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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가 빼곡히 들어차있는 그림, 뾰족한 바늘 끝. 이것들이 당장 누군가를 해치는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고소공포증, 선단공포증, 환공포증 등 흔히 생각하는 공포증은 ‘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이라 불린다. 하도 많다보니 공포증이 흔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특정공포증 질환자는 5%에 불과하다.
굉장히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공포지만 실제론 생존에 필수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이다. 예를 들어 머리 위로 어떤 물체가 떨어지는 것을 알았을 때 자동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바짝 긴장을 한다. 그것이 종이 한 장일지, 벽돌 한 장일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몸이 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낯선 감각을 인지하면 바로 몸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fight-orflight)를 하는 것은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수없이 위험한 상황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공포는 현재, 불안은 미래
공포와 비슷하지만 같진 않은 개념이 있다. 불안(anxiety)이다. 이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 최수희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를 하나 들었다. “맹수들이 굉장히 많은 무서운 산에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때 아직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맹수가 나타날 것(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불안이라 하고, 맹수가 진짜로 나타났을 때(지금 맞닥뜨린 일) 느끼는 두려움은 공포”라고 설명했다.
공포와 불안에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편도체는 뇌의 수많은 부위와 연결되는데, 여기서 공포와 불안에 차이가 생긴다. 공포를 느끼는 데는 해마, 섬피질, 전전두엽피질 등 10여 군데의 뇌 부위가 직접 관여한다. 불안도 편도체가 핵심이긴 하지만 편도체 바로 옆에 붙어있는 BNST(분계선조침대핵)라는 뇌 부위와 연관성이 깊다. 김성연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교수는 “공포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가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등의 뚜렷한 반응이 나타난다”며 “반면 불안은 정량적인 측정이 어려운 감정으로 평소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행동들을 보고 추정해야 해 연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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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체도 모르는 공포가 존재
우어바흐-위데병(Urbach-Wiethe disease)은 인간의 편도체 기능을 밝히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우어바흐-위데병은 혈관 내 칼슘이 증가해 피부가 굳는 병으로, 질환자 중 50~75%는 편도체까지 굳어 그 기능을 잃고 만다. 지금까지 이 병을 앓았던 것으로 조사된 사람이 200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병이다. 미국 아이오와대 존 웨미 교수팀은 ‘SM’이라 불리는 한 여성 환자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이 여성은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하며, 기쁨, 슬픔 등 다른 감정들은 다 느꼈지만 공포감만큼은 느끼지 못했다. 동물이었다면 천적에 잡아먹히거나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 테지만, 그는 학습을 통해 위험한 상황들을 공부하듯 알아갔다.
그런데 연구 도중 의외의 실험결과가 나왔다. 웨미 교수팀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2013년 2월 3일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여성의 체내 이산화탄소 양을 증가시켰더니 숨이 막힐 것 같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공포감을 느낀 것이다.
그가 느낀 공포감은 공포보다 더 강력한 공황(panic)이었다. 공황과 공포의 차이는 공황장애 환자들의 특징을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황장애는 뇌간(brain stem)과 관련이 깊은데, 뇌간은 대뇌와 척수를 연결하면서 호흡, 맥박, 혈압과 같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공황장애 환149자들은 뇌간이 정상인보다 민감해 약간의 변화에도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 흔히 공황장애 환자들이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실험에 참가한 우어바흐-위데병 질환자도 편도체는 마비됐지만 신체가 호흡의 위험을 감지하고 뇌간이 활성화되면서 공황을 느낀 것이다.
하나로는 못 묶는 공포증들
미국정신의학회는 공황장애를 특정공포증과 함께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불안장애에는 이외에도 분리불안장애, 선택적함구증 등이 있다.
그런데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에 불안장애에 속했던 몇몇 질환들을 따로 분류했다. 두려운 감정들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중 하나가 강박장애다. 같은 행동을 비정상적으로 반복하는 강박장애는 편도체보다는 운동제어와 각종 인지과정을 매개하는 기저핵 및 전두엽-시상 회로의 장애가 더 큰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독립된 병으로 인정받았다.
사회공포증과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불안장애의 범주로부터 벗어났다. 사회공포증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거나 난처해지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두려움을 갖는 질환으로, 대인공포증이 여기에 포함돼있다. 사회공포증은 사람 간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전두엽의 정서 조절 영역이 비정상적인 것이 특징이다. PTSD는 다른 불안장애와 뇌에서 일어나는 일은 유사하지만, 질병 원인에 차이가 있어 따로 분류됐다. 불안장애 질환들이 현재 또는 미래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PTSD는 과거의 특정 사건이 주된 원인이 된다. 때문에 기억과 관련된 해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