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는 사회 전 분야에 끊임없이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디지털 기술이 처음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대한 요구가 급증했다. 예를 들어 90년대에는 처음으로 외부 저장장치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컴퓨터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90년대 중반에는 인터넷 보급률이 낮아서 네트워크로 정보를 주고받기가 어려웠다. 클라우드서버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다운’ 받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나마 이동식 저장매체 플로피 디스크(일명 디스켓)이 유일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플로피 디스크는 바로 위기에 빠졌다. 약한 내구성 때문이다. 플로피 디스크는 속에 있는 원형의 자성 디스크가 자기장의 변화를 기록해 정보를 저장한다. 컴퓨터에 디스크를 넣으면 자성 디스크가 빠르게 돌아가고, 컴퓨터가 데이터를 읽는다. 이때 정보를 읽는 헤더와 디스크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쉽게 마모됐다. 자석을 가까이 둬서도 안 되고, 조금만 힘을 줘도 플라스틱 몸체가 찌그러졌다. 여러모로 안정성이 떨어지는 방법이었다.
이런 문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용량이 큰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였다. 90년대에는 디스켓에 소프트웨어를 담아 판매했다.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작다보니 분할 압축으로 디스켓 여러 장에 한 소프트웨어를 담았다. 용량이 작은 게임은 두세 장, 용량이 큰 윈도 같은 운영체제는 수십 장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디스켓 40장짜리 윈도를 설치하려면 반나절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1번부터 40번까지 번호가 적힌 디스켓을 차례대로 넣었다 빼야 했다. 만약 38번 디스켓이 고장이라도 나면 지금까지 했던 작업이 말짱 꽝이 돼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됐다. 오죽하면 SSD를 만드는 리뷰안테크의 안현철 대표가 “디스켓이 하도 답답해서 내가 솔리드 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직접 만들었다”고 웃으며 말할 정도다. SSD란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장매체다.
소중한 정보를 저장해야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 해프닝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플로피 디스크는 큰 위기에 빠졌고 결국 이보다 용량이 크고, 안정적인 새로운 기술이 플로피 디스크를 대체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CD와 USB다. 두 매체는 디스켓과 크게 달랐다. CD는 자성이 아니라 레이저 광을 썼다는 점이, USB는 아예 반도체를 썼다는 점이 획기적이었다. 과학에서 말하는 ‘패러다임’ 변화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혁명이었으니까.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
너바나가 나오기 직전 락은 특유의 저항정신을 잃고 상업성에 몰두한 상태였다. 새로운 시도가 없어지고 화려함만이 남았다. 너바나는 명곡 teen spirit’으로 락의 저항정신을 다시 부활시켰다.
저항은 음악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쿼티(QWERTY) 자판에 대한 일화가 특히 유명하다. 쿼티는 키보드맨 왼쪽 위에 놓인 영어 자판을 순서대로 읽은 것으로, 오늘날 전세계가 쓰는 영문 자판이다. 효율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영어 자판을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가장 많이 쓰는 글자 중 하나인 ‘a’ 같은 알파벳은 오른쪽으로 옮겨야겠지만, 이 자판은 계속 쓰이고 있다. 더 편하고 효율적인 기술규격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과거 기술에 익숙한 기존 사용자들은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디지털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10/10 법칙’이란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10/10 법칙은 플랫폼을 만드는 데 10년이 걸리고, 이 플랫폼을 대중이 받아들이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비디오 테이프보다 성능이 뛰어난 DVD 플레이어는 1997년 처음 시장에 등장했지만 2000년대가 돼서야 널리 쓰였다. HDTV,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이메일 등이 모두 출시 후 널리 쓰‘Smells like teen spirit’으로 락의 저항정신을 다시 부활시켰다.
저항은 음악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 쿼티(QWERTY) 자판에 대한 일화가 특히 유명하다. 쿼티는 키보드맨 왼쪽 위에 놓인 영어 자판을 순서대로 읽은 것으로, 오늘날 전세계가 쓰는 영문 자판이다. 효율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영어 자판을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가장 많이 쓰는 글자 중 하나인 ‘a’ 같은 알파벳은 오른쪽으로 옮겨야겠지만, 이 자판은 계속 쓰이고 있다. 더 편하고 효율적인 기술규격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과거 기술에 익숙한 기존 사용자들은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디지털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10/10 법칙’이란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10/10 법칙은 플랫폼을 만드는 데 10년이 걸리고, 이 플랫폼을 대중이 받아들이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비디오 테이프보다 성능이 뛰어난 DVD 플레이어는 1997년 처음 시장에 등장했지만 2000년대가 돼서야 널리 쓰였다. HDTV,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이메일 등이 모두 출시 후 널리 쓰이기까지 10년 내외의 시간이 걸렸다. 90년대 사람들의 디지털에 대한 반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2000년 1월 1일 0시 0초, 세계 멸망?
디지털에 대한 저항이 절정에 이른 사건은 Y2K문제다. Y2K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컴퓨터의 시간 표기에 문제가 생겨서 기간시설이 고장 나고, 도시는 어두워지며, 핵미사일이 발사돼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당시에는 진지했다.
Y2K는 오래된 컴퓨터의 유산이다. 1970년 이전에는 연도를 저장할 때 ‘1970’이라고 저장하지 않고 ‘70’이라고 저장했다. 컴퓨터 저장 공간을 아끼고, 데이터처리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앞에 두 자리를 더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전의 데이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같은 표기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2000년을 앞두고 큰 문제가 생겼다. 컴퓨터가 1900년과 2000년을 구분할수 없게 된 것이다. 2000년을 1900년으로 착각한 컴퓨터가 100년치 전기요금을 청구하고, 모든 남자들이 다시 군대에 가야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혼란을 막기 위해 세 가지 해결책이 나왔다. 첫째는 기존의 모든 두 자리 연도 데이터를 네 자리로 바꾸는 방법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다. 연도 표시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방법도 있다.
2000년 1월 1일을 ‘00/01/01’에서 ‘101/001’로 바꾸는 방법이다. 연도에는 백의 자리를 추가하고, 달과 일의 구분을 없애고 그 해의 몇 번째 날인지로 현재 날짜를 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기존 표시 방식을 그대로 두고 연산할 때만 00년으로 표시된 데이터를 2000년으로 바꿔 계산하는 방식이다. 비용도 적고 간단한 패치만으로 할 수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됐다. 이런 해결책들 덕분에 큰 사고 없이 Y2K를 극복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Y2K가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 세계적으로 400조가 넘는 돈이 대기업과 정부의 주요시설에 투입됐는데, 여기서 소외된 작은 회사, 학교, 도서관 같은 시설에서 생각만큼 Y2K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Y2K는 아날로그 시대를 떠나보내는 우리의 공포가 만들어 낸 허상은 아니었을까.
[90년대 후반 Y2K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도시괴담이 떠돌았다. 걱정과 달리 막상 2000년이 되자 별일(?)은 없었다. 정부가 대책을 잘 세운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까.]
표준화를 향한 과학기술의 질주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양성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특히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 상업용 기술 시장에서는 다양함보다는 ‘표준’이 우선시 돼야 한다. 이 표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표준은 다양한 초기 기술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만들어 진다. 한 예로 표준화된 형태의 자전거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초기 자전거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방향전환이 안 되는 최초의 자전거 셀레리 페리, 가죽 안장을 도입한 하비 호스, 페달을 도입한 맥밀란식 자전거, 빨리 달리기 위해 앞바퀴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든 하이힐 자전거 등 수많은 시도 끝에 현재의 자전거가 탄생했다. 이들 모두 최종적인 경쟁에서 패배했지만 이들은 단순한 패배자가 아니다. 다양성으로 현재의 표준을 발전시킨 ‘위대한 패배자’다.
90년대에는 이런 위대한 패배자들이 특히 많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대중은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똑같은 기능을 하는 여러 기술이 매일 나타나고, 또 매일 사라졌다. 예를 들어 휴대용 통신기기 시장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것은 ‘호출기(삐삐)’였다. 삐삐는 값싼 기기값과 낮은 요금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한때는 가입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삐삐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중전화 옆에서 발신이 가능한 시티폰이 나오기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삐삐가 표준의 자리를 내준 것은 90년대 후반에 휴대폰이 보급되면서부터다.
재기발랄한 노트북이 울트라북 만들었다
90년대의 다양성이 꽃을 피운 것은 노트북이다. 오래된 노트북을 수집하는 안현철 대표는 “현재의 노트북이 성능은 더 좋을지 모르지만 제조사별로 특징이 없다”고 말했다.
90년대 노트북은 달랐다. 시대를 바꾼 ‘명품’으로 불리는 싱크패드 시리즈에는 키보드 중간에 빨간 동그라미가 있다. 트랙포인트라고 불리는 이 동그라미에 손을 대고 원하는 방향으로 압력을 주면 마우스 포인트가 움직였다. 현재의 터치패드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셈이다. 트랙포인트 전의 모델들은 현재 터치패드 자리에 있는 커다란 공을 굴려서 포인트를 움직였다.
볼마우스와 동일한 원리인데 쉽게 공이 뻑뻑해져서 사용하기 불편했다. 트랙패드는 이런 불편함을 한방에 해결해줬다. 싱크패드는 나비 모양의 키보드로도 유명하다. 싱크패드 701 모델은 평상시에는 작은 몸체에 키보드를 접었다가, 노트북을 열면 날개를 펴듯 펴지는 키보드를 도입했다.
무게도 가벼워졌다. 당시 노트북의 무게는 3~4kg 정도였다. 노트북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부품이 지금보다 무거웠다. 가볍고 튼튼한 소재가 없던 시절이라서 무거운 소재로 노트북 프레임을 만들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무게만도 500g이 넘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대우전자의 7420T다. 이 노트북은 무게와 두께를 기존의 절반으로 줄였고, 가격도 쌌다.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7420T가 무게를 줄인 비법 중의 하나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뺀 것이다. 대신 전용 포트와 액세서리를 만들어 필요할 때만 컴퓨터에 연결할 수 있게 했다. 종이처럼 얇은 현대의 울트라북들이 CD 드라이브를 연결할 때 많이 쓰는 방식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노트북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터치형 패드, 가볍고 얇은 동체, 외장 액세서리. 모두 90년대 노트북 제조사들의 다양한 시도의 결과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오래된 노트북과 90년대 과학기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현재의 첨단 과학에 정신이 팔려 오래된 기억을 잊지 말자. 지금 과학기술도 언젠가는 90년대의 과학처럼, 추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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