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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유로파를 향해 떠나다

⓬ 마지막 화 - 심우주 탐사

유로파를 향해 떠나다
2040년 3월, 당시 나는 화성에서 돌아온 뒤 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으로 복귀해 동료들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밀려 들어왔고, 방송 인터뷰와 신문 칼럼 집필, TV 출연 요청이 이어졌다. 요청에 일일이 응하면서도, 화성탐사를 통해 얻은 수많은 우주기술을 산업계에 이전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른바 ‘파급기술(Spin-Off Technology)’ 발굴작업이었다. 그리고 5년 뒤 발사될 새로운 유인탐사선 임무도 계획하고 있었다. 목성의 위성, 유로파로 향하는 유인탐사선이다.
 
무인탐사선이 목성의 위성 유로파의 지하 바다를 탐험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원로 과학자와의 만남

그해 어느 날이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뒤 연구실로 돌아오니 책상에 입체 홀로그램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우주거북선 프로젝트’, 즉 유로파 유인탐사선 프로젝트의 국내 비밀 자문단 회의였다. 자문단은 20년 전에 항우연이나 대학을 정년 퇴임한 원로 우주과학자들과, 우주 기업의 사장, 은퇴한 과학기자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회의 장소는 백두산 근처에 있는 항우연의 심우주(deep space) 통신 지상국이었다. 통일이 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옛 북한 지역으로 가는 출장은 여전히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음날, 백두산이 훤히 보이는 회의실로 들어가자 백발이 성성한 10여 명의 자문위원들이 형형한 눈으로 나를 반겼다. 대선배인 이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아직은 대외비인 새 임무를 브리핑했다. 주제는 한국형 원자력 로켓을 탑재한 신형 유로파 탐사선이었다.

화성 이후 새로운 목적지인 유로파는 목성의 위성이다. 얼음 밑에 큰 바다가 있는 천체로, 여기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크기가 지구의 4분의 1로, 지름이 3140km다.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화성까지 거리의 9배에 달하는 6억3000만km이고, 무척 추워서 한낮에도 온도가 영하 130℃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태양 에너지도 지구상의 90분의 1 밖에 안 된다. 목성의 강한 자기장에 전자가 가속돼, 지구 주변에 부는 태양풍보다 최대 1만 배나 강한 전자기파와 방사능이 생명을 위협한다. 한마디로 가혹한 곳이다. 유로파 탐사는 화성탐사보다 몇 배 더 위험하고 힘든 여정이 될 것이었다.

유로파는 목성과 주변 형제 위성인 가니메데와 칼리스토의 중력 때문에 두께 100km에 달하는 얼음 층 곳곳에 균열이 있다. 이번 탐사의 목적은 이 틈 속으로 무인 원자력 수중탐사선을 투입해 생명체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먼 거리와 혹독한 환경은 탐사선 우주거북선 호의 개발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고된 시도 끝에 우리는 100t짜리 탐사선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화학로켓 대신 쓸 강력한 원자력 로켓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원자력 로켓 엔진을 쓰면 도착 시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기존의 로켓을 이용하면 2년이 걸릴 거리를, 새 로켓으로는 6개월 만에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효율의 원자력 전지를 이용해 1MW의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도 연구했다. 이 전지는 탐사선 내부에 전력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탐사선 외부에 인공 플라스마 막을 만들어 목성의 강력한 전자기파와 방사선을 차단한다. 마치 단단한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자문단 위원들은 2020년대 한국형 발사체 개발과 달 탐사에 종사했던 사람들로 경험이 풍부했다. 이들은 핵심기술은 충분히 개발했는지, 예산은 충분한지, 무엇보다 막대한 개발비가 지출되는 임무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논리가 충분한지 등을 날카롭게 물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 해외 기관과의 협력이 양국 사이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체결됐는지도 물었다. 마지막에 들은, 은퇴한 과학기자의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저는 일찍이 2020년대에, 우리의 힘으로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달 탐사를 해야 한다고 기사를 썼어요. 그 노력이 20년간 한국의 우주개발을 좌우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죠. 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확인할 수 있어 기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때입니다. 다시 새로운 우주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원자력 로켓 같은 신기술을요. 백두산 산신령이 돼서도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유로파의 내부 구조를 상상한 모습. 표면의 수층은, 비록 겉은 얼어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뜻하며 대류하는 얼음이거나(위), 액체 상태의 물로 추정된다(아래).
[유로파의 내부 구조를 상상한 모습. 표면의 수층은, 비록 겉은 얼어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뜻하며 대류하는 얼음이거나(위), 액체 상태의 물로 추정된다(아래).]

통일한국 우주강국

2020년대에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자력으로 달 탐사를 성공시킨 일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한국은 2020년대 자타가 공인하는 우주 선진국이 됐다. 우주 산업은 자동차와 선박의 뒤를 잇는 국내 산업의 대표주자가 됐다. 전세계 우주시장의 10%를 차지하며 연 5000억 달러를 수출할 정도였다. 한 달에 10여 차례의 발사가 이뤄지는 고흥과 제주 발사기지는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우주제품 개발도 활발해졌다. 우주의 무중력을 이용한 우주 제약공장에서는 정밀화학 반응을 이용해 항암제, 에이즈(AIDS) 치료제, 치매치료제, 근위축증(루 게릭 병) 치료제를 생산했다. 우주에서는 줄기세포 생장이 지상보다 10배나 빠르다. 이를 이용해 화상 환자를 치료할 인공피부와 신장, 심장 등 인공장기를 만들었다. 우주에서 제작된 나노로봇에 암을 추적하는 암표적 DNA를 붙여, 암세포만 죽일 수 있는 ‘나노 항암수류탄’ 기술도 개발됐다.

2020년대 말 한반도에는 큰 위기가 있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한계에 이른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들고 나오며 위협 수위를 높여 갔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형 발사체 기술과 뛰어난 위성 기술을 이용해 고고도와 중고도, 저고도의 공격을 다 막을 수 있는 삼중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독자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북한이 시도하던 핵무기 탑재 미사일을 무력화시켰고, 군사적 억제력은 평화통일 협상의 견인차가 됐다. 2030년, 우리는 드디어 평화통일을 했다.
 
원자력 추진 로켓의 상상도.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원리로 열을 생산한 뒤 액체수소를 가열해 분사한다. 안전성 등 논의가 많이 필요해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래엔 어떨까.
[원자력 추진 로켓의 상상도.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원리로 열을 생산한 뒤 액체수소를 가열해 분사한다. 안전성 등 논의가 많이 필요해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래엔 어떨까.]

새로운 출발 - 먼 우주를 향하여

2045년 3월, 나는 드디어 ‘2040 우주거북선 호’ 안에 앉아 있다. 10년 전 초짜 우주인 주제에 겁 없이 국제 화성탐사선의 한국 대표에 도전해 선발됐던 나는, 이제는 선장으로서 한국이 주도하는 유로파 탐사선에 탑승했다. 한국인 여섯 외국인 넷으로 구성된 이번 탐사팀은 5년 전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왔다.

고흥 발사기지에서 우주거북선 호가 발사 카운트를 기다리고 있다. 탐사선 창문 너머로 푸른 고흥 앞바다가 보였다. 왕복 1년, 체류기간 1년. 지구의 물은 2년 뒤에나 다시 볼 수 있을 터였다. 유로파에도 물이 있다지만 지구의 물과는 느낌이 다를 터였다.

10년 전 화성 탐사를 할 때, 나는 향수병에 시달렸고 말 못할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다시는 우주 탐사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지만 다짐은 무용했다. 나는 또다시 우주 탐사를 앞두고 있다. 사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단 하루도 우주 비행을 잊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이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짐은 그런 애탄 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아마 이번 임무를 마친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다시 10년 뒤에 있을 더 먼 우주, 토성과 그 너머를 비행할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귓가에는 지상에서 흔한 박수 소리도 환호성도 들리지 않았다. 긴장된 침묵만이 고요를 이기고 있을 뿐이었다. 우주를 향해 걸어본 사람만이 알, 우주처럼 깊은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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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달탐사연구단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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