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사춘기 청소년들이 무슨 사고를 치거나 특이한 일을 했다 하면 따라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중2병’이다. 북한도 무서워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중2병의 정체를 밝혀보자.
고백부터 하자. 기자도 10대 시절 중2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갓 중학생이 된 주제에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도스토예프스키니 헤밍웨이니 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겠다고 들고 다녔다. 무료해지면 천재적이고 냉철한 독재자가 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부조리를 척결하고 세상을 내마음대로 바꾸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반대로 주류에 핍박받는 비주류로 살아가는 모습에 매력을 느껴 특이한 사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환단고기 같은 유사역사학 서적을 읽고 친구들에게 주류 사학계는 식민사관에 젖어 있다고 떠들어 대거나 공중부양을 하겠다며 단전호흡을 하기도 했다. 열거하자면 더 나오겠지만, 부끄러우니 이 정도에서 그만두기로 하자.
돌이켜보면 주변의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거나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그러면서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했으면서 ‘죄와 벌’을 읽었노라고 떠들고 다니는 식이었다. 술담배를 일찍 시작한다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쪽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점은 다행이었다. 당시에는 중2병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보통 사춘기라 ‘겉멋이 들었다’는 정도로 이야기하곤 했다.
만약 이때 했던 온갖 생각을 일기에 적어 남겨 놓았다가(그때는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 다시 펼쳐봤다면, 너무나 부끄러워 일기를 불에 태워 버렸을 것이다. 이처럼 중2병은 어른이 된 뒤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때는 그러고 놀았었지~”라고 추억에 잠길 수 있는 흑역사인 셈이다.

나는 특별하다는 허세
중2병은 청소년이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나는 남과 다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와 같은 생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데 빗대 만든 단어다. 사춘기에 걸쳐 생기는 증상이므로 꼭 중학교 2학년에만 해당하지도 않는다. 만약 성숙한 어른이 아직도 이런 착각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을 일컬어 ‘중2병에 걸려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춘기의 중2병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다.
장근영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중2병의 원인을 청소년기 자아중심성에서 찾을 수 있다”며 “‘상상의 관중’과 ‘개인적 우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상상의 관중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거나 자의식이 강해진다.
개인적 우화는 자기 자신이 특별하다는 의식이다. 자신이 겪은 일이나 느낀 감정은 특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중심에 놓는 사고방식이다. 또 한, 자신을 주인공과 같은 존재로 여겨 무모한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질러도 다치거나 잡히지 않는다고 믿는다. 때로는 스스로 고독한 존재를 자처하며 자기 감정에 깊숙이 빠져들기도 한다. 패기나 허세가 너무 강해지는 이유다.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인지적 사고력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장 연구원은 “사춘기가 되면 자기 내면의 복잡함을 인식하기 시작하는데, 남들 역시 자기만큼 복잡할 것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생긴다”고 말했다.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타인의 말과 행동의 차이 같은 허위, 위선, 가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는 똑같은 생각을 적용하지 못하는 이중성이 생기는 것이다.
사춘기에 폭발하듯 발달하는 뇌의 변화도 관련이 있다.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은 “과거에는 청소년기에 이미 뇌가 거의 완성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뇌가 ‘리모델링’ 수준으로 급격히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을 억제하는 전두엽이 덜 발달한 반면, 공포와 분노 같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발달돼 있어 이 둘의 불일치가 극에 달하는 시기다. 그래서 사춘기에는 감정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인터뷰 도중 김영화 원장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요즘에는 사춘기가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10대 시절을 사춘기로 봤지만, 요즘에는 사춘기가 20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김 원장은 “옛날에는 10대 후반이면 결혼을 해 어른으로 출발했지만, 요즘에는 교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춘기도 함께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2병이 나타나는 시기도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면 곤란
중2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소위 ‘오타쿠’ 문화와 연결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에 너무 심취해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든지, 자기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온갖 복잡한 설정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작품에서 나오는 비현실적인 외모를 선호하거나, 심한 경우 초능력과 같은 미지의 힘이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음악이나 영화, 공연 같은 다른 문화에서도 자꾸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려고 한다. 일부러 남들이 잘 모르는 특이한 문화를 즐기며 ‘나는 남보다 먼저 이들의 진가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소수의 진실을 아는 사람을 세상이 억압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빠질 수도 있다.
지적 허세 또한 중2병 증상이다. 주변 친구들이 만화나 흥미 위주의 소설을 주로 보고 있다면 자신은 어른들이 보는 어려운 책을 보면서 한발 앞서 나간다는 인상을 준다. 남들이 잘 모르지만, 어딘가 멋있어 보이는 용어나 개념도 자주 활용한다. 롱기누스의 창, 베엘제붑, 부두교, 프리메이슨, 다마스커스 검, 세피로스의 나무처럼 신화나 종교, 음모론 등에서 볼 수 있는 소재에 잘 꽂히는 유형이다. 과학에 대한 지식 역시 남과 달리 지적인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므로 유용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암흑에너지, 힉스, 초끈이론 등의 용어를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한다면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니만큼 사춘기의 중2병은 대체로 무해하다. 오히려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을 유지한다면 훗날 취미로 삼거나 전공으로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성인이 되어서도 중2병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망상에 빠질 수도 있어 위험하다.

공감과 소통이 중요
최근 각종 뉴스에서는 청소년의 일탈이나 범죄를 다루면서 중2병과 연관 짓곤 한다. 물론 중2병이 일탈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썩은 세상에 반항한다면서 술, 담배, 약물, 오토바이 폭주 등 건전하지 못한 행위에 빠져드는 모습을 멋지게 여길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개인적 우화’에 따르면 청소년은 나쁜 짓을 해도 자기만큼은 잡히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무모해질 수 있다. 그런 착각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장근영 연구원은 “청소년 범죄를 청소년기의 심리적인 특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청소년 범죄의 원인이 중2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장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율은 1980년 이후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지만, 1990년대 후반 IMF위기가 왔을 때처럼 사회적으로 불안정해지면 다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청소년 성범죄는 사회의 남녀차별이 심할수록 증가한다. 그렇다면 요즘 문제가 되는 청소년 범죄는 청소년기 특유의 심리보다는 사회 불안이 더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만약 으레 지나가는 과정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중2병이 심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영화 원장은 “조절하고 통제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이 너무 입시 위주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해서 자연스럽게 욕구를 풀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공감과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과 깊이 교류하며 해결해야 한다”며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중2병을 졸업했을까?” 허세는 청소년만 부리지 않는다. 성인 역시 때때로 허세를 부린다. 허세는 나르시시즘, 즉 자아도취에서 나온다. 중2병 역시 자아도취와 관련이 있다.
2009년 ‘나는 왜 나를 사랑하는가’를 쓴 진 트웬지 미국 샌디에고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대 문화에서 자아도취가 급속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만남은 기존의 면대면 만남에 비해 거의 완벽하게 자기를 통제할 수 있고, 얕은 인간관계를 광범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즉,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만을 널리 퍼뜨릴 수 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돼 행동의 제약도 없다. 소셜 미디어는 자아도취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무대를 마련해 준 셈이다.
자아도취일수록 페이스북 활발해
지난해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18~65세의 294명을 대상으로 페이스북 사용 습관과 자아도취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논문을 학술지 ‘성격과 개인 차이’에 발표했다. 이들은 연구 대상의 자아도취 성격 척도(NPI)를 조사한 뒤 자아도취의 구성 요소 중 ‘현시욕’과 ‘특별한 권리부여’, ‘타인을 이용하는 자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조사했다.
현시욕은 허영심, 우월감, 과시욕을 뜻한다. 현시욕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항상 중심에서 주목을 받으려 한다. 심지어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특별한 권리부여는 자기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 타인을 이용하는 자질은 다른 사람을 조종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성격을 말한다.
그 결과 현시욕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일수록 페이스북에 친구가 많았다. 소식도 더 정기적으로 올렸다. 또한, 악플에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프로필 사진도 자주 바꿨다. 특별한 권리부여나 타인을 이용하는 자질 점수가 높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의 친구 요청을 잘 수락하고 그들로부터 사회적인 지지를 구했다. 하지만 반대로 도움을 제공하는 데는 인색했다.
자아도취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욕망을 충족한다. 그 과정에서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자아도취 성향도 부추긴다. 자아도취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온라인 친구도 더 많고 활동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평범한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은 자아도취 성향이 높은 사람과 접촉할 가능성이 더 높다. 전체적으로 자기표현의 기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자기표현 기준을 확립하자
2011년 ‘광고연구’에 발표된 황성욱, 박재진 부산대 신문 방송학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겪을 수 있는 심리 문제의 유형은 총 7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자신보다 더 풍요롭게, 재미있게, 다양한 경험을 누리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페이스북을 오래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은 심하다. 밝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도배가 된 글을 더 많이 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또한, 페이스북을 하면 가식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도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거나 가식적인 표현을 쓰게 된다.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런 심리는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나 적게 사용하는 사
람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트웬지 교수는 “한발 물러서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셜 미디어의 자아도취자들이 높이는 기준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기만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삶과 글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자. 그러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아도취 경쟁에 말려들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