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컴퓨터 비디오게임 레이저기술 무선전화 디지털시계 등을 탄생시킨 실리콘밸리에는 오늘도 아이디어 하나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과학기술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를 찾는 방문객들은 대다수가 실리콘 밸리의 관문인 산호세(San Jose) 공항에 내리게 된다. 공항에 내려 산호세의 쾌적한 날씨에 감탄하던 여행객들은 숙소로 가는 동안 차창밖에 전개되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상상밖이라는 표정들을 짓는다.
경관은 아름다우나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건물 거의가 지진 피해에 대비하여 목재로 지은 1, 2층짜리 건물이며 고작 높아봐야 5층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 정돈되고 자신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실리콘밸리가 어딘가에 질서정연하게 전개되어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실리콘밸리에 와 있으면서도 '빨리 실리콘밸리를 구경가자'는 등 안내자와의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곤 한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서해안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 인접한 스탠퍼드(Stanford)대학교가 있는 팔로알토(Palo Alto)로 부터 산호세 사이에 폭 16km, 길이 48km에 걸쳐 있는 골짜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덕과도 같은 도시의 집합이다. 도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산타클라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라고 한다. 실리콘밸리는 팔로알토 마운틴뷰(Mt. View) 로스 알토스(Los Altos) 서니베일(Sannyvale) 쿠퍼티노(Cupertino) 산타클라라(Santa Clara) 사라토가(Saratoga) 캠벨(Cambell) 산호세 밀피타스(Milpitas) 로스가토스(Los Gatos) 모건 힐(Morgan Hill) 등 12개 도시가 합쳐 형성된 첨단기술의 집단으로 세계적인 전자산업(micro electronics)의 중심지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이곳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산업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으로 된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탠퍼드 애플 휴렛팩커드 인텔…
실리콘밸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곳이 쾌적한 기후와 아름다운 전원 이외에는 초라하다고 하겠지만, 내면을 보면 다른 곳에는 없는 거의 모든 첨단기술이 이곳에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모험기업(venture business)으로서 성공한 표본이 되고 있는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사를 위시하여 휴렛팩커드 인텔 페어차일드 텐덤 록히드 등 4천여개의 기업이 운집하고 있고, 미국 전자공업협회(AEA) 본부가 있어 명실상부한 전자산업의 메카다.
실리콘밸리의 산업은 컴퓨터 반도체 항공 우주산업 분야의 전자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포켓컴퓨터 비디오게임 퍼스널컴퓨터 무선전화 레이저기술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지털시계 등이 이곳에서 탄생한 제품들이다.
실리콘밸리가 세계적인 첨단기술 기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기반의 하나는 스탠퍼드 대학교가 배출시킨 인재들과 스탠퍼드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된 산학협동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주변에는 휴렛팩커드사 배리안어소시에이트사 등 1백여개사가 넘는 첨단기업들의 연구개발본부가 리서치파크(Research Park)를 이루고 스탠퍼드와의 산학협동을 활발히 추진하여 실리콘밸리의 융성에 기여해 왔다.
미국 첨단기술 지역의 공통적 특징은 모두가 적어도 하나 이상의 대학 연구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실리콘 밸리의 스탠퍼드대학, '루트 128'의 MIT, 그리고 리서치 트라이앵글파크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 듀크대학이 그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다른 하나의 융성 기반으로는 모험자본회사(venture capital)들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다는 점이다. 이곳에는 전 미국의 모험 자본회사의 3분의 1이 밀집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모험자본회사들은 첨단 기초기술을 사업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기술이 집적되어 있는 실리콘 밸리를 택한 것이다. (모험자본이란 새롭게 출발한 고도의 첨단기술이나 놀랄만한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투자되는 자금을 말한다).
또다른 융성 요인은 실리콘밸리는 고도의 정보망을 갖고 있는 점이다. 기술혁신은 고도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보의존도가 높다. 실리콘 밸리는 전형적인 정보사회를 이루고 있다. 즉 노동인구의 대부분이 정보유통시스템 및 정보처리 기술을 만들어 내는데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직장인들은 엄청난 기술개발의 경쟁속에서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직장과 직장간, 동료와 동료간에 치열한 두뇌게임을 하는 것 같다. 게임에 이기면 두뇌의 값은 올라가고 지면 값은 떨어진다는 비정한 논리속에서 사람마다의 값이 매겨진다. 인간미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의 소유자가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되는 이곳의 생리때문에 우수한 머리만을 갖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수없이 몰려 든다.
그 결과 박사학위 소유자가 1만명 넘게 몰려있으며 하루에도 수십개의 회사가 신설되곤 한다. 이같은 현상은 1만명 이상의 30대 백만장자를 이곳에서 낳게 했으며 2만명 이상의 백만장자가 이곳에 살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을 정도다.
실리콘 밸리의 영화는 가는가?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40년이 채 안되지만 '첨단기술의 창출지' '첨단기술단지' 등 첨단기술로 통하는 대명사가 될 만큼 그 위치를 굳건히 하였다. 첨단기술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두뇌집단을 주변에 보유해야 하며 모험기업 및 모험자본과 좋은 환경이 필수적인데 이곳은 이 조건들을 충분히 충족시켜 왔다.
최근에 와서는 미국 최고 수준에까지 이른 땅값과 주택 가격의 급상승, 인구집중에 기인한 교통적체와 대기오염, 비싼 임금 등으로 생산시설이 뉴욕 북부, 텍사스, 오레곤, 콜로라도 같은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어서 실리콘밸리는 사양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직 실리콘밸리는 첨단기술 연구개발의 본산이다.
실리콘밸리의 한계론을 다른 각도에서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것은 실리콘밸리가 중점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 칩이 2백56K 1메가 4메가 16메가 64메가 등 소형화를 거듭하여 조만간에 소형화 기술면에서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낙로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 서부 해안지역의 지진발생으로 미세기술의 대명사 '실리콘'(반도체칩)분야에서 실리콘밸리는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대안 또는 현재 사용하는 칩 기술을 대신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이곳에서 나오지 않는 한 하이테크의 발생지라는 칭호는 실리콘밸리에서 미국의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로 옮겨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도 실리콘밸리는 정보사회를 위한 고도 첨단기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얻어진 교훈과 체험은 미국 동부의 실리콘밸리, 텍사스의 실리콘밸리,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실리콘 마운틴, 우리나라의 대덕연구단지, 일본의 쓰쿠바연구학원 도시 등을 낳게 한 모델이 됐다. 또한 실리콘밸리가 창출한 첨단기술은 세계기술사에 중대한 영항을 끼쳤고 오늘의 정보사회를 이끌어가는 기반이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영웅들
실리콘밸리의 성공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애플 신화'의 두 주역 스티브 좁스와 스테판 워즈니액의 이야기다.
76년 6월 당시 20대 초반이던 이들은 로스 알토스에 위치한 스티브 좁스의 차고에서, 좁스의 폭스바겐과 워즈니액이 갖고 있던 컴퓨터 1대를 팔아 장만한 1천3백달러를 밑천으로 최초의 퍼스널컴퓨터 '애플 Ⅰ'을 완성했다. 이 퍼스널컴퓨터는 그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애플사는 82년 5억8천3백만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해 일약 '포춘'지가 선정한 '미국의 5백대기업'안에 들게 됐다. 좁스와 워즈니액은 80년 애플사의 주식이 공개됐을 때 이미 억만장자로 변신해 있었다.
'퍼스널컴퓨터시대'의 문을 연 좁스와 워즈니액이 애플컴퓨터를 만든 동기는 오로지 자신의 컴퓨터를 갖고 싶었기 때문. 우수한 기술자였던 워즈니액과 모험적인 기업가 좁스는 자신들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 애플사를 가장 촉망받는 기업으로 키워갔다. '애플'이란 명칭은 채식주의자였던 좁스가 어려운 기계인 컴퓨터를 대중적인 기호와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
애플사는 81년 IBM이 퍼스널컴퓨터 시장에 참여하면서 '왕자'의 지위를 IBM에 물려줬지만 그후 '매킨토시'라는 신제품을 발표, 여전히 세계적인 컴퓨터기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워즈니액과 좁스는 차례로 애플사를 떠났다. 좁스는 현재 '넥스트'(Next)란 컴퓨터를 개발, 또다시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고 노력중에 있다.
터먼과 쇼클레이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스탠퍼드대학의 전기공학과 교수였던 프레드릭 터먼과 그외 두 제자 데이비드 팩커드, 윌리엄 휴렛 세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휴렛과 팩커드는 현재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업 휴렛 팩커드(HP)의 창시자들이다.
38년 팔로알토의 한 차고에서 HP사를 창립한 이들은, 51년 스탠퍼드대학이 재정난극복의 일환으로 '스탠퍼드리서치파크'를 건설했을 때 가장 먼저 입주한 기업 중의 하나다. HP는 다른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는 달리 50년동안 완만한 성장을 해오면서 충분한 기술력을 가장 큰 장점으로 갖고 있다. 전자계측기에서 출발한 HP의 사업은 현재 중형컴퓨터 워크스테이션 의료기기 등으로 확장돼 88~89년 '포춘'지가 선정한 미국 최우량 컴퓨터회사로 뽑히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또다른 창시자는 47년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를 최초로 발명한 윌리엄 쇼클레이. 그는 이 기술을 상품화하기 위해 고향인 팔로알토로 돌아와 56년 쇼클레이반도체연구소를 설립, 봅 노이스를 포함한 8명의 인재를 모았다. 그러나 쇼클레이의 야망은 성공하지 못하고 만다. 노이스를 포함한 8명이 이 연구소를 빠져나가 동부의 자본가 페어차일드의 후원으로 '페어차일드'사를 창립했기 때문이다.
페어차일드사는 실리콘밸리에 현재 존재하는 수천개의 반도체 기업들을 탄생시킨 모(母)기업과 같은 존재. 페어차일드에서 기술을 익힌 과학기술자들은 저마다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따로 독립해 나갔다. 그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오늘날 퍼스널컴퓨터의 핵심부품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대명사인 인텔사. 부하들에게 배신당한 쇼클레이는 56년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지만, 말년에 '모든 인종은 유전학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신념을 공표하고 '노벨상 수상자 정액은행'에 정액을 기증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반도체기업의 모태 페어차일드사도 79년 경영부실로 프랑스의 슈램버거사에 인수돼 버렸다.
암달의 실패
실리콘밸리의 인물 가운데 진 암달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밸리의 북부 맨로파크에 있는 IBM연구센터의 컴퓨터설계자로 IBM 사상 가장 성공을 거뒀던 'IBM360시리즈'의 주요설계자였다.
암달은 70년 IBM으로부터 독립해 IBM기계와 호환성을 가진 제품으로 IBM의 시장을 잠식해갔다. 암달사는 75년 첫제품을 출하한후 4년동안 3억달러의 매상을 기록, 거인 IBM의 공격속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암달사는 우수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자본부족과 경영미숙으로 늘 경영압박에 시달렸다. 암달사의 주식은 조금씩 일본 후지쓰로 넘어갔고, 그는 마침내 79년 자신의 이름이 붙은 회사에서 해임됐다. 그후 암달은 다시 몇 개의 회사를 창립했으나 비슷한 실패를 되풀이 한 '비운의 사나이'로 전해진다.
실리콘밸리에서 출세한 한국인으로는 '텔레비디오'사의 창립자 황규빈씨가 손꼽힌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75년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설립해 컴퓨터터미널 게임기 퍼스널컴퓨터분야에서 한때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제품개발과 경영능력의 부족으로 최근 매출이 급강하, 주식이 1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82년 설립했던 텔레비디오 한국지사도 현재 갑일전자로 넘어가 있는 실정.
실리콘밸리에는 현재 30여명의 박사급과 4백여명의 석사급 한국계기술자들이 꿈을 키워가고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 일대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1만명 정도. 삼성 금성 효성 현대 등 국내기업들도 현지법인 형식으로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