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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토초 레이저에서 탄생한 X선

결맞는 X선 연구단

작년 겨울 카타르 도하의 스타 탄생을 기억하는가. 2006 아시안게임에서 수영 3관왕을 달성하며 차세대 마린보이로 떠오른 박태환. 자유형 1500m에서 14분 55초 03을 기록해 동양 선수의 한계라던 ‘마의 15분 벽’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은메달과 동메달까지 모두 7개의 메달을 걸고 다니려니 목이 너무 무거워 행복하다던 박태환 선수의 다음 목표는 2008 중국 베이징올림픽. 과연 박태환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스포츠에서 기록을 단축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간은 벽에 부딪힐수록 도전의식으로 더 불타오르는 존재. 전신수영복은 물의 저항을 줄여 기록을 3%나 단축시켰다. 첨단소재를 사용해 최소한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게 만든 운동화는 육상선수의 발에 신형제트엔진을 달아줬다.

미시세계 보여주는 레이저

01펨토초 레이저에서 나온 빛이 X선 분광기를 거치며 결맞는 X선으로 다시 태어난다. 02티타늄사파이어레이저는 고출력의 펨토초 펄스를 만들어낸다.

식물의 엽록체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이나 원자가 진동하는 모습은 느끼기도 어려운 짧은 시간에 펼쳐진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게임은 끝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정교한 카메라가 필요하다.

레이저의 결맞음성을 이용하면 막연했던 미시세계도 그려볼 수 있다. 레이저의 경우 동일한 파장의 빛이 일정한 세기와 방향으로 나아간다. 레이저의 이런 성질을 ‘결맞음성’이라고 하는데, 일사불란하게 발맞춰 걷는 군인을 떠올리면 된다. 찰나의 순간, 번쩍하는 레이저 섬광이 물체에 부딪친 뒤 되돌아오는 신호를 이용하면 물질의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레이저의 출력을 높여 빛의 파장을 줄이고 진동수를 높일수록 더 짧은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광합성 과정에서 어떤 분자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해 이를 모방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레이저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을 줄이는데도 ‘마의 벽’이 존재한다. 바로 아토초(${10}^{18}$초)의 펄스를 만들어내는 것. 펄스란 맥박처럼 짧은 시간에 생기는 진동을 뜻한다. 현재 펨토초보다 1000배나 빠른 아토초 펄스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첨단으로 무장한 전신수영복처럼 결맞는X선연구단의 남창희 교수는 펨토초(10-15초) 레이저를 강력한 도구 삼아 아토초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짧은 펄스를 만드는 일이 관건

결맞는X선연구단은 미시세계를 열어줄 레이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분자는 100펨토초마다 한바퀴씩 회전한다. 1펨토초는 1000조분의 1초라는 매우 짧은 시간으로 빛조차도 0.3마이크로미터(㎛, 1㎛=10-6수식m)밖에 이동할 수 없는 시간이다.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핵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150아토초에 불과하다. 아토초는 펨토초보다 1000분의 1이나 짧다. 이처럼 빠르게 일어나는 원자나 분자의 운동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은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하면서부터다.

강력한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를 진동시키면 결맞는 X선을 만들 수 있다. 이때 발생하는 X선은 처음 쏜 레이저 펄스의 결맞음성은 그대로 가지지만 펄스폭은 더 줄어든다.

1990년대 초 미국 미시건대를 선두로 테라와트급 펨토초 레이저가 개발됐다. 1테라와트는 1012와트로 출력이 높은 레이저일수록 짧은 파장의 펄스를 만들 수 있다.

남 교수는 1995년 펨토초 레이저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고출력 펨토초 레이저 연구가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합류한 편에 속했다. 1998년 남 교수팀은 20펨토초 3테라와트의 티타늄사파이어 레이저 개발에 성공했고 1999년 과학기술부에서 지원하는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하나로 지정됐다.

펨토초 레이저로 결맞는 X선을 얻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펨토초 레이저 펄스를 헬륨이나 아르곤, 네온과 같은 기체 원자에 쪼인다. 이때 형성되는 강한 전기장은 기체 원자를 이온으로 만든다. 원자에서 떨어져 나온 전자는 레이저의 전기장에 의해 원자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과정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파장이 40~300Å(옹스트롬, 1Å=10-10수식m)에 이르는 X선 빛을 방출한다. 이 빛은 레이저가 같고 있는 결맞음성을 이어 받아 결맞는 X선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제는 3차원으로 확대해본다

결맞는 X선 발생원리 고출력 펨토초 레이저 펄스(01)를 아르곤이나 네온, 헬륨 같은 비활성기체 원자에 쏜다(02). 이때 레이저 펄스가 강한 전기장을 내놓아 기체 원자를 강력하게 흔들어놓고 전자가 원자에서 떨어져 나온다(03). 이때 강력한 빛이 발생하는데 X선 분광기를 거치며(04) 파장 40~300Å의 X선이 만들어진다(05).

남 교수는 “펨토초 레이저가 만드는 결맞는 X선은 과학의 여러 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반도체 산업에서는 리소그래피에 활용될 수 있다. 리소그래피는 반도체 집적 회로를 제조할 때 회로 패턴을 기록하는 공정을 뜻한다. 결맞는 X선은 이때 사용될 정밀광학부품의 표면을 검사하고 성능을 확인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입체적인 홀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홀로그램은 빛의 간섭정보를 필름에 기록해 물체의 3차원 정지영상을 저장한다. 그런데 결맞는 X선을 광원으로 이용하면 나노미터(㎚, 1㎚=10-9수식m) 영역의 미세하고 정교한 홀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일반 X선과 달리 결맞는 X선은 일정한 위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X선현미경의 좋은 광원이 될 수 있다. 전자현미경은 건조 상태의 시료를 관찰하므로 살아있는 상태의 세포나 조직을 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X선현미경은 암세포나 단백질 같은 생체물질을 고배율로 확대해볼 수 있다. 남 교수는 “생명체에 X선을 쪼이고 홀로그램 기술까지 더해지면 생체세포의 3차원의 영상을 얻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펨토초 레이저 기술은 병원에서도 사용될 전망이다. 수술용으로 사용하던 기존의 레이저는 대부분 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세포에는 치명적이다. 신경세포 하나의 크기가 10㎛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여서 자칫 레이저를 사용하다 주변 조직까지 타버릴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펨토초 레이저가 만드는 결맞는 X선을 사용하면 물속이나 공기 중에서 세포 하나만을 자르거나 구멍을 뚫는 수술도 가능하다.

아토초로 질주하는 ‘남의 법칙’나올까

남창희 교수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아흐메드 즈웨일 교수는 펨토초 레이저로 분자의 화학 반응에서 일어나는 초고속 현상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펨토초의 짧은 빛을 이용해 화학반응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들여다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뒤 레이저의 펄스폭을 줄이는 경쟁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남 교수는 “앞으로의 목표는 아토초의 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한 아토초 레이저를 개발하는 일은 도전해볼만하다”고 말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어림잡을 수밖에 없었던 극초단의 세계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2005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 대만, 인도, 말레이시아의 레이저 연구자들이 모여 극초단 레이저를 함께 연구하는 ‘아시아 레이저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남 교수는 그룹을 이끄는 간사로 활약 중이다. 현재 연구단에는 파키스탄에서 온 학생도 있다. 게다가 이란과 이라크가 아시아 레이저 네트워크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남 교수가 본격적인 레이저 기술 전파자로 나선 것이다.

변변한 실험 장비조차 없었던 연구 초기의 어려움을 잘 견딘 덕분일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 남 교수의 열정은 고국에서 활짝 꽃폈다. 꾸준한 노력은 그 성과를 드러냈고, 현재 연구단은 세계적 수준인 200아토초 펄스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200아토초는 얼마나 짧은 시간일까. 남 교수는 “200아토초가 1시간에서 차지하는 순간은 150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나이에서 1시간이 차지하는 비율보다도 짧은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시계의 초침이 한 번 움직이면 1초, 그 단위를 쪼개고 쪼개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작아질 수 있을까. 수학적으로는 무한히 작아질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남 교수에게 한계는 없어 보인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 반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처럼 머지않아 펨토초의 벽을 허물고 아토초로 질주하는 ‘남의 법칙’이 나오지 않을까.

결맞는X선연구단의 남창희 교수(가운데)와 학생들이 클린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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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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