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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파라날 천문대에서 촬영한 은하수와 황도광. 사진의 오른쪽에 솟아오른 것이 황도광이다.
서호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황도광을 볼 수 있다.
서호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황도광을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밤하늘을 만날 수 있는 곳, 문명의 불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 곳, 오직 별빛만 바라 볼 수 있는 곳. 만약 그런 곳에 홀로 서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절대 어둠의 공간에서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오로지 별빛에 둘러싸인다면 어떤 생각이 흐를까.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깊은 울림이 온몸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우주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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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고 별이 빛나기 시작하면, 천체망원경은 우주를 여행하는 눈동자가 된다.
필바라에서 떠나는 우주여행
지난 5월, 서호주 필바라를 향해 탐험을 떠났다. 우주의 풍경을 보여줄 장비인 15인치 천체망원경과 함께였다. 필바라의 5월은 우주를 여행하기에 참 좋은 때다. 아직 남반구에 겨울이 찾아오기 전으로, 깊은 밤에도 그리 춥지 않아 별을 관찰하기에 적당하다. 무엇보다 밤하늘을 길게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다. 은하수가 가장 짙은 곳, 다시 말해 우리은하의 중심이 자정 무렵 머리 위 하늘 높은 곳에 걸린다. 그래서 우리은하를 가장 깊숙이 또 가장 넓게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녁에는 우리은하의 북극(North Galactic Pole)을, 새벽에는 우리은하의 남극(South Galactic Pole)을 볼 수 있다. 은하의 북극과 남극은 별들이 모여 있는 원반의 수직 방향 하늘로, 은하수의 영향을 가장 덜 받기 때문에 먼 우주를 바라보기에 유리하다.
우리의 여행은 35억 년 전 지층 위에 천체망원경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시선이 길게 내달린 뒤에야 지평선에 걸려있는 태양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뚝 가라앉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이 내리고 여기 저기 별들이 깨어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은하수가 조금씩 하늘로 올라온다. 태양이 떨어진 지평선 가까운 곳에서 여리디 여린 빛의 기둥이 솟아난다. ‘황도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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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에 드문드문 암흑성운이 드러난다. 오른쪽 나무 사이에
걸린 솜뭉치 같은 것은 대마젤란은하와 소마젤란은하이다.
황도광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이에 은하수는 점점 화려해졌다. 은하수에 흩뿌려진 별을 따라 암흑성운의 검은 얼룩들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은하수와 함께 흐르는 암흑성운들은 대개 수백 광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 은하에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오리온 팔 안에 들어있다. 지구의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대부분 오리온 팔에 속하는 별이다. 은하수에 보이는 암흑성운 역시 주로 오리온 팔에 있기 때문에, 더 멀리 있는 나선팔에서 오는 별빛을 가로막아 얼룩처럼 만들고 있다.
은하가 그려내는 수십억 년의 춤
망원경을 움직여 우리은하 이웃의 풍경과 만났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대마젤란은하다. 은하의 중앙에 막대구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막대 나선은하였는데, 우리은하와 소마젤란은하의 중력 때문에 모양이 불규칙하게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봤다. 16만 광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성운, 성단이 아름답게 보였다.
대마젤란은하와 소마젤란은하는 맨눈으로 보면 희미한 구름덩어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두 은하는 가스로 이뤄진 마젤란 다리(Magellanic Bridge)로 연결돼 있다. 또 소마젤란은하 뒤쪽 방향으로 가스의 흐름(마젤란 흐름)이 길게 이어져 있다. 이 흐름의 기원은 2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은하는 서로 충돌할 뻔 했는데, 그 영향으로 가스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이후 두 은하가 우리은하에 다가오면서 중력 영향을 받아 가스의 길이가 더 길어졌을 것이다.
더 멀리 바라보면 우리은하가 참여하는 춤의 무대는 더 넓어진다. 이제 국부 은하군이 드러난다. 지름 천만 광년의 공간에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 그리고 더 작은 규모의 은하 50여 개가 함께 어울린다. 이번 탐사에서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우리은하 주변의 왜소타원은하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이런 작은 은하들은 상당히 오래 전에 만들어졌고, 또한 우리은하같이 큰 은하가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마도 우리은하 규모의 은하 주위에는 이런 왜소타원은하가 꽤 많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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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은하의 어울림. 대·소마젤란은하는 우리은하 주위를 돌면서 서로 간의 중력 영향으로 가스로 이뤄진
긴 꼬리 구조(일명 ‘마젤란 흐름’)를 만들어낸다.
긴 꼬리 구조(일명 ‘마젤란 흐름’)를 만들어낸다.
국부은하군의 왜소은하를 관찰하다 보면 문득 우리가 우리은하라는 커다란 ‘집’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 멀리 드넓은 우주 공간이 펼쳐져 있는데, 우리은하의 별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이다. 우주적인 답답함이랄까. 그 너머를 볼 방법이 없을까. 우리은하를 지워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면 된다. 그러면 더 거대한 우주의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외부은하가 꾸며내는 우주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하고 은하가 서로 모여 있는 은하단이 드러난다.
우주의 거대 구조를 응시하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처녀자리 초은하단이다. 우리은하가 속해 있는 처녀자리 초은하단의 모양은 길고 넓적하다. 긴 쪽의 길이가 1억 광년이고 짧은 쪽은 1000만~2000만 광년, 두께는 300만 광년 정도다. 이런 평평한 형태(Supergalactic Plane) 안에 전체 은하의 3분의 2가 모여있고, 나머지 3분의 1은 그 주위에 구 모양으로 퍼져있다. 실제로 밤하늘에서 바라보면 처녀자리, 머리털자리, 큰곰자리 방향을 따라 가며 은하들이 길쭉하게 분포한다. 이 사실을 알고 하늘을 바라보면 은하들이 모여 이루는 ‘진짜 은하수’를 그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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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하의 나선팔 구조. 태양은 우리은하의 오리온 나선팔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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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M87 타원은하. 지름 12만 광년의 거대타원은하다.
은하중심 블랙홀 둘레의 원반에서 5000광년 길이의 제트(파란색)를 뿜어내고 있다.
➌ 아벨 3526은 켄타우루스자리 초은하단의 중심이며 1억40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➍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질량 중심인 아벨 3627. 우리 은하면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처녀자리 초은하단의 중심부에 망원경을 맞췄다.
거대타원은하 M87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왼쪽 사진➋). 지름은 우리은하와 비슷하지만 구 모양을 하고 있어 질량이 훨씬 크다.
M87의 중심에는 태양 질량 30억 배에 이르는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이 엄청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던 물질 중 일부는 블랙홀 주변 자기장의 영향으로 제트를 통해 빠져나온다. 5000광년에 이르는 제트의 길이는 이 은하중심 블랙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M87을 관찰하면서 과거 수십억 년 동안 이 거대타원은하를 만들어내기 위해 충돌하고 합쳐졌을 수많은 은하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망원경을 돌려가면서 처녀자리 초은하단과 함께 그 이웃 은하단들을 차례차례 관찰했다. 바다뱀자리 초은하단의 중심은 약 1억600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아벨(Abell) 1060이다(사진➊). 켄타우루스자리 초은하단은 1억400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아벨 3526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진다(사진➌). 몇 억 광년 떨어진 우주 공간을 멀찍이 바라본다면 처녀자리 초은하단과 바다뱀자리 초은하단이 켄타우루스자리 초은하단에 부속물처럼 붙어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남반구 별자리이름이 붙은 공작-인도인자리 초은하단의 중심에는 아벨 3742가 있으며 거리는 2억1000만 광년이다.
최근에는 관측자료가 정교해지면서 은하단을 이루는 은하들의 상대적인 운동속도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초은하단의 움직임도 새롭게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위 초은하단들이 모두 ‘거대한 끌개(Great Attractor)’라는 이름이 붙은 아벨 3627(왼쪽 사진➍)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함께 움직이는 초은하단 무리를 라니아케아 초은하단(Laniakea Supercluster)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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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자리 초은하단을 3차원 공간에 묘사한 사진. 우주의 구조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천체망원경을 움직였다. 목표는 2억 2000만 광년 거리의 아벨 3627이다. 과연 보일까? 숨을 죽이고 찬찬히 망원경을 응시했다. 그 순간 2억2000만 년을 여행해온 빛이 눈동자에 와 닿았다. 여리고 희미한 빛을 내는 은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곳이 여러 개의 초은하단을 아우르고 있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중심 지역이다. 우리은하가 속해 있는 처녀자리 초은하단도 이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침내 우리를 에워싸는 수억 광년 우주의 구조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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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우주여행을 마치고 다시 행성 지구에 돌아왔다.
저 구름 너머의 하늘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우주의 풍경은 마음 깊은 곳에 생생하게 남았다.
지구에 누워 우주의 역사를 읽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밤사이 여행했던 은하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봤다. 초은하단이 서로 연결돼 만들어지는 우주의 장엄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빅뱅 이후 최초의 별이 생기고, 별이 모여 은하가 생겨나고, 우주가 팽창하는 중에도 은하들은 서로 연결돼 우주의 거대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경이로운 별과 은하의 무대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우주의 시공에 스며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일 것이다.
서호주 필바라에서 시작한 우주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만난 것은 138억 년 우주의 역사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어우러져 있는 우리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