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진탕이 내 머리를 망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미식축구 선수 코스타 카라조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는 미식축구와 레슬링을 병행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의 뇌를 보스턴대에 기증해달라.”
NFL에서 10년의 선수 생활동안 네 번이나 올스타에 뽑힌 데이브 듀어슨이 2011년 자살하기 직전에 가족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그는 총으로 가슴을 쏴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은 그가 뇌를 기증하기 위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쏜 것이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주니어 서, 레이 이스털링, 폴 올리버 같은 그라운드의 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의 머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NFL 스타를 자살로 몰아넣은 보이지 않는 악마
미식축구 선수들은 항상 부상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머리 쪽이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미식축구 선수는 한 시즌에 1500번 이상 머리에 충격을 받는다. 이 중 헬멧과 헬멧이 부딪히는 머리 간 충격이 60%로 가장 많고, 수비수의 태클에 의한 충격이 그 다음이다. 미국 퍼듀대 에릭 나우먼 교수가 2010년부터 2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 제퍼슨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경기 중 머리에 가해지는 최대 충격은 289G였다. 지구 중력이 1G, 롤러코스터의 충격이 5G 정도이므로 실로 엄청난 충격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뇌진탕의 기준이 되는 100G보다 큰 충격은 적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미식축구는 현재 세계에서 뇌진탕 환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종목이다. 미국에서만 해마다 25만 건 이상이 발생하며 이 중 20%는 고등학교 리그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런 충격이 누적된다는 것이다. 미식축구 선수 중 단 한 시즌만 경기를 뛰는 선수는 거의 없다. 대학 또는 프로 수준에서 미식축구를 했던 선수는 선수 생활 내내 최소 1만5000회 이상 머리에 충격을 받고 은퇴한다.
이런 반복된 충격과 뇌진탕은 ‘만성 외상성 뇌 병변증(CTE)’을 유발한다. 특히 운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확률도 높아진다. 지난해 11월 미국 재향군인업무부는 시신을 기증한 전 프로 선수 79명 중 76명이 CTE를 앓았던 것을 확인했다. 준 프로와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을 했던 선수를 기준으로 하면 128명 중 101명으로 80%에 가까운 수치다.
CTE는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머릿속에 충격이 누적되면 타우(tau) 단백질 농도가 높아진다. 타우 단백질은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덩어리를 이뤄 주변 신경세포를 죽인다. CTE와 알츠하이머는 눈에 보이는 증상도 비슷하다. 악몽, 기억력 저하, 우울증, 공격성 증가 등이다. 이는 목숨을 끊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보인 증상과 동일하다.
정말로 무서운 점은 현재로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CTE의 물리적 징후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억력 저하 같은 증상으로 추측은 할 수 있지만 확진을 할 수 없다. 오직 해부로만 확진이 가능하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CTE가 자신에게 닥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것뿐이다.
기존 헬멧으로는 CTE 막을 수 없다
“100G가 넘는 충격을 받고도 멀쩡한 경우가 있는 반면 20G로도 뇌진탕을 겪는 선수가 있었다.”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미식축구 선수를 가까이서 지켜본 나우먼 교수가 퍼듀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지적처럼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기준인 100G는 뇌진탕의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
충격이 가해질 때 머리는 크게 두 가지 가속을 받는다. 첫째는 ‘직선 가속’으로, 힘의 작용방향이 머리의 무게중심을 향할 때 생긴다. 강한 직선 가속은 두개골을 골절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회전 가속’이다. 회전 가속은 무게중심이 아닌 그 주변부에 힘이 가해질 때 생기는 운동 형태다. 뇌에 더 치명적인 것은 회전 가속이다. 회전 가속은 뇌와 두개골의 충돌을 유발해 신경다발을 늘이거나 꼬이게 한다. 회전 가속은 뇌진탕의 주요 원인으로 이를 줄이는 것이 뇌진탕을 막는 기술의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 생산되는 헬멧들은 회전 가속보다는 직선 가속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잘못된 안전조사 기준 때문이다. 헬멧을 일정한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헬멧이 가속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현재 안전기준이다. 이 방법으로는 회전 가속이 충분히 발생하지도 않고 측정도 어렵다.
실제로 스포츠 신경학 플로리다센터의 프랭크 코니리 박사가 지난해 3월 미국 신경생리학 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에서 인기 있는 미식축구 헬멧 10가지 모두 회전 가속을 20%도 줄이지 못했다. 직선 가속을 70% 가까이 줄인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그중엔 한 대학의 조사에서 매우 안전하다며 별 다섯 개를 받은 헬멧도 있었다. 안전 기준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몇 해 전부터 계속돼 왔다. 테스트를 받은 몇몇 모델 중에는 이런 지적을 수용해 측면 부위에 패딩을 추가한 것도 있었다. 측면 부위가 더 회전 가속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처럼 충전재를 더 쓰는 것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새로운 형태의 헬멧이 필요하다.
악마를 잡는 MIPS와 자석
현재 가장 앞서고 있는 헬멧은 다중 충격 보호 시스템(MIPS)이다. 90년대에 개발된 MIPS는 우리 몸으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뇌는 두개골 안에서 뇌척수액에 담겨 떠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MIPS는 뇌처럼 헬멧의 바깥 부분과 안쪽 부분에 공간을 두고 이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만약 충격이 발생하면 바깥쪽과 안쪽이 따로 움직여 머리에 전달되는 충격을 줄인다. MIPS를 적용한 헬멧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170G가 넘는 직선 가속과, 초당 1만4100라디안(1초에 약 2245 바퀴 회전하는 속도)의 회전 가속을 견뎌낼 수 있었다. MIPS는 현재 사이클, 스키 등에 활용 중이다.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신경생물학과 레이먼드 코렐로 교수는 자석을 이용하는 헬멧을 고안했다. 열렬한 미식축구 팬인 그는 경기 관람 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다가 냉장고에 붙은 자석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든 헬멧에 자석을 붙여 자석끼리 서로 밀어내는 힘으로 충격을 줄이자는 것이다.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 중 머리와 머리끼리 부딪히는 비율이 60%가 넘으므로, 생각대로만 된다면 꽤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는 강한 자석인 네오디뮴을 헬멧 안쪽에 붙여 자석 헬멧을 만들었다. 자동차 사고 충격을 측정하는 더미 인형 테스트에서 자석 헬멧은 직선 가속을 60%이상 줄였고, 회전 가속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코렐로는 올해 안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식축구와 자살의 상관관계는 글쎄…
새로운 헬멧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논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충격과 CTE의 상관관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0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스포츠과학과 케빈 거스커스위츠 교수가 은퇴한 선수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세 번 이상 뇌진탕을 앓았던 응답자의 우울증 발병률은 뇌진탕 경험이 없는 집단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미국 국립 직업안전위생연구소가 2012년 내놓은 결과에서도 미식축구 선수는 알츠하이머나 루게릭병 같은 뇌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직 NFL 선수 4500명이 구단에 제기한 집단 소송에서 미국 법원이 7억65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이유도 충격과 CTE의 직접적인 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미식축구가 정말로 자살을 유도해서 목숨을 빼앗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반복적인 충격과 자살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2012년 미국 국립 직업안전위생연구소가 은퇴한 미식축구 선수 3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살한 선수는 단 9명뿐이었다. 일반적인 자살률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어쩌면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