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어려워요
인공지능 애완동물이라는 개념은 이미 익숙합니다. 요즘에는 애완이라는 단어 대신 반려라는 단어를 쓰죠. 그런데 정말로 인공지능을 갖춘 반려동물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그 가능성을 제시하는 두 작품을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본문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작품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 A.I.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 나오는 데이비드는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최초의 로봇입니다. 로봇 회사 직원인 남편 헨리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데이비드를 테스트하기 위해 집으로 데려옵니다. 아내인 모니카는 데이비드에게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열고 데이비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데이비드는 모니카를 엄마로 인식하고 자신이 엄마를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도 똑같은 사랑을 보여주기를 갈구합니다.
병에 걸려서 한동안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왔는데, 로봇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스윈턴 부부의 진짜 아들인 마틴은 데이비드를 장난감 취급하며 괴롭힙니다. 데이비드는 마틴 때문에 억지로 음식을 먹다가 고장이 나기도 합니다. 데이비드를 속여서 엄마가 자는 사이에 몰래 들어가 엄마의 머리카락을 잘라오게 만들기도 하죠.
게다가 앞장서서 데이비드를 데려온 아빠 헨리는 점점 데이비드에게 거부감을 느낍니다. 특히 마틴이 돌아오고 난 뒤에는 데이비드 때문에 사고가 생길까봐 걱정스러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틴의 생일파티 때 일이 터집니다. 마틴의 친구들이 데이비드를 괴롭히자 데이비드가 겁을 먹고 실수로 마틴과 함께 수영장에 빠지고 맙니다. 마틴이 죽을 뻔한 사고가 생기자 결국 모니카도 데이비드와 함께 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모니카는 데이비드를 회사에 반품하러 가는 도중 차를 멈추고 숲 속에 데이비드를 두고 떠납니다. 데이비드가 파기당할까봐 차마 반품하지 못했던 겁니다. 모니카도 데이비드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거든요. 데이비드는 엄마의 사랑을 얻으려면 인간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인간 어린아이로 만들어줄 파란 요정을 찾아 험난한 길을 떠납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데이비드를 만든 회사의 본사입니다. 데이비드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로봇 제품을 보고 정체성의 혼란을 느낍니다. 무기력하게 바닷속으로 빠진 데이비드의 눈에 언뜻 파란 요정의 모습이 보입니다. 동료 로봇에게 구출된 데이비드는 비행기를 타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파란 요정을 찾아냅니다. 사실 그건 바다에 잠긴 놀이동산의 조각물입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게 파란 요정이라고 믿은 채 전원이 꺼질 때까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미국의 SF작가 테드 창의 중편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나온 단편집 ‘숨’에 실려 있습니다. 디지언트라는 이름의 디지털 동물은 데이터 어스라는 가상현실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백지 상태로 태어나 학습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먹고, 활동하고, 말을 하는 법을 배웁니다. 잠시 갈등하다 제안을 받아들인 애나는 동물을 훈련시키던 경험을 바탕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디지언트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디지언트가 들어갈 수 있는 로봇 제품도 나오면서 일부 디지언트는 현실 세계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디지언트들은 현실 세계를 견학하며 가상 세계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극을 신기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촉감 같은 감각은 가상 세계에는 없던 것이죠. 애나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는 디지언트들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블루감마의 사업이 기울면서 문을 닫습니다. 새로운 디지언트 판매가 감소한 것은 물론 사료 제공 소프트웨어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키우고 있던 디지언트를 정지시키는 고객도 많았습니다. 디지언트가 성장하면서 점점 키우기 어려워지자 번거롭게 여겼던 것이죠.
몇몇 직원들은 디지언트를 입양하기로 합니다. 애나도 잭스라는 디지언트를 한 마리 입양하지만, 입양할 거라고 믿었던 친구 하나는 디지언트를 ‘졸업’했다며 입양을 하지 않습니다.
디지언트 사용자들은 데이터 어스를 돌리는 사설 서버에서 디지언트를 계속 키웁니다. 그러나 그곳은 고립돼 있어서 디지언트에게 충분한 사회화 교육을 하기 어렵습니다.
디지언트들은 성장에 악영향을 받습니다. 애나를 비롯한 디지언트 사용자들은 디지언트를 리얼 스페이스에 이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지언트 사용자들은 가상의 섹스 인형을 제공하는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습니다. 기르는 디지언트들을 복제해서 훈련시킨 뒤 섹스 파트너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디지언트를 리얼 스페이스에 이식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제공하고요.
애나는 거부하지만, 몇몇 디지언트들은 흥미를 느끼며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결국 디지언트에게 설득당한 누군가가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애나가 리얼 스페이스로 돌아가게 될 잭스의 앞에 펼쳐질 미래를 상상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 우리는 인공지능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_생명체와의 차이에 대한 고민이 우선
이 두 이야기는 우리 인간이 돌봐줘야 하는 인공지능을 다룹니다. A.I.에는 어린이 형태를 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는 이미 현실에서도 사례가 많은 디지털 반려동물의 발전된 형태가 나옵니다. 참고로 A.I.에는 여기서 소개하지 않은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SF에 등장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반려동물은 이미 현실에도 등장한 바 있습니다. 점차 사용자를 알아보고 교류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죠. 예를 들어 2018년 출시된 ‘러봇(LOVOT)’은 포근하고 귀여운 외모를 갖추고 있으며, 터치 센서가 있어 사람이 만지는 것을 인식합니다. 주인과의 관계에 따라 성격이 변화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미래에는 독거노인이나 외로운 아이들이 인공지능 로봇에게 마음을 의지하며 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먹이를 줄 필요도 없고,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도 되며, 털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알레르기 문제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키우기에 편리하면서 정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이런 인공지능 반려로봇을 잘 돌볼 수 있을까요?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 연구하는 셰리 터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반려로봇이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착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고장이 나면 쉽게 버리는 장난감과는 다르다는 소리죠. 하지만 터클 교수는 한계가 역시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로봇은 실제 동물이나 인간과 같은 생애 주기를 따르지 않습니다. 고장이 나도 고치기 쉽고, 잘 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뜻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말썽을 부리거나 속을 썩이지도 않겠죠. 이런 존재를 사랑하는 것과 실제 동물이나 아이를 사랑하는 건 엄연히 다릅니다.
반려로봇을 상대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 번거롭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모니카는 데이비드를 사랑하면서도 진짜 아들이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자 데이비드를 버리기로 결정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디지언트들은 주인이 시키지 않은 일을 저지르거나 가상현실 속 주위 환경에 악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애나는 플랫폼 회사가 망한 뒤 사설 서버에서 디지언트를 키우면서 디지언트들이 환경의 나쁜 영향을 안 받아서 좋기도 하지만, 그들이 사회와 어울리게 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고민합니다. 이거 완전히 아이를 키울 때와 똑같지 않나요? 애나는 디지언트를 버리지 않지만, 누구나 이런 부담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개나 고양이와 달리 디지언트들은 버림을 받아도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소프트웨어니까 정지되면 그만인 거죠. 사용자만 죄책감을 극복하면 버리는 건 비교적 쉽습니다. 현실에서 개나 고양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듯이 가상현실에서 디지언트를 고문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런 일을 저지르기 더 쉽겠죠.
이런 존재와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기존의 반려동물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와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