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극이 움직인다! 단 여기서 말하는 북극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인 ‘자북극’의 위치다. 2024년 12월 17일, 미국해양대기청(NOAA)과 영국지질연구소(BGS)가 5년 만에 발표한 새 ‘세계 자기 모델’에 따르면 자북극은 최근 5년 동안 시베리아 쪽으로 연간 25km씩 옮겨갔다. 자북극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봤다.

자북극은 진짜 북극과 다르다
깊은 산 속에서 당신은 조난당했다. 휴대폰은 꺼졌고 하늘도 안보인다. 어떻게 방위를 알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나침반이다. 지구의 북극은 S극, 남극은 N극을 띠고 있다. 그러니 나침반 자석 바늘의 N극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북쪽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나침반은 정확하게 북극을 가리키지 않는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은 지구의 진짜 북극이 아닌 ‘자북극’이다. 위도가 정확히 90도가 되는 기하학적 의미의 북극이 진북극이라면, 자기극(자북극과 자남극)은 지구 자기장의 자기력선이 지표에 수직 방향이 되는 지구상의 지점이다. 만약 당신이 자북극 위에 나침반을 들고 서 있다면, 나침반의 N극은 북쪽도 어디도 아닌 땅바닥을 가리키고 있을 거라는 의미다. 미국해양대기청(NOAA)과 영국지질연구소(BGS)가 ‘세계 자기 모델’을 발표하는 이유다.
“화면의 파란색 각도가 보이시나요? 현재 대전에서 나침반의 오차가 왼쪽으로 8.6도 정도 난다는 뜻입니다.”
1월 24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에서 만난 박포규 전자기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이 세계 자기 모델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지난 30년 간 한국의 지자기 측정 체계와 기준을 꾸준히 만들어 온 ‘살아있는 나침반’이다. 2024년 12월 17일 5년 만에 발표된 세계 자기 모델에 의하면, 현재 자북극은 북위 85.762도, 동경 139.298도에 있다. 북극점과 직선 거리로 약 470km 정도 떨어진 북극해 복판이다. 자남극도 마찬가지로 남극점이 아닌 남위 63.851도, 동경 135.078도의 남극해에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나침반의 오차가 평균 8도 정도 발생한다. 심하지 않지만 오차는 북극에 다가갈수록 커진다. 당신의 위치와 진북극, 자북극이 이루는 각도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북극 가까이 가면 오차가 너무 커져서 더 이상 나침반을 쓰지 못하는 지경에 도달한다. 이렇게 나침반을 쓰지 못하는 지역을 ‘블랙아웃 구역’이라 한다. 그러니 남극이나 북극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명심하자.

자북극은 캐나다에서 시베리아로 이사 중
우리가 보통 교과서에서 봐오던 지구의 자기장의 모습은 지구 중심을 통과하는, 살짝 기울어진 커다란 막대자석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구 자기장은 훨씬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예를 들어 남대서양쪽에는 N이 측정돼야 하는데 S가 측정되는, 넓은 자기 이상 지역(SAMA)이 있을 정도다.
더 혼란스러운 사실은 자북극이 계속해서 움직인다는 점이다. 1831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클라크 로스는 캐나다 북부에서 최초로 자북극을 발견했다. 그런데 1940년대 후반 미군이 찾았을 때는 자북극이 북서쪽으로 약 400km 이동한 상태였다. 이후 자북극은 캐나다를 벗어나 빠른 속도로 북극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BGS 지자기장팀 윌리엄 브라운 박사는 보도자료에서 “자북극은 지난 20년 동안 시베리아를 향해 매년 가속해 움직이다가 약 5년 전 갑자기 1년에 35km 정도의 속도로 느려졌다”고 밝혔다. 자북극은 왜 움직이는 걸까.
지구 자기장이 만들어진 주요한 원인으로는 ‘지구 다이나모’ 이론이 언급된다. 전하를 가진 물체가 이동하면, 즉 전류가 흐르면 이로 인해 주변에 자기장이 생성된다. 이 전자기 유도 현상이 지구 내부에서 액체 상태의 철과 니켈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 다이나모 이론이다. 지구 자전과 외핵 위아래 온도차 등의 이유로 액체 금속이 내부에서 움직여 지구 자기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외핵의 운동은 매우 복잡하다. 필립 리버모어 영국 리즈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2월 13일 e메일 인터뷰에서 “핵의 유체는 달팽이 속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지만, 시간에 따라 복잡한 패턴으로 배열돼 복잡한 자기장 특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핵을 덮고 있는 맨틀의 온도와 구조도 유체 움직임에 영향을 미칩니다. 맨틀이 상대적으로 차가운 곳은 더 뜨거운 곳에 비해 핵에서 더 많은 열을 끌어내죠.” 이런 다양한 변수가 지구 자기장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자북극의 움직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온 연구를 종합하면, 현재 북극에서 자기장이 강한 지역은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두 곳이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이 둘을 ‘캐나다엽’과 ‘시베리아엽’이라 부르는데, 이 둘의 ‘힘겨루기’에 따라 자북극의 위치가 결정된다. “이중 캐나다엽은 약해지고 시베리아엽은 강해지면서 자북극이 러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자북극 변화를 연구한 리버모어 교수의 설명이다. doi: 10.1038/s41561-020-0570-9 “이 변화는 핵 내부의 자기장이 확산하거나, 녹은 철이 움직이고 늘어나면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내부를 볼 수 없으니 둘 중 어떤 이유로 캐나다엽과 시베리아엽이 변화한건지 알긴 어렵죠.”
즉 지구의 자기장은 깔끔하지도 않고, 정적이지도 않다. 김형래 공주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2월 4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구 자기장을 막대자석으로 표현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비쌍극자라 할 수 있는 자기장 성분들이 서로 엉켜 지구 전체의 자기장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오래된 암석에 기록된 지구 자기장을 조사하면 예전에는 지구 자기장이 뒤바뀐 지자기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구 자기장이 갑자기 변화하거나 역전돼 인류 문명이 위기에 빠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까? 김 교수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했다. “최근 지구 자기장의 비쌍극자 성분이 증가한다는 관찰이 있지만, 앞으로 몇 천 년간은 영화에서 보는 극적인 변화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구 자기장이 만들어지는 원리

지구 자기장 측정 위해 세계가 뭉친다
자북극과 자남극을 포함한 지구 자기장의 변동은 세계 자기 모델이 5년마다 업데이트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지구 자기장은 우리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 자기 모델의 업데이트는 중요하다. 대표적인 분야가 항법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는 나침반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비행기에도 나침반과 자기장 측정기를 법으로 설치하게 돼있다”며, “GPS나 자동운행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비상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때, 최신 자기 모델이 아닌 지도를 사용하면 미세한 오차로도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BGS는 보도자료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영국까지 여행할 때 각도가 1도만 틀어져도 목적지에서 150km 떨어진 곳에 도착하게 된다”는 사례를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장 지도는 인공위성의 위치 파악, GPS, 통신, 기상 예보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새로운 세계 자기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측정된 지자기장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일을 맡아서 하는 곳이 ‘인터마그네트’ 컨소시엄이다. 세계 각국의 관측소 120여 곳이 함께하는데, 우리나라는 기상청과 KRISS가 협력해 만든 충남 청양의 지구자기 측정소가 2013년부터 인터마그네트에 가입해 자기장 데이터를 측정하고 공유 중이다. 박 책임연구원은 청양의 지구자기 측정소를 건립하는 과정에 참여한 바 있다. “자기장 측정에 영향을 미치는 ‘지자기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 철도와의 거리나 건물을 짓는 방법까지 자세한 규정이 마련돼있어요. 이 규정을 만족시키고 인터마그네트의 기준을 통과하는 측정소를 짓기 위해 고생했죠.”
박 책임연구원은 “현재 제주에 있는 지구자기 측정소도 인터마그네트에 등록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한국의 기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대부분의 지구자기 측정소는 북미나 유럽 등의 서반구에 몰려있어요. 그러다보니 다른 지역의 측정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죠.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해양의 지구자기를 측정하기 위해 자기장 측정 인공위성을 활용하고 있지만, 정확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선진국 궤도에 오른 이상, 지구 자기장 측정을 통해 세계 과학계에 기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할아버지께서 풍수사셨어요. 그때 쓰던 나침반을 제가 물려받았죠.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셈이에요.” 한국 지자기 측정 체계와 기준을 만들어 온 박포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전자기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