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실화냐?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는 이 지형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다. 땅 속 석유가스가 만든 실제 상황이다. 놀라운 건, 이런 기이한 지형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스팔트 화산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바닷속에서 2003년 처음 발견된 특이한 지형이다. 문명이 도달하기 어려운 3000~4000m의 해저면에 기괴한 모양의 아스팔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나가던 배가 일부러 투척한 것은 아니다. 땅속에서 배출된 석유가 만든 지형이다.
아스팔트 화산에서는 지층에 함유된 물과 메탄가스, 황화수소, 석유가 1000년 이상 지속적으로 유출된다. 해저면에서 유출된 석유와 가스 중 휘발성이 높은 성분은 곧바로 해수면으로 유출되지만 타르와 아스팔트처럼 점도가 높은 물질은 유출되는 입구에서 바로 굳어버린다. 심해저의 수온이 섭씨 2~4도로 낮기 때문이다. 타르나 아스팔트로 이뤄진 석유나 파라핀 성분이 많아 점도가 높은 석유는 지각을 뚫고 나올 때는 온도가 높지만, 분출되면 곧 식어버린다.
뽑아낸 석유보다, 빠져나간 석유가 더 많다
아스팔트 화산은 대중의 상식을 깨는 특이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석유가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온다’는 또 하나의 낯선 자연현상이 있다.
보통 석유와 천연가스는 거대한 시추 장비를 이용해서 땅속 깊은 곳에서 뽑아내는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사실 석유와 가스는 자연적으로 지각에서 유출되는 경우도 많다. 전세계의 퇴적분지에서는 셰일 혹은 석회암처럼 유기물을 다량으로 함유한 퇴적암이 두껍게 형성돼 있으며, 연간 약 270만 배럴의 석유가 이곳에서 생성된다. 만약 지구 역사에서 생물체가 나타나기 시작한 35억 년부터 지금까지 생성된 석유가 모두 집적돼 지층에 분포한다면 그 양은 무려 1경 배럴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값은 가스를 포함하지 않은 원유를 계산한 것으로, 가스까지 포함하면 지구상에 분포하는 탄화수소의 양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오일샌드 등 비(非) 전통 유전에 매장된 양은 아직까지 정확히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사암이나 석회암 등 전통적으로 석유를 캐내는 이른바 ‘저류암’에 매장돼 있는 석유의 양만 약 5조 배럴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지구에서 생성된 석유의 0.05% 정도만 저류암에 매장돼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석유는 다 어디로 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퇴적분지에서 형성된 석유의 1% 정도만 저류층에 보존되고 나머지는 지상으로 유출된다. 석유는 셰일 등에 포함된 유기물이 고온·고압을 받아서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석유는 가스와 물 등 다양한 유체와 뒤섞여 있다. 그리고 지층 내의 갈라진 단층이나 사암처럼 미세한 구멍이 많아서 유체가 통과하기 쉬운 구조를 따라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지층이 힘을 받아서 마치 낙타 등처럼 휘어진(배사구조) 저류층에 저장되고, 나머지는 지상으로 배출된다. 저류층에 집적된 석유도 이후에 단층작용을 받으면 균열이 생겨 지상으로 유출되며, 일부 석유는 퇴적이 지속되면서 열과 압력이 증가하면 다시 분해돼 사라진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에 분포하는 백악기 경상분지의 진주층 셰일에서도 과거 수백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형성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유출됐다. 저류층에 집적된 석유와 가스도 지속적인 퇴적작용으로 10km 이상의 깊은 땅속에 매몰되면서 열과 압력을 심하게 받아 사라졌다. 백악기 말에 일어난 화산활동도 석유 유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있는 멕시코만에서는 지금도 매년 60만 배럴에서 150만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땅속에서 배출되고 있다. 석유 유출이라고 하면 인간에 의한 해양사고를 떠올리지만, 이곳 바다에서는 광범위한 해양오염이 자연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스팔트 화산은 이런 석유 유출의 결과로 생성된 지형이다.
이렇게 유출된 석유는 석유회사들에게 기회를 제공 하기도 한다. 해저면에서 유출된 석유 성분 중 휘발성이 높은 물질과 가스는 해수면으로 올라오는데, 석유 회사는 항공과 인공위성 촬영으로 이런 현상을 포착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석유 매장지를 탐사한다.
진흙과 가스가 방출되는 ‘진흙 화산’과 가스 분화구
아스팔트 화산이 전부가 아니다. 가스와 진흙이 뿜어져 나오는 ‘진흙 화산’도 있다. 지하에 분포하는 가스와 진흙, 물이 지표로 유출되면서 형성된다.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터키 등 중동 지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지형이다. 화산지대에 분포하는 진흙 온천이나 진흙 화산과 달리 메탄가스가 함께 유출되는 것이 특징이다.
진흙 화산이 생성되는 원리는 이렇다. 퇴적분지에는 두꺼운 셰일이 분포하는데, 셰일은 진흙이 깊은 곳에 매몰되면서 열과 압력을 받아 형성된다. 이때 진흙 내에 분포하는 유기물은 가스로 변한다. 또 매몰되면서 물도 압착돼 빠져나온다. 그러나 생성된 가스와 물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면 매우 강한 압력(과압)으로 지층에 남아있게 되며, 이로 인해 진흙이 셰일로 변하는 암석화 과정도 지연된다. 이런 작용 때문에 진흙층이 매몰되면서 상하부만 암석화가 진행되고 나머지는 고체화되지 않은 상태가 유지된다. 이때 만약 지층내에 소규모 균열이 생기면 과압의 물과 가스, 진흙이 지상으로 급격히 분출된다. 그 결과 진흙 화산이 만들어진다.
지각의 미세균열을 따라 가스가 유출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라랑안 토콜 마을에서는 땅속에서 지속적으로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다, 주민들은 이를 이용해 취사를 하고, 밤에는 화려한 불꽃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불러모은다. 인도네시아 국영 가스 연구소인 레미가스(LEMIGAS)의 전문가에 따르면, 지표로 유출되는 가스의 양이 많지만 모아서 가정이나 발전소 등에 공급할 방법이 없어 그냥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천연가스는 대부분이 메탄으로 구성돼 있으며, 메탄 분자의 크기는 천연가스 유출을 막는 대표적인 덮개암인 셰일의 공극 크기보다 작다. 따라서 덮개암이 형성돼 있더라도 지하 가스 저류층에서 미량의 가스가 계속 빠져나온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 토양에 분포하는 가스량을 측정(표층지화학 분석)할 경우 지하 깊은 곳의 유전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배사구조가 확인된 퇴적분지에 가스층이나 석유 상부에 분포하는 가스가 있는 배사구조가 있을 경우 지표로 유출되는 가스의 양이 많아지는데, 그걸 찾는 것이다. 러시아나 동남아시아의 일부 퇴적분지에서는 이 같은 기초 표층지화학 분석으로 유전이나 가스전을 탐사한다.
지하에 과압으로 형성된 가스는 탐사를 위해 시추하는 과정에서 재앙을 일으키기도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다르바자 지역에서는 1971년 석유 탐사를 위해 시추하던 중 과압 가스층을 만나 시추기와 함께 시추캠프까지 함몰되면서 지름 70m 규모의 가스 분화구가 생겼다. 유해 가스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새어나오는 가스에 불을 붙였지만, 몇 주면 멎을 줄 알았던 불이 4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타오르고 있다. 현재 이 지형은 ‘지옥의 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78~79쪽 사진).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시도아르조 지역에서는 2006년 시추 도중 가스와 진흙이 분출하면서 지금까지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사고가 난 직후 시추공을 통해 매일 10만m3의 진흙이 분출됐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1000m3 이상의 진흙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메탄가스 외에도 독성을 지닌 황화수소(H2S)가 분출되고 있어 인근 13개 마을 주민 5만 명이 대피했고, 정부는 7km2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10m 높이의 둑을 쌓아 진흙이 농경지 및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앞으로도 최장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진흙이 유출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동해 지역 6광구 시추 도중 가스 유출에 따른 폭발사고가 일어나 국내 시추선인 두성호가 긴급 대피한 사례가 있다. 그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올해 3월 경북 포항시 대잠동 지역에서도 지하수를 개발하기 위해 시추하던 중 가스가 유출되면서 폭발했다. 인부 2명이 부상을 당했고 지금도 불이 붙어 있다(위 사진).
해저에서도 가스 분화구와 유사한 구조가 발견된다. 가스가 분출된 이후 해저 지층이 함몰되면서 곰보자국과 같은 지형이 형성된 것이다. 우리나라 동해에서도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되는 곳에서 그런 지형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또 가스 진흙과 함께 분출되면 육상의 진흙 화산과 유사한 지형도 나타난다.
석유제품 원료부터 오염 정화기술까지
자연현상으로 유출되는 석유는 기원전부터 아제르바이잔 등 중동 지역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일본 등지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돼 왔다. 단층면이나 균열대를 따라 유출되는 석유는 지표에서 타르 웅덩이를 형성하는데, 미얀마에서는 7세기부터 석유가 유출되는 지점에서 사람이 손으로 웅덩이를 파서 석유를 채취했고, 피부병 치료제와 등잔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점도가 높아서 멀리 이동하지 못하는 중질유는 ‘타르 화산’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몬터레이(Monterey) 셰일층에서 만들어진 석유가 대표적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기원전부터 이렇게 형성된 타르를 나무배 및 지붕의 방수재로 사용했다.
사암층 등의 작은 공극을 통해 유출되는 석유는 점성 때문에 가스와는 달리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며, 이 때문에 지상에 올라오는 과정에서 미생물이 생분해 한다. 지상 인근까지 오면 휘발 성분(가스,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은 대부분 증발해 대기 중으로 유출되고, 타르 성분만 남는다. 캐나다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발견되는 오일샌드는 대부분 이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 오일샌드는 모래에 묻어 있는 형태로 분포하는데, 모래 입자와 석유 사이에 얇은 수막이 형성돼 있어서 열을 가하고 세척하면 타르 성분을 쉽게 추출할 수 있다. 정유공장에서는 이를 분해해서 다양한 석유제품을 만들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스팔트 화산은 독특한 심해저 생태계의 요람이다. 심해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 살지 못한다. 대신 석유나 가스가 유출되는 지역에서는 메탄가스, 황화수소, 석유 등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미생물이 산다. 이들은 아스팔트 화산 인근에서 홍합과 해면, 서관충 등의 생물과 공생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심해의 열수가 분출되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생태계와 유사하지만, 열수가 나오는 환경은 뜨겁고, 온도, 수소이온농도(pH), 황 공급량, 산소포화도가 수시로 변하는 반면 아스팔트 화산처럼 석유나 가스가 유출되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안정적인 환경이 유지된다. 과학자들은 석유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이용해서 해양 석유오염을 방제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