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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부러진 뼈 : 사건을 해결하는 퍼즐

죽음, 그 후 ➌


시체농장에서
일하던 어느 날, 총으로 자살한 사람의 시신이 들어왔다. 입에 산탄총을 물고 방아쇠를 당겨 사망한 시신은 얼굴 형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뼈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피부 사이로 희끗희끗 드러난 뼈를 보고 있자니 왠지 그가 겪었을 고통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크게 손상된 시신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보는 것만 힘든 게 아니라 시신이 부패한 후에 수습하기도 어렵다. 파손된 작은 뼛조각들이 부패하는 동안 여기저기 흩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뼛조각을 하나하나 줍고 주변의 흙을 몇 번씩 체로 걸러내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뼛조각을 모은다고 끝이 아니다. 혹시나 분실된 조각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세척이 끝나고 나면 필자는 항상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춰보곤 했다. 자연스레 ‘뼈가 왜 이런 형태로 부서졌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 뼈가 어떻게 손상되는지 파악하는 연습을 숱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부러져야 알 수 있는 사실들

부러진 뼈는 신기한 퍼즐이다. 조각을 모아 잘 짜 맞추면 뼈의 온전한 형태뿐 아니라 그 뼈가 부러질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강의를 하다 보면 호응이 가장 좋은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뼈의 손상(trauma)이다. 일관성 없이 부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뼈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규칙을 하나씩 배울 때마다 자신 앞에 놓인 뼈가 겪었을 사건의 퍼즐을 진지하게 맞춰나가곤 한다.

사람 뼈는 무기질 성분 75%와 유기질 성분 25%로 이뤄져 있다. 유기질 성분의 90%를 차지하는 콜라겐 덕에 뼈는 충격을 받아도 유리처럼 바로 바스라지지 않고 어느 정도 유연하게 반응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을 받으면 결국 뼈가 부러지는데, 이때도 무기질 성분과 유기질 성분의 절묘한 조화 때문에 독특한 파손 형태를 보인다. 뼈의 이런 특징을 안다면 손상된 뼈를 통해 충격의 종류는 물론 충격이 어느 방향에서 몇 회에 걸쳐 어떤 순서로 가해졌는지 추론할 수 있다. 부러지지 않았다면 알기 힘든 사실들이다.


총알이 남긴 흔적으로 추리하다

일반적으로 충격은 고속 충격과 저속 충격으로 나눌 수 있다. 고속 충격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물체는 총알이다. 총알과 같이 빠른 물체는 대개 뼈를 관통하면서 입구와 출구를 남긴다. 구멍 두 개 중 어느 것이 입구고 어느 것이 출구인지 알 수 있다면 총알의 진행 방향을 추론할 수 있다. 총알이 머리뼈를 타격하면 총알이 닿는 면에 동그랗고 작은 구멍이 생긴다. 이 입구로부터 방사형 골절(타격 지점에서 바깥쪽을 향해 뻗어나가는 형태의 골절)이 발생한다. 이 때 머리뼈 안팎의 압력 차이 때문에 입구 주변의 뼈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강하게 들리게 되는데 이 때문에 입구 근처에 동심원 골절(타격 지점 둘레에 발생하는 둥근 형태의 골절)이 생기기도 한다. 총알은 분명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뼈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힘을 받는 셈이다. 캔에 든 소다를 열심히 흔든 다음 송곳으로 구멍을 내면 탄산의 압력 때문에 캔이 바깥쪽으로 폭발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머리를 관통하면서 총알의 속도는 다소 줄어들지만 회전 반경은 더 커진다. 이 때문에 총알은 폭발하듯 뼈를 빠져나오면서 크고 불규칙한 형태의 출구를 만들어낸다(아래 그림). 입구에서 시작된 방사형 골절은 많은 경우 총알보다 빨리 출구 근처에 도달해 뼈를 손상시키곤 하는데 이 경우 출구쪽의 파손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뼈에 여러 개의 총상이 있어도 어떤 손상이 먼저 발생했는지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새로 생긴 골절은 기존에 있던 골절을 넘지 않는다’는 푸페의 법칙 덕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뼈에 가해진 충격도 뼈의 약한 부분을 따라 흩어지며 골절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가 이미 형성된 골절을 만나면 남은 힘은 이 골절에 흡수되고 새 골절의 진행은 멈추게 된다. 그림➊을 보면 세 개의 입구와 방사형 골절들이 보이는데, 이 방사형 금들이 어디에서 멈췄는지를 보면 각각의 선후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둔기에 의한 손상은 총상과 다르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둔기로 가격당하는 경우에도 뼈는 손상된다. 뼈에 직접 닿는 물체의 속도가 총알보다 느리고 뼈에 전달되는 순간 에너지의 양 또한 적기 때문에 이런 충격을 저속 충격이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건 사고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저속 충격이 가해지면 뼈는 어느 정도까지 휘면서 충격에 맞서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부러지게 된다. 뼈는 압축력(수축시키는 힘)보다 장력(잡아 늘리는 힘)에 약하다. 따라서 뼈는 장력이 작용하는 부분, 즉 타격이 이뤄진 반대쪽부터 파손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차 파손 이후에도 충격 에너지가 남았다면 타격 지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또다른 장력이 발생해 그 부근에 동심원 골절이 발생한다(그림➋). 이 때 동심원의 크기는 뼈의 강도나 구조 혹은 충격을 가한 물체의 방향과 속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개 뼈를 타격한 물체의 면적보다 동심원 골절의 크기가 크다. 지름 5cm의 동심원 골절이 머리뼈에서 발견됐다면 이보다 지름이 작은 물체가 머리뼈를 때렸다고 추론할 수 있다.
 

끝이 날카로운 물체가 머리뼈를 강하게 타격하는 경우 총알에 의한 손상으로 오인할 수 있다. 동그란
구멍을 중심으로 방사형 골절이 뻗어나가고 주변에 동심원 골절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저속 충격은 뼈를 관통할 만큼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뼈에 출구를 남기지 않는다. 만약 타격 지점 반대쪽에도 손상이 발견된다면 이는 1차 타격 이후에 피해자가 바닥이나 벽에 부딪치면서 발생한 또 다른 충격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 저속 충격에 의해 발생한 동심원 골절을 보면 뼈의 안쪽 면, 즉 타격이 이뤄진 반대쪽 면으로 파손 단면이 움푹 들어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고속 충격의 경우와 정반대다(그림➌). 저속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뼈에 가해진 힘, 즉 바깥에서 안쪽으로 작용하는 힘이 동심원 골절을 만들지만 고속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뼈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작용하는 압력에 의해 골절이 생기기 때문이다.

뼈에 충격이 비스듬히 가해지는 경우 힘의 진행 방향으로 방사형 골절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머리뼈에 나타난 방사형 골절이 모두 타격 지점을 기준으로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면 사건이 발생할 당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타격이 이뤄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푸페의 법칙은 저속 충격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같은 뼈에 여러 개의 손상이 관찰되는 경우 골절이 중단된 양상을 살펴보면 타격의 순서를 판단할 수 있다.



죽음 원인 밝히는 최후의 흔적

매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시체농장으로 들어온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이들이 남긴 뼈는 연구와 교육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 덕택에 법의인류학자들은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뼈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점점 더 정확히 해석해낼 수 있게 됐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도 두개골에 남은 골절 하나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골절은 선명했지만 이 골절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렸다. 우리나라에도 시체농장과 같은 시설이 만들어져 체계적인 연구를 했다면 두개골 하나가 그렇게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뼈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사건 당시의 정황을 재구성하는 데 뼈만큼 강력한 증거는 없다. 다만 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확히 듣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할 뿐이다. 지금도 늦진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난 부러진 뼛조각을 열심히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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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정양승 법의인류학자
  • 에디터

    변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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