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년 전이던 1997년 겨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저는 야트막한 산 아래 벌판에서 외로운 탑 둘을 보며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1300년을 버텨온 석탑이 백전노장 같은 자태로 서 있었습니다. 세월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륵사지는 7세기 초반에 지어진 백제시대 최대의 절 미륵사가 있던 터입니다. 미륵사는 규모도 컸지만, 구조가 특이하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의 절 안에 커다란 탑이 세 개나 있었습니다. 발굴을 통해 확인한 결과, 중앙에는 거대한 목탑이, 그 동쪽과 서쪽에 각각 목탑 양식을 흉내 내 지은 석탑이 하나씩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탑과 동쪽의 석탑은 무너져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유독 서쪽의 석탑(이하 서탑)만은 일부(6층 까지)가 남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올해 4월 3일, 미륵사지를 다시 찾았습니다. 서탑이 있던 자리를 아파트 10층 높이는 돼 보이는 커다란 가건물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있어야 할 자리에 탑은 없고 단단하게 다져진 흙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 이런 건가 잠시 헷갈렸습니다.
“이 안에서 2001년부터 서탑을 해체했습니다.”
2000년부터 미륵사지 보수정비사업에 참여해 온 김현용 학예연구사가 말했습니다. 김 연구사는 1998년부터 시작된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과정을 거의 초창기부터 지켜봐 온 산 증인 중 한 명입니다.
“처음 6층 옥개석을 내릴 때부터 시작해 마지막 기단부 해체까지, 꼬박 10년이 걸리는 긴 작업이었어요.”
서탑은 비록 6층까지 남아 있긴 했지만 탑의 동쪽과 북쪽 일부 면만 온전히 남아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많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1910년 경 사진을 보면 겉을 두른 석재가 무너져서 석탑 내부를 채우고 있던 돌들이 드러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일제강점기 때 콘크리트로 보강을 해놨는데, 풍화가 계속 심해져 20세기 후반에 이르자 보수를 해야 할 단계가 됐습니다. 급하다면 급한 상황이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토론을 거쳐 최대한 신중하게 보수정비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연구도 병행했습니다. 탑을 들어내면서 해체 전과 중간, 후에 각각 3D 스캐너로 탑의 입체 정보를 기록 했습니다. 레이저를 발사해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빛의 정보를 분석해 3차원 형태를 읽어내는 기술입니다. 제가 현장을 찾았을 때 마침 실연을 하고 있었는데, 40분만에 교실 하나 넓이인 석탑 부지를 정교하게 읽어냈습니다. 박성호 연구원은 “장소를 바꿔가며 이런 측정을 몇 차례 반복한 뒤, 자료를 종합해 3차원 영상을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부재 하나하나까지 다 3D 스캐너로 측정을 했습니다. 석탑에 사용된 돌은 모두 3000여 개에 달합니다. 이들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방향을 바꿔가며 각각 8번씩 측정해야 합니다. 모두 2만4000번이 넘게 측정을 했다는 뜻입니다. 8년이 걸린 대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측정한 부재 하나하나는 고스란히 컴퓨터 3차원 모형이 됐습니다. 이 모형은 석재를 보존처리하거나 탑 전체를 가상으로 설계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서탑은 기존에 쓰였던 석재를 최대한 재사용해 쌓을 계획입니다. 재료까지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정비인 셈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파손되거나 약해진 석재를 그냥 쓸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새 돌을 깎아 쓰면 되지만 그래서는 진정한 보수정비가 아니겠죠. 그래서 옛 석재의 부서진 부분에 맞춰 새 돌을 깎은 뒤 연결해 보강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석공들이 소형 자동차 크기의 다양한 돌들을 깎고 있었습니다. 하나를 깎는 데 한 달까지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형에 가까운 탑을 되살리기 위해 이 과정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탑 하나 보수정비하는 데 거의 20년이 걸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김 연구사는 저를 서탑이 있던 자리로 데려갔습니다. 바닥의 흙을 만져봤습니다. 반들반들했습니다. 수천t의 무거운 탑이 안전하게 다시 설 수 있도록 바닥 터를 단단하게 다졌기 때문입니다. 흙을 붓고 작은 책상 넓이(1m2)마다 1만 번씩 두드려 다졌다고 했습니다. 어떤 흙을 쓰고 다져야 할 지 알기 위해 재료를 바꿔가며 일일이 실험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 정도라면 석탑이 들어서도 끄떡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00년 전 장중한 백제의 아름다움도 되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