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직접 가보기 어렵지만, 영화에는 자주 등장하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정신병원이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신병원, 그 곳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몇달 전 인도의 한 정신병원에서 불이 나 침대에 결박돼 있던 입원 환자 2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새벽 불이 나자, 의사와 간호사들은 재빨리 건물 밖으로 피신했으나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수용자들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탔다고 경찰은 전했다. ‘에르와디’라는 이름의 이 마을은 정신병 치료에 영험한 것으로 알려진 성지마을로 30여개의 정신병원이 있는데, 잠을 잘 때는 수용자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몸을 묶어두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한편 지난 1998년 경남 합천군에 위치한 합천 고려병원은 입원 환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가하고 수년 간 거액의 진료비를 부당하게 징수해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줬다. 검찰에 따르면, 이 병원 보호사들은 환자가 다른 여 환자와 입을 맞췄다는 이유로 배를 마구 차고 짓밟아 장 파열로 숨지게 하고, 탈주를 모의했다는 이유로 환자들을 흉기로 마구 폭행했다고 한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환자는 의사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격리시키는 등 수십차례 가혹행위를 저질러왔다. 이러한 사실은 이 병원 정신병동 환자들이 집단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신의학에 복종하는 신자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사례는 신문지상에서 간혹 보게 되는 정신병원과 얽힌 사건의 전형적인 예다. 이들 사건은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폐쇄적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신병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도 대개 “비정상적인 환자들이 모여 있다” “한번 들어가면 쉽게 나오기 힘들다” “환자들은 병원 당국에 의해 엄격한 규율로 통제된다” “환자들에 대한 반인권적인 가혹행위가 저질러지기도 한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는 정신병원을 주된 무대로 다룬 영화들도 한몫을 했다.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는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규율과 통제, 간호사들의 관료주의 등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버디’(Birdy, 1984)나 터미네이터 2’(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1999) 등의 영화에서도 정신병원은 폐쇄적이며 반인권적인 가혹행위가 자행되는 공간으로 묘사돼 있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첫장면은 병원의 평화롭고 일상적인 아침으로 시작된다.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결박을 풀어준다. 약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한줄로 늘어선 환자의 입에 간호사들은 하얀 알약을 넣어주고 환자는 작은 컵에 담긴 물로 알약을 삼킨다. 이 장면은 마치 한조각의 밀떡과 한모금의 포도주를 받아마시는 성당의 미사를 연상시킨다. 이 순간 환자들은 현대 정신의학이라는 신에 복종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신자들이 된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중인 맥머피가 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평화로운 성당 분위기는 이내 어수선해지고 만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여러 차례 폭행을 저지르자, 그것이 정신병을 위장해 수감생활을 피해보려는 속셈인지를 검증받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맥머피는 처음에 병원 분위기가 평화롭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갈수록 환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적인 질서를 목격하게 된다.
일례로, 병원에서는 매일 환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각자의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환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간호사 중심적이다. 간호사는 환자들을 ‘젠틀맨’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그들과 대화할 의사가 없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환자를 이끈다.
맥머피는 월드시리즈 TV 중계를 보고싶다고 부탁하지만 간호사는 다수결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면서 무기력한 환자들에게 표결에 부친다. 맥머피는 결국 다음날 벌어진 2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찬성표를 과반수 이상 얻게 되지만, 시간 초과라는 이유로 월드시리즈 시청은 금지된다. 간호사는 환자들을 위해(?) 다시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비정상인에 대한 정상인의 억압
맥머피가 병원의 분위기를 해치자, 병원 당국은 그에게 약을 먹인다. 무슨 약이냐고 물어도 “그냥 약일 뿐”이라며 어떤 약인지 말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맥머피의 돌출행동이 심해지자 강제로 전기충격을 가하는 전기치료를 수행한다. 맥머피는 점점 다른 환자들처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변한다.
이곳 병원의 환자들이 얼마나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했는가는 그들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병원에 들어온 존재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병원 밖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며 언제든지 나갈 수 있으면서도, 나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병원 안에서 지낸다. 병원은 그 동안 그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치료했던 것이 아니라 병원 생활에 알맞은 ‘수용자’로 적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규율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병원’이라는 폐쇄 공간이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환자들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규율에 의해 통제되지만, 결국 그것은 환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규율 자체를 위해 시행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때로는 그 본질을 망각한 채 제도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간호사의 행동은 관료주의에 젖은 공무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그곳에서 현대정신의학이 환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지식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정상인에 대한 정상인의 억압을 넘어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게 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역시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여성환자들만이 머무는 곳이며 사춘기 소녀 수잔나는 그곳에서 혹독한 성인식을 치른다는 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무대가 사회에 대한 상징으로의 정신병원이었다면, ‘처음 만나는 자유’의 무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내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면의 공간으로서의 정신병원인 것이다.
사실이지만 과장도 많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 속에서 묘사된 정신병원의 모습은 모두 사실일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개 사실인 경우가 많지만 다소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 우선 줄을 서서 약을 타 먹는 모습은 실제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일반적으로 대학병원에서는 이제 환자들이 줄을 서서 약을 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다가가서 직접 약을 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형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줄을 서서 약을 타기도 한다. 그러나 약의 성분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환자가 약의 효과를 물으면 자세히 알려주는데, 그것이 치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환자 스스로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가를 알고 있을 때 치료 효과가 더 증가하기 마련이다.
영화 속 정신병동의 창문은 모두 쇠창살이 쳐있다. 예전엔 그랬지만 요즘은 대개 방탄유리를 사용한다. 살벌한 창살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창문을 열 수는 없다. 뛰어내리려 하거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자들은 하루종일 뭘 하며 지낼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보듯 환자들은 TV를 시청하기도 하고, 카드놀이를 하기도 한다. 환자들에겐 자유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와는 달리 환자들끼리 합의만 하면 마음대로 보고싶은 프로를 볼 수도 있으며, 양호한 환자들은 10시까지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영화에서처럼 아침, 점심, 저녁마다 시간을 정해 음악을 틀어주기도 한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계속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원하는 음악을 틀어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중가요를 자주 듣기도 한다.
환자들을 묶어놓기도 할까. 그렇다. 환자들 중에는 타인에게 공격적이거나 자신에게 자해를 하는 성향의 환자들도 있다. 따라서 의사나 간호사, 다른 환자들을 보호하고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때론 묶어두기도 한다. 영화에서 보면, 한 정신병동에 다양한 증세를 가진 환자들이 함께 수용되는데 이것도 사실이다. 마약환자 등 특정 질환의 환자들만 따로 수용하는 전문 클리닉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 일반 대학병원의 경우 정신병동이 하나밖에 없고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맥머피에게 가했던 ‘전기충격’은 영화 속 허구일까. 그렇지 않다. 정신병적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등 많은 정신질환자들의 경우 전기충격을 가하면 환청이 사라지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억제된다. 아직 그 메커니즘이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정신병동에선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방법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환자가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은 아니며, 기억을 지우는 효과도 있어 대부분 자신이 전기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전기치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격리 수단 아닌 치료 시설
영화에서 묘사된 정신병동의 가장 큰 오류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적대적으로만 묘사한다는데 있다. 물론 어떤 병원은 의사나 간호사, 보호사 등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때론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며, 안전 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환자를 방치하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치료’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만나는 관계다. 따라서 환자들도 의사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정신병원의 역사는 2백년을 넘지 않는다. 정신질환을 하나의 의학적인 병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때가 2백년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정신질환자는 사탄의 악령에 사로잡히거나 영혼이 달아난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정신병원이 지어진 초기만 해도 정신병원은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격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정신질환자를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 또는 교정이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하고, 이들을 정상인들과 분리시켜놓기 위해 정신병원에 감금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신질환이 ‘치료 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신병원은 정신병을 치료하는 본격적인 병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단독 정신병원으로는 8·15해방 직후에 설립된 청량리 뇌병원(현재는 청량리정신병원이라고 개칭)이 최초의 정신병원으로 기록된다.
정신의학이 발달하고 인권존중 의식이 고조됨에 따라 정신병원 내에서 환자의 처우와 정신과적 의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환자를 구금하던 폐쇄 병실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개방 병실로 옮겨가고, 환자들에게 레크리에이션요법, 직업요법, 연극·회화요법 등 다양한 치료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사회복귀를 위해 의사와 환자가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요즘엔 병동 내에 노래방 기계가 설치돼 있으며, 환자들이 서예나 영어공부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기도 한다.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가 바로 감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푸코의 가정법을 빌리자면, 정신병동을 무대로 한 영화들은 한 목소리로 “정신병원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가 바로 정신병원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동인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정신병환자나 정신병원이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이 크게 다르지 않고, 정신질환자들의 고민과 방황이 결국 우리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정신병동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다.
정신병원을 소재로 만든 영화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
밀로스 포만 감독, 잭 니콜슨, 루이스 플레쳐 주연. 켄 케이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밀로스 포만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맥 머피 역의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정신병 환자 마티니 역을 맡은 젊은 날의 대니 드 비토를 비롯한 조연급 연기자들의 개성 있는 연기가 빛을 발한다. 교도소에 수감중인 맥머피(잭 니콜슨 분)는 교도소 안에서 자주 폭행을 일삼자, 그것이 정신병을 위장해 수감생활을 피해보려는 속셈인지를 검증받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된다. 정신병원은 겉보기엔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지만, 맥머피는 환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질서가 도사리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는다. 맥머피는 병동 안에서 도박을 하거나 월드시리즈를 TV로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말썽을 피우는 등 갖가지 돌출 행동들로 병동의 ‘규율과 질서’를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환자들을 모두 데리고 바다 낚시를 가기도 한다. 환자들은 맥머피를 따르면서 차츰 자신들의 생각과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만, 이로 인해 간호사 랫취드(루이스 플레쳐 분)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간다. 제소 날짜가 지나더라도 퇴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맥 머피는 탈출을 결심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간호사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 후 간호사들이 주는 알약에 의해 점점 무기력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맥 머피의 동료였던 인디언 추장은 옛 동료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며 그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행한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잃어버린 채 숨쉬는 고깃덩어리로 전락한 친구에게 인간다운 죽음을 선사한 것. 그리고 그는 병원을 탈출한다.
|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1999) |
제임스 맨골드 감독, 위노나 라이더, 안젤리나 졸리, 우피 골드버그 주연. 수잔나 케이슨의 자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 영화의 제작자인 위노나 라이더의 사춘기적 고백과도 같은 영화다. 안젤리나 졸리에게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선사한 영화. 1967년, 아스피린 50알을 보드카 한병과 섞어 마신 17살의 수잔나 케이슨(위노나 라이더 분)은‘경계선 인격 장애’판정을 받고 클레이모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녀는 그 곳에서 리사(반사회적 정신분열), 조지나(병적인 거짓말쟁이), 데이지(섭식 장애), 폴리(자애 화상 환자)와 친하게 되고, 특히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사(안젤리나 졸리)에게 조금씩 끌리기 시작한다. 정신병원이라는 낯설고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사춘기의 호된 통과의례’에 관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