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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삐삐는 계속 울리고 시티폰은 사라진다?

삐삐의 대성공에 자극받은 서비스업자들의 또다른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기고 뛰어든 시티폰은 '미운 오리'가 될 것인가. 이들이 서비스를 시작한지 불과 1년도 안되는 시간에 PCS라는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다.

극장이건 강의실이건, 심지어 근엄하기 그지 없는 법정에서도 삐삐 소리가 새나와 골치를 앓고 있다. 또 운전 도중 휴대전화를 이용하다 사고를 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선호출기와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이동통신 붐으로 통신을 위해 더 이상 선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일어난 세태 모습이다.

각종 이동통신 서비스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지난 몇년 사이를 고비로 ‘통신=유선’의 고정관념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물론 아직도 가장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통신 수단은 가정과 사무실을 촘촘한 그물처럼 얽어맨 고정 통신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조만간 본격적으로 서비스되는 PCS로 인해 통신 시장 자체는 또다시 일대 변혁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상당한 가입자를 확보하고 서비스 중인 선발 이동통신회사들은 PCS가 자신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예측하기에 골몰 중이다. 기존 휴대전화 사업자의 경우 “PCS는 대역폭이 다른 휴대전화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터라 자신들의 사업이 장기적으로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어떤 기술을 사용하건 간에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걸리고 잘 받아지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까지 짧게는 1년(신세기이동통신)에서 길게는 10년(한국이동통신, 84년 5월부터 아날로그 방식 서비스 제공)이 넘는 기간을 운영해온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것. 또한 PCS업계의 대대적인 광고로 인해 휴대전화에 대한 욕구가 더욱 자극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시장 전체의 덩어리가 커지면서 기존 서비스를 선택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삐삐와 시티폰 서비스회사들의 사정은 어떨까.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한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걸거나 받기만 하는 단방향 이동통신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보조수단 삐삐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이 지금처럼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무선호출 서비스다. 무선호출은 지난 82년 첫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97년 5월말 현재 1천4백만명을 넘는 가입자를 확보, 고정전화 다음가는 대중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이는 국민 3명당 1명이 보유하고 있는 꼴로, 가입자 절대수로 보자면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3위이며, 1백명당 가입자로는 싱가포르에 이어 세게 2위. 하지만 싱가포르가 서울 크기의 도시국가임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삐삐 밀도는 세계 최고로 봐도 무방하다. 한때 1천만명을 최대 포화시장으로 봤던 업계도 이같은 성장을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단방향 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는 것은 이같은 가입자수를 근거로 하고 있다. 현재의 휴대전화나 PCS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만만한 가격의 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선호출사업은 충분한 서비스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심각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방향 서비스업체들은 또한 휴대전화 사용자의 70-80%가 무선호출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보다 통화 품질이 좋은 미국에서도 삐삐의 보급률은 24-25%에 달한다. 이는 휴대전화의 착신율과 배터리 소모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낮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휴대전화가 고정식 전화와 같은 수준까지 품질을 올리기 전까지 틈새는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얘기다.

결국 PCS의 등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 선택의 폭을 넓힐 뿐, 다른 서비스의 흥망을 쥐락펴락하는 조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 그러나 삐삐와 달리 발신 전용인 CT2, 즉 시티폰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예측이 우세하다.
 

삐삐는 문자호출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정보단말기'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동일고객층 부담돼

올 3월 20일 국내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CT2는 보행자 중심의 이동성을 부여한 발신 전용 휴대통신 서비스. 도시내 공중전화를 중심으로 설치돼 있는, 기지국을 이용하기 때문에 ‘호주머니 속의 공중전화’로 불린다.

1989년 영국에서 최초로 제안돼 유럽 표준으로 채택된 이래 유럽국가와 홍콩 등지에서 실용화된 이 서비스는 기능이 단순한 대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최대 강점. 단말기 가격과 이용요금이 기존 이동전화의 절반에 불과하다. 기존 이동전화는 50-70만원대의 단말기 가격과 10초당 20원이 넘는 통화요금으로 월평균 5-7만원 정도를 지출해야 하지만, CT2는 20만원 이하의 단말기에 월 2만원 수준의 통화비만 있으면 된다. 이 때문에, 시티폰업체들은‘정보화의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서비스’로서의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켰고, 서비스 개시 넉달만에 3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CT2가 삐삐와 달리 PCS, 휴대전화와 동일한 대상을 고객층으로 잡고 있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이 때문에 70년대 말 피지도 못하고 사그러든 베타방식 비디오의 재판이 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베타방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VHS 방식보다 기술적으로 우위인 것으로 평가됐지만, CT2는 기술력으로 결코 기존의 휴대전화나 PCS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사정은 더욱 나쁘다는 것.

서비스 개시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 휴대전화회사들은 CT2가 적어도 2001년까지 명맥을 유지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을 보면 가입자수가 현재의 선에서 멈추거나, 갈수록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같은 예측은 시티폰 단말기 성능에 대한 불만과 기지국 설치가 늦어지는 바람에 접속률이 형편없이 낮아지면서 기대심리를 무너뜨렸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동전화는 전화기 사용전력이 2백mW로 통화품질이 좋다. 또 전파 반경이 넓어 수백개의 기지국으로 서울시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데다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으며, 안테나와 안테나 간의 연결 기능(핸드오버)이 있어 지역을 빨리 이동해도 끊기지 않는다.

반면 CT2는 가정용 무선전화기와 같은 10mW의 낮은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기지국 전파가 약하다. 1개의 기지국이 커버하는 거리는 반경 2백m에 불과하며, 그나마 빌딩 안이나 구석진 곳이라면 50m로 줄어든다.

CT2 사용권으로 서울시 전역을 묶으려면 2만개 이상의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며, 결정적으로 안테나간의 연결 기능이 없어 기지국과 기지국 사이에서 통화를 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끊기고 만다.

비싼 가격의 휴대전화와 PCS사업의 서비스 지연이란 틈새를 노리고 시작된 이 서비스는 내년 초로 예정됐던 PCS 사업이 CT2 서비스 개시 후 6개월만에 본격화되면서 뿌리를 내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더구나 휴대전화 사업자들이 저마다 단말기를 낮은 가격으로 뿌리는 데다가 서비스 요금마저 인하하고 있어 급속도로 매력을 상실하고 있다.
 

CT2 기지국을 관리하는 망센터 내부.


홍콩에선 이미 서비스 중단

하지만 CT2 사업자들이 그냥 주저앉아 고사당할 수는 없는 일. 사업자들은 서비스 사용의 폭을 넓히는 것에 사활이 달려 있다고 보고, 기존 CT2에 각종 서비스를 부가하거나 원래의 기능을 개선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부가서비스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된 것은 HBS(Home Base Station). 이는 CT2를 가정용 무선전화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CT2사업자가 거리에 세운 기지국처럼 일반 가정용 전화기에 CT2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집에서는 무선전화기로, 밖에서는 발신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집안의 무선전화기 본체는 기지국 역할을 하고, 무선전화기는 CT2와 겸용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일반 공중전화망(PSTN)용 모뎀을 이용해 데이터를 보내는 CT2 단말기로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는 ‘데이터 링커’도 국면 돌파를 위해 CT2사업자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비장의 무기. 데이터 링커란 일반 공중전화망(PSTN)용를 이용, CT2 단말기를 통해 어느 곳에서나 노트북 PC 등과 연결해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

그러나 현재의 CT2에 이같은 서비스가 모두 가능하기 위해서는 빨라도 2-3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PCS와 기존 이동전화회사가 피나는 싸움을 통해 잠재고객의 상당수를 흡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시티폰을 기다려줄 사용자가 많지 않을 것이란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CT2 서비스를 제공한 외국에서의 사례는 대단히 비관적이다. 홍콩의 경우 적어도 2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해야 만 기지국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데, 최고 18만명에 육박하던 가입자가 작년 4월에 이미 1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한 회사는 작년 7월에 CT2 업무를 중지하겠다고 선포했고, 나머지 2개 회사도 가입자들에게 다른 이동통신으로 바꿀 것을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가입자들의 소비자 주권과 관련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홍콩에서 CT2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일단 이 기술이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이 아니고, 최대 강점인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으며, 기지국의 커버 범위가 작아 이동전화와 경쟁이 되지 않는데다가 경영원가가 높았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시스템의 앞날을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를 테면 전화가 막 등장했을 무렵 사라질 것으로 보았던 우편사업이 여전히 성업중인 것처럼, 특히 현재의 우세한 견해는 예상치 않았던 변수들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단방향 통신은 양방향 서비스로 인해 사양산업이 될 공산이 크다. 이는 업체들의 마케팅 전략 차원을 떠나 인간의 본능인 커뮤니케이션 욕구란 기본적으로 양방향성에 의해서 충족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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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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