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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류기원] Part2.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만난 원주민의 기원은?




모든 인류는 약 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의 한 여성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분석한 결과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인류는 10만 년 전에 중동에, 7만 년 전에 서아시아에 진출했다. 6만 년 전에는 오세아니아, 4만 년 전에는 유럽에도 현생인류가 살게 됐다. 이동 시기와 순서를 두고 아직 논란이 있지만 현재까지 학계의 정설은 이렇다. 문제는 인류가 가장 마지막으로 진출한 아메리카 대륙이다. 콜럼버스가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신대륙인(Paleoamericans)의 기원은 아직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최초의 신대륙인은 클로비스인?
신대륙인에 대한 연구는 미국 뉴멕시코주 클로비스 지역에서 발견된 창촉에서 시작됐다. 클로비스에서는 양면이 날카롭게 손질된 돌로 된 창촉과, 상아를 비롯한 동물의 뼈를 활용한 도구들이 발견됐다. 학자들은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클로비스 문화라고 부르고, 이들을 아메리카에 정착한 최초의 인간이라고 추측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1920~1930년대에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최남단에서도 클로비스 문화의 흔적이 발견됐다. 방사성동위원소법이 개발된 1950년대에는 유적의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됐다. 분석 결과 클로비스 유적은 대략 1만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원주민의 흔적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 또 다른 신대륙인의 흔적이 칠레 남부의 몬테 베르데에서 발견됐다. 1975년에 몬테 베르데를 방문한 수의과 학생들이 이상한 소뼈를 발견했는데, 학생들이 소뼈로 착각한 것은 인류가 사냥한 것으로 보이는 아메리칸 마스토돈의 뼈였다. 1980년대에는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면서 몬테 베르데가 클로비스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토양 침식이 심해 발굴 상태가 좋지 못했고, 클로비스에서 발견된 창촉 같이 날카로운 도구가 발견되지 않아서다. 논란이 거세지자 1997년 고고학자 12명이 몬테 베르데와 클로비스 유적을 재조사했다. 이들은 몬테 베르데가 클로비스보다 앞선 1만4000년 전의 유적이라고 인정했고 클로비스의 시대는 끝이 났다.


신대륙인은 어떻게 칠레까지 갔을까
아직까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는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이야기해보자. 현생인류가 처음 출발한 지점은 15만 년 전 아프리카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유적인 몬테 베르데는 남아메리카 최남단이다. 언제 어떻게 거기까지 갔을까. 클로비스가 최초의 신대륙인으로 꼽힐 때는 신대륙인의 조상이 1만5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에서 베링육교를 통해 건너왔다고 추정했다. 베링육교는 1만3000년에서 3만 년 전 사이의 빙하기에 지금의 베링해 지역에 존재하던,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폭 1500km의 육지다. 빙하기에는 지금보다 빙하의 양이 많아 해수면이 60m 이상 낮았기 때문에 수심이 낮은 곳은 육지였다. 고고학자들은 클로비스의 조상이 베링육교를 건넌 뒤 수천 년에 걸쳐 남아메리카 끝까지 이동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몬테 베르데는 이 이론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추정 연대는 얼추 맞아떨어지지만 문제는 둘 사이의 거리다. 베링육교로부터 몬테 베르데까지는 직선거리만 1만2000km가 넘는다. 신대륙인의 조상이 베링육교를 넘어 칠레까지 이동했다면, 수천 년 이상 걸렸을 것이고 그 동안 많은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몬테 베르데 이외의 지역에서 비슷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클로비스 양식이 아메리카 대
륙 전체에서 고루 발견되는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배를 이용해 태평양 위에서부터 조금씩 내려온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보다 급진적인 학자들은 아예 유럽인이 대서양을 횡단해 아메리카에 도착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클로비스 유물이 프랑스 남부 지방의 구석기 문명인 솔루트레안의 유물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 주장은 1996년 미국 워싱턴주 케네위크에서 발견된 8500년 전 유골이 유럽인과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하지만 두개골 모양만으로 정확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는 반론도 나오면서 논란은 일어났다. 결국 논란은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결과로 일단락됐다. 케네위크인이 케네위크 인근의 아메리카 토착민인 콜빌족과 유전적 연관성이 높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대서양 횡단설은 힘을 잃었다. 신대륙인의 최초의 정착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아마존과 호주 원주민의 조상은 같다?
신대륙인의 조상의 고향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달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신대륙인의 기원에 관한 유전적 분석 결과가 동시에 발표됐다. 두 학술지 모두 일부 아마존 원주민과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등에 거주하는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이 유전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먼저 사이언스 연구결과를 보자. 미국 스탠퍼드대, 버클리대와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주축이 된 다국적 연구팀은 4년 동안 시베리아, 그린란드, 미국 등의 고대 인류 유골 세 점과 현대인 110명의 DNA 샘플을 채취했다. DNA 분석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약 2만3000년 전에 유라시아인으로부터 분리돼 이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이렇게 아메리카로 건너온 원주민들이 약 8000년 동안 알래스카 부근에서 머물다가 1만5000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했다. 빙하기에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이 얼어 있었기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았다. 아마존 원주민과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들이 유전적으로 연관이 강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는데, 연구팀은 먼 후대에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들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남아메리카에 이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네이처에 발표한 하버드대 연구팀은 처음부터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인과 아마존 원주민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췄다.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신대륙인의 얇고 긴 두개골이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들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이전부터 있었다. 또 아마존 토착민인 수우리족, 카리티아나족이 쓰는 언어가 호주 원주민의 언어와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아마존과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들의 유전자를 채취해 통계적으로 분석했고 그 결과 둘 사이에 유전적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다국적 연구팀과 비슷한 결과다.


하지만 하버드대 연구팀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직접 배를 타고 왔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이 두 번에 걸쳐 유입됐을 거라고 주장했다. 기존에 알려진대로 유라시아인들이 1만5000년 이전에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여기에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들의 조상이 되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다시 대규모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두 번째 집단을 ‘파퓰레이션 Y’라고 불렀다. Y는 수우리족과 카리티아니족이 쓰는 언어에서 ‘조상’이라는 단어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


두 연구결과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 참여했던 덴마크 코펜하겐대 에스케 빌러슬레브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원본 자료는 거의 같고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발표된 두 연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전에 발표됐던 연구, 그러니까 아마존 원주민과 오스트랄로-멜라네시아인의 유전적 유사성의 실마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대편 연구진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신대륙인의 기원을 살펴봤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코펜하겐대 에스케 빌러슬레브 교수가 ‘원본 자료는 같고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원본이 같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인가.

개인적으로 우리가 좀 더 꼼꼼하고, 더 깊이 자료를 분석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우리는 신대륙인이 하나의 조상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반대쪽에서는 우리보다 그 문제를 적게 고민한 것 같지만 빌러슬레브 교수의 말처럼 원본 자료 간에 상반되는 점은 없다.


분자진화학, 고고유전학 등의 분야는 아직 한국에는 생소하다. 직접 DNA를 채취하기 위해 고고학 유적을 다니는가. 얼핏 보기에 생물보다는 수학이 중요해 보인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이 분야에서 수학은 필수다. 나는 생물학을 공부했지만, 이 분야에서는 통계와 수학에 익숙해지는 게 ‘매우매우(extremely)’ 중요하다.


아메리카인의 기원에 대한 논란이 유독 시끄러운 것 같다. 특별히 신대륙인의 기원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만 년 전에 베링해를 건넌 인류는 문화적, 인종적으로 놀라운 다양성을 이륙했는데, 유럽인들이 침략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이렇게 사라진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사람들을 연구에 뛰어들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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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류기원] Part1. 최초의 인류진화 역사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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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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