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간의 뇌는 신경세포가 그물망처럼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각 신경세포 사이는 시냅스 간격이라 불리는 작은 틈새가 벌어져 있다. 이 사이를 오가면서 정보전달을 해주는 것이 신경전달물질이다.
아메바는 하나의 세포로 자신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다 한다. 주위환경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해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대사, 그리고 세포가 필요로 하는 물질의 합성 등이 하나의 세포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몸도 기능적 최소단위는 세포다. 즉 생체는 각기 고유의 기능을 가진 세포들이 모여 조직 장기를 이룬다. 물질대사를 주기능으로 하는 간세포들이 모여 간장을 이루고, 수축을 주기능으로 하는 근육세포가 모여 골격근을 이루고, 신경세포들이 모여 중추 또는 말초신경계를 이룬다.
정보전달 수단
각기 기능을 달리하는 조직장기들이 서로 협동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교환을 하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고등동물에는 크게 두가지 정보전달계가 있다. 하나는 내분비계이고 또 하나는 신경계다. 이들 정보전달계가 정보(신호)를 전달하는 데에는 화학물질이 작용한다.
내분비계와 신경계의 신호전달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내분비계는 호르몬이라고 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분비하고 이것이 혈류를 따라 멀리 떨어진 조직장기 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이루어진 중추신경계와 중추신경계로부터 표적장기에 이르는 말초신경계로 이루어졌다. 중추신경계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간의 무수한 접합(synapse)으로 신경망을 이루고 있으며, 말초신경계는 표적장기와 연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신경세포는 신호전달을 주기능으로 하는 세포로서 신호전달을 위한 물질을 만들고 이를 분비한다. 이 물질은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또 신경세포와 장기 사이의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를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한다.
인간의 중추신경은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지만 전선처럼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들 사이에는 5만분의 1㎜정도의 작은 틈이 벌어져 있다. 이 부분이 시냅스 간격이며 이 틈을 신경전달물질이 왔다갔다 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신경이 자극되면 신경말단으로부터 신경전달물질이 유리되고 이것이 접합부를 지나서 다음세포에 신호를 전달한다. 이 과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뇌의 기능을 이해하는데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것은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아내고,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40여종 활약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최근 10년 동안 생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물질에 관한 연구는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이에 힘입어 뇌에서 활동하는 물질도 신비의 베일이 어느 정도 벗겨지고 있으나, 아직도 뇌의 기능이라는 관점에서는 '산자락에서 정상을 바라보는' 형편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라고 거론되는 물질은 40여종이 된다. 이들을 크게 분류하면 아민계 아미노산계 펩티드계로 대별할 수 있다(표).
196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아민계 신경전달물질에 관한 연구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아세틸콜린의 신경 전달과정이다.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신경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을 콜린성 신경이라 한다. 아세틸콜린은 콜린성 신경에서만 합성된다. 합성된 아세틸콜린은 콜린성 신경말단(접합을 이루는 부분)에서 작은 주머니인 소포라는 곳에 저장된다. 신경신호가 신경섬유(축색)를 따라 이동해 신경말단에 도달하면 신경말단에 존재하는 아세틸콜린을 저장하고 있는 소포가 터져 그 내용물인 아세틸콜린이 접합부 간격사이로 유리된다.
접합부 간격으로 유리된 아세틸콜린은 간격을 지나서 다음 세포의 세포막에 결합해 세포막 이온(나트륨 칼륨 염소)의 투과성을 변화시킨다. 이와 같이 세포막에 작용한 아세틸콜린은 분해효소에 의해 즉시 제거됨으로써 세포막은 다음 신경자극으로 유리되는 아세틸콜린과 결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게 된다.
모든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접합부 전달 과정은 대체로 아세틸콜린의 과정과 같다. 다만 신호를 전달한 후의 제거과정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다른 신경전달물질은 분해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 말단을 통해 재흡수 됨으로써 접합부간격으로부터 제거된다.
아세틸콜린이 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는 인간의 정상적인 지적기능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동물실험 결과 동물의 학습과 기억은 아세틸콜린계에 작용하는 약물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존스 홉킨스 의과 대학에서는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를 검사해본 결과 아세틸콜린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다량으로 손상돼 있음이 밝혀졌다.
이외에도 특히 다른 동물보다 인간뇌에 많이 분비돼 뇌를 각성시키고 쾌감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로 도파민이라는 것이 있다. 도파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뇌속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각성제'라 할 수 있다. 대뇌피질의 측두엽 안쪽에는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이 밀도높게 분포돼 있는데, 여기를 전기 자극하면 평소에 얌전하던 여성도 색정적으로 변한다는 실험보고도 있다.
도파민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신경전달물질로는 노르에피네프린(노르아드레날린이라고도 함)이 있다. 이는 인간을 각성시킬뿐만 아니라 활동적으로 만든다. 흔히들 인간은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가 시작되는 아침에 눈을 뜨고 분비가 왕성한 낮에는 활동하고 분비가 멈추는 밤에는 잠을 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놀랄 때나 무서움을 느낄 때 분비된다고 알려진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이 있다.
흥분과 억제의 조화
196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유리된 신경전달물질이 어떻게 신경세포 또는 조직세포를 '흥분시키는가'에 관한 연구에 관심이 집중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이 수많은 신경세포가 그물과 같이 얽혀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기능의 조화를 이루는데에는 흥분성인 신경전달만으로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여기에 억제성인 신경세포도 있을 것이라는 실험적 증거들이 여러가지 제시됐다. 억제성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면 그 신경세포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다.
가장 잘 알려진 물질은 아미노산의 일종인 감마 아미노부틸산(GABA '가바'라고 약칭)이다. 가바를 신경전달물질로 의심하게 된 것은 이 아미노산이 다른 조직 장기에서는 거의 검출하기 힘드나 뇌에 고농도로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바다가재'라는 좋은 실험재료를 얻을 수 있었고 분자 생물학적인 새로운 기법으로 가바를 신경전달물질로 하는 억제성 신경(가바성 신경이라고 함)이 증명되고, 가바를 합성하는 효소가 억제성 신경에만 존재하고 흥분성 신경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같이 바다가재에서 얻어진 지식은 1960년대에 뇌에 적용돼 대뇌피질과 소뇌에서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가바를 연구함으로써 밝혀진 사실은, 가바가 수면이나 경련조절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뇌기능의 조화를 설명할 수 있다. 현재 널리 이용되고 있는 신경안정제(항불안제)는 가바연구의 부산물이다.
아민계의 세로토닌도 가바와 마찬가지로 지나친 흥분이나 과잉활동을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한편 최근 10여년 동안 뇌 활성물질 연구의 주목할만한 발전은 펩티드계 신경전달물질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는 펩티드가 신경전달물질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펩티드 호르몬들은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인슐린이다. 펩티드가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엔케파린이 증명되고 나서부터다. 뇌에는 모르핀과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증명됐다. 따라서 우리몸에 이 수용체와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생리활성물질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하다.
1975년 엔케파린이 증명됨으로써 최근 10년동안은 펩티드 신경전달물질의 전성기가 열렸다. 엔케파린에 이어 50여종의 펩티드가 뇌에서 증명되고, 이들이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리라는 실험적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모두 신경전달물질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이중 일부는 신경전달 물질이라기 보다는 이미 확실하게 신경전달 물질임이 증명된 물질들의 작용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즉 이제까지는 한가지 종류의 신경세포는 그 신경세포 특이적인 한가지 신경전달물질만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코린성 신경에는 아세틸콜린만이 존재하고 가바성 신경에는 가바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뇌의 신경 세포에는 두가지 때로는 세가지 전달물질이 공존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이중 한가지는 대개 펩티드임이 알려졌다. 아마도 이들이 협동해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원활하게 한다고 생각된다.
또 한가지 뇌 활성물질중에는 신경호르몬이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모두 펩티드 호르몬으로서 이것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를 펩티드성 뉴런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뇌하수체 후엽호르몬이며 또 다른 하나는 뇌하수체 전엽호르몬의 분비를 자극 또는 억제하는 신경호르몬이다. 후자중에 잘 알려진 것으로는 갑상선 자극호르몬과 분비호르몬, 부신피질자극호르몬과 분비호르몬 등이 있다. 이들 분비호르몬 또는 자극호르몬은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호르몬의 왕'으로서 뇌하수체 전엽의 각종 내분비선 자극호르몬의 분비를 통제한다.
최근 분자생물학적 기법의 발달로 이들 펩티드 신경전달물질 또는 펩티드 신경호르몬들의 합성과정들이 밝혀져, 이제까지 사용하던 신경정신질환 치료제들보다 효과적이고 안전하며 더 특이적인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