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해외에서 돌아오는 민간여객기가 엉뚱하게 북한 영공으로 들어서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도로에서는 ‘먹통’이 돼버린 내비게이션 때문에 교통혼잡이 일어났고 대한해협에서는 선박충돌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일대혼란 상황은 미국이 위성항법시스템(GPS)서비스를 중단했을 때를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다.
2005년 한해가 거의 저물어 가던 지난 12월 28일 오후 2시19분(한국시각) 역사적인 갈릴레오 프로젝트의 첫 시험위성 ‘지오베(GIOVE)-A’를 실은 러시아 소유즈 로켓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됐다. 수십 분 뒤 지오베-A는 지상 2만3000km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올 1월 12일에는 첫 번째 갈릴레오 신호를 보내왔다.
이로써 유럽우주기구(ESA)는 군사목적으로 개발된 미국의 위성항법시스템 GPS에 대응하는 순수 민간용 위성항법시스템 서비스의 첫 발을 내디뎠다. 위성항법시스템은 여러 대의 인공위성에서 보내온 신호를 이용해 정확한 위치와 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2010년말까지 30대 위성 발사
‘지오베’(GIOVE)는 ‘Galileo In-Orbit Validation Element’의 약자로 목성 주위를 도는 4개 주요 위성을 발견한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를 기리는 의미로 붙여졌다.
영국 SSTL이 제작한 지오베-A 위성은 길이 1.3m, 폭 1.8m, 높이 1.65m, 무게 600kg으로 앞으로 6개월 동안 궤도를 돌며 갈릴레오 시스템이 채택한 신기술을 시험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위성에 실린 원자시계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시간당 편차가 10억분의 1초 미만인 이 시계는 지금까지 우주에 쏴 올린 어떤 시계보다 정확하다. 또한 실시간 전송 시험과 정밀도를 높이는 교정 기능시험, 실제 갈릴레오 시스템이 사용할 주파수를 이용한 시험도 함께 이뤄질 전망이다. 이밖에도 올 봄 발사 예정인 두 번째 갈릴레오 시험위성 지오베-B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최종 조립과 성능시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시험위성은 다음 단계인 궤도 내 시험임무를 지원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ESA는 조만간 2기의 시험위성을 추가로 발사해 선택된 시험지역에 대해 정밀 위치 및 시각동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최소의 미니 위성 군집을 구성할 계획이다.
ESA는 이런 방식으로 모두 5조원(38억 유로)을 들여 2010년 말까지 고도 2만3616km인 3개의 궤도면에 각각 10기씩, 모두 30기(3기는 예비위성)의 인공위성을 쏴 올린다는 방침이다. 위성 24개로 구성된 GPS보다 위성수가 6개 더 많다. 품질 좋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상에도 갈릴레오 지상제어센터 2곳과 관제국 5곳, 임무상향관제소 10곳, 감시국 30여 곳을 신설해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길라잡이는 GPS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GPS는 광대역 전파에 쉽게 방해를 받기 때문에 ‘전자전’ 상황에서 오작동하기 십상이다. 또 시가지나 숲 속처럼 전파 수신이 어려운 지역에서 GPS는 심각한 오차를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갈릴레오는 상업용 서비스가 기본인 만큼 정밀도 1m급의 위치 정보를 보장한다.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여러 민간 컨소시엄은 시스템 구축비용의 약 2/3를 분담하는 대신 각 서비스에 대해 20년간의 운영권을 보장받는다. 갈릴레오 시스템의 무료 개방 서비스의 정밀도가 4m정도인데 비해 이들 민간업자들이 제공할 상업서비스의 정확도는 1m이하다. 또 GPS보다 신호구조가 개선돼 실내에 있는 사람의 위치도 잡아낼 수 있다.
이 같은 공룡 프로젝트가 단순히 GPS의 기술적인 한계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면을 살펴보면 결코 그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성항법시스템의 원리 : 미국의 GPS와 거의 같다. 위성에서 발사한 시간(01)와 수신한 시간(02)의 차이(03)에 전파속도를 곱하면 위성과 수신기 간 거리(04)를 측정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3대의 위성 신호를 받아 거리를 계산하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시스템 구성 : 품질 좋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위성뿐 아니라 지상제어센터와 관제국, 위치보정시스템이 설치된다.
●이착륙시스템 : 지상 위치보정시스템을 이용하면 수십cm 미만으로 위치 정밀도를 올릴 수 있다.
●지상시스템 : 위성에 임무를 주거나 정밀한 위치를 계산해 서비스 사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단일체계 GPS 에 위협 느껴
1973년 미국 국방부에서 인공위성의 무선신호로 전투기나 탱크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목표물에 정확히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논의됐다. 1989?1994년 총 24기의 위성을 고도 2만200km에 배치함으로써 GPS라는 위성항법시스템이 탄생했다. 실제 GPS 수신기가 장착된 폭탄의 위력은 2차례 이라크전쟁에서 증명됐다. 1990년대 들어 GPS는 실생활 곳곳에 파고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차량항법장치다. 또 휴대전화의 인기 서비스인 ‘친구 찾기’나 ‘위치 추적’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처럼 활용범위가 군사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등 전 분야로 급격히 늘어났지만 그만큼 서비스 중단에 따른 위험도 높아졌다. GPS를 운영하는 미국이 고의적으로 정밀도를 제한하거나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GPS 사용자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필요에 따라 지역적으로 정밀도를 떨어뜨릴 수 있고 언제든지 GPS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라크 전을 개시하면서 GPS 서비스를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GPS를 보완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유럽이 제안한 갈릴레오 프로젝트는 세계 각국에서 참여의사를 밝힘으로써 날개를 달았다.
군사용으로 개발된 미국의 GPS와 러시아의 GLONASS와는 달리 갈릴레오 시스템은 세계 최초의 민간 전용 위성항법시스템이다. 두 시스템은 군사적 목적이나 전략적인 이해에 따라 언제든 중단될 수 있는 반면 민수용인 갈릴레오는 그렇지 않다.
지난 2002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갈릴레오 프로젝트는 이 같은 배경에서 시작했다. 개발단계에 소요되는 약 1조5000억원(11억 유로)은 EU에서 전액 부담하며 정식 가입비를 낸 회원국들로 구성되는 GJU가 프로젝트 추진을 담당한다. 2006년부터 2년간 진행되는 위성전개 단계에서는 위성 제작과 발사, 지상 설비가 구축되며 약 3조원(23억 유로)의 EU와 민간 투자자금으로 설립한 갈릴레오 컨소시엄이 사업 추진을 담당한다. 마지막 상업화 단계인 2008년 이후에는 연간 2900억원(2.2억 유로)을 민간 수익에서 충당하며 운용도 민간회사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최근 들어 당초 계획보다 초과 비용에 대한 추가 부담과 비유럽권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국제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현재 갈릴레오 프로젝트에는 비 유럽연합 국가인 중국·인도·이스라엘·모로코·사우디아라비아·우크라이나 등 6국이 공식협약을 맺고 참가하고 있다. 미국도 GPS와의 호환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상업성 공공성 두루 갖춰
갈릴레오시스템은 사용자의 요구와 시장 분석을 통해 결정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서비스만 해도 위성신호만을 이용하는 개방형 서비스, 안전 서비스, 상업용 서비스, 공공 규제 서비스, 수색/구조 서비스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밖에 GPS나 GLONASS와 같은 다른 위성항법시스템과의 통합도 논의되고 있다.
이 중 개방형 서비스는 무료이며 GPS에 비해 정밀한 위치와 시간 성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높은 정밀성과 고속 정보처리를 제공하는 상업서비스를 비롯해 물에 빠지거나 오지에 떨어진 사람들이 내는 조난신호를 감지해 전 세계에 경고메시지를 방송하는 구조서비스도 제공된다.
오차를 줄이기 위한 보정시스템과 이동통신망과 결합한 신규서비스도 신중히 고려되고 있다. 항공기의 이착륙, 선박의 항구 진입과 접안, 도심 차량통제처럼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상황은 기본 시스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위성이나 지상기지국을 이용한 보정시스템을 도입해서 정밀도를 향상시킬 예정이다. 보정시스템을 설치할 경우 위치 오차는 수 cm내로 줄어든다.
현재 EU은 차량항법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지만, 화물차 또는 선박, 항공기 위치추적, 조난 구조 관련 서비스 등은 유료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유럽인들은 갈릴레오가 미국의 GPS를 능가하는 ‘과학적 성공’일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에 경제기술 분야의 완전한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평가한다. 차량항법, 이동통신 등 각 분야에서 위성항법 및 위치추적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갈릴레오는 경제적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ESA는 2003년 약 26조원(200억 유로)이었던 위성항법 및 위치추적 관련 세계 시장규모가 2020년이면 약 325조원(2500억 유로)으로 10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도 갈릴레오 프로젝트 참여
한국도 지난 2005년 2월 과학기술관계 장관회의에서 정부차원에서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참여를 결정하고 한국-EU간 공식협정을 현재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GJU에 가입비 65억원(500만 유로)을 내야 한다.
현재 정부는 GPS서비스가 유료화 되거나 사용불능 상황이 닥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갈릴레오를 GPS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으로 지목하고 있다.
서비스 품질의 개선도 기대해볼 수 있다. 위성수가 28개에 이르는 GPS에 갈릴레오 위성 30대가 추가되면 관측 가능한 위성수는 58대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더욱 정밀한 위치 측정이 가능해지며 특히 GPS신호 수신율이 55%에 불과한 도심지역에서 큰 성능을 발휘하게 될 전망이다. GPS와 갈릴레오를 병행 사용할 경우 사용지역은 95%로 크게 확대된다.
이처럼 위성항법시스템을 다원화하면 정보 인프라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고 신규 시장도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10년께 위성항법시스템 단말기 수출액은 14억~31억 달러, 직접 고용 인력도 7600~1만67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갈릴레오 시스템을 통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은 기술 축적과 수신기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기술적 기대효과도 노릴 수 있다. 외교적으로도 유럽연합과 정치·경제·과학기술 등에 걸친 협력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 GPS 관련 시장의 급팽창에 비추어 볼 때 갈릴레오의 상업적인 이용도는 매우 높을 것이며 유럽과 중국을 연계한 시장규모는 엄청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