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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해가 갈수록 한반도가 달궈지고 있다. 대지는 점점 뜨거워지고, 사망자는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취약계층은 더 늘고 있다. 허나 2015년 현재 폭염은 법적으로 재난이 아니다. 폭염의 끔찍함을,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른다. 


폭염은 소리 없는 살인자다. 홍수처럼 거창하게 사람들을 집어삼키지 않지만, 어느샌가 조용하게 다가와 목숨을 빼앗아간다. 최근 10년간(2003~2012년) 우리나라에서 열사병으로 죽은 사람만 293명이다. 같은 기간 홍수나 태풍, 폭설로 죽은 사람이 전부 280명이라는 걸 생각하면얼마나 심각한 기상재해인지 알 수 있다.

마른장마보다 무서운 남서풍

폭염의 시작은 흔히 ‘마른장마’라 불리는 장마철 가뭄이다. 최근 들어 장마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멀리서 온 고기압이 한반도 위에 자리 잡아야 할 장마전선을 자꾸 바깥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나 대륙성 고기압, 또는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굴러온 돌’이다. 올해는 북쪽에서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내려오면서 장마전선을 제주도 남쪽까지 밀어붙였다.

한창 비가 내려야 할 6~7월 장마철에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이 건조해진다. 비만 안 오는 게 아니라 구름도 적어 태양복사가 지표면에 그대로 도달한다. 장마 때 비가 많이 와 땅이 물을 가득 머금어야 한여름에 덜 덥다.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면서 열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에 물이 없으니 태양복사가 지표면을 뜨겁게 달궈 온도가 올라간다.

그런데 마른장마가 폭염의 모든 원인이라기엔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가 201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08년에서 2008년까지 100년 동안 서울의 7월 일평균기온은 0.6℃ 증가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7월 일최저기온은 100년 동안 1.4℃가 올라 증가세가 두 배 이상 가팔랐다. 한창 태양복사를 받아 지표면이 달궈지는 낮보다 밤 온도가 오히려 빠르게 올라간 이유가 뭘까.

하 교수는 기후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온실효과로 대륙이 달궈지면서 낮 시간 동안 중국 상공에 저기압이 형성된다. 이로 인해 일본열도 부근의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쪽으로 확장된다. 한반도 상공에 자리 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은 그 자체로도 고온다습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고온다습한 남서풍을 불러들인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고, 중국대륙의 저기압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그 가운데로 동남아시아의 공기가 한반도까지 끌려온다. 이 후덥지근한 공기가 일으키는 영향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열대야’다.

한반도 폭염의 핵심은 바로 이 열대야다. 일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날을 의미하는 열대야는 단순히 밤잠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한반도에서 폭염지속일수를 늘려 사망자를 증가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040년대, 열사병 사망자 7.2배 증가한다

한여름 땡볕에서 축구를 한다고 해보자. 전반전 30분을 뛴 다음, 그늘에서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10분간 쉬면 기운을 차려 다시 후반전 30분을 뛸 수 있다. 그런데 전•후반 연달아 1시간을 땡볕에서 뛴다고 생각해보라. 경기가 끝나고 똑같이 10분을 쉰다고 해도 훨씬 지칠 것이다. 뛰다가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폭염발생일수’보다 ‘폭염지속일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염이 한 번에 얼마나 길게 이어지느냐가 사망자 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열에 지친 몸을 회복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 교수가 1964년부터 2008년까지 조사한 서울지역의 열대야 증가추세는 무섭다. 100년 동안 13일이 늘어나는 속도기 때문이다. 밤에도 지표가 식지 않는 날이 계속되면서 폭염지속일수도 덩달아 증가한다.

유엔 산하 국제기후변화협의체인 IPCC가 2013년 발표한 5차 평가보고서는 암울하다. 기후변화가 완만하게 일어나는 시나리오(RCP4.5)를 따르더라도, 2040년대면 한반도는 현재보다 폭염지속일수가 1.8배 증가한다.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나리오(RCP8.5)대로라면 무려 2.8배가 늘어난다. 불과 20여 년 뒤면 불볕더위가 2배 이상 길어진다는 말이다.

죽는 사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작년 12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40년대에 열사병 사망자 수가 지금보다 5~7.2배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담겨있다. 2050년 무렵엔 한 해에 244~261명이 죽는 대규모 폭염이 몰아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폭염일수가 증가할 때 폭염사망자 수는 지수함수에 가깝게 급격히 증가한다.

일본 환경성에서 1968년~2009년 사이에 오사카 지역의 폭염사망자 수를 조사했는데, 기온이 30℃를 넘는 날이 40일일 때 50명이었던 사망자가 80일일 때는 200명으로 늘었다. 폭염일수가 2배 올라갔는데 사망자는 4배로 증가한 것이다.



폭염도 관리가 필요하다

간단히만 훑어봐도 폭염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로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도 자명하다. 하지만 폭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재난’이 아니다. 태풍이나 홍수, 가뭄 등 법적재난은 발생 시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반면 폭염은 재난이 아니므로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2012년 여야 국회의원들이 네 차례에 걸쳐 폭염을 법적재난에 포함시키려고 발의를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각각 연령, 개인의 건강상태나 주변 환경 등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고, 외출 자제 등 개인의 주의 여하에 따라 피해 예방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법안통과를 거부한 이유였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연령이나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개인이 조심하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폭염으로 죽는 대표적인 계층은 ‘독거노인’이다. 도시의 쪽방에서 냉방기도 없이 여름을 지내야 하는 노인층과, 생계를 위해 뙤약볕에 논밭을 매는 노인층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령층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도 폭염사망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가 56%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20대 사망자가 6%인 데 반해 70대 사망자는 20%에 이른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연평균 182명이 여름 동안 온열질환으로 사망한다.

폭염은 다른 어떤 자연재해보다 사회취약계층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정부도 매년 폭염대책을 마련하고는 있다. 35℃ 이상 고온이 2일 이상 지속돼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지자체에서 독거노인을 위해 냉방기가 갖춰진 쉼터를 운영한다. 또 생활관리사들을 파견해 안전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극한상황에 대한 위기관리매뉴얼이 없다. 프랑스에서는 국가 폭염대응단계를 4단계로 구분한다. 3단계까지는 각 지역에서 상황을 관리하지만 전국적으로 폭염이 극심해지면 총리가 4단계를 발령하고 직접 재난관리에 나선다. 우리나라에는 40℃ 이상 고온이 10일 이상 지속되는 등 극한 폭염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딱히 대처매뉴얼이 없다. 1994년처럼 극한 폭염이 닥치면 속수무책이다.

1994년 당시 90명 이상이 열사병으로 죽었는데, 이것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김지영 기상청 기상레이더센터 연구관은 1994년 당시 초과사망자가 3384명에 달했을 것이라는 논문을 2009년 발표했다. 초과사망자는 폭염의 영향을 받아 간접적으로 죽은 사람 수다. 평소 심혈관계 질환 등 지병(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들이 죽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작년 7월 발간한 보고서에 서 극심한 폭염으로 아열대성 질병유행 등 추가재난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재난은 재난이 닥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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