 우선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정 단장이 그려보이는 자생식물이용기술은 약용물질 외에도 상당히 다양했다. 서양의 장미는 야생 찔레꽃에서 만들어졌다며, 재배품종화를 통해 경제적, 문화적, 정서적 가치를 함께 갖는 아름다운 원예작물을 우리도 개발할 수 있단다. 또 생명공학 시대를 맞아 자생식물에서 발굴하는 고부가가치를 약속하는 유용 유전자원들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사업단을 운영하는 단장으로서 원칙을 물었다. 정 단장은 “실력있는 자는 반드시 연구비를 받고, 실력이 없으면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때문에 과제를 뽑을 때는 정말 신중하게 공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 뽑은 과제는 믿고 지원한다. 1년 정도의 짧은 연구성과를 갖고 잣대를 들여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한다.

정 단장은 “사업단 단장이 가져야할 덕목으로 객관성, 공정성은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라면서 “자신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장애물을 제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적자원과 식물자원으로 승부

정 단장은 4강이라는 감동과 환희를 가져다준 지난 월드컵을 마음 편히 보지 못했다. 제대로된 지도자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히딩크 감독을 통해 뼈 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은 실력 있는 선수의 선발, 선발된 선수에 대한 물심양면의 전폭적인 지원, 중간과정에서 잡음과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꿋굿하게 정도를 밀어부친 뚝심, 철저한 사전 계획과 이의 실천, 위기 때마다 던지는 과감한 승부수, 그리고 최선을 다한 후 얻어진 결과에 대한 승복까지….

정 단장은 이 모든 사항이 사업단을 운영하는 자신의 처지와 단 한가지도 다른 점이 없다고 말한다. “사업단장 노릇을 제대로 하는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자신이 못하면 히딩크 같은 외국인 사업단장을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반 진담반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정 단장과 인터뷰 중 이형규 박사가 찾아왔다. 이 박사는 자생식물에서 추출물을 뽑아 보관하는 한국식물추출물은행을 책임지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연구 업적도 내기 어려운 고된 일을 기꺼이 맡고 있는 셈이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자원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인적자원과 식물자원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이 둘은 석유와 달리 재생산될 수 있이 더 유용한 자원”이라고 말했다.

인공씨감자 전문가에서 자생식물이용기술사업단의 지휘자로 변신한 정 단장은 처음의딱딱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연구분야를 설명해 주면서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랄까. 자생식물을 한층 빛나게 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고수로 느껴졌다.

200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 박현정
  • 만화

    최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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