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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협력과 배신,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우리는 누구나 크든 작든 배신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마음 한편에는 나를 믿어준 사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협력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만, 배신하면 그의 이득까지 나의 이득이 된다는 걸. 하지만 그 이득의 단맛에 너무 빠져버리면 곤란합니다. 그 배신은 마치 부메랑처럼 나에게 날아오게 될 테니 말이죠. 협력과 배신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선 아주 교묘한 배신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세계든 동물의 세계든 배신은 아주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때문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선 배신을 어떻게 막느냐가 아주 중요한 문제죠. 배신을 제어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을 할 테니 말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배신의 기술이 등장합니다.


Rule 1. 집단의 크기와 처벌의 강도를 확인하라

모든 사회는 배신에 대한 처벌이 존재합니다. 즉 배신을 하기 전에는 배신으로 얻는 나의 이익(+)과 처벌로 잃는 손해(-)를 비교해야 합니다. 이건 배신을 하는 쪽은 물론이거니와 배신을 당하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처벌하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죠(122쪽 그래프 참조). 처벌을 하는 사람도 처벌에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비교해야 합니다.

큰 집단에서는 배신으로 얻는 이익보다 처벌로 잃는 손해가 훨씬 큰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 런던대 니콜라 라이하니 교수는 학술지 ‘생태와 진화 경향’에 기고한 리뷰 기사에서 처벌은 집단에 속한 개체가 많을수록, 또 각자의 힘이 유사할수록 큰 힘을 발휘한다고 밝혔습니다(doi:10.1016/j.tree.2011.12.004).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처벌이 ‘왕따’입니다. 동물의 협력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가 이득을 취하는 ‘호혜 이타주의’를 기반으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소나 말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박쥐는 생후 2년까지 사냥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사냥에 성공한 흡혈박쥐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어린 박쥐에게 피를 나눠주죠. 어린 박쥐가 성장해 사냥을 성공하면 대개 자신을 도왔던 박쥐에게 피를 나눠줍니다. 그런데 만일 이 박쥐가 자신이 사냥에 성공했을 때 혼자서 다 먹는다든가 자기 새끼만 먹인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이건 명백한 배신입니다. 이런 경우 배신을 당한 박쥐는 주변 박쥐들에게 배신자의 존재를 알립니다. 배신자로 낙인 찍힌 박쥐는 사회의 다른 일원들에게 어떠한 이득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격리되죠.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처럼 표나게 왕따를 시키진 않지만 배신자의 평판을 하락시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2014년 tvN에서 방영한 ‘더 지니어스 : 그랜드 파이널(시즌 4)’에서는 이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시즌 4에서는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 활약했던 모든 출연자가 모여 게임을 펼쳤습니다. 즉, 출연진 모두가 이전 시즌에서 서로를 경험했거나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죠. 시즌 3에서 승리를 위해 여러 차례 배신을 했던 출연자는 첫 게임부터 모두의 외면을 받습니다. 함께 출연했던 이들은 협력을 거부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나는 얘는 못 믿어”, “쟤랑은 안 해”와 같은 말로 그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렸습니다. 배신자의 입장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수를 둔 셈입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로 이뤄진 조직에서는 처벌 없는 배신도 가능하지 않겠냐고요? 생각보다 우리는 배신자에게 가혹합니다. 일본 훗카이도대 미즈호 시나다 박사는 실험을 통해 전체 실험자의 과반수 이상이 자신의 돈을 지불해가면서까지 배신자를 처벌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doi:10.1016/j.evolhumbehav.2004.08.001).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90명과 일종의 신뢰 게임을 진행했습니다(122쪽 참조). 그 결과 참가자의 61%는 돈을 지불해서라도 배신자(혹은 덜 협력한 무임승차자)의 처벌을 원했고, 특히 내집단(내가 속한 집단)의 배신자를 처벌하는 데 자신이 가진 돈의 절반 가량을 사용했습니다. 반면 외집단(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의 배신자 처벌에는 그 절반 정도만 사용했죠. 참가자들은 한때나마 같은 배를 탔던 내집단의 사람에게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겁니다.


‘더 지니어스’로 본 배신의 규칙

배신의 대가는 가혹하다. ‘더 지니어스 : 그랜드 파이널’의 여러 출연자들은 이전 시즌에서 배신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출연자 김경훈의 평판을 하락시키고 있다(
).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서는 같은 편(내집단)에게 배신 당해 탈락의 위기를 맞은 출연자 차유람이 탈락자를 가리는 마지막 대결의 상대로 상대편(외집단)의 일원이 아닌 내집단의 배신자인 출연자 김민서를 지목했다().

배신자를 처벌할 때 나타나는 사람의 뇌 반응도 자못 흥미롭습니다. 벨기에 취리히대 신경과학과 도미니크 드 퀘르벵 교수가 사이어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협력자, 즉 배신자를 처벌하는 행동을 할 때 우리의 뇌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배신을 당한 사람이 배신자를 처벌할 때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한 결과, 등쪽줄무늬체(dorsal striatum)에서 활성을 나타냈습니다. 이 부위는 보상을 받아 만족을 느낄 때 반응하는 곳입니다. 마음이 약하든 강하든 배신자를 처벌할 때는 모두 생물학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배신에 대한 대가는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집단의 크기와 처벌의 강도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크기가 작고 처벌이 다소 약하다고 느껴지는 집단에서는 배신이 무조건 유리한 선택일까요.



Rule 2. 나에게 몇 번의 기회가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기회가 몇 번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나에게 다음 기회가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배신이 정답입니다. 예컨대 상대방이 퇴사를 하거나 이민을 가거나 혹은 번호를 지우고 인연을 끊는 상황에서는 처벌이 작용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조금 더 신중해야 합니다.

이는 유명한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122쪽 참조). 전체 형량을 따졌을 때 두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선택은 두 사람 모두 혐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서로 배신만 하지 않으면 각각 1년만 감옥에서 살다 나오면 되거든요.

자, 이제 당신이 A이고 감옥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를 결정하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B가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 여러분은 부인을 하는 것(1년 형)보다 자백을 하는 것(석방)이 이득입니다. B가 자백을 하는 경우 역시 자백을 하는 것이 이득이죠.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상황이든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반면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과 교수이자 게임이론의 권위자인 로버트 액설로드는 1979년 죄수의 딜레마를 200번 수행했을 때의 필승법을 공모했습니다. 승부는 게임을 200번 한 뒤 다 합친 수감기간이 제일 짧은 사람(정확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선발하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러졌죠. 전세계의 경제학자, 수학자, 컴퓨터공학자들이 몰려들어 다양한 전략을 제시했지만, 우승한 알고리즘은 어이없게도 가장 단순한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뜻의 이 알고리즘의 핵심은 ‘절대 먼저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상대가 배신할 경우 즉각 응징하고, 또 상대가 협력하기 시작하면 다시 협력합니다.

액설로드 교수는 자신의 책 ‘협력의 진화’에서 당시 토너먼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교적 높은 점수의 프로그램 집단과 낮은 점수의 프로그램 집단을 구분하는 특징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결코 먼저 배신하지 않는 ‘신사적’ 특성이다. 신사적인 규칙은 비신사적인 것들과 100점 이상의 점수 차이를 보였다.’

정리하자면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질 때는 배신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저 배신하지 않는 것이 필승법이 될 수도 있죠. 상황에 따라 배신의 시점을 미루는 것도 일종의 기술인 셈입니다.


Rule 3. 누가 누가 배신에 취약한가

배신이란 누군가의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행위입니다. 성공적인 배신에는, 미안하지만 누군가의 신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배신에 취약한 사람은 누군가를 잘 믿는 사람이죠. 배신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을 공략할 때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벨기에 취리히대 미카엘 코스펠트 교수팀은 옥시토신과 믿음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믿음을 수치화할 수 있는 신뢰 게임을 하게 했습니다(doi:10.1038/nature03701). 이때 참가자를 투자자 그룹(위험을 감수하고 피투자자에게 투자하는 그룹)과 피투자자 그룹(투자 받은 금액에 대한 사례로 일부를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그룹)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절반에게만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뿌렸습니다(위 그림 참조). 옥시토신이 이들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죠.

그 결과 투자자 그룹에서는 옥시토신을 뿌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피투자자 그룹, 즉 신의를 지켜야 하는 그룹에서는 옥시토신을 뿌린 쪽이 대조군 그룹보다 투자자에게 돌려준 금액이 25% 가량 많았습니다. 심지어 지나친 믿음으로 손해를 본 사람도 있었죠.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이런 실험 결과를 보면 배신은 뇌의 생물학적인 과정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옥시토신의 강력한 효과 때문에 옥시토신 스프레이가 판매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까지 배신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배신 덕분에(?) 나에게 돌아올 이득이 아주 크다면 상대방에게 옥시토신을 뿌리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죠.

동물은 모두 합리적이고 매우 이기적입니다. 스스로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라면 크든 작든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마련이죠. 이를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배신이 언제나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설사 배신이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고립된 배신자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실제 심리적인 고립으로 인한 아픔이 물리적인 아픔과 동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doi: 10.1126/science.1089134). 미국 UCLA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는 가상의 공 넘기기 게임에서 소외된 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는데요. 심리적 고립으로 인해 활성화되는 부위는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동일했습니다. 그만큼 사회에서 누군가를 배신하고, 고립되는 것은 큰 아픔을 동반합니다.

사회는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배신보다는 협력을 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덜 아프면서도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배신의 기술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있습니다.

협력과 배신, 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아마 인류가 살아있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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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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