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7일, 경남 산청소방서에 근무하던 소방관이 벌집을 제거하려다 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소방관을 공격한 건 다름아닌 등검은말벌(Vespa velutina nigrithorax ). 등검은말벌은 중국 남부지역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외래종이다.
2003년 처음 발견됐을 당시만 해도 최초 발견지인 부산항 근처에만 퍼져있었으나, 최근 포천과 동두천을 비롯한 경기 북부지역에서도 발견됐다. 특히 기후변화로 급격히 수가 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등검은말벌은 아열대종으로 서식환경이 우리나라 기후와는 맞지 않는다. 처음 발견됐을 때만 해도 다른 아열대종 생물들처럼 겨울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등검은말벌은 한반도의 겨울을 잘 버텨냈고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서식지를 한반도 전체로 늘려나갔다. 말벌 하나 들어온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싶지만 이 등검은말벌은 다른 말벌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강한 생존력으로 도심에서도 살아남아
등검은말벌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생존력이 강해 도심에서도 잘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도심에서 잘 살아남는 만큼 사람을 공격할 확률도 매우 높다. 토종말벌은 먹이의 제한으로 도심에서는 잘 살지 못하지만, 등검은말벌은 꿀벌, 파리, 나비, 딱정벌레, 잠자리, 거미, 심지어 생선까지 가리지 않고 다 먹는 잡식성이다. 실제 등검은말벌을 보기 위해 지난 9월 3일 방문한 경북대 캠퍼스에서만 벌집 5개가 발견됐다.
최문보 경북대 계통진화유전체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2010년 부산 도심에 살고 있는 말벌 중 95%가 등검은말벌이었다. 최 교수는 “경상도 지역은 이미 도심에 등검은말벌집이 가득하다”며 “서울 지역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서울 근방의 경기권 도심에서도 등검은말벌이 발견된 걸 보면 이미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벌집 하나에 살고 있는 등검은말벌 수는 다른 말벌에 비해 월등히 많다. 대표적인 토종말벌인 장수말벌은 벌집 하나에 300~400마리 가량이 살고 있는 반면 등검은말벌은 벌집 하나에 적게는 1500마리, 많게는 3000마리까지 살고 있다. 벌집 하나당 장수말벌의 최대 10배에 이르는 개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벌집 제거도 쉽지 않다. 산청에서 사고를 당한 소방관 역시 벌집을 제거하려고 출동했다가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최 교수는 “등검은말벌이 다른 말벌에 비해 공격성이나 침의 독성이 더 센 건 아니지만, 개체수 자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을 공격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특이한 벌집 구조, 생존력 비결일까
등검은말벌의 생존력은 벌집을 짓는 데서도 나타난다. 대부분의 말벌은 나뭇가지 바깥쪽에 집을 짓는다. 안쪽에 집을 지으면 떨어질 위험도 적고 다른 벌들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지만 나뭇가지가 앞에서거치적거려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등검은말벌집은 긴 타원형으로 생겼다. 나무 안쪽에 집을 지어도 입구는 나뭇가지 바깥쪽이라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구조다. 최 교수는 “등검은말벌은 입구에 방해물이 없으면 다른 말벌과 마찬가지로 구 형태로 집을 짓지만, 방해물이 있으면 긴 타원형으로 개조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가설이라 오늘 이를 증명할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가 등검은말벌을 키우며 연구하는 곳은 경북대에서 한참 떨어진 팔공산과 대구 도심에 위치한 작은 공원, 두 군데다. 이날 방문한 곳은 팔공산이었다. 팔공산 안쪽엔 최 교수만의 ‘작은 연구실’이 있다. 높이 15m 정도의 나무 위엔 최 교수가 대구 도심에서 따온 등검은말벌집이 있다. 이 날 할 일은 둥그런 모양의 말벌집 입구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 만약 긴 타원형의 벌집 구조가 등검은말벌의 생존력과 연관성이 있다면, 장애물을 피해 긴 타원형으로 벌집을 만들 터다. 최 교수는 “아직까지는 등검은말벌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아 정보가 얼마 없다”며 “대책을 세우려면 먼저 등검은말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냥 성공률 90%, 전문 꿀벌 사냥꾼
등검은말벌이 위협적인 두 번째 이유는 꿀벌을 사냥해 개체수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이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꿀벌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와 코넬대의 자료에 따르면, 아몬드 수분은 100% 꿀벌에 의해 일어나며, 사과와 블루베리는 90%, 복숭아는 48%에 이른다. 꿀벌이 사라지면 수많은 과일과 채소, 곡물 생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 생물다양성이 감소한다. 또한 6조 원대에 달하는 꿀벌 관련 사업에도 큰 경제적 피해가 생길 터다. 장수말벌을 포함한 다른 말벌도 꿀벌을 잡아먹는데, 유독 등검은말벌을 주요 위협 요인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냥속도가 빠르다.
등검은말벌이 위협적인 두 번째 이유는 꿀벌을 사냥해 개체수를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이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꿀벌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미국 농무부와 코넬대의 자료에 따르면, 아몬드 수분은 100% 꿀벌에 의해 일어나며, 사과와 블루베리는 90%, 복숭아는 48%에 이른다. 꿀벌이 사라지면 수많은 과일과 채소, 곡물 생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 생물다양성이 감소한다. 또한 6조 원대에 달하는 꿀벌 관련 사업에도 큰 경제적 피해가 생길 터다. 장수말벌을 포함한 다른 말벌도 꿀벌을 잡아먹는데, 유독 등검은말벌을 주요 위협 요인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냥속도가 빠르다.

등검은말벌은 크기가 약 25mm 정도로 일반적인 말벌에 비해 작다(위 사진 참조). 크기가 작은 만큼 속도가 아주 빠르다. 이들은 꿀벌 집 주변에서 정지비행으로 계속 대기하다가 꿀벌이 나오면 순간적으로 낚아챈다. 반면 크기가 큰 장수말벌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여러 마리가 집단으로 벌집을 공격한다. 한 마리가 벌집을 발견하면 페로몬을 발라 한 번에 5~6마리 가량이 달려들어 벌집 전체를 공격한다. 이들이 한 번 왔다 가면 벌집 하나가 초토화 된다.
이렇게만 보면 장수말벌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 같지만, 의외로 장수말벌은 ‘수비’하기가 편하다. 일단 등검은말벌에 비해 꿀벌을 찾는 빈도수가 현저히 적다. 말벌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9월만 봐도 등검은말벌의 출현 빈도수가 장수말벌의 8배로 높다. 또 장수말벌은 단체로 공격하니 눈에 잘 띄어, 이들만 막으면 벌집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 반면 등검은말벌은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하기 때문에 24시간 대기조가 필요하다.
최 교수는 “양봉업자에게 등검은말벌을 알아서 막으라는 건 하루 종일 벌집 옆에 있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등검은말벌은 위해외래종 2급이다. 2013년 환경부에서 처음으로 등검은말벌의 위해성 평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그럼에도 현재 등검은말
벌에 대한 정보나 연구는 미비하다. 우리나라에서 집중적으로 등검은말벌을 연구하는 건 최 교수와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뿐이다. 최 교수는 “말벌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등검은말벌이 이미 전국적으로 많이 퍼져있어, 확산을 막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꿀벌의 개체수는 계속 줄어들게 될 겁니다.”



유럽까지 고통, 확산속도는 6배
등검은말벌로 고통 받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동일종이 들어와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존에 살던 토종말벌이 30종에 달하는 반면, 유럽은 참말벌(Vespa crabro ) 한 종뿐이다. 경쟁종이 없다 보니 프랑스에서 등검은말벌의 확산속도는 우리나라의 5~6배에 달한다.
2004년에 남프랑스에서 등검은말벌이 처음 발견됐고, 2009년엔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32개 주, 2013년엔 67개 주에서 발견됐다. 프랑스를 기점으로 2010
년엔 스페인, 2011년엔 포르투갈, 벨기에, 2012년엔 이탈리아, 2014년엔 독일까지 전부 퍼졌다.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2012년 부산항에서 가까운 대마도에서 등검은말벌이 발견됐다. 규슈대 타카토시 우에노 교수는 2014년 논문에서 ‘대마도 북쪽의 15개 지역 중 5개 지역에서 등검은말벌이 발견됐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일본 토종벌(Apis cerana japonica )을 잡아먹고 있다’고 밝혔다.
타카토시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 환경부는 현재 등검은말벌의 분포 지역, 밀도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고, 규슈대는 등검은말벌의 생태학적, 행동학적인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며 “전세계적으로 등검은말벌에 대해 알려진 바가 얼마 없어, 각국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