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금연 실패다. 친구의 권유로 담배에 손을 댄 지 13년. 그동안 세 번 담배를 끊고 세 번 다시 피웠다. 8년 전, ‘네 입에선 재떨이 맛이 난다’는 그녀의 충격적인 고백에 끊었던 담배는 정확히 300일 뒤 내 손으로 돌아왔다. 5년 전 2차 시도 때는 흡연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자신도 담배를 피우겠다는 친구 앞에서 패기 있게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역시 1년 만에 포기했다.
작년 1월에는 정말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 시기도 이렇게 적절할 수 없었다. 1년 중 담배 판매량이 가장 적다는 겨울이었고, 인생 결심을 남발한다는 새해였다. 무엇보다 결정타는 담뱃값.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른 가격은 담배 맛을 뚝 떨어뜨렸다. 과거의 많은 연구에서 높은 담뱃값이 흡연율을 낮춘다고 했던 것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담뱃값을 80% 인상하면 담배 소비량이 34% 감소할 것이라는 당초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인상 직후 절반으로 떨어졌던 담배 판매량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더니 10개월 만에 예년의 76% 수준까지 다시 올라갔다. 금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기자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감히 누가 금연 결심자의 잔잔한 마음에 돌을 던지는가. 차분하게 지난 1년 동안의 금연일지를 되돌아보기로 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더니…
아침부터 꼬인 날이었다. 출근 길 지하철역 출입구를 나오는데 담배 냄새부터 훅 들어왔다. 흡연 구역의 경계가 불분명한 탓에 연기가 에스컬레이터까지 흘러온 것이다. ‘한 대 피우고 싶다’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회사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옆으로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지나간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던 동료들이 자연스레 한 대를 권한다.
금연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흡연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출근길 환경은 아직도 곤욕스럽다. 실제로 금연은 주위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 톨레도대 경제학과 미르 알리 교수팀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학급에 흡연하는 학생이 10% 늘어날 때마다 나머지 학생이 흡연할 확률이 3%p가 오르고, 그들이 친한 친구라면 5%p까지 높아진다. 갑자기 13년 전 나에게 담배를 권하던 친구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너만 아니었으면….

광고 현란한 편의점, 안 갈 수도 없고…
편의점에 갔다가 안구 테러를 당했다. 물건 값을 계산하려는데 점원 뒤에 담배판매대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100종류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담배들이 각양각색 자태를 뽐내며 유혹하는데 순간적으로 담배를 달라고 말할 뻔했다.
실제로 미국 랜드연구소는 편의점 담배판매대가 금연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다는 실험 결과를 영국 의학협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흡연 규제(Tobacco control)’ 2015년 11월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세 종류의 편의점에서 실험을 했다. 담배판매대가 점원 뒤에 있는 일반적인 편의점과, 판매대가 점원 옆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의점, 판매대가 아예 손님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가려진 편의점이었다. 연구팀은 10대 청소년 241명에게 10달러씩 주고 세 종류의 편의점 중 하나를 선택해 물건을 구입하게 한 뒤 흡연 의향에 대해 질문을 했다. 조사 결과, 판매대를 옆으로 떨어 뜨려 놓은 편의점과, 판매대가 눈에 잘 보이는 편의점은 흡연 가능성이 높게 나왔다. 그러나 판매대를 가린 편의점을 이용한 청소년의 흡연 가능성은 11%p 더 낮았다. 이는 담배 판매대가 무의식적으로 청소년들의 흡연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문제는 담배판매대뿐만이 아니다. 선글라스 낀 노란 낙타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원숭이…. 귀엽고 세련된 이미지로 무장한 담배광고는 훨씬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정부 규제로 대중매체와 옥외광고판에서 밀려난 담배광고가 규제가 없는 편의점으로 죄다 몰린 것이다. 2015년 12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전국 담배판매점 2845곳을 방문 조사한 결과, 판매점 당 담배광고 개수는 평균 15.8개였으며, 그 중 85.8%는 판매점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불법광고였다. 국민건강증진법에서는 판매점에서 담배 광고물을 전시·부착할 때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담배광고와 청소년 물품과의 진열거리가 50cm 이하인 경우도 86%나 됐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담배 회사들의 노력은 이토록 집요했다.
담배광고가 젊은 층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로도 입증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학센터 연구팀이 2010년 8월 ‘소아과학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흡연을 하지 않던 10대 청소년 1681명 중 18%가 1년 뒤 흡연자가 됐는데, 이들 4명 중 3명은 편의점에 주 2회 이상 가는 학생이었다. 2년 뒤 같은 조사에서도 편의점에 자주 가는 학생이 흡연자가 된 경우가 1.5배 더 많았다.

‘극혐’ 금연광고가 불편한 건 나뿐인가
메르스 때문에 저녁 술자리가 줄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술자리에서 담배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TV를 보다가 또 한 번 테러를 당했다. TV에 갑자기 뇌혈관이 터지고, 얼굴이 일그러진 흡연 중독 환자가 숨을 겨우 쉬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일명 ‘금연 혐오광고’로, 점차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따라 담뱃갑에도 이런 혐오 광고 그림을 부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차일피일 미루다 2015년 5월 담뱃갑에 경고그림 표기를 의무화하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2002년 국회에 처음 제출된 지 13년 만에 통과됐는데, 2016년 말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시각적인 충격요법이 흡연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지만, 담배에 대한 혐오감을 넘어 흡연자까지 혐오의 대상으로 느끼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럴 경우 오히려 금연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레베카 에반스-폴스 연구원팀은 금연 정책의 대부분이 흡연자들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으며, 이런 정책들이 흡연자에게 금연에 대한 반발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이 30개의 논문을 분석해 보니, 흡연자 중 30~40%가 가정과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민감하게 느끼며, 27%는 자신이 흡연자라는 것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이것이 스트레스로 이어져 그들은 스스로를 ‘밑바닥 인생’, ‘한심한 사람’, ‘왕따’ 등으로 표현하며 자멸감과 금연에 대한 반발심을 느꼈다. 에반스-폴스 연구원은 논문에서 “금연 정책을 세울 때 흡연자를 힐난하는 것보다 금연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가 더 높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 금연 ‘다시’ 3일째
6개월 만에 다시 시작, 하지만 진짜 문제는…
또 다시 시작이다. 6개월 전에는 무식하게 참다가 결국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과학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제 하루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보건소 금연상담실에도 다녀왔다. 음주측정기처럼 생긴 일산화탄소 검사기에 입김을 불어 헤모글로빈에 결합한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쟀더니 13% COHb가 나왔다. 하루 반 갑 정도 피우는 양이란다. “흡연량이 많지 않아 끊기 어렵지 않겠지만, 반대로 얼마 안 되는 것을 위안삼아 다시 흡연하기도 쉽다”는 상담사의 말에 벌써 세 번이나 실패한 기자는 흠칫했다. 니코틴 패치와 손지압기를 받고 1주일 후 방문을 기약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극한의 무기력감이 밀려온다. 그래도 처음 쓰는 니코틴 패치 덕분인지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시간은 준 것 같다. 금연에는 굳은 의지뿐 아니라, 의지를 지켜줄 수 있는 보호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이런 보호 장치와 재흡연 예방프로그램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 담배로 거둬들인 세금을 정부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봤다. 그런데 웬걸.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 담배 판매로 정부가 거둔 세수가 9조 원이나 되는 데도(2014년 한해 6조7000억 원),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예산은 1475억 원, 약 1.6%에 해당하는 금액에 불과했다. 2016년에는 여기서 160억 원이 더 줄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988년 담뱃값 인상 관련 법안인 ‘법안 99’로 흡연자를 절반 이상 줄인 뒤, 2012년 ‘법안 29’를 새로 기획했다. 그 기획안에는 추가로 상승된 세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안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추가 세수의 60%는 연구 투자, 20%는 금연사업 시행, 15%는 관련 시설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법규 집행 및 관리에 쓰겠다고 명시했다. 이 법안은 담배회사의 로비로 주민 투표에서 찬성 49.8%, 반대 50.2%로 입안이 무산되긴 했지만, 계획은 고사하고 세수의 사용처조차 불분명한 우리나라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담뱃값 인상 목적이 진정 국민건강증진이었다면, 금연의지를 지켜 줄 환경을 확실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울화가 치밀어 올라 또 한 대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