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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꼬인 태양이 버럭 하다

비틀린 자기장의 대폭발, 태양분출현상

Hot Issue - 비틀린 자기장의 대폭발, 태양분출현상 심성 꼬인 태양이 버럭 하다

심성 꼬인 태양이 버럭 하다

지난해 말, 태양이 과학잡지 ‘사이언스’와 ‘네이처’ 표지를 나란히 장식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이기 때문에, 우리는 태양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해다. 태양은 여전히 미스터리가 많은 별이다. 표면과 외곽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중심으로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태양의 진면목을 알아봤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물체는 때때로 주변의 다른 대상을 강렬한 빛으로 가려 보이지 않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자신이 내는 빛의 장막에 스스로가 숨어버리곤 한다. 태양이 그렇다.

“태양에 대해, 우리는 의외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연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할까요.”

최광선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가 말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자 매일 맨눈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천체. 그곳에서 나온 빛 알갱이(광자)로 전신 샤워를 하고, 사용하는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의존하고 있는 근원 중의 근원. 그런 태양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니 의아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라고 하는 구조에 대해 잘 알게 된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코로나는 태양의 외곽을 통틀어 일컫는 구조로, 태양이 분출한 물질 입자가 차지하고 있는 전체 범위를 일컫는다(뒤에 확인할 수 있겠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즉, 태양 표면부터 태양풍이 퍼져나가는 공간 전체가 코로나다. 코로나는 평소에는 햇빛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식이 일어나 태양 원반 (지상에서 둥글게 보이는 태양 표면)이 달에 완전히 가려진 뒤에 보면 다르다. 태양 주위로 빛이 산란한 희뿌연 구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태양 외곽에 뭔가 물 질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엑스선 등으로 보면 이 구 조를 좀더 확실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그 부분은 코로나의 극히 일부일 뿐이에요.”

태양에서 나온 물질(전자나 양성자 등의 입자)은 계속 퍼져 나가면서 마치 바람처럼 우주에 압력을 가한다. 이게 태양풍이다. 태양풍은 지구 근처를 초속 400~800km로 지날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어느 한계에 가면 성간공간을 채우고 있는 성간풍과 만나, 마치 역풍을 맞은 것처럼 속도가 줄어드는 순간이 온다. 그 러면 초음속이었던 물질의 속도가 아음속으로 전환되며 충격파가 생긴다. 이 충격파 바깥에 성간물질과 태양풍이 만나는 태양권계면, 그리고 성간물질이 태양풍과 만나 아음속으로 변하며 충격파를 형성하는 뱃머리충격파 지역을 거친다. 이 경계 안쪽이 태양계의 범위이자 코로나의 범위다. 태양계 전체가 코로나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뒤틀린 태양의 버럭, 태양분출현상

그런데 혼란스러운 용어가 하나 있다. ‘코로나질량 방출(CME, 이하 ‘태양분출현상’으로 통일)’이라는 현상이다. 코로나와 어떻게 다를까. “코로나는 광구처럼 태양의 구조 이름이에요. 하지만 태양분출현상은 아니죠. 일종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최 교수가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태양을 가리고 태 양에서 일어나는 물질을 추적한 영상이었다. 태양에서 물질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분출하는 광경이 보였다. 규모와 기세가 엄청났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는 작은 튜브에 든 케첩 한 귀퉁이를 찢은 뒤 있는 힘껏 쭉 눌러 짜면 이런 광경이 펼쳐질까. 혹은 물이 나오는 호스의 입구를 움켜쥐었을 때 물이 사방으로 뿜어나 오는 모습? 그만큼 태양의 크기에 비해 맹렬한 규모로 물질이 흩날렸다(오른쪽 동영상 참고).

“이 현상이 없더라도 태양 주변으로 늘 물질이 분출되고 있어요. 그게 코로나예요. 그런데 때때로, 방금 보신 것처럼 물질이 대량으로, 격렬히 분출할 때가 있 습니다. 그게 태양분출현상이에요.”

어떻게 이런 대폭발이 일어날까. 흔히 태양은 빛과 열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태양은 코어(중심)에서 수소 핵융합 반응을 이용해 고에너지 광자를 만든다. 이 광자는 밀도가 높은 태양 내부 에서 물질에 부딪히며 이리저리 헤매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잃는다. 에너지를 잃은 광자는 태양의 표면 (광구)에 이르러 비로소 직선 운동을 하게 된다. 그게 우리가 관찰하는 표면 온도 6000℃의 태양빛이다. 하지만 태양은 빛만 방출하는 게 아니다. 코로나를 이루는 물질도 방출한다. 이것은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물리 현상 때문인데 바로 태양이 가진 자기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바뀌는 현상이다.

태양의 광구 아래에는 물질이 대류하는 구조인 대류층이 있다. 태양 반지름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구조다. 아무도 태양 속에 들어가 직접 단면을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론에 불과하지만, 태양물리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니 믿고 넘어가자. 대류는 열에 의해 일어나는데, 태양 코어에서 핵융합 현상으로 만들어진 열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 결과가 대류다. 대류의 운동에너지는 다시 태양에 존재하는 자기력 선을 헤집어 복잡하게 꼰다. 문제는 꼬인 자기력선, 즉 자기장이 몹시 불안정하다는 사실이다.






실타래처럼 다발로 묶인 태양 자기장

비유를 해보자. 사람 중에 조금만 자극해도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또는 매사에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심성이 뒤틀렸다’는 의미에서 ‘배배 꼬였다’는 표현을 쓴다(‘다음 고려대 한국어대 사전’에도 나오는 관용적 표현이다). 관용어 중에는 물리적으로 의의가 있는 말이 많은데, 이 배배 꼬였다는 표현도 그렇다. 고무줄 뭉치나 실타래, 밧줄, 전화선 등 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보자. 꼬이기 시작할 것 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어떻게 될까. 고무줄 뭉치는 더이상 꼬이지 못하는 한계 상태에 도달할 것이고, 그 대로 손을 놓는다면 바로 격렬히 몸부림치며 풀어져 버릴 것이다. 만약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힘을 가한다면, 제 아무리 강한 고무줄이라도 결국 끊어질 것 이다. 배배 꼬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격렬히, 그리고 급격하게 화를 푸는 단계가 꼭 있다.

태양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태양 표면에서, 자기 장은 마치 실타래나 고무줄 뭉치처럼 다발로 존재한 다. 이를 ‘플럭스 튜브’라고 부른다. 그런데 회전하는 대류층의 영향을 받은 태양의 자기장은 이렇게 얌전한 다발이 아니라 잔뜩 비틀린 고무줄 뭉치 또는 실타래와 비슷해진다. 이렇게 비틀린 상태를 ‘플럭스 로프 (밧줄)’라고 하는데, 대류권의 운동에너지가 자기 에너지로 바뀌어 축적돼 있기 때문에 몹시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상태는 에너지를 방출하며 낮고 안정한 상태로 향하고자 한다. 꼬인 사람이 화를 버럭 내듯이 혹은 실타래가 급속히 풀리듯이, 태양도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태양은 에너지만 방출하지 않는다. 태양은 초고온이기 때문에 물질이 플라스마라는 전하를 지닌 입자 상태를 유지한다. 이 입자는 전하 때문에 자기력선 주위를 공전하듯 빙글빙글 나선운동하며 따라다닌다. 쉽게 말해, 자기력선에 갇힌다. 마치 빨래가 빨랫줄에 걸린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꼬인 자기력선이 에너지를 방출하면 어떻게 될까. 자기 에너지가 운동에너지 또는 열에너지로 바뀌는데, 그 중 운동에너지는 갇혀 있던 물질(빨랫줄의 빨래)을 외부로 분출시킨다. 이게 바로 태양분출현상이다. 지난해 말 나온 ‘네이처’ 논문은 바로 이 과정을 모형을 이용해 상세히 예측한 연구였다.


 

태양은 빛만 방출하는 게 아니다전자와 양성자 등 물질 입자도 방출한다이 방출은 때로 폭발을 연상시킬 정도로급격하게 이뤄진다. 태양분출현상(CME)은우주 불꽃놀이라고 할 만큼 격렬하다

 

 


자기력선의 변덕, 태양 미스터리의 원인일까

또다른 현상에 의해 물질 분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꼬인 고무줄 뭉치 또는 실타래는 풀어지는 대신 끊어 질 수도 있다. 자기력선도 마찬가지며, 태양 표면에서 이런 끊어짐은 자주 벌어진다. 차이가 있다면, 그냥 끊어지고 마는 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자기력선과 다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자력선 재결합’이라는 현상입니다. 전류가 강한 부분에서 원래의 자기력선이 끊어져 다른 방향 으로 재결합하는 현상이지요. 이 현상이 일어나면 자기력선의 불안정성이 더 커집니다. 이 현상으로 태양분출현상이 더 커질 수도 있죠.”

자력선 재결합은 태양분출현상만의 원인은 아니 다.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다른 현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게 플레어다. 플레어는 섬광이라는 뜻 으로, 태양 일부의 저층부(표면)부터 채층까지가 갑작스럽게 밝아지는 현상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보인다. 태양분출현상과 직접 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분출현상이 일어날 때 그 아래(태양 표면 근처)에서 같이 일어날 때가 많다(둘 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래 동영상 참조). 태양 가시광선에서는 잘 관찰되지 않지만 특정한 파장의 빛으로 관찰하면 쉽게 볼 수 있다. 플레어는 자기장이 서로 반대되는 지역이 잇닿아 있을 때 그 경계면에서 나타 난다. 자기장 에너지가 방출되는 게 원인으로, 전적으로 자력선의 꼬임과 그에 의한 자력선 재결합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태양 채층 부근에서 일어나는 온도의 급격한 상승 현상도 자력선 재결합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 되고 있습니다.” 채층은 태양의 광구 표면 바로 위에 위치한 구조다. 광구에서 6000K, 채층에서도 약 2만 K밖에 되지 않던 플라스마의 온도는 전이영역이라고 하는 채층 바로 위 영역에서 100만K까지 급격히 가열 된다. 원인은 아직 미스터리인데, 많은 태양물리학자 들은 작은 규모의 자력선 재결합 현상이 일어나 자기력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전환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 다(이를 나노플레어라고 한다). 작년 ‘사이언스’ 논문 은 이런 현상들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태양관 측선 이리스 호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태양 외곽에서 온도의 역전층이 나타난 다는 사실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관측 결과도 담고 있다.

태양은 가장 가깝고 친숙하며 관측하기 쉽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낯설 수밖에 없는 천체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늘어나는 건 인류의 숙명이다. 하지만 우주의 거대한 규모는 인류의 작은 두뇌로 단박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가장 가까운 별의 미스터리는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해준다.



대류층 - 태양을 이루는 물질이 대류한다
전도층 - 태양의 내부 물질이 뜨겁고 밀도가 높게 존재한다.
코어(핵) - 빛(광자)이 만들어진다. 고에너지 상태.
광구 - 코어에서 만들어진 빛 알갱이가 드디어 직진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최초의 지점이다.
플레어 - 표면 섬광 현상. 태양 표면의 특정 지역이 갑자기 밝아지는 현상이다.
흑점 - 태양 광구에서 어두워 보이는 지점. 온도가 낮다. 하지만 이 지역이 온도가 낮은 것은 자기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장 밀도에 비해 물질 밀도가 낮아 온도는 낮지만, 자기 에너지에 의한 폭발 현상은 더 잦다.
전이영역 - 채층 바깥 영역. 짧은 구간 동안 온도가 100만K까지 급격히 오르는 불가사의한 지역이다. 자력선 재결합(본문 참조)에 의한 소규모 에너지 방출이 원인으로 꼽히며 최근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서도 연구됐다. 이리스(IRIS) 위성 관측 결과 온도 역전 현상도 최근 관측됐다.
채층 - 태양의 하층 대기 구조 중 하나. 외곽에서 온도가 2만K까지 오른다.

 



201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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