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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테러리스트 만드는 ‘뇌 속 스위치’ 있을까




미국의 록 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공연이 한창이던 파리 11구역의 바타클랑 콘서트홀. 폭스바겐 폴로 차량에서 3명의 괴한이 내렸다. AK-47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공연장을 급습해 80명이 넘는 이들을 살해했다. 경찰 특공대가 들이닥치자 테러범들은 벨트에 찬 폭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폭발 흔적에서 잘린 손가락을 찾아 테러범의 신원을 밝혀냈다. 그의 이름은 이스마일 오마르 모스테파이(오른쪽 위 사진). 29살의 알제리계 프랑스인이었다.

모스테파이는 불과 3년 전까지 파리 서남쪽 샤르트르에 사는 평범한 이슬람교도였다. 인근 주민들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를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어쩌다 끔찍한 괴물이 됐을까.

머릿속 악마의 스위치, 신드롬 E

1994년 여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내전으로 몇 개월 만에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해 보스니아에서는 수만 명의 무슬림이 살해당했다.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이 과학자들을 움직였다. 의학저널 ‘랜싯(LANCET)’은 1996년 첫 호에 과학자들이 악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랜싯은 사설에서 “악을 정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과학자의 오만”이라고 규정하고 “1996년에도 악의 본성에 대한 연구비는 없을 것이다. 유일한 희망은 호기심 많은 과학자가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랜싯의 바람은 미국 UCLA 의대 이츠하크 프리드 교수가 이어받았다. 프리드 교수는 1997년 머릿속에 어떤 스위치가 켜지면 평범한 인간이 다른 이를 학살하는 악마로 변한다는 새로운 가설을 랜싯에 발표했다. 그는 이것을 일종의 신드롬으로 규정하고, 악(Evil)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 ‘신드롬 E’라고 불렀다. 신드롬 E의 특징으로는 반복적인 폭력, 폭력에 대한 무감각, 신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동기부여 등을 꼽았다.

프리드 교수는 감정을 조절하는 전전두피질을 신드롬 E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맹목적인 복종과 공격성이 전전두피질 손상에 의한 강박성 인격장애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코카인과 같은 마약을 흡입해 극도로 흥분했을 때 전전두피질 중 내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는 것도 근거로 들었다. 무언가 엉성하다는 것을 눈치 챘겠지만 프리드 교수가 신드롬 E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대신 뇌과학에서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을 바탕으로 신드롬 E를 연상할 수 있는 내용을 끼워 맞춘 것이다. 당시에는 뇌파검사(EGG)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이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프리드 교수의 이론을 검증할 수단이 없었다. 때문에 랜싯 역시 가설로 분류해 출판했다.

프리드 교수의 가설에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2006년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수잔 피스케 교수팀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 뇌의 특정 회로를 불활성화시켜 이들과 사회적 교감을 피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프린스턴대 학부생들에게 마약중독자, 노숙자 같은 부정적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과 아이, 노인 같이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고 fMRI로 그들의 뇌를 관찰했다. 그 결과 부정적 고정관념이 있는 이들의 사진을 볼 때는 사회적 교감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비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전전두피질이 비활성화되면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도 활성이 낮아져 상대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게임이론, 역사학, 사회학, 복잡계이론을 이용해 신드롬 E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드 교수는 올해 4월에는 ‘방아쇠를 당기는 뇌’라는 이름으로 첫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학술대회가 열린 장소는 파리였다.

신념이 ‘악의 스위치’ 누를 수 있을까

정말로 무언가가 ‘스위치’를 누르고 그로 인해 전전두피질이 비활성화돼 악인이 된다면, 선량했던 모스테파이의 스위치를 누른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 경찰은 모스테파이가 지난 2010년 가을 벨기에 몰렌비크에서 한 이맘(이슬람 성직자)을 만난 뒤 급진주의에 빠졌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목숨을 던져가며 테러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화적 관점으로 보면 유전적으로 관련이 없는 종교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실마리가 될지 모를 연구 결과가 지난해 11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지 및 진화인류학과 브라이언 맥퀸 박사는 2011년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일어난 정부-반정부 간 내전인 리비아 혁명 직후부터 4개월 동안 리비아 북부의 미수라타 지역에서 인도적 구호가로 활동했다. 혁명이 끝난뒤 그는 같은 과의 하비 화이트하우스 교수와 함께 혁명에 참여했던 179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정부군에 맞서기 위해 리비아에서는 다수의 혁명군이 조직됐는데, 각기 따로 활동한 서로 다른 네 혁명군으로부터 참가자를 모았다. 참가자들은 가족, 같은 혁명군 소속의 동지, 다른 소속의 혁명군, 카다피를 지지하지 않지만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보통의 리비아 사람 등의 네 집단과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융합(fused)’돼 있는지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자신을 나타내는 동그라미와 다른 집단을 나타내는 동그라미를 겹치는 방식이었다.

조사 결과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99%, 같은 혁명군 출신을 97%, 다른 혁명군 소속을 96% 융합돼 있다고 답변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투를 함께하지 않은 다른 소속의 혁명군들을 전투를 함께한 동료들만큼이나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연구팀은 같은 신념을 공유하면 가족만큼 강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투 그 자체가 소속감을 높였다면 같이 전투를 한 동료들만 높이 평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고, 같은 정신을 공유하지도 않은 평범한 리비아인들과의 융합도는 1%로 형편없이 낮았다. 나중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혁명군들은, 평범한 리비아인들을 ‘희생하지 않고 과실(민주주의)만 얻은 무임승차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떤 신념은 (리비아의 경우 민주주의) 유전적으로 상관없는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만든다. 동시에 그것을 함께하지 않은 상대방을 강하게 배척한다.

또 다른 예도 지난해 학술지 ‘역사동역학’에 발표됐다. 미국, 프랑스, 영국의 연구자들은 모로코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모로코는 최근 이슬람국가(IS)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연구팀은 이슬람 성전을 신봉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평범한 무슬림에게 각각 샤리아(이슬람법)를 위해 얼마만큼 희생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 결과 종교적으로 똘똘뭉친 이들은 융합되지 않은 집단에 비해 두 배 이상 큰 희생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아주 극단적인 사람들은 종교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자녀의 목숨을 희생하거나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반대로 종교와 관련이 없는 민주적 가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두 집단 모두 소극적이었다.


강력한 신념이 머릿속 스위치를 누르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을 구제불능의 악마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과학이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돌리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테러, 막을 수 있을까

신념에 의해 집단과 융합된 사람은 그 집단을 위해 폭력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고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신드롬 E와 신념에 관한 뇌과학적 분석이 없기 때문에 신념이 신드롬 E의 스위치인지는 모른다. 다만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짐작만 할 뿐이다.

만약 추가적인 연구로 우리가 악이 탄생하는 메커니즘을 알아낸다면 테러를 막아낼 수 있을까. 프리드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메커니즘을 안다고 해서 이것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생명과학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환경과 교육정책을 개선할 때 테러범이 되는 과정을 참고하면 아이들이 나쁜 길에 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에 각국 정부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테러 가담자들에 대한 교화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10여 개의 센터가 테러가담자들을 교화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엇갈리지만 중동언론연구소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시설은 교화율이 80%가 넘는다. 이런 치료에서는 어쩌다가 테러 가담자가 됐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경계해야 될 점은 신드롬 E나 악의 탄생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그들이 정말로 몸에 이상이 생겨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연습을 한 책임은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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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폭력과 테러 인류의 숙명일까
Part1. 기나 긴 폭력의 역사, 하지만 본성은 아니다
Part2. 테러리스트 만드는 ‘뇌 속 스위치’ 있을까
Part3. ‘살아남은 자’의 슬픔, 뇌를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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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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