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S씨는 출근하면 습관적으로 책상 옆 사탕바구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든다. 일을 하다가도 손은 사탕바구니를 더듬고 있다. 그러다보니 점심때가 되도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고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또 당(糖)이 당긴다. S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근 당에서 섭취하는 칼로리의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충치의 주범 정도로 생각했던 당이 우리 몸에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당의 씁쓸한 진실을 공개한다.
“모든 규제를 싫어합니다. 시민들은 이런 사소한 일들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찬성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비만을 막아야죠.”
얼마 전 미국 뉴욕시 당국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식당과 극장, 가판대에서 16온스(약 450g)가 넘는 탄산음료의 판매를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시민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국민 절반이 비만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는 이미 교내에서 탄산음료를 사먹지 못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의 당 함량은 10~13%로 16온스짜리를 혼자서 다 마시면 당분을 45~60g 먹는 셈이다. 보통 각설탕 하나가 2.5g 정도이므로 각설탕 18~24개 분량이다. 뉴욕시가 이런 극단적인 조치까지 들고 나온 건 지난 수십 년 사이 미국의 비만 인구 증가와 탄산음료나 주스에서 섭취한 당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1970년대 후반 한 사람이 음료에 포함된 당에서 얻는 칼로리는 전체 칼로리의 3.9%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9.2%로 급증했다.
2004년 진행된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은 전체 칼로리의 12%, 청소년은 13%, 어린이는 10%를 음료의 당에서 섭취했다. 높아진 경각심과 각종 규제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증가세는 멈췄지만 만연된 비만을 줄이려면 탄산음료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지나친 당분 섭취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아저씨들은 커피가 당 섭취 주범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지난 5월 24일 우리나라 사람들의 당류 섭취량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말하는 당류란 포도당이나 과당 같은 단당류와 설탕(자당) 같은 이당류를 뜻한다.
식약청은 2008, 2009,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분석했다. 2010년 한 사람이 하루에 섭취한 당의 양은 평균 61.4g으로 2008
년 49.9g에 비해 무려 23%나 늘어났다. 그런데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이 기간 동안 주식을 통한
당 섭취량은 별로 변화가 없었던 반면(13.6g에서 14.2g으로 4% 증가) 가공식품을 통한 당 섭취량이 급증했다(19.3g에서 27.3g으로 41% 증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가공식품이 당 섭취량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일까. 얼핏 생각하면 우리도 탄산음료일 것 같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커피였다(8.9g으로 33% 차지). 그 다음이 주스 같은 음료류(5.8g으로 21%), 과자·빵류(4.2g으로 16%), 탄산음료(3.7g으로 14%)다. 물론 이 순위는 연령대에 따라 뒤바뀐다.
초등학생은 음료류(25%)와 과자·빵류(25%)가 많은 반면 중고생들은 탄산음료(25%)와 과자·빵류(24%)를 많이 먹었다. 20대 성인은 탄산음료(26%)와 음료류(24%)였고 30대 이상 성인에서는 커피류(51%)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런데 커피에 설탕이 그렇게 많이 들어있을까. 우리나라 성인들은 커피믹스(조제커피)를 즐겨 먹는데 조제커피 1회분 12g에서 커피과립은 13%에 불과하다. 나머지가 프림과 설탕인데 설탕이 8g을 차지한다. 하루 2~3회 커피를 마시면 설탕16~24g을 먹게 된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식약청 영양정책과 이우영 연구관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과일과 우유 제외)은 아직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량 범위(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10% 이내) 안에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연구관은 “증가세가 가파르기 때문에 이런 추세라면 5년 이내에 권고량을 초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초중고생의 당류 섭취 증가 추세와 비만 증가 경향이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초중고생의 평균 당 섭취량은 2008년 48.7g에서 2010년 62.9g으로 늘어났는데 이 기간 비만율도 11.2%에서 14.3%로 증가한 것. 어린이 비만과 청소년 비
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우리도 미국처럼 적극적인 규제를 검토할 시점에 온 것이다.
영양과잉 부작용 지방보다 당이 심각
사실 당류의 과다섭취는 글로벌한 현상이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촌 사람들의 당류 섭취량은 3배나 늘어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설탕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앓는 질병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유엔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전 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한 해 3500만 명으로 전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수를 추월했다고 발표했다. 비전염성 질환이란 심장병, 암, 당뇨 같은 병이다.
비전염성 질환이 만연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영양과잉이다. 예전에는 과도한 지방 섭취가 주범으로 여겨졌으나(지방은 열량이 1g당 9kcal이므로) 최근에는 당류의 해악이 더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당류는 1g당 열량은 4kcal로 적지만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비만 뿐 아니라 인체의 대사경로를 교란해 다양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루스틱 미국 UC샌프란시스코 비만센터 교수와 로라 슈미트, 클레어 브린디스 박사는 지난 2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당에 대한
끔직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들은 당이 담배와 술에 맞먹는 건강 위협 요인이며 특히 각종 식품에 들어있는 ‘가당(added sugar)’이 문제라며 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일이나 과실주에서 섭취한 당을 빼고 식품에 들어있는 당의 한 사람당 하루 섭취 열량을 국가별로 보면 미국인은 600kcal가 넘는다(유엔식량농업기구 2007년 자료). 우리나라는 300~400kcal 범위에 있어(정확하게는 323kcal) 미국인의 절반수준이지만 결코 낮지 않은 수치다.
이 지도를 보면 현재 비만인구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들의 분포와 설탕 섭취량이 대체로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루스틱 교수와 동료들은 당의 유해성이 술(에탄올)에 필적한다며 규제가 필요한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불가피성으로 어디를 가도 당이 없는 곳은 없다. 원래 당은 과일이 열리는 계절에나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영양분이었지만 지금은 안 들어 있는 식품을 찾기 어렵다. 두 번째는 독성으로 당의 과잉 섭취는 비만 뿐 아니라 건강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쌓이고 있다.
세 번째는 남용의 위험성으로 담배나 술처럼 당도 의존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은 뇌 보상센터의 도파민 신호를 약화시켜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쾌감이 약하게 전달돼 더 많이 먹게 한다. 끝으로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으로 당 과잉 섭취로 생긴 대사질환을 치료하느라 의료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걸 고려하면 당도 술처럼 규제가 필요한 품목이라는 게 필자들의 주장이다.
그 상징적인 조치로 당류 가운데 하나인 과당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물질(GRAS)’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 이 목록에 들어있는 원료는 양에 구애 받지 않고 쓸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익숙한 설탕이 아닌 과당이 규제대상으로 거론될까.
과당 대사는 에탄올 대사와 비슷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뤄진 분자다. 결국 설탕 10g을 먹으면 포도당 5g과 과당 5g을 먹는 셈이다. 사실 인류가 자연에서 섭취한 당은 설탕보다는 포도당과 과당이 따로 떨어져 있는 형태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사과 100g에는 과당이 5.9g, 포도당이 2.4g, 설탕이 2g들어있다(물론 시료에 따라 편차가 있다). 포도는 과당이 8.1g, 포도당이 7.2g인 반면 설탕은 0.2g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탕수수에는 과당과 포도당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설탕의 형태로 있다. 여기서 추출해 결정화한 설탕이 보급되면서 설탕이 주된 당의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사이 이런 트렌드에 변화가 생겼다. 옥수수 녹말을 효소로 처리해 포도당으로 분해한 옥수수 시럽을 만들고 여기에
또 다른 효소(자일로오스 이소메라아제)를 처리해 포도당을 과당으로 바꾸는 발효기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식품업계가 과당을 주목하게 된 건 설탕에 비해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같은 양일 때 과당은 설탕보다 1.1~1.7배나 더 달다(과당은 온도가 낮을수록 더 달게 느껴진다). 반면 포도당은 설탕의 70% 수준이다. 게다가 이렇게 얻은 과당은 설탕보다도 싸다.
식품업계는 과당이 설탕보다 좋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과당은 포도당이 아니기 때문에 혈당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 당뇨병을 일으킬 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 포도당의 혈당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과당은 19에 불과하다. 설탕은 65이므로 과당이 설탕의 30% 수준이다.
그러나 과당은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포도당보다 나쁜 건 물론 그 해악이 에탄올에 버금간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 몸은 과당을 비슷한 분자인 포도당(둘은 분자식이 C6H12O6로 똑 같고 배치만 다른 이성질체 관계다)이 아닌 에탄올처럼 인식한다는 것. 즉 몸에 섭취된 포도당은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반면 과당은 에탄올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간세포에서 처리된다.
과잉섭취했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과당은 간에서 지방으로 바뀐다.(반면 포도당은 대부분 고분자 탄수화물인 글리코겐으로 바뀌어 간에 저장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방은 혈관을 타고 지방세포에 축적돼 비만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방은 간에 머물러 지방간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인슐린저항성이 생겨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과당은 단백질에 달라붙으며 활성산소를 내보내 염증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에탄올의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또 요산을 만들어 고혈압으로 이어진다. 요산은 혈관확장 작용이 있는 일산화질소(NO)의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설탕의 해로움 가운데 대부분이 두 구성성분 가운데 포도당이 아니라 과당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단맛을 높이기 위해 과당이 첨가된 식품이 많다. 심지어 ‘설탕 무첨가’라고 표시한 제품에도 성분표시를 보면 ‘액상 과당’이나 ‘결정 과당’이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몸을 생각해 설탕을 안 넣은 제품을 고른 소비자들은 표범을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