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초기 호모 속 화석 발견” 지난 9월 초 전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호모 날레디’라고 이름 붙인 새 화석 인류가 우리의 직계 조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였다. 인류 진화와 관련한 교과서를 당장이라도 바꿀 것처럼 강한 어조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아직 신중하다.
◀ ➊ 호모 날레디를 발굴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라이징스타 동굴 입구.
➋ 새로 발견된 초기 호모 속 인류 호모 날레디의 두개골.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정설’이 있었다. 7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 후보가 나타난 이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유명한 ‘루시’가 속한 종) 등 다양한 원인(猿人)이 등장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번성했다. 그 가운데 드디어 우리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호모 속(속은 종보다 큰 분류 단위. 일종의 계통)’ 인류가 탄생했다. 초기 호모 속의 대표는 호모 하빌리스(손쓴사람)였다. 최초로 도구를 썼을 것이라 추정한 인류다.
곧이어 지금부터 약 200만 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탄생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덩치는 현생인류 수준, 두뇌 크기는 3분의 2 수준일 정도로 컸다. 인류학자들은 이 종이 강력한 신체적,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 가운데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세계로 퍼졌다고 봤다.
호모 에렉투스 이후, 아프리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등 다양한 호모 속 인류가 나타났다. 유럽에서도 약 20만 년 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즉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해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동쪽으로는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살았다. 네안데르탈인은 서서히 줄어들다 약 2만8000년 전 완전히 사라졌다. 15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났다. 이들은 이제껏 없던 강력한 환경 적응력과 지력으로 다시 한번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했다.
‘호모 날레디’는 우리의 새로운 직계 조상인가?
그런데 최근 이 구도에 크고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다. 2010년,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서로 교배해 자손을 남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2년에는 초기 호모 속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와 동시대에 호모 루돌펜시스라는 또다른 종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최근에는 이들 외에 또다른 초기 호모 속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그리고 올해 3월 새롭게 발견된 미지의 턱뼈 화석이 초기 호모 속일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4월호 ‘280만 년 전 최초 인류, 세상의 빛을 보다’ 참조). 하지만 화석에서 옛 인류의 특성이 많이 발견돼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호모 날레디는 새롭게 추가된 초기 호모 속 후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터스란트대 인류학과 리 버거 교수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이징스타(떠오르는 별이라는 뜻) 동굴에서 2013년 발굴한 새로운 인류 화석을 연구한 뒤, 이들이 초기 호모 속일 가능성이 있다고 9월 10일 학술지 ‘이라이프’에 발표했다. 날레디는 남아프리카 지역어인 세소토 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버거 교수는 21세기에 발견된 새로운 초기 호모 속 후보 중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를 연구했던 고인류학자로, 이전 세대의 연구자와는 확연히 다른 연구 방법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의 이상희 교수는 “주요 화석 사냥꾼 몇 명이 발굴 결과를 독차지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연구 자료를 공개하고 현장에 젊은 학자들을 초청해 공동연구를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버거 교수는 2013년 한 탐험팀으로부터 라이징스타 동굴 깊숙한 곳에 인류 화석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소개 받은 동굴에 가보니,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표에서 30m 깊이까지 내려가야 하는데다, 중간에 폭이 20cm로 호리병 입구처럼 좁은 구간이 있어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버거 교수는 곧바로 공개적으로 발굴단을 모집했다. 세계에서 지원이 잇따랐는데, 워낙 좁은 구간이었기에 그곳을 통과할 체형을 지닌 지원자로 발굴단을 꾸려야 했다. 발굴단원은 모두 여성이었고, 이들은 동굴에 들어가 15개체에서 나온 화석 1550점(유골 화석 1413점과 치아 화석 137점)을 수습했다.
버거 교수가 이번에 공개한 1차 연구 결과를 보면, 신체 특성은 호모 속의 특성을 보였다. 키가 150cm에 이르고 몸무게가 40~55kg에 달해 덩치가 꽤 큰 편이었다. 두뇌 크기는 200만~40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약간 큰 수준이었다(465~560cc). 턱은 파란트로푸스 속보다 부드러웠고, 어금니는 후대의 호모 속 인류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또 뒤 어금니일수록 크기가 증가했는데,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초기 호모 속의 특징이었다. 다리와 발은 호모 속의 특징이 분명해 두발 보행에 능했을 것으로 보였다.
손은 엄지와 손바닥, 손목 등에서 현생인류나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볼 수 있는 후대의 형질이 나타났지만, 손가락 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굽어 있었다. 굽은 손가락은 나무타기의 흔적으로, 원시적인 특징이다. 그밖에 척추는 호모 속의 특징을, 갈비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적인 특징을 보였다. 날레디는 이렇게 한 종 안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성질과 호모 속의 특성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지만, 연구팀은 연구 결과 호모 속에 보다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뉴욕타임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세계의 언론은 이번 발굴 소식을 새로운 초기 호모 속의 후보이자 인류 최초의 장례를 치른 조상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하나의 종이 15개체 이상이 동시에 발견된 것이 집단 매장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네이처’에 따르면, 이제까지 매장의 흔적으로 가장 앞섰던 것은 스페인 시마 드 로스 후에소스 유적으로 연대는 43만 년 전이었다. 하지만 날레디의 경우 아직 정확한 화석 연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인류학자들은 새로운 화석이 나올 때마다 새 종으로 이름 붙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아직은 연구 초창기기 때문에, 날레디에 대한 평가도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한다. 이상희 교수는 “새로운 종인지 여부, 연대, 매장 여부 등을 신중히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기원을 흔드는 또다른 문제들
호모 날레디 때문에 빛이 바랬지만, 최근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기존의 ‘정설’을 위협하는 중요한 고인류학 연구 성과가 줄을 잇고 있다. 두 가지만 소개한다.
1. 세계로 확산한 최초의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가 아닐 수도?
현재의 정설에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세계로 확산한 첫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다. 현대인의 성인에 필적하는 크고 강인한 신체와, 버금가는 크기의 두뇌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환경에 적응했으리라는 추정 때문이다. 아시아 중부의 베이징인, 동남아시아의 자바인 등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 다채로운 호모 에렉투스 화석 역시 이런 추정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소수의견도 있다. 호모 에렉투스보다 먼저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한 작은 인류가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아시아 각지에서 발견된 ‘이상한’ 화석들이다. 2005년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나라 조지아의 드마니시 지역에서는 두뇌 크기가 600cc 정도로 작고(오스트랄로피테쿠스(450cc)와 에렉투스(900cc)의 중간이다), 체구도 왜소한 화석 인류가 발견됐다. 문제는 생존 연대인데, 약 18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모 에렉투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기로, 이 작고 원시적인 인류가 에렉투스와 최소한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이른 시기에 아프리카를 벗어났다는 뜻이 된다. 인류학자 중에는 이 작은 종이 먼저 아시아에 퍼진 뒤 거기에서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된 작은 인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역시 이 가설과 잘 맞는다. 플로레시엔시스는 두뇌가 작고 신체도 작은 인류다. 뼈 화석 역시 현대인보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보다 본원적인 특징이 많다는 게 고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그렇다면 이 종 역시 초기에 아프리카를 벗어났던 왜소한 종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어디까지나 가설이자 소수의견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마크 콜라르 교수팀은 20여 종의 고인류 머리뼈 화석을 연구한 결과를 ‘영국왕립학회보B’ 7월 22일자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병을 앓은 현생인류가 아니라 우리와 별개의 종이며, 드마니시의 화석은 초기 호모 속과 별개의 종이다. 또 초기 호모 속 후보로 꼽히던 리 버거 교수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는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된다. 이상희 교수는 “호모 하빌리스가 아시아로 확산해 거기에서 호모 에렉투스와 플로레시엔시스 조상으로 분리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아시아 기원설이 탄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2. 최초의 도구 사용,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오랫동안 최초의 호모 속 인류로 꼽히던 종은 호모 하빌리스다. 이에 반해 호모 하빌리스보다 먼저 도구를 사용한 원인이 존재했다는 주장도 계속 있었는데, 최근 그 연대가 340만 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기존보다 80만 년 앞당겨진 연대다. 미국 에모리대 인류학과 제시카 톰슨 연구원팀은 에티오피아 디키카에서 발견한 동물 화석 두 점의 상처를 연구했다. 화석에는 모두 12개의 상처가 나 있었다. 연구팀은 홈의 파인 모양을 조사했다. 현생인류가 사냥한 동물의 뼈 화석에 홈이 난 경우를 분석해 보면, 치아를 이용해 상처를 낸 경우 나타나는 U자형과 석기를 이용했을 때 긁혀 만들어지는 날카로운 V자형 둘로 나눌 수 있다. 톰슨 연구원팀은 340만 년 전 뼈 화석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이렇게 분석한 뼈 화석 속 홈은 V자형으로, 석기를 이용한 인위적인 도축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에 이미 사냥 및 고기 손질 도구로서의 석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는 ‘인류진화저널’ 8월 13일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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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류기원] Part1. 최초의 인류진화 역사 바뀔까
[흔들리는 인류기원] Part2.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만난 원주민의 기원은?
◀ ➊ 호모 날레디를 발굴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라이징스타 동굴 입구.
➋ 새로 발견된 초기 호모 속 인류 호모 날레디의 두개골.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정설’이 있었다. 7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 후보가 나타난 이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유명한 ‘루시’가 속한 종) 등 다양한 원인(猿人)이 등장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번성했다. 그 가운데 드디어 우리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호모 속(속은 종보다 큰 분류 단위. 일종의 계통)’ 인류가 탄생했다. 초기 호모 속의 대표는 호모 하빌리스(손쓴사람)였다. 최초로 도구를 썼을 것이라 추정한 인류다.
곧이어 지금부터 약 200만 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가 탄생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덩치는 현생인류 수준, 두뇌 크기는 3분의 2 수준일 정도로 컸다. 인류학자들은 이 종이 강력한 신체적,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 가운데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세계로 퍼졌다고 봤다.
호모 에렉투스 이후, 아프리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등 다양한 호모 속 인류가 나타났다. 유럽에서도 약 20만 년 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즉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해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동쪽으로는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살았다. 네안데르탈인은 서서히 줄어들다 약 2만8000년 전 완전히 사라졌다. 15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났다. 이들은 이제껏 없던 강력한 환경 적응력과 지력으로 다시 한번 아프리카 밖으로 확산했다.
‘호모 날레디’는 우리의 새로운 직계 조상인가?
그런데 최근 이 구도에 크고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다. 2010년,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서로 교배해 자손을 남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2년에는 초기 호모 속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와 동시대에 호모 루돌펜시스라는 또다른 종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최근에는 이들 외에 또다른 초기 호모 속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그리고 올해 3월 새롭게 발견된 미지의 턱뼈 화석이 초기 호모 속일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4월호 ‘280만 년 전 최초 인류, 세상의 빛을 보다’ 참조). 하지만 화석에서 옛 인류의 특성이 많이 발견돼 아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호모 날레디는 새롭게 추가된 초기 호모 속 후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터스란트대 인류학과 리 버거 교수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이징스타(떠오르는 별이라는 뜻) 동굴에서 2013년 발굴한 새로운 인류 화석을 연구한 뒤, 이들이 초기 호모 속일 가능성이 있다고 9월 10일 학술지 ‘이라이프’에 발표했다. 날레디는 남아프리카 지역어인 세소토 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버거 교수는 21세기에 발견된 새로운 초기 호모 속 후보 중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를 연구했던 고인류학자로, 이전 세대의 연구자와는 확연히 다른 연구 방법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의 이상희 교수는 “주요 화석 사냥꾼 몇 명이 발굴 결과를 독차지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연구 자료를 공개하고 현장에 젊은 학자들을 초청해 공동연구를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버거 교수는 2013년 한 탐험팀으로부터 라이징스타 동굴 깊숙한 곳에 인류 화석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소개 받은 동굴에 가보니,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표에서 30m 깊이까지 내려가야 하는데다, 중간에 폭이 20cm로 호리병 입구처럼 좁은 구간이 있어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버거 교수는 곧바로 공개적으로 발굴단을 모집했다. 세계에서 지원이 잇따랐는데, 워낙 좁은 구간이었기에 그곳을 통과할 체형을 지닌 지원자로 발굴단을 꾸려야 했다. 발굴단원은 모두 여성이었고, 이들은 동굴에 들어가 15개체에서 나온 화석 1550점(유골 화석 1413점과 치아 화석 137점)을 수습했다.
버거 교수가 이번에 공개한 1차 연구 결과를 보면, 신체 특성은 호모 속의 특성을 보였다. 키가 150cm에 이르고 몸무게가 40~55kg에 달해 덩치가 꽤 큰 편이었다. 두뇌 크기는 200만~40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약간 큰 수준이었다(465~560cc). 턱은 파란트로푸스 속보다 부드러웠고, 어금니는 후대의 호모 속 인류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또 뒤 어금니일수록 크기가 증가했는데,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초기 호모 속의 특징이었다. 다리와 발은 호모 속의 특징이 분명해 두발 보행에 능했을 것으로 보였다.
손은 엄지와 손바닥, 손목 등에서 현생인류나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볼 수 있는 후대의 형질이 나타났지만, 손가락 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굽어 있었다. 굽은 손가락은 나무타기의 흔적으로, 원시적인 특징이다. 그밖에 척추는 호모 속의 특징을, 갈비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적인 특징을 보였다. 날레디는 이렇게 한 종 안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성질과 호모 속의 특성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지만, 연구팀은 연구 결과 호모 속에 보다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뉴욕타임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세계의 언론은 이번 발굴 소식을 새로운 초기 호모 속의 후보이자 인류 최초의 장례를 치른 조상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하나의 종이 15개체 이상이 동시에 발견된 것이 집단 매장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네이처’에 따르면, 이제까지 매장의 흔적으로 가장 앞섰던 것은 스페인 시마 드 로스 후에소스 유적으로 연대는 43만 년 전이었다. 하지만 날레디의 경우 아직 정확한 화석 연대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인류학자들은 새로운 화석이 나올 때마다 새 종으로 이름 붙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아직은 연구 초창기기 때문에, 날레디에 대한 평가도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한다. 이상희 교수는 “새로운 종인지 여부, 연대, 매장 여부 등을 신중히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기원을 흔드는 또다른 문제들
호모 날레디 때문에 빛이 바랬지만, 최근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기존의 ‘정설’을 위협하는 중요한 고인류학 연구 성과가 줄을 잇고 있다. 두 가지만 소개한다.
1. 세계로 확산한 최초의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가 아닐 수도?
현재의 정설에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세계로 확산한 첫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다. 현대인의 성인에 필적하는 크고 강인한 신체와, 버금가는 크기의 두뇌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환경에 적응했으리라는 추정 때문이다. 아시아 중부의 베이징인, 동남아시아의 자바인 등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 다채로운 호모 에렉투스 화석 역시 이런 추정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소수의견도 있다. 호모 에렉투스보다 먼저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한 작은 인류가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아시아 각지에서 발견된 ‘이상한’ 화석들이다. 2005년 중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나라 조지아의 드마니시 지역에서는 두뇌 크기가 600cc 정도로 작고(오스트랄로피테쿠스(450cc)와 에렉투스(900cc)의 중간이다), 체구도 왜소한 화석 인류가 발견됐다. 문제는 생존 연대인데, 약 18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모 에렉투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기로, 이 작고 원시적인 인류가 에렉투스와 최소한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이른 시기에 아프리카를 벗어났다는 뜻이 된다. 인류학자 중에는 이 작은 종이 먼저 아시아에 퍼진 뒤 거기에서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된 작은 인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역시 이 가설과 잘 맞는다. 플로레시엔시스는 두뇌가 작고 신체도 작은 인류다. 뼈 화석 역시 현대인보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보다 본원적인 특징이 많다는 게 고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그렇다면 이 종 역시 초기에 아프리카를 벗어났던 왜소한 종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어디까지나 가설이자 소수의견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마크 콜라르 교수팀은 20여 종의 고인류 머리뼈 화석을 연구한 결과를 ‘영국왕립학회보B’ 7월 22일자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병을 앓은 현생인류가 아니라 우리와 별개의 종이며, 드마니시의 화석은 초기 호모 속과 별개의 종이다. 또 초기 호모 속 후보로 꼽히던 리 버거 교수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는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된다. 이상희 교수는 “호모 하빌리스가 아시아로 확산해 거기에서 호모 에렉투스와 플로레시엔시스 조상으로 분리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아시아 기원설이 탄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2. 최초의 도구 사용,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오랫동안 최초의 호모 속 인류로 꼽히던 종은 호모 하빌리스다. 이에 반해 호모 하빌리스보다 먼저 도구를 사용한 원인이 존재했다는 주장도 계속 있었는데, 최근 그 연대가 340만 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기존보다 80만 년 앞당겨진 연대다. 미국 에모리대 인류학과 제시카 톰슨 연구원팀은 에티오피아 디키카에서 발견한 동물 화석 두 점의 상처를 연구했다. 화석에는 모두 12개의 상처가 나 있었다. 연구팀은 홈의 파인 모양을 조사했다. 현생인류가 사냥한 동물의 뼈 화석에 홈이 난 경우를 분석해 보면, 치아를 이용해 상처를 낸 경우 나타나는 U자형과 석기를 이용했을 때 긁혀 만들어지는 날카로운 V자형 둘로 나눌 수 있다. 톰슨 연구원팀은 340만 년 전 뼈 화석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이렇게 분석한 뼈 화석 속 홈은 V자형으로, 석기를 이용한 인위적인 도축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에 이미 사냥 및 고기 손질 도구로서의 석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연구 결과는 ‘인류진화저널’ 8월 13일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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