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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Y염색체 1000만 년 뒤 사라질까

X¯Y=X

자녀의 성별에 관해 전해오는 시원통쾌한 이야기 하나. 아버지는 아들을 갖고 싶었지만 첫 아이는 딸이었단다. 아버지는 시시때때로 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했고, 딸은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했다. 딸이 학교에서 X와 Y 염색체에 대해 배웠던 날, 또다시 어머니를 구박하는 아버지에게 딸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아빠, 아들인지 딸인지는 아빠가 가진 정자가 X 염색체 정자인지, Y 염색체 정자인지에 따라 정해진다는데, 그럼 내가 딸인 건 아빠 탓이잖아?” 그 이후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아 모두가 행복해졌다는 이야기.​


세 번째로 작은 염색체
 
사람 염색체는 23쌍(46개)이다. 1번부터 22번까지 22개의 상염색체가 한 쌍을 이루고 있고, 마지막 23번째 쌍은 두 개의 성염색체로 구성돼 있다. 여성이 두 개나 갖고 있는 X 염색체는 전체 염색체 중에서 여덟 번째로 크며, 전체 염기서열 중 5.1%나 차지한다. Y 염색체는 반대다. 끝에서 세 번째로 작고, 전체 염기서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9%(염기 개수 약 7600만 개)다. 안에 들어 있는 정보도 적을 수밖에 없다. 특이점이 있다면 의미가 없어 보이는 반복서열이 많고,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정보가 같은 ‘거울상 염기서열’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Y 염색체는 연구의 핵심에서 쉽게 제외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작아도 Y는 성별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늘 주목의 대상이다. 특히 Y 염색체가 앞으로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동물에서 Y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Y 염색체는 탄생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유전자가 사라져 지금처럼 짧아졌다는 연구가 종종 나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Y 염색체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나머지 부분이 굉장히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상반된 연구도 나와 풀이 죽은 Y를 격려하고 있다. 과연 Y는 이대로 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꿋꿋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Y 염색체의 탄생
 
Y 염색체가 처음부터 성별을 결정하는 성 염색체는 아니었다. 진화의 역사에서 초기 포유류는 성 염색체가 없었다. 당시 포유류가 어떻게 성별을 결정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다만 다른 생물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수정란 발생 초기 산성도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악어나 거북 등 일부 파충류가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성 염색체인 Y가 등장한다. Y 염색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3억 년 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그보다 1억 년 늦은 지금으로부터 1억8000만 년 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Y 염색체는 염색체가 복제되고 분열하는 과정에서, 수컷의 특징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는 상동염색체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생겨났다. 다행히 X 염색체와 짝을 이루면서 Y 염색체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Y 염색체가 지금처럼 짧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짧은 현대 Y 염색체의 비극은 초기에 다른 Y 염색체와 짝을 이루지 못하고 X 염색체와 짝을 이뤘다는 데서 출발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변한다. 염색체의 일부가 다른 염색체에 달라붙거나(교차, 전좌), 사라지거나(결실), 같은 부위가 반복적으로 생겨나거나(중복), 염기서열이 뒤집힐 수도 있다(역위). 자신과 같은 염색체와 쌍으로 존재하는 염색체는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경우 잘 보존된 쪽을 이용해 오류를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보완할 쌍이 없는 Y 염색체는 속수무책이었다. Y 염색체의 유전자에 해로운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계속 제거됐고, 잃어버린 부분이 돌아올 확률은 희박했다. Y 염색체가 한 쌍을 이루지 않은 시점에서 ‘Y 염색체의 몰락’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기 Y 염색체는 이 과정을 거쳐 빠르게 붕괴해 약 2500만 년 전, 처음 유전자 중 고작 3%만 남기며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짧
아졌다. Y 염색체에 있었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은 다른 염색체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2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Y 염색체가 사라질 거라고 주장한 호주국립대 제니퍼 그레이브즈 교수는 “이 속도라면 앞으로 1000만년 뒤 Y 염색체는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1000만 년은 우리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생물 진화로 보면 ‘눈 깜짝할 새’다.

 
 
유전자 2개면 정자 만드는 데 충분하다

아무리 Y 염색체가 쪼그라들었다고 해도 영영 사라지기까지 할까. Y 염색체에도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능이 있을 텐데. 그것이 바로 수컷을 수컷답게 만드는 유전자다. ‘Y 몰락설’의 또 다른 근거는 이 핵심 유전자의 수가 매우 적다는 점에 있다. 몇 개의 핵심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사를 갈 수만 있다면 Y 염색체 역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연구가 많이 진행된 다른 동물로 눈을 돌려보자. 동물의 Y 염색체에는 약 200개의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수컷을 결정한다고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단 하나, SRY 유전자다(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라는 뜻으로 ‘Sex-determining Region Y’라고 한다). SRY 유전자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다른 유전자가 그렇듯 RNA 분자를 만들지만,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다(일반적으로 RNA는 단백질을 만든다). 또 마이크로RNA의 저장소 역할을 하는데, 마이크로RNA는 단백질 생산을 조절한다.
올해 1월에는 SRY 유전자가 ‘Y 몰락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을 들썩이게 했다. 정세포(정자)를 만들기 위한 유전자는 단 두 개뿐이라는 것을 증명한 연구가 ‘사이언스’에 발표된 것이다. 미국 하와이주립대 연구진의 성과다. 연구진이 밝힌 2개의 유전자 중 하나가 SRY 유전자다. 나머지 하나는 EIF2S3Y 라는 복잡한 이름의 유전자다. 연구진은 수컷 생쥐가 될 수정란에 있는 Y 염색체에서 다른 유전자를 모두 제거하고 앞서 말한 두 개의 유전자만 남겼다. 그런데 이 생쥐가 정상적으로 성장한 데다, 정자까지 만들었다. 제대로 성숙한 정자는 아니었지만 인공수정을 이용해 2세대 생쥐를 만들 수 있었고, 2세대 생쥐는 아무런 문제없이 자랐다. Y 염색체에 두 개의 유전자만 있어도 자손에게 정상적으로 유전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물론 생쥐에게서 이랬다고 사람도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Y 염색체에는 EIF2S3Y 유전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 역시 EIF1AY라는 매우 유사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실제 기능도 비슷하다. 쥐의 유전자는 정자 초기 생산에 관여하는데, 사람은 이 유전자가 없거나 돌연변이가 생기면 무정자증이 나타나거나 Y 염색체가 두 개인 정자가 만들어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SRY 유전자와 EIF2 S3Y(인간은 EIF1AY)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동한다면 Y 염색체는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Y 염색체에 담겨있는 유전자 개수도 78개다. 그나마 실제로 활동하는 유전자는 20여개에 불과하다. Y염색체가 사라지기 더 좋은 환경이다.
 
 
‘Y 살아남는다’는 연구도 나왔지만
 
이처럼 그동안 많이 나왔던 연구는 ‘Y몰락설’을 지지하는 게 많았다. 그러나 올해 4월 ‘네이처’에 전혀 반대의 연구가 나왔다. 2500만 년 전까지 무서운 속도로 짧아지던 Y 염색체가 돌연 퇴화를 멈췄다는 것이다. 미국 MIT 화이트헤드연구소에서 나왔는데, 이 연구팀은 2012년에 유사한 연구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사람을 비롯해 침팬지, 붉은털원숭이 등 포유류 8종의 Y 염색체 염기서열을 비교했다. 이 결과 2500만 년 전 부터 지금까지는 Y 염색체에서 단 한 개의 유전자만 사라졌으며, Y 염색체의 몰락은 끝이 났고, 앞으로도 이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근거로 연구팀은 Y 염색체에 있는 12개의 유전자가 심장, 폐, 혈액과 같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Y 염색체가 단순히 자손 번식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이 유전자들은 X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와 짝(상동)을 짓고 있어 매우 안정돼 있다.
 
그러나 Y 몰락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Y 염색체에서 발견된 핵심 유전자의 수가 아직 적기 때문이다. 그레이브즈 교수는 “현재는 Y 염색체 몰락이 잠시 소강상태에 머문 것에 불과하다”며 “두더지들쥐나 고슴도치 중에는 Y 염색체가 아예 없는 동물 종도 있다”고 반박했다. Y 염색체는 여전히 몰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은 숫자의 유전자가 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고, Y 염색체의 가장 중요한 정보가 성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Y 염색체는 궁극적으로 진화를 통해 소멸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Y 염색체에 있는 모든 유전자가 밝혀지지 않았다. 염색체에 숨어있는 부분에서 정자의 형태, 난자의 막을 뚫고 들어가는 정자 머리 부분의 특성, 그리고 정자 꼬리의 형태에 영향을 주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인공수정이 아닌 정상적인 관계로 자손을 만들기 위해서는 Y 염색체의 많은 부분이 아직은 필요하다. 다만 긴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Y 염색체는 긴 생명의 역사를 통해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현재의 모습이 됐다. 2500만 년 전부터 변화를 멈추긴 했지만, 또다시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염색체인 것도 분명하다. Y 염색체는 많은 유전자를 잃어버렸지만, 동시에 아주 중요한 결정적 유전자는 안전하게 보존해왔다. 미래에 Y 염색체가 결국 사라질지 아니면 놀라운 생존력으로 계속해서 존재할지는 비록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영원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이철구_cklee2005@korea.ac.kr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5년 3월 고려대에 부임해 생명과학대학 생명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Y의 몰락
PART 1.Y염색체 1000만 년 뒤 사라질까
PART 2.Y가 사라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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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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