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손바닥 인터뷰] 김형수 작가, 몽골의 슈바이처, 독립운동가 이태준을 좇는 소설가

영화 ‘암살’이 지난 15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잊혀졌던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 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 조승우가 분한 ‘약산 김원봉’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김원봉이 조직한 항일단체인 의열단엔 한 명의 의사(doctor)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태준. 이태준의 삶을 바탕으로 소설을 준비 중인 김형수 작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Q 이태준 선생을 어떻게 알게 됐나
A
‘조드’라는 장편소설을 집필할 때였다. 몽골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 직접 몽골에 가서 취재할 일이 많았는데, 하루는 한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울란바토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갔다. 그곳에서 이태준 기념공원을 본 것이 출발점이었다. 처음에는 동명의 소설가 이태준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의사 이태준을 기념하는 공원이었다.

Q 몽골에서 이태준 선생이 유명한가
A
엄청 유명하다. 한 예로 또다른 독립운동가인 여운형이 러시아에 가는 길에 몽골에 들른 적이 있는데 몽골 사람들이 모두 ‘미스터 리’를 외쳐서 놀랐다고 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Q 이태준 선생이 몽골에서 어떤 일을 했나
A
이태준이 세브란스의학교를 다닐 당시 안창호 선생을 치료했는데, 이때 영향을 받고 독립운동을 위해 1912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4년에는 몽골로 활동영역을 옮겼다. 당시 몽골에는 매독을 비롯한 성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태준은 이 성병을 퇴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태준이 몽골에 가기 몇 해 전인 1910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파울 에르리히가 매독 치료제로 살바르산을 발명했는데, 이태준이 이 약으로 많은 몽골인들을 살렸다. 몽골에서는 신의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Q 이태준 선생이 의열단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A
북경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의열단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뒤늦게 의열단에 가입한 그는 러시아 공산당으로부터 온 자금을 전달하고, 헝가리 출신의 폭탄제조 전문가인 마자르를 단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 선생은 마자르를 북경에 데려가다가 중국과 몽골의 국경지대에서 일제에
목숨을 잃었다.
 

201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송준섭 기자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문화콘텐츠학
  • 국어국문·한국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