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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사랑은 얼음스케이트를 타고

친절한 우아씨의 똑똑한 데이트 ➊


소녀는 언젠가부터 뒤통수가 따갑습니다. 귀가 가렵기도 하고요. 누군지 짐작은 갑니다. 얼마 전부터 소녀를 좋아한다며 쫓아다니는, 같은 공대를 다니는 소년입니다. 그 애가 싫으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키 크고 잘생긴 외모에 공부도 썩 잘합니다. 성격도 좋아 친구도 많고요.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요? 바로 나이입니다. 소년은 소녀보다 세 살이나 어렸어요. 20대 초반, 그리고 대다수의 10대 독자 여러분들이 느끼기에 세 살은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저 애는 초등학생 꼬꼬마였는걸요! 만약 저 애랑 사귀었다가 나중에 헤어질 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철없이 굴면 어찌하나요?

 


얼음은 ‘원래’ 미끄럽다

그래도 사랑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자존심 강한 소녀가 콩닥거리는 가슴을 숨기고 있을 뿐이지요. 소년이 다가옵니다. “누나, 이번 주말에 저랑 데이트 해요.” 꺅, 정말 당돌하군요!

소년이 데려간 곳은 아이스링크입니다. 네, 맞습니다. 겨울 낭만 데이트의 ‘끝판왕’ 얼음스케이트장이지요. 가르쳐준답시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허리라도 한번 둘러보려는 남정네들로 인해(여인네일 수도…) 데이트코스로 악용(?)되는 곳입니다. 소녀는 생각합니다. ‘오호라, 제법인걸?’

스케이트를 갈아 신은 뒤, 조심조심 스케이트장 안으로 들어섭니다. 사실 소녀는 얼음스케이트를 꽤 탑니다만, 오늘의 데이트를 기획한 소년에게 예의를 차려야죠. 엉거주춤, 엉덩이는 뒤로 빼고 두 팔을 휘젓다가…, 꽈당! 휴, 꽤 아픕니다. 소년이 얼른 다가와 부축합니다.

“누나, 얼음스케이트가 왜 미끄러운 줄 알아요?”

“그거야 쉽지~. 스케이트 날 압력 때문에 얼음이 녹아서 그런 거 아냐?”

“땡~! 누나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압력이 높아지면 어는점이 낮아져서 얼음이 녹는 건 맞지만, 스케이트가 제대로 미끄러질 만큼 충분히 녹으려면 스케이트 날 위에 수십 명이 올라서야 한대요. 잘못된 상식이라는 얘기죠. 실제로는 마찰열 때문이거나 얼음 표면의 겔 층 때문이래요. 히히.”

하, 이 어쩔 수 없는 공대생의 대화라니. 그러나 소녀는 싫지 않습니다. 아는 척 하려는 소년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어요.

실제로 눈과 얼음의 비밀은 아직도 많은 과학자가 호기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동계스포츠가 과학의 옷을 입고 나날이 더 빠른 기록을 내는 이유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바우덴 교수가 스키가 달릴 때 스키와 눈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열을 계산한 결과,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물 층이 만들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얼음이나 눈은 온도가 아무리 낮아도 표면에 얼어붙지 않는 끈끈한 겔(gel) 층이 존재해 결국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 주목 받고 있어요. 얼음 표면의 물 분자는 속에 있는 분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어서 단단하게 얼지 못하고 미세한 물방울들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스케이트 날로 압력이나 마찰을 가하지 않아도 얼음 표면은 늘 미끄럽다는 얘기입니다.





 

사랑이 타오르는 온도, 영하 17℃

이번엔 소녀가 한마디 거듭니다. “야! 그럼 너, 그거 알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빙판 온도가 영하 17℃쯤 되는데, 얼음스케이트 타기 제일 좋은 온도래. 요건 몰랐지?”

…이렇게 여우처럼 톡 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소녀의 얼굴에 후회하는 표정이 잠시 스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소년에게는 소녀의 이런 모습마저도 귀엽게 보입니다.

10cm 두께의 아이스링크 빙판 아래에는 얇은 배관이 있어요. 액체 냉매가 이 배관 속을 흐르면서 열을 빼앗아 얼음을 얼립니다. 얼음 온도가 영하 30℃ 이하로 내려가면 표면에 물 층이 생길 틈이 없고, 온도가 높아 물이 너무 많이 생겨도 스케이트를 즐기기 어렵기 때문에 얼음 온도를 보통 영하 15~20℃로 유지합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딱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커플이 여럿 눈에 띕니다. 그럴 수 밖에요. 작정하고 영하 17℃ 빙판 위를 구른 자들인걸요(>;.<;). 소년과 소녀도, 오가는 말이 줄고 마주잡은 손끝이 신경이 쓰일 때가 돼서야 가슴이 다시 콩닥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 타오르는 온도는 영하 17℃인 것 같네요.

괜찮다는 소녀를 소년은 굳이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소녀와 소년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고 있네요. 역시 부끄러운 새내기 커플에게는 얼음 스케이트 데이트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코끝이 빨개진 소년의 뒤로, 편의점 간판이 환하게 빛을 내고 있네요. 하얗고 따뜻한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소녀가 말합니다.

“라면 먹고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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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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