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3 2020년에는 사이버 섹스도 가능

섬세한 질감을 재현하는 인공촉감

2020년 가을, 결혼한 지 일년이 되는 김씨는 업무가 끝난 뒤에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조만간 결혼기념일이라 아내에게 줄 선물을 찾기 위해서다.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여성 옷을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 모니터 화면에는 ‘겨울을 준비하세요’라는 카피와 함께 모피코트를 걸친 모델들이 우아한 포즈로 서있다.

아내에게 모피코트가 없다는 생각이 든 김씨는 코트를 둘러보다가 아내가 좋아하는 브라운색 코트 앞에서 마우스를 멈췄다. 그리고 컴퓨터에 부착된 ‘인공촉감 재생기’를 켜고 코트를 만져본다. 털의 촉감이 부드럽고 따뜻해 아내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외로 간단히 쇼핑을 마친 김씨는 오늘의 뉴스를 훑어보기 위해 동아닷컴 사이트를 찾았다.

문화란을 보니 예술의 전당에서 그리스·로마 조각상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예술의 전당 사이트를 클릭하자 아름다운 조각상들 사이로 밀로의 비너스가 눈에 들어온다. 비너스 상을 3차원으로 둘러보던 김씨는 인공촉감 재생기를 통해 조각상을 쓰다듬어 본다. 김씨의 손바닥에는 조각상의 굴곡과 함께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진다.

촉감을 출력하는 장치 등장


손은 촉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신체부위다. MIT 미디어랩에서 개발 중인 햅틱 휴대폰 컴터치(가운데)는 진동의 강도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일 인공촉감 재생기가 없었다면 김씨가 모니터의 화면만을 보고 비싼 모피코트를 선뜻 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전시관 사이트에서도 비너스를 바라만 볼 뿐 이처럼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설령 시간을 내어 전시관에 가더라도 비너스 상을 직접 만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전시품을 만지고 싶어하는 관람객들의 소망은 ‘전시물에 손을 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 앞에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김씨의 예처럼 컴퓨터가 옷이나 조각상 등 가상의 물체에 대한 질감 정보를 얻어 사람의 손끝에 전달하는 ‘인공촉감재생기술’이 새로운 정보전달기술의 차세대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사람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촉감에 훨씬 빠르게 반응한다. 현재 컴퓨터의 출력장치는 모니터와 스피커뿐이지만 앞으로는 인공촉감을 출력하는 장치가 거의 모든 컴퓨터에 달릴 전망이다.

촉감재생기술은 사람의 관절 즉 어깨, 팔꿈치, 손목 그리고 손가락 마디 등이 힘을 느끼게 함으로써 역감(force sensation)을 재생하는 기술과는 달리 사람의 신체부위 중 가장 민감한 손끝에 느낌을 전달한다.

손끝에 두개의 다른 자극이 주어졌을 때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최소 간격인 공간적 분해능은 대략 1mm다. 즉 손끝의 한 지점을 바늘로 살짝 찌른 뒤 그 지점에서 1mm 이상 벗어난 곳에 찌르면 우리는 다른 곳을 찔렸다고 느낀다.

한편 손끝에 가해진 힘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최소 힘은 0.005N(뉴튼, 힘의 단위로 1N은 1kg의 물체에 1m/s2의 가속도를 더해주는 양)이다. 즉 0.005N보다 작은 힘은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또 사람은 손가락 끝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1백분의 1 정도인 1μm의 미세한 높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촉감재생기술은 이런 미묘한 수준의 힘을 재생하는 정밀도가 있어야 한다.

현재 인공촉감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 제품은 휴대폰, 개인용 휴대 단말기(PDA), 마우스, 자동차 등인데 주로 진동형 촉감재생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소형모터나 압전재료 등의 작동장치를 사용하는 이 기술은 진동을 발생시켜 표면의 높이 차이를 인식케 하는 방법이다. BMW 자동차에 장착된 아이드라이브는 운전 중 위험하게 디스플레이를 보지 않아도 조작버튼의 진동 차이로 오디오 등 다양한 장치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진동 버튼으로 카오디오 조작


진동형 촉감재생장치. 소형모터로 진동을 일으켜 표면의 높이 차이가 나게 한다.


최근에는 초소형 모터의 개발로 착용형 컴퓨터나 항법장치에도 진동을 이용한 촉감재생장치가 사용되고 있다. 그 예로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는 상하좌우 그리고 속도 증감의 촉감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착용형 항법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조끼처럼 생긴 이 장치를 착용하면 안내자 없이도 대학 캠퍼스를 둘러볼 수 있다. 즉 목적지를 입력하고 걸으면 우회전을 할 지점에서는 장치 오른쪽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사막이나 황야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은 나침반과 지도 없이도 목표 지점을 찾아갈 수 있다.

최근 몇몇 연구자들은 사람의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정보를 얻는 수동형 재생장치가 아닌, 실제 사람들이 물체의 모양을 인식하거나 옷감의 질감을 느낄 때 하듯이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여 촉감정보를 얻는 능동형 촉감재생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 방식은 진동자극을 이용하는 진동형이나 전류자극을 이용하는 전류형 방식과는 달리 힘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옷감의 질감에서 가장 중요한 표면의 거칠기를 재생시킬 수 있는, 즉 가상질감을 실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 방식은 기존의 햅틱스에 필요한 장갑 같은 장비 없이 실제 사람들이 질감을 느끼기 위해 하는 행동, 즉 손끝으로 쓰다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힘을 통해 표면의 요철 즉 거칠기를 느낄 수 있을까? 답은 사람의 손끝과 물체의 표면사이에 발생한 수평력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힘의 변화를 통해 표면 굴곡 느껴

최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힘 측정 및 평가 연구실은 미국 위스콘신대와 함께 이 원리를 응용한 정전기력기반 촉감재생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전극 위에 절연체를 놓고 전극에 방형파를 줄 때 유전체와 손끝 사이에 발생하는 정전기력에 의한 마찰력, 즉 수평력을 이용한 것이다.

정전기력이 강한 지점을 손끝이 지날 때는 수평력이 커져 마치 융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 연구에서는 촉감감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BCB라는 새로운 재질의 절연체를 사용했고 전극의 공간 분해능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공정기술을 이용했다.

가로 세로 각각 7개씩 모두 49개의 전극으로 이뤄진 이 촉감인식 장치는 현재 삼각형과 사각형, 원형 등의 모양을 인식할 수 있는 초보적인 단계로 시각 장애인의 전자점자 및 휴대용 단말기에 활용될 수 있다. 앞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감의 형태를 보면서 질감을 느끼게 하는 촉감재생장치의 핵심기술로 활용될 것이다.

이와 같은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옷감의 공간 분해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정밀한 반도체 공정기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실제 옷감의 거칠기는 대부분 수십-수백μm의 높이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가상질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십μm 크기의 높이 차이를 재생시켜야 한다. 또 사용자의 편리성을 고려해볼 때 촉감재생장치는 부피가 작아야 하고 장갑 같은 외부 장치가 없어야 한다.

최근 미국 버팔로대에서는 자신의 손에서 느낀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촉감 정보를 타인에게 전송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 손으로 느낀 촉감, 즉 어떤 물체가 원형인지 사각형인지까지의 세밀한 감각을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본래 시각 장애인들도 인터넷과 컴퓨터를 쉽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됐다. 화면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내오는 촉감 정보를 손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면 정보의 전달 측면에서 편리한 점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촉감정보전달 시스템은 단순히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 시스템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 위주의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즉 컴퓨터 화면에 있는 물체들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놀랍게도 그 물체의 느낌이 손가락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에서 개발된 조각품 만지기 가상 시스템은 이러한 예 가운데 하나로, 박물관에 진열된 귀중한 조각품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던 많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촉감재생기술이 사용되는 또 다른 응용분야로는 원격진단과 원격수술 분야다. 지금까지는 주로 환자가 직접 병원을 가거나 의사가 환자 집을 방문해 병을 진단하고 처방했으나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이 모든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환자의 환부를 느낄 수 있는 촉감재생기술은 역감을 구현하는 햅틱스 기술과 더불어 원격의료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남녀관계의 틀 깰 사이버 섹스


인공촉감기술이 고도로 발달 하면 공간을 뛰어넘은 남녀간의 사랑행위도 가능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미래의 의사들은 유방암 진단이나 복강경 수술시 촉각센서가 부착된 장비를 이용할 것이다. 이 장비는 환부의 상태를 진단해 인터넷으로 촉감정보를 전달하고 원거리에 있는 의사는 촉감재생장치를 통해 환자의 환부가 어떻게 되는지 판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예전에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한 얘기였지만 몇몇 과학자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곧 실현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촉감재생장치 개발과 더불어 인간의 피부를 모방한 생체모방형 촉각센서 개발이 가속화될 것이다.

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향후 10년 안에 인간의 피부와 같이 힘과 온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유연성 있는 촉각센서를 개발할 계획이다. 한편 촉감재생장치를 통해 사람이 실제 물체표면의 질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표면의 거칠기를 재생하는 기술뿐 아니라 표면의 온도, 습도 등을 가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의 개발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현재의 촉감 인터페이스 기술 수준은 미묘한 촉감을 창조해낼 만큼 높은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할 2020년 무렵에는 사이버섹스도 가능해지게 될 것이다. 촉감이 온몸 구석구석에 전달되는 특수 의상을 걸치고 성행위를 하는 사이버섹스 기술이 발달하면 남녀간의 관계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이런 사이버 섹스는 임신과 성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한 성교방법이 아닐까?

인공촉감 돌파구 연 황당 실험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2001년 7월 26일자에는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손끝은 중간이 움푹 들어간 면을 지나는데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융기가 느껴진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의 주인공은 캐나다 맥길대 가브리엘 로블레-드-라-토레 박사팀이다.

연구자들은 기발한 실험을 통해 수평력과 표면의 요철을 느끼는 감각의 관계를 규명했다. 수평력이란 표면을 따라 이동하는 손끝에 느껴지는 힘이다. 표면이 편평할 경우 매끄러울수록 수평력이 작고 거칠수록 크다. 한편 표면이 융기하는 지점에서 수평력과 수직력이 함께 커지고 함몰하는 지점에서는 방향이 반대로 바뀐다. 수직력은 표면에 수직한 힘으로 융기 지점에서는 위의 방향으로, 함몰지점에서는 아래 방향으로 생긴다.

연구자들은 눈을 가린 실험 참가자들에게 실제 융기가 있는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게 했다. 이 경우 참가자들은 당연히 머리 속에서 융기를 느낀다. 이때에 손가락에는 수평력과 수직력이 동시에 전달된다.

그 다음은 실제로는 융기가 없는 표면상태에서, 첫번째 실험의 융기가 있는 지점을 지날 때 손끝이 느낀 수평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이 지점에서 첫번째 실험에서와 같이 융기가 있다고 대답했다. 즉 실제 융기가 있을 때 발생하는 수평력만을 재현해도 마치 융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실험은 더욱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융기가 아닌 함몰이 있는 표면상태에서 첫번째 실험의 융기가 있는 지점에서 인위적으로 두배의 수평력을 가했다. 참가자들은 실제 자신의 손가락이 중간에 함몰 곡선을 따라 내려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융기를 느꼈다고 대답했다. 융기가 있을 때의 방향으로 두배 강한 수평력을 줬기 때문에 실제 함몰로 인해 생긴 반대방향의 수평력을 없애 손끝에는 오히려 융기를 지날 때 느끼는 방향의 수평력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실험에서도 수직력은 융기나 함몰을 느끼게 하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실험은 수평력을 조작함으로써 물체의 형상뿐 아니라 물체 표면의 거칠기도 가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촉각은 물체 표면의 실제 기하학적 굴곡보다는 물체를 만질 때 느껴지는 힘을 통해 물체의 형태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호 선임연구원
  • 강대임 물리표준부장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전자공학
  • 정보·통신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