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문학,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그리스 정신을 부흥시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르네상스기. 이 시기에 기술자들은 독특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대담하고 환상적인 계획을 추진했다. 현실적으로 실용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엉뚱하고 복잡스런 기계를 설계했다. 마치 ‘누가 더 기괴하게 만드나’ 시합이 벌어진 느낌이다. 포의 몸통이 하늘로 구부러진 대포, 지나치게 거대하고 복잡한 투석기와 물펌프 따위가 수없이 설계됐다.
이 기괴한 설계도를 삽화로 담은 저작들은 1400-1600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급속히 출판됐다. 물론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그런 기계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몽상가들은 실제로 기계를 제작할 마음이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상상력이 풍부한 기술자들의 ‘지적 유희’가 그림으로 실현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설계도는 세부 사항의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 외형 위주로 그려졌다.
한 예로 1588년 프랑스 군대 기술자인 라멜리가 출판한 ‘다양하고 독창적인 기계’는 몇년 안에 재판을 거듭하며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라멜리의 작품들은 매우 다양했고 천재적인 자질로 가득찼다. 1백여개의 물펌프, 20개의 제분기, 문을 부수고 쇠창살을 넘어뜨리는데 사용하는 14개의 군사용 기중기 등이 제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그래서 당시 기술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교과서나 입문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책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한 평론가는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에 대해 자신을 비롯한 기술자들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답할 수 없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며 책의 난해함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