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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온편지

얼음속에서 핀 갈색 생명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북극해 탐사가 7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70여일간에 걸쳐 중국, 일본, 러시아, 타이완 등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추진됐다. 이번 탐사에는 플랑크톤 등 미세 조쥬를 연구할 목적으로 남극 세종기지에서 극지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한국해양연구소의 강성호 박사와 송태윤 연구원이 참가했다. 북극 편지는 강성호 박사가 국제통신위성 인마샛(Inmarsat)을 통해 과학동아에 보내온 것. 쇄빙연구선을 타고 해빙 사이를 누비며 겪었던 생생한 경험을 들어보자.


가깡이에서 촬영한 갈색의 북극 해빙들.


6월 29일 70일간의 긴 북극 탐사를 위해 한국해양연구소 송태윤 연구원과 함께 서울을 출발해 중국의 쇄빙연구선 설룡호가 정박하고 있는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는 장마철이라 하늘이 잔뜩 흐리고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러나 함께 공동연구를 떠날 중국극지연구소의 첸보 박사가 반갑게 맞이해 마음은 밝았다.

다음날 우리는 일본극지연구소 빙하학자인 아주마 박사, 러시아 해빙연구원 블라드미르 박사, 타이완 중력연구원 뤼 박사 등과 함께 중국 설룡호에 올랐다. 설룡호가 정박해 있는 항구에는 중국 최초의 북극 탐사를 축하하는 화려한 현수막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7월 1일 성대한 환송행사를 받고 양자강 하구에 위치한 상해 부두를 출발한 설룡호는 얼마 후 대한해협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설룡호는 전장 95m에 1만5천t 규모로 좀처럼 흔들림을 느낄 수 없었다. 이번 탐사에는 북극해의 수산, 생물, 화학, 지질, 물리, 해양학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한 해양연구팀 25명, 북극해 해빙 속의 생물, 지자기, 화학을 연구하기 위한 해빙연구팀 15명, 북극해의 기상, 대기화학, 고층대기, 자외선 등을 연구하기 위한 대기과학연구팀 26명 등 총 66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또한 중국 최초의 북극해 탐사를 취재하려고 20여명의 기자단도 따라 나섰다. 결국 38명의 선원을 포함해 총 1백24명이 설룡호를 탔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동해를 지날 무렵 수평선 끝으로 독도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 배에서 우리의 독도를 바라보는 감회는 새롭고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밤에는 오징어잡이 배에서 새어나오는 수많은 불빛들이 마치 우리를 축하하러 마중나온 듯했다. 북한쪽 바다에서도 오징어잡이 배들이 한줄로 서서 우리를 밝혀주고 있었다.

지구 이산화탄소를 조절하는 곳

상해를 출발한지 일주일, 탐사선은 왼쪽으로 러시아의 캄차카반도를 끼고 북진을 계속해 알류산열도를 지나 드디어 베링해에 들어섰다. 중간 보급과 추가 연구원의 승선을 위해 미국 알래스카의 유전도시인 놈이라는 작은 도시에 닻을 내린 것은 7월 11일(날짜변경선 때문에 하루를 벌었다). 다음날 오후 3시 설룡호는 다시 출발해 하룻동안 열심히 베링해협을 건너 북극해의 첫번째 관문인 척치해로 들어섰다.

척치해는 고기압 때문인지 날씨가 푸근하고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래서 좀처럼 북극에 온 것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7월 14일 새벽 2시쯤 배가 쿵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해빙과 충돌하고 있음을 남극 탐사의 경험을 통해 직감할 수 있었다. 깜짝 놀라 갑판 위에 나가 보니 사람들이 몰려 나와 새로운 북극 정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미는 태양, 그 빛에 반사되는 순백의 해빙은 남극 탐사를 경험했던 나에게조차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곳의 얼음은 자세히 보니 남극의 것과 사뭇 달랐다. 남극 얼음은 수정같이 맑고 깨끗하다. 그러나 북극 얼음은 주변의 대륙에서 날아온 토양과 먼지 때문인지 옅은 황갈색을 띠었다. 또한 주변에 빙하지역이 없기 때문에 남극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빙산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남극에서는 해빙 주변 어디를 가나 펭귄이나 해표와 같은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간간이 날아다니는 새를 제외하고는 동물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해빙이 녹으면서 바다의 표층수는 아주 낮은 염분(10ppt, 1ppt는 1천분의 1)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금이 최대로 해빙이 녹는 기간(여름)이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유난히 해빙이 두꺼워서 그런지 설룡호가 쉽게 얼음을 뚫고 나가지 못했다. 얼음 중에는 두께가 8m 이상 되는 것도 있었다. 겨울에 눈이 쌓여서 큰산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설룡호는 여기 저기 틈이 있는 곳을 찾아서 해빙과 싸움이라도 하듯 온종일 숨가쁘게 얼음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주변은 온통 얼음이었고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저기압 하에 있어서인지 체감온도가 영하 20℃ 정도 됐다.

7월 16일 설룡호는 힘겹게 북위 71도의 한 정점에 도착했다. 폴리냐라고 불리는 곳으로 호수와 같이 해빙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형적인, 해빙 주변에서 발생하는 식물플랑크톤의 대량증식으로 인해 바다색이 온통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도 남극과 마찬가지로 전지구적 이산화탄소의 양을 조절하고 흡수하는 중요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7월 17일 북위 73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선장의 급한 목소리가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북극에 와서 북극곰 한번 못보고 가나 싶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북극곰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북극곰은 워낙 영리해서 배가 서서히 다가가자 우리 쪽을 계속 보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섯마리 중 한마리는 어린 녀석이었다. 북극곰은 겨울동안 따뜻한 시베리아, 캐나다, 알래스카 등지에서 지내다가, 여름이 되면서 녹는 해빙 주변에 형성되는 먹이(특히 물개와 바다사자 무리)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이동한다고 한다.

너무나 온순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이런 북극곰이 사람을 공격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북극곰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할 때이므로 눈에 보이는 생물이면 무엇이든 먹이로 알고 공격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빙 위에서 연구가 진행될 동안에는 연구원들 중 한명이 꼭 총을 들고 망을 본다. 오늘은 이렇게 배 위에서 북극곰을 보지만 마음 같아선 다소 위험하더라도 얼음 위에서 북극곰 가족을 만나 보았으면 싶었다.

지구환경 감시자 미세조류

척치해에서는 12개의 정점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해빙 때문에 더 이상 북진할 수 없어 해빙상태가 더 좋아지는 8월 초를 기약하며 다시 베링해로 돌아왔다. 베링해에서 파도와 싸워 가며 명태 자원과 해양을 조사하던 탐사팀이 다시 북극으로 돌아온 것은 8월 2일. 그러나 2주 전에 왔을 때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때는 해빙이 막 녹을 때라서 해수의 염도가 아주 낮았으나(10ppt) 지금은 상당히 증가(28ppt)돼 있었다. 해빙 주변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양의 식물플랑크톤이 대량증식하고 있었다. 플랑크톤 망으로 한번 끌 때마다 망은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마치 걸쭉한 갈색 해조 수프처럼 말이다.

인공위성에서 보내준 해빙자료를 보니 얼음이 북쪽으로 많이 후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북극 심층수 부근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해빙을 만날 때까지 북쪽으로 나아갔다. 북위 73도에 이르자 지난번보다 얼음이 많이 녹았지만 여전히 녹지 않은 것들이 여기 저기 떠 있었다. 해빙연구팀을 위해 헬리콥터가 정찰을 시작했다. 깨지지 않은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얼음 위에서 일을 수행해야 하므로 헬리콥터가 연구장비를 공수하기 위해 내려앉아도 안전한 그런 얼음이어야만 했다.

먼저 고층대기·기상팀이 얼음 위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기상관찰에 들어갔다. 기상팀이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해빙·빙하팀은 헬리콥터를 타고 북위 75도까지 올라가 더 깨끗하고 주변 대륙의 영향을 덜 받은 순수한 북극해 얼음을 찾았다.

드디어 미세조류를 연구하는 우리 연구팀이 해빙 위에 내려서 해빙상태를 답사하고 연구할 때가 됐다. 마치 아폴로 11호의 루이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는 듯한 벅찬 순간이었다. 배 위에서 본 해빙은 왠지 깨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지만 막상 내려서자 거대한 땅 위에 선 느낌이었다.

그러나 주변에 흩어진 갈라진 얼음틈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게 했다. 선두주자가 이끄는 길을 따라 기상팀이 베이스캠프를 친 곳까지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혹시 모를 북극곰의 출현을 대비해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베이스캠프 주변에는 얼음 웅덩이가 없어서 비교적 안전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니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북극해까지 타고 온 설룡호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고, 배 위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해빙의 기기묘묘한 굴곡이 마치 작은 산처럼 보였다. 해빙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계속 녹고 있었다. 해빙 웅덩이 근처에서는 눈 녹은 물방울 소리가 정적을 뚫고 내 귀를 자극했다. 해빙들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노출된 바닷물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으로 인해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며 흰색의 얼음 위에 떠있는 오아시스처럼 비쳤다.

그런데 얼음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눈과 얼음 사이에 갈색의 띠가 형성돼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팀이 찾고 있던 해빙 미세조류가 얼음 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료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보니 아름다운 생물체들이 얼음 속에 살고 있었다. 시료는 온통 전형적인 해빙 속에 서식하는 규조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식물플랑크톤 대량증식 때 관찰됐던 종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의 종들은 해빙이 녹아 해수로 유입될 때 사라지는 종들이었다. 이들은 아주 찬 얼음 속에서만 자라는 그런 종들이었다. 바닷물 속에서 대량증식하던 종들에 비해 종의 수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해빙이라는 환경은 이들이 서식하기에 아주 안정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북극은 우리가 상상하는 혹독한 환경이 아닌 나름대로 오랜 기간 적응해온 생명체들의 보금자리였다. 빛, 수분, 영양염만 있으면 어디든 생존한다는 미세조류가 강한 생존력을 보이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극한지에만 서식하는 미세조류는 생존의 최대 한계점에서 적응해왔기 때문에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지구의 환경변화를 감시하기 위한 중요한 생물학적 파라미터로 미세조류들은 중요 지표종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척치해에서 연구를 마친 탐사팀은 심층 북극해를 연구하기 위해 뷰포트해쪽으로 향했다. 얼음과의 사투 끝에 북위 77도에 도착한 것은 8월 17일. 외부 기온이 계속 내려가 정말 북극에 온 기분이었다. 공기를 마실 때마다 콧속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 3시 연구장소를 찾기 위해 출동한 헬리콥터의 소리에 잠이 깼다. 기상팀, 해빙팀, 중력탐사팀, 해빙생물연구팀 등 여러 조사팀이 함께 연구할 수 있을 만큼 큰 얼음을 찾아야 하는데, 출동한 헬기는 얼마 후 적당한 얼음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해빙연구팀이 먼저 새로운 캠프를 설치하기 위해 바지선을 이용해 헬기가 발견한 해빙으로 다가갔다. 유난히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체감온도는 영하 20℃ 가량 됐다.

비극의 타이타닉

바지선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상륙장소를 찾아 연구장비와 인원들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바지선이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에 하역작업은 바쁘게 진행됐다. 몸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그래도 특수하게 제작된 의복을 착용해 땀이 금방 식지 않고 보온이 잘 됐다. 하역작업이 끝난 연구팀들은 적당한 연구장소를 선정해 텐트를 쳤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본격적인 해빙연구를 했다. 연구원들은 교대로 해빙 위에서 숙식하면서 연구를 강행했고, 다시 이곳에 올 기회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귀중하게 보냈다.

해빙 위에서 나흘째 보내던 날 큰 사고가 일어났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해빙캠프에 가기 위해 바지선에서 내려 짐을 하역하는 순간 약간 떨어져 있던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갑자기 해류를 타고 달려와 바지선을 받은 것이다. 충돌되는 순간 배는 우지직 소리와 함께 얼음 위로 솟구쳤다.

충돌한 얼음은 10m 두께의 오래된 해빙이었다. 마치 타이타닉 영화에서처럼 얼음이 배의 옆면을 긁으면서 지나갔다. 바지선을 선상 위로 올려놓고 보니 그 모습은 정말로 처참했다. 조정실의 유리가 모두 깨지고 배의 오른쪽이 심하게 우그러져 버렸다. 만약에 사람이라도 타고 있었더라면 큰일날 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바지선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우리는 더욱 안전사고에 주의하게 됐다. 해빙 위에서의 연구경험은 우리가 앞으로 쇄빙선을 만들고 남극대륙(현재 세종기지는 남극대륙에서 떨어진 킹조지섬에 있음)에 기지를 건설한 후 수행하게 될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북극에서 지내는데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8월 22일 태어난지 38번째 되는 날을 맞은 것이었다. 생일을 잊고 지낸지 오래지만 북극 해빙 위에서 맞는 생일은 유난히 감회가 새로웠다. 하얀 눈동산은 흰 케이크처럼 보였고 에메랄드빛 얼음웅덩이는 생일선물로 준 커다란 보석 같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와 저 멀리 보이는 물개는 생일을 축하해 주는 축하객. 잠시 자연과 한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북극 탐사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중국인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좋았다. 중국은 남극대륙에 기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극지 경험이 우리보다 많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쇄빙선을 가지고 있어 자유롭게 극지를 돌아다니면서 연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국가적인 지원은 필자의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은 이제 아시아에서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주변국가들과 공동으로 연구하듯이 우리도 중국이나 일본과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극지는 마지막 남은 인류자원의 보고이자 지구환경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자연 실험장이다. 세계 각국에서 너나할 것 없이 엄청난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과학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기득권을 얻을 수 있는 극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연구했다는 자부심은 영원히 필자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70일 동안 훌륭한 연구 파트너가 되어 주었던 송태윤 연구원과 필자는 태극기와 한국해양연구소기를 흔들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북극해를 떠나왔다.

199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GAMMA
  • 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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