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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전속 영양사 - 유전자

맞춤식단 시대 예고하는 영양유전체학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일부는 체중이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살이 찌기도 한다. 어떤 음식은 소화가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었다 하면 탈이 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식습관을 가졌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병에 걸리고 어떤 사람들은 걸리지 않기도 한다.

왜 사람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최근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유전자에서 찾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유전적 다양성이 영양소를 흡수하고, 대사시키며, 저장하고 배설하는 능력에 차이를 만들어 결국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요즘 각광받고 있는 ‘영양유전체학’의 기본 전제다.

서양인이 우유 잘 마시는 이유

염색체에 새겨진 유전자 정보의 형태를 유전형이라고 한다. 유전형이 특정한 음식, 스트레스, 흡연과 음주 같은 생활요인에 노출되면 소화능력, 살이 찌는 정도, 질병에 대한 감수성 등 다양한 표현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음식과 유전형 사이의 관계는 인체 기능에 대한 표현형을 변화시킴으로써 건강에 영향을 준다. 식품 속의 영양소는 특정한 유전자의 표현형 발달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유전형이 영양소의 반응을 결정하기도 하기 때문에 영양소와 유전자 간 상호작용은 매우 복잡하고 양방향으로 이뤄진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체가 동일한 식이요법에 같은 효과로 반응하지 않는 이유다.

북유럽계 민족은 우유를 비교적 잘 소화시키지만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과 동북아시아인은 젖을 떼면 우유 속의 유당을 분해하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유를 마시면 배에 가스가 차거나 설사를 하는 유당불내증이 나타난다. 반면 북유럽계의 사람들은 약 1만년 전부터 유당 분해 유전자가 스위치가 꺼지지 않도록 변형된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우유를 잘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인을 대상으로 폐암 발생 위험률을 조사한 결과 위험률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특정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변이를 가진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았다. 이 효소는 글루타티온 S-운반효소(GST)로 겨자과 식물에 들어있는 항암성분을 배설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항암성분이 몸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는다. 글루타티온 S-운반효소에 변이가 있는 사람이 암 예방에 더 유리한 이유다.

미국 버클리대 로널도 크라우스 박사는 LDL -콜레스테롤과 식이요법의 관계를 연구했다. LDL-콜레스테롤은 동맥경화를 유발해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일으키는데, 입자가 작을수록 위험도가 높다. 크라우스 박사는 유전적으로 입자가 작고 밀도가 높은 LDL-콜레스테롤을 가진 사람에게는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이요법을 권한다. 반면 입자가 크고 밀도가 낮은 LDL-콜레스테롤을 가진 사람은 같은 식이요법을 쓰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고탄수화물 식사가 큰 LDL-콜레스테롤 입자는 감소시키지만 작은 입자는 오히려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왜 유전적 차이에 따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른 결과가 나올까.

모든 사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유전자일지라도 실제로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에 개인마다 차이(변이)가 있다. 이를 유전자 ‘다형성’(polymorphism)이라고 한다. 유전자 변이에 따라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이 조금씩 달라지고, 이 변화가 대사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정 영양소를 섭취했을 때 다형성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발현되고, 어떤 유전자는 억제되기도 한다. 따라서 식품 섭취 효과가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유전자 변이 따라 식품 효과 차이

영양유전체학은 콜레스테롤, 비타민, 지질, 당질, 무기질 같은 영양소에 대한 생체반응의 다양성이 대개 유전자 다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최첨단 유전자 분석기술을 적용해 영양소들이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유전자의 개인별 미세한 변화가 식이와 관련된 질병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최근 채소나 과일에 풍부한 화학성분들이 심장질환,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의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한다는 보고가 많다. 이런 기능을 갖는 성분을 통틀어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라고 일컫는다. 앞으로 이 같은 식물성 식품의 성분들이 특정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영양유전학 연구들이 무궁무진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인의 주요한 사망원인인 당뇨, 고혈압, 중풍, 심장질환 발생을 증가시키는 핵심 원인인 비만도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잡하게 연관돼 발생한다. 현재까지 비만을 유발하는 단일 유전자가 확인된 바는 없으나, 비만과 관련 있거나 원인으로 생각되는 다양한 유전자가 밝혀지고 있고 이들과 에너지 대사의 관련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지방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UCP1에 문제가 생기면 지방이 과다 축적돼 비만이 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또한 대표적 비만 유전자인 베타3-아드레날린수용체(β3AR) 유전자는 지방 분해, 열 발생 대사와 관련이 있다. 열 발생 대사는 열 생성을 통해 과잉 에너지를 제거하는 것으로 원활히 일어나지 않을 때 에너지 소모가 감소해 비만이 된다. 베타3-아드레날린수용체 유전자가 정상인 경우와 변이가 있는 경우 운동이나 식이요법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많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지난 2003년 베타3-아드레날린 수용체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저열량 식사로 체중이 감소하더라도 혈중 지질성분이나 내장지방 분포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베타3-아드레날린수용체와 UCP3 유전자에 동시에 변이가 있는 경우 역시 내장지방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저지방 식사가 무조건 좋진 않아

지방세포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 중 식사요인에 민감한 유전자들의 다형성과 식이섭취 성향을 조사해 이들의 상호작용이 비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관심 분야다. 아디포넥틴은 지방세포에서만 특이하게 분비되는 단백질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최근 아디포넥틴 유전자의 염기서열 중 276번째 위치에 있는 단일염기의 변이에 따라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가 증가 또는 감소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현재 과체중 또는 비만인 경우 아디포넥틴 유전자에 이런 변이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체중감량을 위한 식이요법을 시행했을 때 반응 정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이 연구는 미국 터프츠대 인간노화영양연구센터(HNRCA)의 세계적인 영양유전체학의 대가 오르도바스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오르도바스 박사는 전통적으로 저지방, 저콜레스테롤 식사를 모든 사람들에게 권장하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아포지단백E(apoE) 유전자는 사람에 따라 E2, E3, E4의 세 가지 다형성이 나타난다. 저지방, 저콜레스테롤 식이요법은 이 중 아포지단백E4(apoE4) 유전자가 있는 사람의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떨어뜨리는데 유용하다.

오르도바스 박사는 “저지방 식이요법이 모든 사람의 콜레스테롤을 낮추지는 못한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됐다”며 “개인의 유전자 구성에 따라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단 유전자와 식품 간 이 같은 상호작용은 인종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다른 아포지단백A1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식품으로 불포화지방산을 섭취해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알려져 있는 HDL-콜레스테롤을 조절할 수 있다. 즉 아포지단백A1 염기서열의 75번째 위치에서 구아닌(G)이 아데닌(A)으로 바뀌면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섭취할수록 HDL-콜레스테롤 농도가 증가했다. 반면 이런 변이가 없으면 오히려 HDL-콜레스테롤 농도가 떨어졌다.

2001년 필자의 연구팀은 선식을 먹었을 때 아포지단백E 유전자 다형성에 따라 체내 지질 대사가 일어나는 정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아포지단백E2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반면 아포지단백E3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 등 전반적인 지질대사가 활발히 일어났다.

지방 대사나 식이섭취에 민감한 유전자 변이의 역할을 규명하면 개인별 ‘유전적 지문’에 따라 비만이나 비만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 위험도가 높은 사람에게 개인별로 알맞은 식품 권장량과 섭취방법을 알려주거나 생활습관 개선을 유도하면 병의 시작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유전자 분석기술은 최근 식품영약하과의 접목을 서두르고 있다. 개인별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그에 따른 맞춤영양 식사를 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첨단 맞춤 식이요법 등장

과거에는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알아내는 연구가 많았다면 이제는 유전자 타입별로 적합한 영양소와 그 필요량을 찾는 연구가 중심이 되고 있다.

영양유전체학은 두 가지 연구 분야로 나뉜다. 개인별 유전적 구조의 차이가 식품 섭취 후 대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영양유전자학’이 그 중 하나. 임상의학과의 결합이 필수다. 이를 응용하면 유전자 다형성에 따른 영양소 요구량을 결정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최적화하는 개인별 맞춤형 식사 처방이 가능해진다. 이와 반대로 ‘영양유전학’은 영양소가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건강기능식품의 체내 작용기전을 규명하고 유전적 배경에 따른 식품의 판매대상자를 선별하는데 응용할 수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 기술과 식품영양학의 접목은 결국 심혈관 질환처럼 식이요인과 관련이 깊은 만성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지금처럼 일반적인 식이요법보다 유전적 배경을 근거로 각 개인에 맞는 더 효율적인 식이섭취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최종적으로 ‘유전체 기반 라이프스타일 조정안’을 확립해 유전 위험인자를 갖는 대상자를 조기에 선별, 평생 개별화된 맞춤형 생활요법을 따르게 함으로써 대사성 질환의 발생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소비자의 상당수는 영양정보가 본인이나 가족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 자신에게 적합한 식품의 섭취가 질병을 예방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향후 10년 이내에 소비자가 식품을 선택·소비하는 성향에 영양유전체학 기술이 함축된 ‘개인맞춤영양’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에서는 8000억 달러에 달하는 전체 식품시장의 10%가 개인의 유전적 배경에 따른 맞춤영양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이미 식품의 기능성이나 안전성 정보와 개인별 유전정보를 상당량 축적하고 있다. 2000년부터 미국 그레이트스모키스 진단연구소와 인터루킨 제네틱스, 영국 사이오나 같은 기업들은 개인별 맞춤유전자 진단프로그램을 개발해 상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1월 1일부터 발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유전자검사를 실질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전자검사업체 대부분의 경우 연구 수준은 미약하고 설비나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향후 20년 동안 의료기술은 지난 2천년 동안보다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과기부 ‘국가과학기술지도’는 질환별 유전자검사 같은 신개념 진단법, 예방 중심의 의료기술, 유전적 차이에 따른 맞춤치료법 개발의 세 가지 세부내역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영양유전체학을 이용한 영양유전자검사 프로그램 개발은 우리나라 미래 의료기술의 변화를 실현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중요한 유전자 다형성을 발견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최적화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만드는 것이 영양유전체학에 거는 가장 큰 기대다.
 

식이요법의 효과가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도 유전자 변이 때문이라는 게 영양유전체학의 기본 전제다. 미래에는 환자 각자에게 좀더 적합한 식이요법 처방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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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종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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