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은 기사에 인용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통신사 AFP가 일본 국립보건의료과학원의 연구결과를 보도하며 “연구팀장 구누기타 나오키연구원은 ‘전자담배 제품 하나에서 일반담배보다 10배 더 많은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고 말했다”고 적은 것이다. 포름알데히드는 1급 발암물질이다. 이를 국내 언론이 그대로 번역해 실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며칠 뒤, 외신들은 구누기타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정정보도를 냈다. “실험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가 일반담배의 10배(1600㎍/10모금) 이상 검출된 경우가 한번 있었지만, 너무 극단적이고 원인도 알 수 없어 논문에는 결과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13개 브랜드의 전자담배 증기를 분석한 결과, 9개 브랜드에서 포름알데히드와 아세트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하지만 대부분 일반담배보다 양이 적었다.
전자담배도 간접흡연 위험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대하는 국민들의 인식이다. 한 블로거는 위의 논문에 적힌 각종 유해물질의 수치를 분석해 “몇몇 제품을 제외하고는 포름알데히드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양과 비슷하게 검출됐다”며 “전자담배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말은 다르다. 전자담배에 대한 정책을 연구하는 이 부연구위원은 “13개 제품 가운데 절반이 넘는 9개 제품에서 포름알데히드 등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며 “특히 전자담배는 금연보조제로 홍보되고 있기 때문에 발암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일부 제품에서 미량이라도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사람들이 전자담배가 ‘전혀 유해하지 않다’고 오해하고 있는 점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에리카 길버트 캐나다 오타와대 박사는 2009년 캐나다 의료협회 저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최근 다국적 담배회사가 다양한 신종담배를 생산하는 목적은 건강에 덜 해롭다는 인식을 심어 흡연자가 흡연을 지속하게끔 유도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전자담배가 금연을 돕는다는 증거도 없다. 이 부연구위원은 “자체 조사 결과, 전자담배 이용자 중 75%가 일반담배를 동시에 피우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 니코틴패치와 달리 전자담배는 과다 흡수가 우려될 만큼 니코틴이 많아 금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논문은 전자담배의 니코틴 액상이 아닌 ‘증기’를 분석한 결과라는 데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담배가 간접흡연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걸 시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2년 국내 시판 중인 전자담배 증기의 유해성을 연구한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학과 교수는 “액상에 든 것보다 10~100배 더 많은 포름알데히드가 증기에서 검출됐다”며 “가열 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 일반담배 연기에서 검출되는 양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4000종 이상의 유해물질이 든 일반담배와 비교하면 전자담배가 덜 유해하지만, 전자담배 역시 몸에 해로운 담배일 뿐이다.
청소년엔 되레 흡연 유도
전자담배는 되레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거나 담배에 중독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질병관리예방본부가 청소년 3만80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흡연 청소년이 전자담배를 사용하면 성인이 됐을 때 하루 1갑 이상 담배를 피울 확률이 일반 흡연 청소년의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WHO는 지난해 8월, 전자담배를 미성년자에게 판매하는 것은 물론 공공 실내 장소 흡입도 금지할 것을 전세계에 촉구했다. 우리나라도 2011년 11월 니코틴 유무와 관련 없이 전자담배 기기를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했지만, 아직은 단속이 허술하다. 성인 인증 없이도 온라인에서 쉽고 싸게 구매할 수 있다. 2013년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전자담배를 경험한 청소년 비율이 7.5%에 달했다.
전자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려면 앞으로 10~20년 동안 추적 조사를 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어떤 악영향을 줄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신교수는 “국내 시판 중인 전자담배는 대부분 중국 등지에서 수입되는 것으로, 제작 표준이나 안전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며 “액상의 니코틴 함량이 제 각각이고 표기조차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심각한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부연구위원도 “매년 우리나라에 새롭게 출시되는 전자담배를 꾸준히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