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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몸은 메가이터가 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한 사람에게 하루 동안 공급된 열량은 전세계 평균 1961년 2196kcal에서 2011년 2870kcal로 50년 사이에
무려 30%가 늘었다. 2011년 벨기에인들은 하루 섭취 권장량(2000~2500kcal)을 훨씬 웃도는 3793kcal를 공급받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리아(3784kcal), 터키(3680kcal), 미국(3639kcal)이 그 뒤를 이었다. 과연 인간의 몸은 이처럼 엄청난 ‘먹이 활동’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인간의 몸은 ‘메가이터’가 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자주,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고 있다. 이 같은 불일치로부터 모든 재앙이 시작됐다. 많이 먹을 수 있는 몸을 타고나지도 못했으면서 인간이 메가이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들을 살펴보자.

잡식동물 인간, 수만 가지 동식물을 탐하다

인간이 매우 다양한 동식물과, 이들을 조합해 만든 더 다양한 요리를 먹어 치우는 현상은 인간이 잡식동물이라는 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동물은 크게 육식, 초식, 그리고 잡식동물로 나뉜다. 고기를 주로 먹는 고양이나 개, 늑대, 밍크, 호랑이, 사자, 독수리 등은 육식동물이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말, 토끼, 소, 양 등은 초식동물인데, 그 중 상당수가 위 앞에 ‘반추위’가 있는 반추동물이다. 반추위는 불용성탄수화물, 즉 섬유소를 미생물로 발효해 소화하는 기관이다.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이 전분(가용성탄수화물)이 많은 쌀이나 밀 같은 곡물보다는 섬유소가 많은 풀이나 건초 등을 즐겨 먹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육식과 초식 외 나머지를 잡식동물로 분류한다.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을 모두 먹는 돼지, 닭, 쥐, 곰, 라쿤, 스컹크 등이 속한다.


 
인간은 이 중 잡식동물에 해당한다. 첫 번째 증거는 치아다. 입 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은 가장 먼저 치아를 만나 잘게 부숴지는데, 이 때 앞니와 송곳니, 앞어금니, 어금니의 역할이 각각 다르다. 초식동물은 앞어금니와 어금니를 이용해 음식을 반복해서 씹어 먹고, 육식동물은 주로 앞니와 송곳니를 이용해 고기를 찢어 먹는다.

따라서 초식동물은 크고 넓적하며 튼튼한 앞어금니와 어금니를 갖고 있고, 육식동물은 앞니와 송곳니가 날카롭게 발달했다(오른쪽 사진 참조). 잡식동물은 그 중간쯤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은 모든 치아가 대체로 잘 발달해 있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모든 치아를 골고루 사용한다. 잡식동물이라는 증거다.

인간의 침 안에서도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음식물의 전분과 지방 일부는 침 안에 포함된 효소에 의해 분해된다. 전분은 육식동물이나 반추동물은 잘 먹지 않고 잡식동물이 주로 섭취하는 영양소다. 토끼, 말 같은 비반추 초식동물의 침에도 이 효소가 있지만, 소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육식동물과 반추동물의 침에는 그마저도 아예 없다. 인간은 침 외에 다양한 소화기관에서도 전분 분해 효소가 많이 분비된다.

결국 인간은 잡식동물로 태어난 덕분에 소, 돼지, 양, 닭 같은 고기와 채소의 섬유소뿐만 아니라 쌀, 밀, 옥수수, 감자 등 전분 위주의 곡물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잡식동물이 가진 소화생리학적 특성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먹어 치우게 된 것이다.

삼시 세끼 꼬박 챙겨먹고 간식, 후식, 야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데서 더 나아가, 인간은 자주 먹는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하루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다. 후식과 야식도 먹는다. 그런데 사람과 소화기관이 비슷한 돼지도 사람 못잖게 자주 먹는다. 잡식동물의 특성이라는 얘기다. 반면 소 같은 반추동물은 늘 사료가 주어지는 사육 환경에서도 한번에 많이 먹은 뒤 하루 종일 입을 우물거리며 되새김질을 한다. 야생 동물은 음식을 늘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빈도가 적다.

잡식동물이 자주 배고픔을 느끼는 건 전분의 영향이다. 대부분의 소화와 영양소 흡수는 소장에서 일어나는데, 이때 곡물같이 전분이 많은 음식을 먹는 잡식동물의 소장에서는 전분이 분해돼 만들어진 포도당이 다량으로 흡수된다. 이를 신호로 소장에 붙은 췌장(이자)에서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인슐린은 우선 체세포들이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게 하고, 남은 포도당을 지방산으로 바꿔 체지방 합성을 촉진한다. 또한, 음식을 통해 함께 흡수된 아미노산을 이용해 체단백질 합성을 촉진하고 동시에 단백질 분해를 감소시킨다. 즉, 전분에서 온 포도당이 인슐린을 움직여 몸 조직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포도당 수치가 낮아지면, 인슐린이 줄어들고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이 때에는 체지방과 체단백질이 분해돼 케톤체와 포도당이 만들어져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이처럼 몸을 조직했다가 다시 에너지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뇌와 장에서는 배부름이나 배고픔을 느끼는 호르몬들이 추가로 분비된다. ‘배꼽시계’의 정체다. 전분을 많이 먹는 잡식동물은, 음식 섭취에 따라 인슐린과 글루카곤의 분비량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에 따라 배부름 혹은 배고픔 호르몬 분비가 반복되면서 음식을 자주 먹게 되는 것이다.

육식동물이나 반추동물은 다르다. 전분을 거의 먹지 않고 이로 인한 인슐린의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에 호르몬 작용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정도가 낮다. 음식을 섭취하는 빈도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먹은 열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많아지면 섭취를 더 이상 하지 않게 하는 기작이 작동한다. 이를 이용해 돼지나 닭 같은 가축을 기를 때 사료의 열량 함량을 통해 섭취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섭취와 관련된 호르몬의 상호작용 때문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른다. 현재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다.
결국 인간이 다른 잡식동물과 비교해서 더 자주 먹는 몸을 타고난 건 아니다. 그런데 인간과 다른 잡식동유도물 사이에 소화생리학적 유사함을 뛰어넘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의 ‘의지’다. 인간은 본능적 반응을 조절하는 의지력이 탁월하다. 맛있는 음식이 눈 앞에 있으면 열량 섭취가 많아져도 더 먹고자 한다. 식사를 마친 뒤에 달콤한 케이크 같은 후식을 더 먹을 수 있다. 이는 생리학적인 이유라기보다 다분히 심리적인 이유(탐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재앙이 시작됐다.


 
많이 먹을 몸이 아니다…그런데 많이 먹는다

이제 인간은 탐식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탐식 때문에 자주 먹더라도 섭취량이 적으면 괜찮다. 문제는 ‘과식’이다. 전 인류는 과식하는 식습관때문에 비만이나 성인병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 음식은 다다익선이 아니다.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도 과다하면 문제가 된다.

예컨대, 고기를 많이 먹으면 몸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초과하는 분량은 모두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성된 암모니아는 요소로 바뀌어 오줌으로 배출된다.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암모니아가 배출되므로 당장 대사적인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이 너무 ‘과도하게 오래’ 지속되면 간과 콩팥에 무리를 줄 수 있다.

곡류를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생긴다. 몸에 흡수되는 포도당의 양이 급격히 많아져 인슐린이 과다하게 분비된다. 인슐린은 체지방 합성을 촉진하므로 살이 급하게 찔 수 있다. 만일 인슐린이 잘 작동하지 않는 당뇨병 환자라면 혈액 속 과다한 포도당이 혈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섬유소, 즉 채소류 역시 너무 과식하게 되면 가용성 섬유소를 몹시 좋아하는 장내 미생물이 과도하게 발효를 일으켜 장 안에 메탄 가스가 급격히 많아진다. 배가 꽉 찬 듯한 불쾌한 느낌과 메스꺼움이 동반된다.

지금도 배고픈가? 그러나 당신의 몸은, 소화생리학적으로 지금의 엄청난 포식량을 감당할 수 없다. 메가이터 인간은, 결코 메가이터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인류, 지구를 먹어치우다 냉장고로 부족해?] Part 1. 전세계는 얼마나 먹나
Part 2. 메가이터, 생태계를 바꾸고 진화를 일으키다
Part 3. 몸은 메가이터가 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201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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