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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우리는 왜 ‘언프리티랩스타’에 열광하는가


8월 26일에 찾은 서울 신촌의 이화웰니스센터 음악치료연구실에는 치료를 위한 작은 방이 3개 있었다.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리듬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는 노트북과 랩에 멜로디를 더해줄 건반이 있었다. “가사는 써 오셨어요?” 김영실 음악치료사(연구원)가 물었다. 사전에 미리 랩 가사를 써오라는 요청을 받은 기자는 ‘믹스커피에 대한 향수와 당의 필요성’에 대해 짧은 가사를 썼다. 모두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마치 믹스커피가 구시대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우리 몸은 당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사가 준비됐으면 랩을 할 박자를 골라야 해요.

1번은 빰빠바 다다다다 빰빠바 다다다다. 좀 발랄한 리듬이죠? 랩 가사가 조금 무거운 편이면 둥뚜두 파파 둥뚜두 파파. 이런 리듬도 괜찮아요. 여러 가지 리듬을 들어보고 고르시면 돼요.” 김 연구원과 같이 청소년 음악치료 사업을 진행하는 신아름 음악치료사가 말했다. 리듬을 고르고 랩을 시작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리듬에 맞게 끊어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랩은 가사에 라임(rhyme)이 있어야 부르기 쉽고 리듬이 잘 살아난다”며 ‘우린 항상 당이 필요해. 포도당, 젖당, 과당, 설탕’이라는 가사를 ‘우린 매일 골이 땡겨, 그래서 난 당이 땡겨. 포도당, 젖당, 과당, 설탕’으로 수정해주기도 했다. 실제 음악치료를 받는 청소년들도 이런 과정으로 랩을 만들고 녹음하고, 또 들어본다.

우리나라는 아직 랩 음악치료 시작단계

녹음이 끝나고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기분이 어떠냐고 김 연구원이 물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즐겁다”고 답했지만 정량화된 비교 자료가 없어서인지 뭔가 석연치 않았다. 얼마나 정서적으로 안정이 됐는지 수치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묻자 김 연구원은 “치료법이나 치료 대상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워낙 많아 정해진 검사법이 없다”며 “주로 시각통증척도(VAS)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시각통증척도는 치료 전후의 심리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심리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설문 방법이다. 10cm길이의 선에 한쪽 끝은 통증 없음, 다른 한 쪽은 상상 가능한 가장 심한 고통을 기록하게 한다. 주로 신체 통증에 사용하지만 심리적 고통을 측정하는 데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랩을 이용해 치료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권에는 랩 음악치료 전문가가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미카엘 타우트 교수, 호주 멜버른대 펠리시티 베이커 교수 등은 ‘음악치료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랩을 이용한 치료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립대 미카엘 비에가 교수는 랩을 이용한 치료 영상과 학생들이 직접 만든 랩 음원을 페이스북 페이지 ‘힙합과 음악치료(Hip Hop and Music Therapy)’에 올려 사람들과 공유한다.



리듬이 강한 랩, 몸의 움직임 불러와

이렇게 랩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랩이 멜로디보다는 ‘리듬’이 강조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타우트 교수는 2005년 논문에서 “환자들은 반복적인 리듬의 랩을 만들고 들으면서, 신체와 심리 모두 이완된다. 리듬과 일치되는 동조(Entrainment) 현상은 걱정과 두려움을 줄이고 뇌로 하여금 감정을 정리하게 한다. 이는 배움과 지각 능력, 특히 인지와 언어를 담당하는 뇌 영역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안전하다는 감정을 신뢰감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한 동조 현상은 생물학 용어로 내부와 외부의 리듬이 서로 맞춰지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몸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며, 일132정하게 걷는 모든 동작이 고유한 박자를 가진다. 이를 타임키퍼(time keeper)라 하는데,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몸 밖의 또 다른 리듬을 만나면 타임키퍼는 외부의 리듬을 따라가게 된다. 규칙적인 박자 소리를 내는 도구인 메트로놈을 여러 대 같이 놓으면 전부 같은 박자를 가지고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 역시 동조 현상이다(왼쪽 아래 QR 코드 참조). 사람도 메트로놈처럼 외부에서 강렬한 리듬의 음악이 들려오면 그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게 된다. 리듬이 강한 음악을 들으면 그 리듬에 맞춰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는 게 그 예다.

김영실 연구원은 “이를 리듬청각자극(RAS)이라고 한다”며 “뇌에 손상이 있어 걷는 데 어려움이 있는 환자들이 재활치료를 할 때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타우트 교수가 지난 2월 ‘심리학프론티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랩과 같이 리듬이 강한 소리 자극은 망상체척수로를 통해 운동으로 이어진다. 타우트 교수는 논문에서 “구체적인 매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리드미컬한 소리 자극이 뇌 신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됐다”고 밝혔다.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정서는 전달될 수 있어

언프리티랩스타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연자들이 가감없이 욕설을 하기 때문이다. 랩이라는 장르 자체도 사람을 흥겹게 하지만, 서로를 시원하게 디스하는 모습은 듣는 사람의 체증을 내려가게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아닌데, 서로 욕하는 모습을 보고 속이 뻥 뚫리는 이유는 뭘까.

TV 속 래퍼의 감정이 나에게까지 전이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목소리나 몸짓 등을 보면서 점차 그 사람과 동일한 정서를 경험하게 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정서전이(emotional contagion)’라고 한다. 언프리 티랩스타 시즌1에서 타이미는 프로그램 내내 사이가 안 좋았던 졸리브이에게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랩으로 전한 뒤 “정말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보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면 TV 속 래퍼의 감정이 전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TV를 통해 보는 래퍼의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제이미 길로리 교수팀과 페이스북 코어 데이터 사이언스팀은 직접 접촉이 없이도 정서가 전이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실험에 참가한(정확히 말하면 참가‘된’) 피실험자 수는 68만9003명으로, 실험은 2012년 1월 11일부터 일주일간 실시됐다. 연구팀은 정서를 정량화하기 위해 긍정적인 단어, 부정적인 단어를 기준으로 뉴스피드 게시물의 빈도수를 조절했다. 그 결과 부정적인 게시물에 노출된 빈도가 적어진 사람들은 게시물을 올릴 때 대조군에 비해 긍정적인 단어는 더 많이, 부정적인 단어는 더 적게 썼다. 반면 긍정적인 게시물에 노출된 빈도가 줄어든 사람들은 정반대의 패턴을 보였다(왼쪽 그래프 참고). 길로리 교수는 논문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감정이 전이될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견도 있다. 김상희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대립과정이론(opponent-process theory)’으로 설명했다. 특정한 정서가 강하게 형성돼 심리적 평형이 깨지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반대의 정서가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언프리티랩스타에 적용시켜 보면 래퍼들이 TV 속에서 마음껏 욕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강한 심리적 긴장감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의 면전에 욕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돼 있기 때문이다. 욕이 끝나고 긴장감이 풀리면 상대적으로 더 큰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강하게 긴장한 만큼 상황이 종료된 뒤 밀려오는 안도감은 더 클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이런 감정을 시원하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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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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