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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5900t급 이사부 호, 취항 준비 이상 무

5900t급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 호’. 폭이 18m, 길이가 99.8m로 10층 아파트 세 동 규모다.

봄비가 내리던 4월 7일, 경남 고성 stx조선해양 건조기지.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 호는 그곳에 정박된 배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실험실 가운처럼 새하얀 선체와 실험도구를 연상시키는 대형 크레인의 인상이 강렬했다. 오는 가을 취항을 앞두고 시험 운항 중인 이사부 호에 직접 승선해봤다.


“크레인에 머리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세요!” 박건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관측자료실 책임
기술원은 막바지 정비 작업으로 분주한 갑판 위로 기자를 당겼다. 1980년부터 36년 동안 과학조사선을 타고 있다는 그의 손은 뱃사람처럼 거칠었다. 그는 3월 21일부터 4월 5일까지 동해 수심 2000m 지점에서 이사부 호의 20여 가지 장비를 시험하고 돌아왔다. 며칠 뒤 또 다른 시험 운전으로 출항한다는 그와 이사부 호를 만난 건,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동해가 일주일 이상 날씨가 좋을 때가 거의 없는데 너무 맑아서 별로….” 박 기술원은 시험운항이 어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과학조사선을 시험할 때는 배가 제대로 건조됐는지뿐만 아니라 장비가 제대로 설치됐는지 반드시 검사해야 한다. 그래서 바다로 나가 장비의 모션 센서 값(이동 방향, 좌우 움직임을 측정한 수치)이 선박의 모션센서 값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한 번 더 엄밀하게 ‘영점 조정’을 한다. 해양음파탐사장비 하나 맞추는데 3~4일씩 걸리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교대로 시험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날씨라도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날씨가 좋으면 영점을 맞추긴 쉽지만, 잘 맞춰졌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떠다니는 과학 실험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5900t짜리 해양과학조사선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마침 옆에 정박된 거대 유조선 때문이었을까. 폭 18m, 길이 99.8m의 이사부 호가 처음에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타보니 달랐다. 배 밑바닥 엔진실부터 꼭대기 조타실까지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데 숨이 턱 막혔다. 다 합치면 10층 아파트 세 동 규모라고 박 기술원은 설명했다.

큰 배는 식당을 제외하고는 실험실과 장비들로 꽉차 있었다. 특히 메인덱이라고 하는 1층에는 채집한
지질시료와 해수를 분석하는 실험실, 생물 시료를 분석하는 생물화학연구실, 각종 센서로 측정한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신호처리 상황실 등이 오밀조밀 모여 연구원에 온 듯한 인상을 줬다. 박 기술원은 “5000t급 대형 과학조사선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8개뿐”이라며 “연구원 38명과 승무원 22명을 태우고 60일 동안 연속으로 항해할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과학조사선이었던 온누리 호는 이사부 호에 비해 무게가 4분의 1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해양 탐사가 가까운 태평양 주변 해역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KIOST는 이를 극복할 새로운 과학조사선을 건조했다. 배 이름도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우리나라 역사에 최초로 편입시킨 신라 장군 이사부의 이름을 본떴다. 더 멀고 큰 바다로 진출하겠다는 의지다.
 
배뿐만 아니라 장비도 거대해졌다. 배 우측에 쌓아 놓은 원통형 자이언트 피스톤 코어는 길이가 30m로, 온누리 호에 비해 10m 더 길었다. 피스톤 코어는 해저면의 지질을 조사할 때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저탐사 장비다. 코어를 여러 개 연결한 뒤 수심 6000m 이상에서 자유낙하시키면, 해저면을 관통하면서 원통 안에 퇴적물이 채집된다. 코어가 깊게 박힐수록 더 오래 된 해저 지층과 지질의 변화를 연구할 수 있다.

‘염분 수온 수심 측정기(CTD)’도 4월 초 동해 시험 운항에서 작동을 시작했다. CTD는 부피가 12L인 원
통 36개가 연결된 해수 채집기다. 36곳의 해수를 지점별로 채취해 전기전도도, 염분, 수심을 한꺼번에 측정할 수 있다. 피코그램(1조 분의 1g)의 미량 원소까지 분석할 수 있어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해수가 얼마나 오염됐는지, 바닷속에 플랑크톤이 얼마나 사는지도 알아낸다. 무게가 3t이 넘는 심해무인잠수정과 1400억 원을 들여 제작하려고 하는 유인 심해잠수정을 싣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이런 거대 탐사장비를 물 아래로 내리고 끌어당기기 위해 이사부 호에는 25t 대형 크레인이 있었다. 선미측 갑판에 있고 각도를 170°까지 조절할 수 있는 30t에이-프레임(A-Frame, 로프를 걸어 장비를 내리고 올리는 A자 모양 지지대)과 우현측 25t A-Frame도 위풍당당했다. 윈치(로프를 감는 기계)에 감긴 로프는 그 길이가 1만m가 넘었다.

육지와 실시간 통신하는 배

첫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이사부 호의 또 다른 장점은 섬세한 센서였다. 일단 배의 진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음과 진동이 적고 변속이 부드러운 전기모터를 사용했다. 그리고도 장비에 가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비를 하나 설치할 때마다 바닥에 진동을 흡수할 수 있는 마운트를 함께 설치했다. 박동원KIOST종합연구선건조사업단장은 “엔진이나 크레인의 진동이 관측 장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장비 받침대와 선체를 두껍게 만들었다”며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별도로 인증 시험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센서도 신경을 썼다. 해양조사선에서 센서는 ‘눈’이다. 해저면의 형태와 수심, 지각 구조 등을 모두 배 바닥에 달린 여러 가지 센서에 의존해 연구한다. 이사부호는 특별히 이런 눈이 ‘툭’ 튀어나와 있다. 센서가 배바닥으로부터 4m 가량 더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한 것. 프로펠러 때문에 배 바닥 부분에서 생길 수 있는 난류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1층 메인덱 상황실에서 여러 개의 모니터를 통해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위성통신을 통해 한반도에 있는 연구실에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대양 한 가운데 과학조사선의 활동이 연구자들에게 생중계되는 셈이다. 박건태 기술원은 “지상에 있는 연구자가 원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요청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해양과학 분야 특성상 바다에서 데이터를 수집해와 지상에서 연구하다보니,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오차가 크게 발생해도 다시 가서 구할 수가 없었다. 생물 시료의 경우 운반하는 과정에서 오염되는 일도 잦았다. 통신시스템이 갖춰지면 이런 문제가 단 번에 해결된다. ‘오른쪽으로 30cm만 더 이동해서 해저면을 촬영해주세요’

와 같은 주문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4000t급 이상 과학조사선을 4척씩 가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도 아직 완벽히 구축하지 못한 시스템이다.

바다에선 안전이 최우선

이사부 호는 아라온 호와 마찬가지로, 컴퓨터로 가고자 하는 지점을 입력하면 배가 알아서 찾아가는 자동항법장치를 쓰고 있다. 덕분에 파고가 5m 정도 되는 바다에서도 위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을 ‘다이나믹 포지셔닝(DP)’ 기술이라고도 한다. 기술의 난이도와는 무관하게 유저인터페이스는 간단했다. 온누리 호를 이끌었던 선장이자 앞으로 이사부 호를 책임질 이민수 선장을 따라 조타실에 가봤다. 원하는 위치를 지정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여러 가지 장비들이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며 배의 위치를 잡았다. 이선장은 “연구 장비들을 줄줄이 매달고 있는 과학조사선에서 특히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배가 작고 파고가 높으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선장은 “온누리 호의 경우 파고가 조금만 높아져도 연구를 중간에 멈추고 피항해야 했다”며 “이사부 호로 바다에 나가면 훨씬 더 편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들도 결국 사람이고 안전이 보장돼야 연구도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사부 호는 인수 후 7월까지 수심 2000m 이상 동해에서 연구장비의 안정성을 시험하고 8~9월엔 미크로네시아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나가 수심 6000m 이상에서 최종적으로 심해 탐사 장비들의 성능을 검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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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경남 고성=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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