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Knowledge]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명견은 명견을 남긴다?


마약탐지나 검역탐지, 인명구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명견(名犬)의 능력을 이어받은 체세포 복제견이 늘고 있다. 연구가 한창인 국립축산과학원을 찾아 복제견 만드는 과정을 보고 왔다.


3월 8일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국립축산과학원 특수목적견 연구동. 오전 9시부터 파란 수술복을 입은 연구원 10여 명이 바삐 돌아다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외과 수술 준비 과정과 비슷했다. 기자도 수술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술실에 들어섰다. 10평 남짓 될 만한 수술실은 동물병원 특유의 냄새가 풍겼지만, 깨끗했다. 수술대는 두 개. 각 수술대마다 두 명의 연구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9시 20분이 되자 드디어 바퀴 달린 들것에 첫 수술 대상이 옮겨져 왔다. 몸 길이가 족히 1m는 돼 보이는 누런 개였다. 이미 마취한 뒤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개를 조심스럽게 들어 수술대에 눕혔다. 그 위로 파란 수술 면포를 드리웠다. 배 부분만 드러내 털을 깎고 소독약을 꼼꼼히 발랐다. 심박동과 호흡 등 개의 상태를 면밀히 살핀 허태영 국립축산과학원 연구관이 전기소작기(전력을 이용해 절개와 지혈을 동시에 하는 수술 도구)를 손에 들었다. 날카로운 끝이 배에 닿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체세포 복제에 사용할, 알맞게 성숙한 난자를 채취하는 게 이 수술의 목적이었다.


배란된 성숙한 난자를 수술로 꺼내야만 한다

허 연구관이 난소 쪽 난관 끝에 금속 재질로 된 가느다란 관을 꽂았다. 관의 반대쪽 끝은 빈 플라스크에 걸쳐 놓았다. 또 다른 연구원은 자궁 쪽 난관 끝에 주사기를 꽂고 반투명의 붉은 액체를 주입했다. 이승훈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사는 “난자가 살아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만 포함한, 일종의 배양액”이라며 “배양액이 난관을 따라 흐르면서 난자를 끌고 밖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난관을 따라 짧은 여행을 마친 붉은 배양액이 플라스크로 흘러나왔다. 이제 그 안에는 난자가 있을 터였다. 연구팀은 반대쪽 난관에서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지름이 1~2mm에 불과한 난관을 다루는 연구원들의 손길은 몹시 세심했지만, 익숙했다. 플라스크 두 개를 채우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난자를 채취하는데 왜 굳이 배를 절개하는 수술을 하는 걸까. 돼지나 소는 도축장에서 얻은 난소에서 난자 수십 개를 뽑아낸다. 배란되기 전의 미성숙 난자이지만, 이를 며칠 동안 실험실 배양액에 두면 성숙한 난자가 된다.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돼지도 2000년대 초반에 처음 복제할 때는 배란 유도제를 주사해 난자를 배란시킨 뒤에 꺼냈다”며 “하지만 주사를 이용해 난소에서 미성숙 난자를 꺼내 체외에서 성숙시키는 게 훨씬 쉽고 비용도 덜 들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난자를 채취할 때도 이 방법을 쓴다.

하지만 개의 난자는 체외 성숙이 안 된다는 점이 문제다. 복제 연구 초기 돼지가 그랬던 것처럼, 배를 절개해 배란된 난자를 꺼내야만 한다. 이 교수는 “개라는 종의 특이성일 수도 있고, 아직 연구가 덜 돼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돼지나 사람은 배란 유도 호르몬을 주사하면 배란 시기를 임의로 정할 수 있지만, 개는 아직 그게 안 된다. 자연 배란된 개를 구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난자가 성숙한 뒤 배란되지만, 개의 난자는 미성숙 상태로 배란돼 난관을 따라 내려오는 3일 동안 성숙된다. 배란한 지 딱 3일 된 난자를 꺼내야만 한다는 얘기다. 만약 배란된 것만 보고 배를 일찍 열었다가는 너무 어린 난자를 꺼내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어린 난자는 핵을 제거하고 체세포를 넣는 과정에서 다 터져버린다.

게다가 돼지는 3주, 사람은 4주에 한번씩 배란하는 반면, 개는 6개월에 한번씩 배란한다. 한번 시기를 놓치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원하는 만큼 실험을 하려면 그만큼 후보 견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정확한 배란 시점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며 “혈액 속 임신 유지 호르몬 농도를 보고 적절한 수술 날짜를 잡는다”고 말했다. 현재는 혈액 1mL에서 5~16ng(나노그램)의 프로게스테론이 검출되면 난자를 채취할 적당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정확히 같은 날 배란하는 개 세마리가 필요하다

수술 중 또 다른 개 한 마리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실험을 한 번 할 때 최소한 두 마리에게서 난자를 채취해야 합니다. 좌우 난관에서 각각 평균 5개씩 총 10개의 난자가 나오는데, 20개는 채란해야 최종적으로 복제 수정란을 7개에서 15개 정도 만들 수 있거든요.” 이렇게 만든 복제 수정란을 보통 한 마리의 대리모 견에게 10개씩 이식한다. 이 때 대리모 견 역시 복제 수정란을 뱃속에서 키울 수 있는 몸 상태, 즉 난자 공여견과 동일한 호르몬 주기 선상에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배란일이 같은 개 세 마리를 찾아야만 체세포 복제 실험을 한 번 할 수 있다.

난자가 든 플라스크를 수술실과 연결된 실험실로 바로 옮겼다. 현미경 앞에 앉은 이승훈 연구사는 플라스크를 조심스럽게 흔들면서 배양액 안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간간히 미세한 스포이드를 이용해 무언가를 다른 용기에 옮겨 넣었다. “건강하고 딱 알맞게 성숙된 난자를 육안으로 고르는 겁니다. 완전한 구 모양으로 두께가 적당한 걸로요. 너무 오래된 난자는 탈락입니다.”

그 사이에 수술실에서는 연구팀이 난소를 살폈다. 그리곤 이 연구사에게 외쳤다. “박사님, 네 개요!” 난소 황체의 숫자였다. 난자는 난포라고 불리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데, 난포자극호르몬이 분비돼 난포가 부풀어 올라 터지면서 배출된다. 이 흔적을 황체라고 한다. 이 연구사는 “황체의 숫자를 세면 배란된 난자의 수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하곤, 다시 수술실을 향해 외쳤다. “난자 네 개 나왔습니다!” 연구원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절개 부위를 봉합했다. 난자 공여견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난자가 든 용기는 곧바로 또 다른 실험실로 옮겨졌다. 남윤석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원은 현미경 위에 난자를 올린 뒤,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책상 바로 옆에 있는 모니터에서 플라스크 위 상황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남 연구원이 양손으로 현미경 양 옆에 있는 손잡이 두 개를 움켜 쥐었다. 손잡이를 조작하자 현미경 재물대 위에 붙은 가느다란 바늘 두 개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왼쪽 바늘로 난자를 붙잡고 오른쪽 바늘로 난자를 찔러 핵을 제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리 채취해 둔 복제할 개의 체세포를 넣었다. 상대적으로 털이 적은 귀에서 떼어낸 세포였다. 마지막으로, 전기 충격을 줘서 완전히 융합했다. 남 연구원은 그렇게 꼬박 2시간 동안 10여 개의 복제 수정란을 만들었다.

이 연구사는 “네 시간 동안 배양한 뒤 오늘 오후에 대리모 견에 이식하는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돼지나 소의 복제 수정란은 실험실에서 배반포 단계까지 키운 뒤에 주사를 이용해 질 안으로 주입해 준
다. 수정란이 배반포까지 자랄 때쯤이면 이미 자궁에 내려온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의 복제 수정란은 난자처럼 실험실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시작하기 전에 머무는 곳, 즉 난자를 채취한 난관의 정확히 같은 위치에 그대로 이식해야 한다. 이식 수술을 한 뒤에는 잘 착상되기를 기원하는 일만이 남는다. 현재 복제 효율은 대리모 견 열 마리 당 한 마리만 임신에 성공하는 정도. 그나마 10년 전에 비해 많이 높아진 것이다. 2005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복제견 ‘스너피’는 123번의 시도 만에 탄생했다.
 
[체세포 복제견, 이렇게 태어난다

복제견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복제하려는 개의 체세포를 채취해야 한다. 보통 털이 적은 귀 안쪽에서 피부 세포를 조금 떼어낸다. 이 세포를 핵을 제거한 난자에 넣어 ‘복제 수정란’을 만든 뒤, 대리모가 될 개의 자궁에 넣어준다. 만약 착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평균 63일의 임신 기간이 지난 뒤 원본견과 유전자가 100% 동일한 새끼가 태어난다.]


뛰어난 명견의 복제견은 ‘후각망울’이 크다

현재 복제견은 마약탐지 등에 많이 투입되고 있다. 복제견을 탐지 부문에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 처음 나온 건 2007년이다. 이병천 교수는 “당시 관세청 마약탐지견센터가 ‘체이서’라는 아주 뛰어난 마약탐지견의 복제견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완전히 같지만, 외모나 성격, 능력이 조금씩 다르다. 복제견은 과연 어떨까. 이 교수는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 복제견은 원본견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했다. “복제로 세 쌍둥이를 만들어 비교했더니 체중과 키가 거의 같았어요. 혈액형도 같고 피부를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없습니다. 비글이나 달마시안처럼 점이 있는 종의 경우는, 점의 모양은 약간씩 다르지만 총 넓이가 같았습니다. 각각 다른 공항으로 보낸 복제견에서 똑같이 다리를 끄는 행동이 나타난 사례도 있어요.”

외모나 행동은 물론, 탐지 능력 역시 닮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다. 최초의 복제탐지견인 체이서의 복제견 7마리와 일반 개 7마리를 똑같이 훈련한 결과, 복제견은 5마리, 일반 개는 3마리가 훈련에 통과했다. 특히 검역탐지견 ‘카이저’의 복제견(국립축산과학원이 복제)들은 합격률 100%를 달성했다. 현재 인천공항에서 활동하는 검역탐지견 14마리 중 8마리가 카이저의 복제견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일반 개를 특수목적견으로 훈련할 경우 합격률은 20∼30%에 그치는 반면, 복제견은 합격률이 85% 이상”이라고 밝혔다.

뇌 연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엄기동 건국대 수의과대 교수팀은 비글 종인 복제탐지견 17마리와 일반 비글 10마리를 대상으로 인공 사과향을 반복적으로 줬다가 빼면서 뇌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촬영했다. 영상에 나타난 활성도 신호로부터 인지와 후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부피를 계산해 나이가 같은 개들끼리 비교했다.

그 결과, 후각 탐지 능력을 좌우하는 전두엽과 후각망울, 소뇌, 시상의 부피가 일반 개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뇌의 부피도 일반 개는 약 7만 7000mm3인 데 비해 복제견은 약 10만5000mm3으로 1.3배 이상 컸다. 엄 교수는 “후각과 인지를 담당하는 부위의 부피가 크면, 냄새를 맡아 처리하는 속도가 빠를 가능성이 크다”며 “복제탐지견의 인지, 분석, 행동 능력이 일반 개보다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7년, 콜롬비아 국제공항에서 마약 단속팀의 일원으로 일하며 많은 마약을 적발해 공로 메달을 받은 마약탐지견 아가타(당시 5살)에게 24시간 경호원이 붙어 화제가 됐다. 그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특수목적견이 드물다는 얘기다. 전세계적으로 뛰어난 특수목적견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나 암 세포 냄새를 맡는 암 탐지견 등 민간 수요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서울대 수의과대에서는 지금까지 총 20마리의 복제탐지견을 생산했다. 이들은 높은 성적으로 훈련을 통과해 현재 인천, 김포, 제주 공항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립축산과학원도 2012년부터 지금까지 33마리의 복제견을 만들어 소방서와 군부대 등으로 보냈다. 올해 태어난 5마리는 공군과 경찰청, 관세청에 추가로 보낼 예정이다.

남윤석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원이 탈핵된 난자에 복제할 개의 체세포를 주입하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북 완주=우아영 기자
  • 사진

    전북 완주=우아영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축산학
  • 수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