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수km 달리는 일을 평소에 밥먹듯이 해야 한다. 달리기에 매력을 못느끼는 사람에게는, 왜 그토록 힘든 일을 사서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달리는 사람만이 느끼는 행복감이 있다. 바로 러너스 하이다. 마약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운동중 또는 운동후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고 한다. 특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이런 경험을 한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체중조절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 시작하지만 그들이 운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운동이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라톤과 같은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하면 ‘러너스 하이’라는 최상의 행복감에 젖어든다고 한다. 왜 그럴까.
기분좋은 운동
북미에서도 197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운동의 중요성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특별한 목적 없이 혼자서 달리는 사람은 범죄 용의자로 의심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건강을 위한 운동 붐이 일어나면서 점차 많은 사람이 다양한 종류의 운동에 참여했고, 또한 운동을 지속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에는 마라톤 붐이 일고 있다.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부터 과학자들은 운동을 지속하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들 또한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연구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격렬한 운동 후에 긴장과 걱정이 사라진다고 말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격렬한 운동을 한 후 2-5시간 동안 긴장과 걱정이 감소된다고 연구자들은 보고했다. 6주에서 20주 정도 규칙적으로 운동에 참가한 사람의 경우에도 이런 기분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우울증이 있거나 자신감이 낮은 사람은 운동 참가 후에 우울증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이때부터 연구자들은 운동을 지속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상의 행복감 느낀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어느 정도 달리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다고 한다. 마치 헤로인과 같은 마약을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상태와 비슷한 의식상태나 행복감을 느낀다. 이 현상이 장거리 러너에게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학자들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또는 ‘운동 하이’(exercise high)라고 표현했다. 일반인은 이것을 ‘러닝 하이’라고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운동 하이라는 표현은 1979년 맨델(A. J. Mandell)이 쓴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The Second Wind)에서 유래됐다. 운동을 시작해서 3-5분이 지나면 운동 초기보다 몸과 마음이 운동에 적응이 돼 좀 편해지는 상태가 오는데, 맨델은 이를 세컨드 윈드라고 했다. 또한 그는 세컨드 윈드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면 ‘운동 하이’ 상태가 온다고 표현했다. 맨델의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30분이 지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다리와 팔은 가벼워지며 리듬감이 생기고, 피로는 사라지며 새로운 힘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 40km를 뛰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씩 두번째 야릇한 시간이 온다(세컨드 윈드 이후 운동 하이 상태가 온다는 말이다-필자 주). 즉 주위는 굉장히 밝고 색깔이 아름답고, 물은 빛나고 구름은 부드럽게 숨쉬며, 내 몸은 이 세상에서 분리돼 수영을 하는 느낌이다. 만족감은 내 맘속 깊이 밀려와서 넘친다…”
다음은 달리기에 관한 잡지에서 어느 러너가 한 말이다. “두달 동안 하루에 10km를 달린다면 영원히 달리는데 빠져들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영원한 행복은 10-20km 사이에 위치한다는 것을…. 나는 이런 행복감을 운동할 때마다 느낀다. 달리기 후 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마음은 텅빈 상태에서 채워지기 시작한다. 오후까지 나의 생활 속에 부드럽고 지속적인 에너지, 힘, 그리고 두려움 없는 지혜를 갖게 되는 기분이 든다.”
장거리 러너의 이런 표현은 운동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운동과학자들이 운동 하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첫번째 관심사는 운동 하이의 역치다. 즉 운동 하이를 경험하려면 운동 강도는 얼마나 높아야 하는지, 운동 시간은 얼마나 길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느 보고서에서는 운동 하이를 느끼려면 운동 강도가 적어도 중정도 이상 격렬해야 하며 운동 시간은 적어도 30분 이상 지속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30분 이상 운동을 하면 그제야 가벼운 운동 하이를 느끼기 시작한다고 적고 있다. 다른 연구에서는 낮은 강도와 짧은 시간의 운동이 기분을 좋게 하고 불안감과 우울증을 감소시키지만, 최상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운동 하이 상태까지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엔도르핀 분비 5배 증가
실제 운동 하이는 마약과 같은 약물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할까.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뇌의 화학적 변화로부터 생기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심리·생리학적으로 설명돼야 한다.
일부 과학자는 뇌의 생화학적인 현상과 관련해서 이런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추신경계(뇌와 척수)의 화학적 전달물질인 오피오이드 펩티드에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오피오이드 펩티드는 아편, 모르핀, 헤로인과 같은 마약과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갖는 물질이다. 뇌에는 오피오이드 펩티드 수용체가 있어 이런 물질이 분비되면 자극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오피오이드 펩티드를 뇌 자체에서 생성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이것을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라 한다). 이런 물질은 통증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뇌의 기억력을 도와주고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베타 엔도르핀과 베타 리포트로핀, 그리고 다이노르핀이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에 속한다.
운동 하이를 일으키는 생화학적 지표에 관해서는 연구자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는 운동을 하면 엔도르핀과 리포트로핀, 그리고 다른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 분비가 증가돼 운동 하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정신적인 면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인 엔도르핀의 예를 보자. 이것은 체내의 어디에서 분비되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운동 관련 연구를 보면, 운동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 혈장 엔도르핀의 수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에도 혈액이 미치기 때문에 뇌에서 발견되는 베타 엔도르핀도 증가한다. 특히 뇌에서 발견되는 베타 엔도르핀은 안정시에 비해 운동시에는 일반적으로 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서는 혈장 엔도르핀의 수치가 높지 않아도 운동 하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혈장 엔도르핀 수치만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동물연구에서도 운동을 하면 오피오이드 펩티드가 증가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일부 연구자는 중추신경계의 또다른 화학적 전달물질인 모노아민의 변화가 운동할 때 나타나는 감정 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운동을 하면 대표적인 모노아민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의 농도가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화학 물질은 우울증과 깊은 관련이 있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 사람의 감정은 우울해진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이런 물질의 분비가 줄어들도록 조절되므로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결국 모노아민과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가 상호 작용하면 기분을 좋게 하고 최상의 행복감인 운동 하이를 맛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운동 하이와 관련된 뇌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운동 하이는 달릴 때 주위 환경도 중요하다. 주위 환경이 쾌적한 곳에서 달려야, 달리는 사람의 체내에서 생물학적 반응이 제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운동 하이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운동 하이가 나타나는 운동 시점이나 거리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운동 하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쉽지 않다.
달리기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탈피해 긴장을 풀 수있게 해준다. 또한 기분이 좋게 도와주며 더 나아가 운동 하이를 느끼게 한다. 이런 만족감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이 그토록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