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우리별 3호 카운트다운

소형과학실험위성의 파이어니어

우리나라 위성시대를 열었던 우리별의 완성판이라고 불리는 우리별 3호가 발사된다. 소형 과학위성은 국제적으로 새롭게 부각되는 틈새시장. 우리별 3호의 발사를 계기로 소형 과학위성과 인공위성연구센터의 미래를 살펴본다. 또 우리별 발사를 통해 국제무대에 진출하려는 인도의 우주개발 능력도 진단해본다.

오는 5월 29일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제작한 우리별 3호가 인도의 PSLV 로켓에 몸을 싣고 우주로 향한다. 우리별 3호는 10년 동안 개발해 온 우리별 시리즈의 완성판으로 7백20km의 태양동기궤도를 돌면서 지구를 관측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관측범위가 넓은 선형 CCD카메라(해상도 15m, 지상에서 15m×15m인 물체의 크기를 한점으로 인식)를 달았다. 성능은 면적 CCD카메라를 단 1호(4백m)나 2호(2백m)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또 세계적인 지구관측 상용위성인 랜샛(30m)이나 스폿(10m)과 해상도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별 3호에는 우주고에너지입자검출기, 우주방사선실험장치, 정밀자기장측정기 등이 탑재돼 있다. 아직도 정확하게 풀리지 않는 밴 앨런대에 포획된 입자들의 행동과 같은 우주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우리별 3호의 최대 특징은 우리 나름대로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했다는데 있다. 1호는 영국의 서리대학과 공동 개발한 것이고, 2호는 국내 기술과 부품으로 개발했다고 하지만 크기는 물론 통신시스템, 자세제어시스템, 컴퓨터시스템 등의 기능면에서 1호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3호는 설계와 기능이 1, 2호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별 3호의 크기는 1, 2호의 2배에 이른다(무게 1백10kg). 그리고 위성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세제어(궤도상에서 지구와 통신하거나 탑재장치를 운용하기 위해 위성의 자세를 잡는 기술)를 위해 3축 안정화방식을 채택했다. 이로써 자세지향 정밀도(목적하는 곳을 바라볼 때 오차범위)를 5도에서 0.5도 이하로 줄였다.

위성 자신의 위치를 판별할 수 있는 지평선감지기(밤에도 볼 수 있도록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사용), 태양감지기(1축에서 2축으로 늘림으로 2차원으로 식별), 지구자기장감지기(1,2호와 동일)에다가, 3호만의 신기술인 별감지기(별자리를 보고 위치 파악), 자이로스코프, GPS 수신기 등이 보강된 것도 큰 특징이다. 또 과거 몸체에 붙였던 태양전지판을 전개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신기술에 속한다.

우리별 3호를 인도의 로켓으로 발사하는 것은 비용도 문제였지만 주된 이유는 발사시기 때문이다. 1, 2호를 발사했던 프랑스의 아리안, 러시아(실제로는 우크라이나)의 제니트, 중국의 장정 등이 거론됐으나 우리가 원하는 궤도 위치와 발사시기를 맞출 수 없었다. 다만 인도의 PSLV는 위성발사 경험이 적다는 것이 흠이다. 이번 우주여행에는 인도의 해양관측위성인 IRS-P4(1천50kg)와 독일의 소형위성 TUBSAT(45kg)이 동행한다.


우리별 1호 때부터 3호까지 줄곧 호흡을 맞춰온 연구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서림, 박강민, 장현석, 김성헌, 박성동, 김형신.


독자 모델의 완성판

우리별 3호의 발사는 당초 목표했던 것보다 거의 2년이나 늦었다. 2호가 발사된 1993년부터 치면 6년이 지난 셈이다. 우리별 3호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가 시들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우리별 3호와 같은 소형 과학실험위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느냐, 나아가 한국항공우주연구소(KARI)가 있는데 굳이 인공위성연구센터를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조그만 나라에서 중복투자로 예산을 낭비한다는 뜻이다. 이같은 이유로 인공위성연구센터는 1993년 9월부터 1995년 초까지 후속 위성개발에 대한 연구비가 끊긴 바 있다. 그러나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지적들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별 3호의 발사는 세간의 무관심과 달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지금까지 연구해온 소형 과학실험위성인 우리별의 독자적인 모델을 최종 완성했다는 점이다. 즉 소형 과학실험위성 발사를 꿈꾸는 다른 나라에 기술을 이전하고 개발을 대행해 줄 수 있을 만큼 자생력을 갖췄다는 말이 된다.

둘째는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위치를 확고하게 했다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가 아리랑과 같은 다목적 실용위성을 개발하는 곳이라면, 인공위성연구센터는 위성 개발인력을 양성하고 소형 과학실험위성을 만드는 벤처 노릇을 함으로써 두 기관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별(KITSAT)의 역사를 돌이켜 보자. 우리별 1호는 1992년 8월 11일(한국시간) 남아메리카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프랑스의 아리안 로켓을 타고 처음 우주궤도에 올라감으로써 우리나라를 위성보유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를 만든 사람들은 20대 중반의 한국과학기술대학(현 KAIST 학사과정) 졸업생들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많은 돈을 써가며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애초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별 1호를 두고 남의 기술로 만든 위성을 쏘아 놓고 우리별이니, 위성시대의 개막이니 하고 떠드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별 1호에는 ‘남의별’이란 짓궂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런 수모는 오래가지 않았다.

1년 뒤 우리별팀은 자신들의 기술과 국내 부품으로 우리별 2호를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별 2호는 1993년 9월 26일 우주궤도에 올랐다. 그로부터 6년 뒤 우리별 3호가 한국에서 개발한 첫 실험과학위성 모델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주나들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우리별이 탄생한 배경은 한국과학기술원 내에 있는 인공위성연구센터다. 이곳은 무궁화위성 발사계획이 수립되던 1989년 8월에 설립됐다. 당시 7명의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들은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내에 있는 제트추진연구소(JPL)와 일본 도쿄대학 내에 있는 우주과학연구소(ISAS)와 같은 연구기관을 한국에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초대소장을 맡은 최순달 교수는 체신부장관, 과학재단 이사장을 지냈던 경력을 바탕으로 약 4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마련했다. 그리고 한국과학기술대학 조기졸업생 5명을 선발해 영국 서리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다. 선진국의 위성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위성 꿈나무’를 선발한 셈이다.

“10년 전 영국행 비행기를 탑승했을 때 우리들은 위성이 뭔지도 몰랐고, 가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다.” 꿈나무로 선발됐던 박성동씨(현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기획실장)는 위성개발에 대해 전혀 몰라 참담했던 당시를 회고하면서, “10년 뒤 우리 후배들에게는 이런 비참함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꿈나무들이 눈과 가슴으로 뜻을 맞췄던 약속은 지켜졌다. 그들은 10년 동안 3개의 위성을 만들면서 마침내 독자적인 과학실험위성 모델을 마련했다. 게다가 50여명에 달하는 연구인력도 확보했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상업용의 경우 1백만달러에 판매되는 별감지기를 자체 개발했고, 자세제어기술 등 습득한 기술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다. 특히 이들이 지닌 전자공학 기술은 기계공학이나 항공공학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항공우주연구소와 좋은 보완관계를 이룬다. 물론 납땜과 같이 밑바닥 궂은 일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익힌 기술들이다.

초대소장의 뒤를 이어 1996년부터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운영해온 성단근 소장(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은 “인공위성연구센터는 그동안 과학재단의 우수공학연구센터로 지정돼 많은 지원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자립 기반을 갖춰 명예로운 졸업을 했다”며 “국내 연구소 중 이런 곳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연구원들이 우리별 3호에 태양전지판을 다는 모습. 우리별 3호는 1,2호와 달리 전개형 태양전지판을 달고 있다.


자립기반의 확보

인공위성연구센터는 지난해10월부터 과학위성 1호를 개발하고 있다. 크기는 우리별 3호와 비슷하지만 기능은 한단계 높아질 예정이다. 2002년 중반에 발사될 과학위성 1호를 ‘우리별 4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별로부터 과학위성의 정통성을 계승하자는 뜻이다.

인공위성연구센터는 과학위성뿐 아니라 다목적 실용위성 개발에도 참여한다. 오는 2003년에 발사예정인 아리랑 2호에 들어갈 고해상도 카메라시스템을 독자개발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항공우주연구소로부터 위탁받았다. 이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캘리포니아대학 내에 있는 제트추진연구소에 상당한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인공위성연구센터는 그동안 우리별 1-3호 개발을 통해 소형 과학실험위성 개발분야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습득했다. 소형위성 개발분야는 위성선진국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시장. 지금까지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30여 나라밖에 되지 않아 자력으로 위성을 개발하고자 하는 나라가 그만큼 많다. 적은 비용으로 위성을 만들려면 결국 소형위성을 개발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노하우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포르투갈,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칠레 등이 소형위성 개발에 대한 관심을 인공위성연구센터에 표명해왔다. 지난해 인공위성연구센터가 32만달러(약3억6천만원)의 외화를 벌어들인 것은 소형위성 개발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싱가포르가 훈련 및 교육비용으로 낸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수입은 늘어날 전망이다.

성단근 소장은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장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형 과학실험위성들은 실용위성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 만약 우리나라가 위성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면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하는데, 덩치가 큰 실용위성을 가지고 실험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인공위성연구센터는 소형 과학실험위성을 만들면서 위성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우수한 인력을 개발하려고 한다.” 그런데 소형위성은 국제적으로 틈새시장이 존재하고, 위성을 쏘아올리는 한 계속 새로운 기술이 개발돼야 하므로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2번의 발사, 2번의 성공. 그리고 우리별 3호. 이번에 우리별 3호를 발사하는 연구원들은 이게 늘 불안하다. 즉 과거에 실패의 노하우를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실패하면 어떨까 두려운 것이다.

199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GAMMA
  • 사진

    조영철 기자
  • 홍대길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