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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투수, 팬들은 불안하다


 
권혁의 혹사 여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 해 세이버매트릭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빌 제 임스가 고안한 마무리 피로도(CF, Closer Fatigue)를 살펴보자. 마무리 피로도의 공식은 아래와 같다.

마무리 피로도가 특이한 점은 투구수가 아닌 타자수를 기준으로 피로도를 평가한 다는 것이다. 마무리 투수는 선발투수처럼 투구수를 기준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이닝을 통째로 책 임지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타자수를 피로도의 기준 으로 삼는다. 불펜 투수의 역할 역시 마무리와 큰 차 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 5월 13일까지 KBO 리그 불펜 투수 중 가장 피로도가 높은 선수는 누구일까.
논란의 중심에 선 권혁이 압도적인 수치로 1위를 기 록했다. 권혁은 가장 많은 경기(22경기)에 나왔고 누 적 피로도는 804가 넘었다. 누적 피로도는 경기에 등 판할 때마다 생기는 피로도를 모두 더한 것이다. 불펜 투수 중 지난 몇 해간 '노예'라고 불릴 만큼 많은 공을 던진 불펜 투수의 경우 시즌을 마칠 때 피로도가 보통 1000 정도였다. 아직 시즌이 3분의 1도 지나지 않은 점 을 고려하면 권혁이 많이 던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반면 권혁 못지않게 많은 이닝을 던진 KT 장시환의 피 로도는 356이었다. 권혁과 대조되는 결과다. 장시환은 많은 공을 던진 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반면 권혁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혁의 팀 동료들도 피곤한 상태다. 누적 피로도 2,3 위도 한화 선수가 차지했다. 송창식이 646으로 2위, 박 정진은 610으로 3위였다. 특히 송창식은 누적 피로도를 경기수로 나눈 경기당 피로도가 권혁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혹사가 선수 수명을 줄인다?

이런 무리한 기용이 선수의 생명을 줄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혹사에도 '고무팔'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꾸준한 성적을 거두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조금만 무리를 해도 성적이 고꾸라지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LG의 이동현이다. 이동현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매해 누적 피로도 1000을 넘기는, 리그에서 가장 피곤한 불펜 투수였다. 같은 기간동안 이동현의 평균자책점은 3.02, 3.00, 2.73으로 항상 준수했으며,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WAR)도 1.4, 1.0, 0.9로 꾸준했다. SK 이명우, 기아(현 SK) 진해수도 높은 누적 피로도에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들은 경기당 피로도가 낮았다. 많은 이닝을 던지긴 했지만 장시환처럼 충분한 휴식을 취한 것이다. 누적 피로도와 경기당 피로도에서 동시에 상위권을 차지하고도 꾸준한 성적을 올린 경우는 이동현이 유일했다.

혹사로 성적이 급락한 대표적인 예는 LG의 유원상이다. 유원상은 한화에서 트레이드 된 직후인 2012년 74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2.19, 피로도 1343을 기록했다. 뛰어난 활약으로 아시안 게임에 뽑혀 군 면제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원상의 2012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2013년에는 부상으로 이닝은 절반으로줄어들고 방어율은 2배 뛰었다. 늦은 나이에 꽃을 피운 한화의 송창식은 2013년 방어율 3.42, WAR 1.2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피로도가 1000이 넘는 무리한 등판의 여파로 2014년에는 방어율 7.45, WAR -0.8을 기록하며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송창식은 지난해를 그렇게 푹 쉬고 올해 다시 재기의 날개를 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미국 워털루대 라이언 크로틴 교수는 어린 투수가 갑자기 많이 던지는 것이 꼭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운동의학과 신체건강' 4월 11일자에 발표했다. 이들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25세 이하의 젊은 투수 700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직전 해보다 이닝과 투구수가 20% 증가했을 때 부상이 늘어나는 경향은 없었다. 다만 이 조사를 무턱대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는 없다. 불펜 투수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며, 메이저리그는 우리나라와 일본보다 애초부터 꼼꼼하게 선수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혹사와 부상과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뿐이다. 무리해서 등판을 하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몸이 재산인 선수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선수를 오래 보고 싶은 팬들이 바라는 일이다. 최근 권혁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행복하다"며 혹사 논란을 일축했다. 그의 말처럼 그가 부상 없이 오랫동안 행복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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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송준섭 기자
  • 전민찬 작가
  • 글 및 사진

    bizball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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