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웃는다. 현실에서 웃을 일이 자꾸 사라져 간다지만, TV와 온라인 공간에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웃긴 동영상을 탐닉하며 짧게나마 웃는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웃음이, 인간이 탄생하기도 전에 나타나 영겁의 세월 동안 자연선택에 따라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며 잘 다듬어져 온 놀라운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만약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인의 독특한 습성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종종 특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찡그린 채, 커다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는 행동 말이다. 그 소리는 일반적으로 ‘하하하’ ‘크크크’ 등 처음 냈던 모음을 유지하면서 반복된다. 바로 웃음이다.
웃음은 신비로운 신체 반응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웃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문화권에서 웃음이 발견된다. 아기는 언어를 배우기 훨씬 전인 생후 2개월부터 웃는다. 선천적으로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는 아이도 웃는다. 문화적 차이에도 웃음 소리는 쉽게 분간할 수 있고, 소리만 들어도 같이 웃게 되는 전염성이 있다.
도대체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생존과 번식에 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불리해 보인다. 예컨대, 아주 오랜 옛날 열대 우림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다녔다고 생각해 보자. 우거진 숲 속에서는 눈으로 보는 정보보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정보가 더 유용하다. 그런 상황에서 큰 소리로 웃으면 천적에게 들키거나 잠재적인 먹이감을 쫓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쥐는 ‘찍찍’ 개는 ‘헉헉’ 동물도 웃는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웃음에서 그 기원을 탐색한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다양한 동물이 사람처럼 표정과 소리를 통해 감정을 표출한다고 적었다. 물론 웃음도 여기에 포함된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침팬지나 보노보 등 영장류의 어린 개체들이 서로 뒤꽁무니를 쫓거나 간지럼을 태우면서 놀 때, 사람이 웃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숨을 헐떡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은 “침팬지가 웃는 사실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웃는 방법이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짧은 숨을 반복적으로 내쉬며 웃는 것과 달리 침팬지는 숨을 들이 마시며 헉헉거리는 쇳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영장류 외 다른 포유동물들도 웃는다. 미국 볼링 그린주립대 야크 판크셉 교수는 2003년 8월, 쥐들도 같이 놀 때 반복적으로 찍찍거리는 소리를 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doi:10.1016/S0031-9384(03)00159-8). 사람이 쥐의 몸을 간질이자, 쥐들이 찍찍대면서 사람과 즐겁게 어울렸다는 것이다.
판크셉 교수는 “쥐들은 더 간지럽히기를 바라며 간지럼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개도 비슷하게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
판크셉 교수는 2005년 4월 1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동물의 웃음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한 짧은 기고문을 통해 “침팬지, 쥐, 개가 웃는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는 즐기며 웃는 동물이 인간뿐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웃음과 관련된 뇌 회로는 아주 오래된 뇌 영역에 존재하며, 인간이 웃기 훨씬 전부터 유희와 웃음의 원형이 다른 동물들에도 존재했다”고 밝혔다.
영국 포츠머스대 마리나 다빌라로스 교수팀은 2009년 웃음의 진화 계통도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어린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보노보 22마리와 3명의 인간 아기를 간질였을 때 나오는 발성 800개를 녹음해 음향의 진동 특성을 분석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진화적 관계를 재구성해 ‘음향 계통도’를 그렸더니, 기존의 유전학 연구를 통해 그려진 유인원의 진화 계통도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doi:10.1016/j.cub.2009.05.028). 다빌라로스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간지럼을 태울 때 웃는 반응이 인간과 영장류의 공통 조상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인원과 인간의 웃음에는 공통적인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차이점 역시 아주 분명하다”며 “유인원의 웃음은 놀이에 한정돼 있는 반면, 인간의 웃음은 기능이 다양하고 사회적 소통을 하는 데 매우 즐겨 쓰이는 도구”라고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대
그렇다면 웃음은 언제, 왜 시작됐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가설이 있다. 먼저 동료를 안심시키는 역할. 미국 UC샌디에이고의 뇌과학자 빌리야누르 라마찬드란 교수는 유머의 전형적인 구조, 즉 반전에 주목한다.
그는 저서 ‘두뇌 실험실’을 통해 “유머는 듣는 이를 현혹시키면서 기대를 부풀리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을 선사하는데, 그 반전이 사소한 것이어야 재미있다”며 ‘거짓 경보 이론’을 주장했다. 어떤 개체가, 사회 집단(주로 친족)의 누군가가 감지한 비정상성이 사소한 것이며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웃음이 탄생했다. 라마찬드란 교수는 “웃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나머지 너희들은 거짓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귀중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공지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웃음이 왜 큰 소리를 동반하는지, 왜 전염성이 강한지도 설명해준다(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30배 더 많이 웃는다). 이런 신호는 집단에 널리 퍼질수록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 생물학과의 데이비드 슬론 윌슨 교수는 2005년, 배부르고 따뜻한 상황을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리는 신호로서 웃음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doi:10.1086/498281). 초기 인류는 끼니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아프리카 초원을 뒤져야 했고,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전하고 지루한 시기는 거의 없었다. 간혹 고기를 배부르게 먹는 행운이 찾아왔다면, 먹이를 찾아 헤매지 말고 최대한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예컨대, 새로운 지식을 쌓는 일말이다. 윌슨 교수는 저서 ‘진화론의 유혹’에서 “인간의 웃음은 이런 시기를 식별해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신호로 최초에 진화했을 것”이라며 “웃음은 집단 구성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동시에 느끼게 하는 데 특히 효과가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두 가설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웃음이 탄생한 목적이라면, 영장류의 웃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오랫동안 웃음을 연구해온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어린 아이들이나 영장류 새끼들이 뒤엉켜 싸우는 듯한 놀이를 할 때 내는 소리를 웃음의 기원으로 봤다. 싸움 놀이가 안전한 놀이로 끝나려면, 이 행동이 진짜 싸움이 아니라 연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즉 영장류가 놀이 과정에서 웃는 소리는, 지금 이 행동이 진짜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이고 별다른 피해도 주지 않는 순수한 놀이라는 것을 상대방과 주변의 다른 개체들에게 전달하는 신호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진화의 산물 웃음마저 억누르는 문화
20년 가까이 웃음치료를 연구해 온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장은 “사람들이 자꾸 웃고 싶어하는 이유는, 웃음이 건강(생존)에 좋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라며 “웃음은 운동 중에서도 최고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달리기를 하면 숨이 가빠지고 아래턱과 팔다리가 크게 흔들리면서 몸 전체가 진동하는데 이런 유산소 운동의 반응이 우리가 웃을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과 비슷하다. 실제로 15분 동안 큰 소리로 웃으면 조깅을 한 것처럼 혈관이 확장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소장은 이를 토대로 웃기 운동을 주장한다. “크게, 길게, 그리고 온몸을 이용해 웃어야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11.6초 이상은 억지로 웃어야 실제로 웃을 때의 뇌 반응이 나타난다고 해요. 그래야 엔도르핀 같은 몸에 좋은 호르몬이 나옵니다. 손바닥을 마주치고 발을 구르는 것도 뇌를 자극하는 방법이죠. 이렇게요. 으하하하하 캬캬캬 킬킬킬….” 하나도 안 웃긴데, 그는 정말 잘 웃었다. 그리고 그 때, 기자도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집단 구성원이 동일한 방법으로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데이비드 슬론 윌슨 뉴욕주립대 교수의 주장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제가 20년 전에 웃음치료를 국내에 도입하려고 외국 각지를 다녔거든요. 그 때 느낀 게, 외국인들은 참 자주, 잘 웃어요. 그게 한편으론 부러웠는데, 한국인은 또 나름의 특성이 있어요. 웃음이 잘 안 터지는 대신, 터졌다 하면 아주 난리가 나요. 포복절도 하면서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죠. 그리고 나중에는 울기 시작합니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동양’ ‘서양’ ‘웃음’ ‘문화’ ‘차이’ 따위의 키워드를 입력해 구글스콜라를 뒤져봤지만, 관련 연구를 찾기는 어려웠다. 뜻밖에도 단서는 찰스 다윈의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나왔다. “힌두 족도 웃을 때 눈물을 흘리고 중국인들도 그렇다. 말라카 반도의 말레이 족 원주민 여성들은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진정 기뻐서 웃을 때는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보르네오 지방의 디악스 족도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이런 모습은 주로 여성들에게 흔하게 관찰된다고 한다. (중략) 빅토리아 주 오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벌머 씨는 ‘그들은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흉내 내는 것에 익숙하다. 어떤 사람이 나서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흉내 내면 모든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에게서 이런 습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 소장은 감정 표현에 부정적인 한국 문화에서 그 차이를 찾았다. “제 고향이 안동이거든요. 뿌리 깊은 유교 문화가 남아 있잖아요. 어른들이 크게 웃지 못하게 했어요. 체신머리 없다고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서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아시아인은 열이면 열, 한국 사람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이해됐다. “그런데 보세요. 요즘은 장례식장에 서 많이 안 울긴 하지만, 옛날 초상집에서는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아주 대성통곡을 했어요. 사실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속에 쌓인 거, 서러웠던 거, 힘들었던 거, 괴로웠던 거, 열 받았던 거를 막토해내는 거예요. 일종의 치유의 장이었죠.” 그의 설명대로라면, 한국인은 평소 웃거나 우는 등 감정표현을 자제당하며 살다가 마당놀이나 초상집처럼 웃고 우는 게 허용된 장에서는 그간 쌓였던 감정들을 극대화해서 쏟아낸다는 얘기였다.
이 소장은 결국 “웃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자주 울고 웃는 어린아이에게서는 우울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음 속 희로애락을 끄집어 내는 게 중요한 거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 이런 때일수록 거울을 보며 억지로 웃어 보는 건 어떨까.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고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데, 아침마다 거울 보며 한번씩 웃는 건 일도 아닐 테다.
유머는 좋은 유전자를 광고하는 행위일까
이후 웃음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영향을 주면서 자연선택 됐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저서 ‘오래된 연장통’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많이 웃은 사람들에게는 복(福)이 왔다. 오래 살아서 자손을 많이 남기는 복 말이다.”
웃음이 가져온 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 선택이다.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여자들은 유머 감각이 뛰어난 남자를 배우자로 선호한다. 미국 뉴멕시코대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교수는 “위트가 넘치는 말을 하는 유머 생산 능력은 창조성이 뛰어나다는 사실과 복잡한 인지 기능에 손상이 없다는 사실, 즉 좋은 유전자를 가졌음을 알려주는 표지”라고 주장했다. 허재원 선임연구원도 “술자리 등에서 서열이 높은 남자가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면서 여성에게 어필하듯, 침팬지가 크게 웃는 행동은 이성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웃음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지만, 현대의 웃음마저 생존과 번식의 필요에 맞춰진 건 아니다. 한마디 말로 청중을 웃기는 개그맨이나 ‘짤방(짤림 방지라는 말의 준말로,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 도는 각종 이미지를 통칭한다)’을 보면, 지금의 웃음은 전제-긴장-반전-안심이라는 태고적 웃음의 구조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행태는, 전혀 다른 목적 때문에 선택된 다른 무언가의 진화적 부산물일 수 있다. 개그맨 이윤석은 저서 ‘웃음의 과학’에서 말한다. “우리는 진화된 웃음을 물려받았지만, 이제는 그 웃음을 창조하는 위대한 코미디언”이라고. 현대 사회에서 웃음은, 진화적 기원을 벗어나 마음껏 그 기량을 펼치는 창조의 공간인 셈이다.
만약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인의 독특한 습성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종종 특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찡그린 채, 커다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는 행동 말이다. 그 소리는 일반적으로 ‘하하하’ ‘크크크’ 등 처음 냈던 모음을 유지하면서 반복된다. 바로 웃음이다.
웃음은 신비로운 신체 반응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 입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웃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문화권에서 웃음이 발견된다. 아기는 언어를 배우기 훨씬 전인 생후 2개월부터 웃는다. 선천적으로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는 아이도 웃는다. 문화적 차이에도 웃음 소리는 쉽게 분간할 수 있고, 소리만 들어도 같이 웃게 되는 전염성이 있다.
도대체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생존과 번식에 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불리해 보인다. 예컨대, 아주 오랜 옛날 열대 우림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다녔다고 생각해 보자. 우거진 숲 속에서는 눈으로 보는 정보보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정보가 더 유용하다. 그런 상황에서 큰 소리로 웃으면 천적에게 들키거나 잠재적인 먹이감을 쫓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쥐는 ‘찍찍’ 개는 ‘헉헉’ 동물도 웃는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웃음에서 그 기원을 탐색한다. 일찍이 찰스 다윈은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다양한 동물이 사람처럼 표정과 소리를 통해 감정을 표출한다고 적었다. 물론 웃음도 여기에 포함된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침팬지나 보노보 등 영장류의 어린 개체들이 서로 뒤꽁무니를 쫓거나 간지럼을 태우면서 놀 때, 사람이 웃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숨을 헐떡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은 “침팬지가 웃는 사실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웃는 방법이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짧은 숨을 반복적으로 내쉬며 웃는 것과 달리 침팬지는 숨을 들이 마시며 헉헉거리는 쇳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영장류 외 다른 포유동물들도 웃는다. 미국 볼링 그린주립대 야크 판크셉 교수는 2003년 8월, 쥐들도 같이 놀 때 반복적으로 찍찍거리는 소리를 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doi:10.1016/S0031-9384(03)00159-8). 사람이 쥐의 몸을 간질이자, 쥐들이 찍찍대면서 사람과 즐겁게 어울렸다는 것이다.
판크셉 교수는 “쥐들은 더 간지럽히기를 바라며 간지럼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개도 비슷하게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
판크셉 교수는 2005년 4월 1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동물의 웃음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한 짧은 기고문을 통해 “침팬지, 쥐, 개가 웃는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는 즐기며 웃는 동물이 인간뿐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웃음과 관련된 뇌 회로는 아주 오래된 뇌 영역에 존재하며, 인간이 웃기 훨씬 전부터 유희와 웃음의 원형이 다른 동물들에도 존재했다”고 밝혔다.
영국 포츠머스대 마리나 다빌라로스 교수팀은 2009년 웃음의 진화 계통도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어린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보노보 22마리와 3명의 인간 아기를 간질였을 때 나오는 발성 800개를 녹음해 음향의 진동 특성을 분석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진화적 관계를 재구성해 ‘음향 계통도’를 그렸더니, 기존의 유전학 연구를 통해 그려진 유인원의 진화 계통도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doi:10.1016/j.cub.2009.05.028). 다빌라로스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간지럼을 태울 때 웃는 반응이 인간과 영장류의 공통 조상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인원과 인간의 웃음에는 공통적인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차이점 역시 아주 분명하다”며 “유인원의 웃음은 놀이에 한정돼 있는 반면, 인간의 웃음은 기능이 다양하고 사회적 소통을 하는 데 매우 즐겨 쓰이는 도구”라고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대
그렇다면 웃음은 언제, 왜 시작됐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가설이 있다. 먼저 동료를 안심시키는 역할. 미국 UC샌디에이고의 뇌과학자 빌리야누르 라마찬드란 교수는 유머의 전형적인 구조, 즉 반전에 주목한다.
그는 저서 ‘두뇌 실험실’을 통해 “유머는 듣는 이를 현혹시키면서 기대를 부풀리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을 선사하는데, 그 반전이 사소한 것이어야 재미있다”며 ‘거짓 경보 이론’을 주장했다. 어떤 개체가, 사회 집단(주로 친족)의 누군가가 감지한 비정상성이 사소한 것이며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웃음이 탄생했다. 라마찬드란 교수는 “웃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나머지 너희들은 거짓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귀중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공지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웃음이 왜 큰 소리를 동반하는지, 왜 전염성이 강한지도 설명해준다(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30배 더 많이 웃는다). 이런 신호는 집단에 널리 퍼질수록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 생물학과의 데이비드 슬론 윌슨 교수는 2005년, 배부르고 따뜻한 상황을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리는 신호로서 웃음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doi:10.1086/498281). 초기 인류는 끼니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아프리카 초원을 뒤져야 했고,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전하고 지루한 시기는 거의 없었다. 간혹 고기를 배부르게 먹는 행운이 찾아왔다면, 먹이를 찾아 헤매지 말고 최대한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예컨대, 새로운 지식을 쌓는 일말이다. 윌슨 교수는 저서 ‘진화론의 유혹’에서 “인간의 웃음은 이런 시기를 식별해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신호로 최초에 진화했을 것”이라며 “웃음은 집단 구성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동시에 느끼게 하는 데 특히 효과가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두 가설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웃음이 탄생한 목적이라면, 영장류의 웃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론을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오랫동안 웃음을 연구해온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어린 아이들이나 영장류 새끼들이 뒤엉켜 싸우는 듯한 놀이를 할 때 내는 소리를 웃음의 기원으로 봤다. 싸움 놀이가 안전한 놀이로 끝나려면, 이 행동이 진짜 싸움이 아니라 연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즉 영장류가 놀이 과정에서 웃는 소리는, 지금 이 행동이 진짜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이고 별다른 피해도 주지 않는 순수한 놀이라는 것을 상대방과 주변의 다른 개체들에게 전달하는 신호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진화의 산물 웃음마저 억누르는 문화
20년 가까이 웃음치료를 연구해 온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장은 “사람들이 자꾸 웃고 싶어하는 이유는, 웃음이 건강(생존)에 좋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라며 “웃음은 운동 중에서도 최고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달리기를 하면 숨이 가빠지고 아래턱과 팔다리가 크게 흔들리면서 몸 전체가 진동하는데 이런 유산소 운동의 반응이 우리가 웃을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과 비슷하다. 실제로 15분 동안 큰 소리로 웃으면 조깅을 한 것처럼 혈관이 확장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소장은 이를 토대로 웃기 운동을 주장한다. “크게, 길게, 그리고 온몸을 이용해 웃어야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11.6초 이상은 억지로 웃어야 실제로 웃을 때의 뇌 반응이 나타난다고 해요. 그래야 엔도르핀 같은 몸에 좋은 호르몬이 나옵니다. 손바닥을 마주치고 발을 구르는 것도 뇌를 자극하는 방법이죠. 이렇게요. 으하하하하 캬캬캬 킬킬킬….” 하나도 안 웃긴데, 그는 정말 잘 웃었다. 그리고 그 때, 기자도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집단 구성원이 동일한 방법으로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데이비드 슬론 윌슨 뉴욕주립대 교수의 주장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제가 20년 전에 웃음치료를 국내에 도입하려고 외국 각지를 다녔거든요. 그 때 느낀 게, 외국인들은 참 자주, 잘 웃어요. 그게 한편으론 부러웠는데, 한국인은 또 나름의 특성이 있어요. 웃음이 잘 안 터지는 대신, 터졌다 하면 아주 난리가 나요. 포복절도 하면서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죠. 그리고 나중에는 울기 시작합니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동양’ ‘서양’ ‘웃음’ ‘문화’ ‘차이’ 따위의 키워드를 입력해 구글스콜라를 뒤져봤지만, 관련 연구를 찾기는 어려웠다. 뜻밖에도 단서는 찰스 다윈의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나왔다. “힌두 족도 웃을 때 눈물을 흘리고 중국인들도 그렇다. 말라카 반도의 말레이 족 원주민 여성들은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진정 기뻐서 웃을 때는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보르네오 지방의 디악스 족도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이런 모습은 주로 여성들에게 흔하게 관찰된다고 한다. (중략) 빅토리아 주 오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벌머 씨는 ‘그들은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흉내 내는 것에 익숙하다. 어떤 사람이 나서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흉내 내면 모든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에게서 이런 습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 소장은 감정 표현에 부정적인 한국 문화에서 그 차이를 찾았다. “제 고향이 안동이거든요. 뿌리 깊은 유교 문화가 남아 있잖아요. 어른들이 크게 웃지 못하게 했어요. 체신머리 없다고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서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아시아인은 열이면 열, 한국 사람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이해됐다. “그런데 보세요. 요즘은 장례식장에 서 많이 안 울긴 하지만, 옛날 초상집에서는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아주 대성통곡을 했어요. 사실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속에 쌓인 거, 서러웠던 거, 힘들었던 거, 괴로웠던 거, 열 받았던 거를 막토해내는 거예요. 일종의 치유의 장이었죠.” 그의 설명대로라면, 한국인은 평소 웃거나 우는 등 감정표현을 자제당하며 살다가 마당놀이나 초상집처럼 웃고 우는 게 허용된 장에서는 그간 쌓였던 감정들을 극대화해서 쏟아낸다는 얘기였다.
이 소장은 결국 “웃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자주 울고 웃는 어린아이에게서는 우울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음 속 희로애락을 끄집어 내는 게 중요한 거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 이런 때일수록 거울을 보며 억지로 웃어 보는 건 어떨까.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고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데, 아침마다 거울 보며 한번씩 웃는 건 일도 아닐 테다.
유머는 좋은 유전자를 광고하는 행위일까
이후 웃음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영향을 주면서 자연선택 됐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저서 ‘오래된 연장통’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많이 웃은 사람들에게는 복(福)이 왔다. 오래 살아서 자손을 많이 남기는 복 말이다.”
웃음이 가져온 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 선택이다.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여자들은 유머 감각이 뛰어난 남자를 배우자로 선호한다. 미국 뉴멕시코대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교수는 “위트가 넘치는 말을 하는 유머 생산 능력은 창조성이 뛰어나다는 사실과 복잡한 인지 기능에 손상이 없다는 사실, 즉 좋은 유전자를 가졌음을 알려주는 표지”라고 주장했다. 허재원 선임연구원도 “술자리 등에서 서열이 높은 남자가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면서 여성에게 어필하듯, 침팬지가 크게 웃는 행동은 이성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웃음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지만, 현대의 웃음마저 생존과 번식의 필요에 맞춰진 건 아니다. 한마디 말로 청중을 웃기는 개그맨이나 ‘짤방(짤림 방지라는 말의 준말로,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 도는 각종 이미지를 통칭한다)’을 보면, 지금의 웃음은 전제-긴장-반전-안심이라는 태고적 웃음의 구조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행태는, 전혀 다른 목적 때문에 선택된 다른 무언가의 진화적 부산물일 수 있다. 개그맨 이윤석은 저서 ‘웃음의 과학’에서 말한다. “우리는 진화된 웃음을 물려받았지만, 이제는 그 웃음을 창조하는 위대한 코미디언”이라고. 현대 사회에서 웃음은, 진화적 기원을 벗어나 마음껏 그 기량을 펼치는 창조의 공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