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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옛 지구의 속살을 보다

지구와 생명이 만든 땅, 서호주 ➊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인 서호주 피너클스 사막의 전경. 우뚝 솟아 있는 석회암 기둥들이 보인다.

30억 년 전, 지구가 아주 어렸을 때 이 땅의 모습은 어땠을까.
과거의 지구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육지는 훨씬 적었고 대부분은 바다로 덮여 있었다. 눈에 보일 만한 생명체는 전혀 없었고, 약간의 미생물만이 물속에 존재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과 가장 다른 점은 대기에 산소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지구 태초의 풍경을 만날 방법이 있을까.



 편집자 주  태초의 지구 풍광을 간직한 지구상 몇 안 되는 곳, 서호주. 지난 5월 그곳을 탐사한 과학작가 김지현 과학동아 별학교장과 김병수 박사가 사진과 글을 보내왔다. 서호주의 지형과 하늘을 2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지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태초의 모습은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 침식과 판의 운동에 의해 지표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몇 군데는 아직 그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서호주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오래 전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세계에 몇 안 남은 초기 지구의 대륙지괴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후가 건조해 아직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 모습을 만나고자 지난 5월, 서호주로 향했다.

우리는 서호주의 거점도시 퍼스에서 북쪽으로 2시간을 달렸다. 그곳에는 수천 개의 암석기둥이 사막에 솟아 있는 피너클스 사막이 있다. 피너클은 이곳에 있는 암석기둥이다. 석회암 성분으로 돼 있는데 큰 것은 높이가 3m에 이른다. 이 석회암 기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유력한 이론은 이렇다. 먼저 수만 년에 걸쳐서 해안선의 조개 껍질이 잘게 갈려 석회가루로 변한다. 이 가루는 바닷바람에 날려서 내륙에 차곡차곡 쌓이는데, 그 결과 두꺼운 퇴적층이 생긴다. 이 과정은 암석기둥에 남아 있는 퇴적층의 층리에 잘 드러나 있다.
 

피너클 암석 기둥을 잘라 보면 나뭇결 무늬가 보이기도 한다.
 
이후 이 퇴적층에 관목이 자라면서 뿌리를 내린다. 뿌리 주변의 토양에는 유기물질에 의해 주변보다 약간 단단한 부위가 생기는데 이런 상태에서 침식이 일어나면 단단한 부분이 골무나 모자처럼 작용해서 그 아래의 석회암을 보호한다. 이 부위는 침식에 좀더 오래 견뎌 남게 되고, 단단한 모자가 없는 주변은 먼저 침식된다. 실제로 잘린 피너클을 보면 나뭇결 무늬가 보이기도 해 이 이론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피너클은 만들어진 지 수만 년밖에 안 된다. 보통 지질학 현상은 수천만 년에 걸쳐서 일어나지만, 이곳처럼 짧은 시간 동안 극적으로 변하는 곳도 있다. 지금처럼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 피너클은 얼마 안 가서 빗물에 녹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땅속에 묻혀 있던 다른 피너클이 드러나면서 후손에게 더 멋진 광경을 보여줄 것이다.


육지에 생명이 출현하다

피너클스 사막에서 북쪽으로 4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칼바리 국립공원이 나온다. 이곳에는 4억여 년 전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강 하구에서 퇴적된 사암층이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지역은 2000만 년 전부터 융기하고 있기 때문에, 큰 강이 사암층을 급격히 깎아 내리고 있다. 이렇게 깎인 가파른 계곡을 협곡(gorge)이라고 부르는데, 공원 안의 여러 곳에서 멋진 협곡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칼바리 국립공원의 협곡. 협곡의 경사면에는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썰물에 드러난 샤크베이 해멀린 풀의 스트로마톨라이트 군락.
이곳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이다.



강물이 만들어 낸 협곡의 경사면과 바닥에는 4억 2000만 년 전의 사건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바로 거대 동물이 육지에 최초로 올라온 사건이다. 4억~5억 년 전 바닷속에 살았던 일명 바다 전갈, ‘에우립테리드(Eurypterid)’가 그 주인공이다. 큰 놈은 2m가 넘게 자랐는데, 바닷속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있었다. 그런데 이 중 일부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여기에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이들은 비록 우리의 직계 조상은 아니지만, 동물과 식물이 육지에 자리를 잡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직계 조상도 등장할 수 있었다.

식물과 동물이 이 때 육지로 올라온 데에는 오존층의 역할이 컸다.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층은 자외선이 지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아준다. 오존층이 없을 때에는 자외선이 지표면까지 도달했는데, 이 때문에 생명체가 살기 불가능했다. 바닷속만 예외였다. 바다 속으로는 자외선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생명이 번성할 수 있었다.

오존층은 대기의 산소로부터 만들어진다. 따라서 원시 지구에는 전혀 없던 산소가, 점차 무엇인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원시지구에서 산소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기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35억 년 전 편평하게 쌓인 현무암이 오랜 기간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력에 의해 수직으로 서있다. 잘려진 내부를 보면 녹색의 변성암이 보인다.

30억 년 전 지구의 풍광을 느끼다

칼바리에서 다시 북쪽으로 세 시간을 달리면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샤크베이의 해멀린 풀에 다다른다. 이곳은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군락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시아노박테리아(청세균)라는 미생물이 만드는 암석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주위에 분비물을 내어서 생물막(biofilm)을 만드는데, 이 때 물에 있는 칼슘 등의 광물질이 퇴적되면서 생물막이 딱딱한 구조물로 변한다. 새로 번식하는 박테리아가 기존의 생물막 바깥에 붙으면서 이 구조물이 점점 두꺼워지고 암석화된다. 이것이 스트로마톨라이트다.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만든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에 최초로 산소를 만들어 준 주인공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원시지구에 많던 이산화탄소와 물, 그리고 햇빛을 이용해서 생명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놀라운 방법을 진화시켰다. 이 과정이 바로 광합성이다. 그리고 광합성의 부산물이 바로 산소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소는 일단 바다에 축적됐고 25억 년 전쯤 바다가 포화되자 대기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대기의 산소농도는 서서히 올랐다. 바로 이 현상 덕분에 지구가 다른 행성과는 다르게 특별해진 것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금도 생물막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먼 후손인 연체동물이 이 생물막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다만 염도가 높은 특수한 조건에서는 연체동물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만들어진다. 샤크베이 말고도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는 곳은 있지만, 샤크베이만큼 대규모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지나자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했다. 당시에는 육지였던 샤크베이에도 바닷물이 차 올라왔고, 이 지역은 만이 됐다. 만의 입구는 안쪽보다 깊이가 얕았는데, 그 때문에 입구가 빽빽한 해초 숲으로 막히게 됐다. 한번 들어온 바닷물이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 지역의 낮은 강수량과 높은 일조량, 강한 바람은 점점 바닷물을 증발시켰고, 결국 염분 농도가 보통 바닷물보다 두 배나 높아지게 됐다. 이런 특수한 환경 덕분에 1000년 전부터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바닷가에서 자라나고 있다. 이 말은, 샤크베이에서 볼 수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아주 오래 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나무숲과 주위 사람들을 지워 버리면, 30억 년 전 원시 지구의 풍광을 거의 흡사하게 느낄 수 있다.

34억 년 된 돔 모양의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태고의 돌을 만나다
샤크베이에서 1000여km를 달리면 서호주 북부에 위치한 필바라 지역에 도착한다. 필바라 지역은 30억 년 전의 시생대 지층이 드러나 있는 곳이다. 필바라에서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마블바가 손꼽힌다. 이곳은 35억 년 전 바닷속에서 화산재가 켜켜이 쌓이고 굳어서 암석이 된 뒤, 측면의 압력에 의해 뒤집힌 지층이다. 꼭 대리석 막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블바라고 부르는데 마치 소고기 마블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지층이 100km 이상 길게 이어져 있다.
 
마블바의 전경. 35억 년 전 퇴적된 암석이 뒤집힌 지층이다.
 
필바라의 암석 중에는 35억 년 전 편평하게 쌓인 현무암이 오랜 기간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력에 의해 수직으로 선 것이 있다. 고온 고압의 환경 때문에 광물질이 재배열돼 변성암이 됐는데, 특히 시생대의 변성암 중에는 녹색을 띠는 것이 있다. 이런 변성암대를 그린스톤 벨트라고 부른다. 이런 암석은 비록 속은 녹색이지만 겉은 붉은 빛을 띠는데, 지표에 드러난 뒤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철 성분이 산화됐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 밖에도 26억 년 전의 소행성 충돌에 의해 깨진 암석 조각이 쓰나미에 의해 밀려와 퇴적된 각력암, 33억 년 전 관입한 화강암이 전단력에 의해 변성된 편마암 등이 발견된다. 모두 아주 오래된 대륙지괴에서 볼 수 있는 암석들이다.

필바라 지역의 시생대 지질 현상 중 우리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역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었다. 원래 탄산염이 물속에서 석회암으로 퇴적될 때는 완전히 편평하게 쌓인다. 하지만 살아있는 시아노박테리아는 좀더 햇빛을 잘 받기 위해 둥그런 돔 모양을 이룬다. 따라서 스트로마톨라이트 역시 둥그렇거나 물결무늬를 띤다.

이런 물결무늬의 화석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는데, 생명체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격렬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서호주 해멀린 풀에서 살아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발견되면서 논란은 끝났다.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만들어낸 산소는 반응력이 매우 강해서, 당시 생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오히려 이런 위기를 딛고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바로 세포 호흡이다.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는 산소를 이용한 세포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있다. 시대에 따라 변한 대기의 산소 농도는 생물 진화를 좌지우지한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생명이 지구의 환경을 바꿨고, 그 환경은 다시 생명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다. 생명과 지구의 공진화는 산소를 매개로 이뤄졌다.

그렇다면 시아노박테리아가 처음 만들어낸 산소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에서 이때 만들어진 산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최초의 산소는 아직 땅 속에 잠자고 있다

우리는 카리지니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25억 년 전에 쌓인 호상철광층(Banded Iron Formation, BIF)을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다. 호상철광층은 생물이 만든 산소와 바닷속 철이 만나 이룬 퇴적층이다. 당시는 지금보다 바다가 훨씬 넓었고 해저 화산 활동도 활발했는데, 이런 화산 활동에 의해 지구 내부의 철이 바닷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철은 산소가 없을 때는 물에 녹지만, 산소가 있으면 산소와 결합해서 산화철 형태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시루떡처럼 쌓이게 된다. 간혹 화산 활동이 잠잠할 때는 바닷속에 많던 규산염이 대신 퇴적됐는데, 이 때문에 검붉은 산화철층과 밝은 규산염층이 번갈아 나타나는 호상철광층이 만들어졌다.

카리지니 협곡의 호상철광층. 검붉게 보이는 띠가 산화철인데, 25억년 전 바닷속에 산소가 많았다는 강력한 증거다.
 
카리지니의 호상철광층은 바닷속에서 3억 년 동안 쌓인 뒤 오래 동안 땅 밑에 있다가, 최근인 2000만 년 전부터 융기하고 있다. 높아지는 땅은 물에 깎여나가기 마련인데, 철광층은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위층부터 깎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좁은 균열이 물에 의해 조금씩 벌어지는 식으로 깎여 나가게 된다. 그 결과 좁고 깊은 협곡이 생긴다. 이 곳의 협곡은 칼바리 국립공원의 협곡과는 비교도 안되게 가파르다. 칼바리의 사암층보다 카리지니의 철광층이 훨씬 단단하기 때문이다.

서호주의 철광석은 순도가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호주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 독자들이 앉아 있는 건물의 철골이나 오늘 탔던 차량의 강판들은 모두 카리지니 인근 지역의 철광석을 수입해서 만든 것이다. 철은 현대사회의 번영을 가능케 한 근간 물질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삶과 무관할 것 같던 고대 지구의 지질 현상이 우리의 일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5000km를 넘게 달린 우리의 여정은 여기서 끝났다. 다음에는 이 여정에서 만난 하늘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김병수_kimbssss@hotmail.com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피부과 전문의이며 의학박사다. 진료시간 이외에는 행성 지구와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김지현_voyages@hanmail.net
과학동아 별학교장. 우주과학작가로 활동하며 ‘별헤는 밤 천문우주실험실’ ‘별 가족 태양계 탐험을 떠나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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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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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김병수(kimbssss@hotmail.com), 김지현(voyages@hanmail.net)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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