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Knowledge] 펨토초 엑스선으로 본 세상, 분자가 결합하는 찰나를 포착하다




광장에 여러 쌍의 부부가 손을 잡고 있다. ‘탕’ 신호를 주자, 모든 부부가 동시에 손을 놓았다. 누가 언제 손을 놨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동시니까. 이번에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섞은 뒤, 신호가 울리면 자기 배우자를 찾아 손을 잡으라고 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우왕좌왕, 여기저기서 손을 잡는 부부가 나올 것이다. 전체 시간은 손을 놓을 때보다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누가 어디에서 손을 잡았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학반응도 마찬가지다. 그간 과학자들은 분자가 결합하는 순간을 관찰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수천억 개의 분자 가운데 어디에서 먼저 결합이 형성될지 모르기 때문에 신호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화학 결합의 소멸과 생성은 대개 수십~수백 펨토(femto)초 정도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진다. 펨토란 1000조 분의 1로, 만약 1펨토초를 1초라고 가정하면 1초는 자그마치 3171만 년이다. 한동안 과학자들은 이렇게 짧은 순간을 직접 관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 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밝힌 것은 반응물과 생성물, 즉 화학반응의 출발점과 종착점이었을 뿐, 그 사이의 중간과정은 이론으로만 추정할 수 있었다.



깜빡이는 X선으로 분자 운동 포착

이런 화학 반응의 비밀을 밝히고자 한 과학자가 있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아메드 즈웨일 교수다. 그는 1980년대 초, 당시 새로 개발된 펨토초레이저기술을 기체상 분자들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분야에 접목했다. 펨토초레이저는 약 10~50펨토초 간격으로 깜빡이는 레이저다. 연속적으로 깜빡이는 레이저를 쏘면, 마치 연달아 사진을 찍어 동영상을 만드는 것처럼 분자 운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그는 ‘들뜸 탐색 방법’을 개발했다(88쪽 그림). 기체 시료에 먼저 레이저를 쏴 모든 분자를 일정하게 진동하게 한 뒤, 펨토초레이저를 보내 분자 운동을 탐색하는 방법이다. 펨토초 시간 동안만 분자를 만났다가 반사된 빛에는 그 순간의 분자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 패턴을 분석해 분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재현한 것이다. 즈웨일 교수는 이 연구로 1999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가 창시한 이 분야는 ‘펨토화학’이라 불리게 됐다.

펨토화학은 이후 꾸준히 진화했다. 그 중심에 즈웨일 교수의 제자였던 이효철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질및화학반응 연구단 그룹리더(KAIST 화학과 교수)가 있다. 1994년 KAIST를 졸업하고 칼텍으로 유학을 떠난 이 교수는, 즈웨일 교수를 만난 뒤 분자의 반응을 관찰하는 연구의 매력에 빠졌다.

이 교수는 박사학위과정을 마치고 모교에 부임한 직후, 액체 속에 있는 분자의 운동을 세계 최초로 관측해 2005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기체는 분자 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서로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반면 액체는 기체보다 훨씬 혼잡하고 분자 간 상호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관측하기 더 까다롭지요.” 즈웨일 교수가 기체상 분자들의 운동을 실시간으로 관측한 데서 한 단계 진보한 셈이다.

이 교수는 펨토초레이저 대신 ‘X선 회절법’을 응용해 분자 사진을 찍었다. X선을 고체의 결정구조에 쪼이면, 결정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가면서 X선이 특정 방향으로 에돌아 나간다. 이 때 벽면에 결정구조가 반영된 패턴이 그려진다. X선 회절법이란, 이를 역이용해 벽면에 생긴 패턴으로부터 원자가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밝히는 방법이다. 기존에는 고체 구조에만 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2005년 이 교수가 세계 최초로 액체 속 분자의 운동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마치 동영상처럼 분자가 끊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기술도 접목했다. 매우 빠르게 깜빡이는 강한 X선을 이용해 마치 카메라 연사 기능을 이용할 때처럼 실시간 회절 패턴을 얻은 것. 이 교수는 “기존에는 X선을 한 번만 보내 안정된 상태 한 순간만 사진으로 찍어서 봤다면, 우리는 X선을 연달아 비춰 상태가 변하는 모든 과정을 찍어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금 이용해 분자가 결합하는 순간을 보다

그러나 2005년에는 화학 반응을 펨토초 단위로 볼 수 없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은 깜빡이는 시간 간격이 100피코초(1피코초는 1000펨토초) 정도로 느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레이저 기술이 발달하면서 X선이 깜빡이는 시간 간격이 점점 빨라졌다. 이 교수팀은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 ‘SACLA’에서 나오는, 100펨토초마다 깜빡이는 X선을 이용했다. 2005년 연구에 비해 동영상의 화면 변화가 1000배 더 자연스러워진 셈이다.

물론 선명한 영상을 얻기까지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쳐야 했다. “우리가 쓰는 X선은 에너지가 매우 큰 종류였는데, 리켄의 검출기가 더 낮은 에너지의 X선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어요. 게다가 X선 자체도 나왔다가 안 나왔다가, 굉장히 불안정했죠. 그걸 우리 연구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최근에는 화학 결합이 생성되는 과정을 관찰해 학술지 ‘네이처’ 2월 18일자에 발표했다. 앞서 말했듯, 분자 결합이 끊어지는 것보다 결합이 형성되는 순간을 관찰하는 게 더 어렵기 때문에 연구팀은 금을 선택해 특수한 상황을 만들었다.

탄화질소금(Au(CN)2)을 특정 농도로 용액에 녹이면, 금끼리 서로 당기는 성질(친금성) 때문에 분자 세 개가 가까이 모여 있게 된다. 이를테면 부부끼리 아직 손을 잡지는 못했지만, 쉽게 손 잡을 수 있도록 가까이 모아 둔 셈이다. 여기에 즈웨일 교수의 들뜸 탐색 방법을 그대로 응용했다. 이 교수는 “레이저를 쏘면 가까이 있는 금 원자 3개가 레이저 에너지를 흡수해 화학적으로 결합한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금 분자를 관찰해 시간에 따라 원자 사이의 거리나 각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과연 세계 최초로 관찰된 액체 속 분자 결합의 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화학반응이 시작되기 전, 옹기종기 모인 세 개의 금 원자는 각각 3.3, 3.9Å(옹스트롬, 10-10m) 거리를 두고 있었다. 레이저를 쬐자 수백펨토초 이내에 금 원자 세 개가 일렬로 나란히 손을 잡아 선형 구조를 형성했고, 인접한 두 금 원자 사이의 거리는 모두 2.8Å으로 좁혀졌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결합 길이가 더 짧아졌고, 나노초 대에 이르러 금 원자 하나가 더 결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00펨토초마다 깜빡이는 X선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 에서만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이효철 교수가 실험할 때 이용한 일본 이화학연구소 (리켄)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 ‘SACLA’.]

“일반적인 화학 결합 관찰하는 게 목표”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그간 볼 수 없었던, 펨토초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반적인 화학 결합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X선 회절법뿐만 아니라 전자 회절법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전자 회절 시설을 만들고 있다. 이 교수는 “전자는 산란을 잘해서 밀도가 낮은 시료를 연구하기 적합하다”며 “수km 가속기가 필요한 X선과 달리 설비가 간단해 작은 방 안에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먼 미래에는 연구팀이 개발한 펨토초 엑스선 회절법을 이용해 수용액 안의 단백질도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백질의 화학 반응을 정확히 이해하면 반응을 자유자재로 제어해 질병 치료나 신약 개발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실험을 위해 연구팀은 이미 단백질 실험을 위한 시료 주입 장치를 고안했다. “이번 연구 과정에서 기술, 분석적 노하우를 이미 축적한 상태입니다. 다양한 분자계에 적용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그간 아무도 알지 못했던 화학반응의 찰나를 눈으로 보려는 노력을 계속 할 겁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물리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