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겨울을 앞둔 10월. 슬슬 몸도 마음도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추위를 대비해 피하지방도 좀 불려 놓고, 아무리 추워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을 세뇌한다. 지난 겨울을 되짚어 보며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려는데…. 기억력 좋은 독자 여러분들은 지금쯤 깨달았을 거다. 지난 겨울은 안 추웠다! 그렇다면 올해는…?
지난 겨울을 잠시 되돌아보자. 우리나라는 참 따뜻(?)했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하 0.5℃로, 2012년 겨울이 영하 4.2℃, 2010년이 영하 4℃ 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따뜻’했던 겨울이었다. 당시 기상청은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에 내려오지 못해서 겨울이 따뜻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말하면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가 있는 중위도(북위 30~40°)까지 내려오면 그 해 겨울이 춥다는 의미다. 한파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2009, 2010, 2012년이 바로 그런 해다.
북극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 변화가 3배 빠르다
그렇다면 언제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로 내려오는 걸까.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여름철 북극 해빙이 녹은 뒤, 가을에 덜 얼수록 중위도엔 추위가 심해진다’는 가설이다. 그동안 여러 연구팀이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도전했는데 확실하게 증명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올해 9월, 필자의 연구팀이 이 가설을 설명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9월 2일자에 발표한 연구로, 필자가 있는 극지연구소를 비롯해 서울대, 포스텍, 전남대 등 국내 대학과 미국 알라스카대, 퍼시픽노 스웨스트 국립연구소의 연구진이 함께 이뤄낸 성과였다.
2013년 발표된 제5차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보고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전 지구 평균기온이 약 0.8℃ 정도 상승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북극지역은 100년 동안 약 3℃ 정도 상승했다는 점이다. 지구온난화 속도가 다른 지역보다 약3배 빠르다는 의미다. 북극 지역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북극 해빙 또한 빠르게 녹고 있다. 10년에 약 3.5%씩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여름만 예외적으로 전 해(2012년)보다 해빙이 많았지만, 1979년부터 관측된 자료를 살펴보면 점점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북극 해빙의 감소는 가을과 겨울에 더 큰데, 만일 여름에 해빙이 3% 줄었다면, 가을과 겨울에는 5% 줄어든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흥미롭게도 북극에서는 가을과 겨울에 온난화가 심해져 해빙이 많이 녹았는데도 중위도, 특히 우리나라가 있는 유라시아 지역은 최근 10년 간 과거에 비해 한파가 더 자주 나타났고 강도도 더 컸다.
![북극 해빙량의 변화](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4570162745423a05fb0a06.jpg)
북극 진동이 한파를 만들긴 하는데…, ‘왜?’는 몰랐다
지구 온난화 속에서 최근 중위도에 자주 나타나는 겨울 한파의 원인은 무엇일까. 관측 결과를 보면 북극 해빙의 양과 겨울 한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북극 해빙이 평년보다 많이 녹은 2009년과 2010년, 2012년 우리나라에는 한파가 왔다. 2013년 여름에는 예외적으로 북극 해빙이 늘어났는데, 같은 해 우리나라 겨울은 최근 5년 중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우리 연구팀은 북극 온난화에 따른 해빙 감소와 중위도 기후변화에 대한 연계성을 파악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시작은 북극을 싸고 도는 ‘극 소용돌이(polar vortex)’였다.
적도 부근인 저위도는 태양에너지 입사량이 많아 1년 내내 기온이 높고, 극지방은 거의 받지 못해 영하권에 머문다. 그 사이에 있는 중위도는 시기에 따라 저위도처럼 덥기도 하고, 고위도처럼 추울 때도 있다. 이때 고위도(극)와 중위도가 에너지를 주고받는 매개체가 북극을 중심으로 도는 극 소용돌이다. 극 소용돌이는 중위도 고기압과 고위도 저기압의 차이에 의해 동에서 서로 순환하는 거대한 띠 형태로 나타난다. 지상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류권부터 성층권까지 나타나는 거대한 대기 현상이며, 보통 북위 60° 부근에서 가장 강하다.
기압의 세기와 분포에 따라 극 소용돌이의 세기와 위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이때 중위도와 극 지역의 기압 차이를 ‘북극진동지수’라고 하는데, 1998년 미국 워싱턴대 존 마이클 윌리스 교수와 데이비드 톰슨이 개발했다. 두 지역의 기압 차이가 커서 극 소용돌이가 강하면 양의 상태(+), 기압 차이가 작아 약해지면 음의 상태(-)라고 하며, 보통 +5부터 -5까지 값으로 표현한다. 보통 한파는 북극진동지수가 음의 상태일 때(기압 차이가 약해질 때) 나타난다. 북극진동지수가 크면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극 소용돌이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세기가 약해지면 찬 공기가 중위도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북극진동이 약해지고, 찬 공기가 중위도로 내려오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북극 해빙이 얼지 않으면 행성파가 강해진다
우리 연구팀은 북극 온난화와 중위도 기후변화의 관계가 사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1979년부터 현재까지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해빙의 양 자료를 살펴봤다. 그 후 북극 해빙이 현저히 적었던 해에 기온과 대기 순환이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했다. 북극 해빙 중에서도 기온 및 대기 순환과 특히 관련이 높았던 지역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러시아와 인접한 카라해와 바렌츠해였다. 이 해역에서 해빙이 감소하면 통계적으로 중위도에 있는 유라시아 동부와 북미 일부에서는 평년보다 기온이 더 내려가며 한파가 찾아왔다. 하지만 관측 기간이 너무 짧았다. 이 때문에 미국해양대기청(NOAA)에서 개발한 3차원 대기순환 모형을 도입해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고 같은 결과를 얻었다. 또 이 실험을 통해 북극 상공의 기압이 증가하면서 극 소용돌이가 약해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렇다면 북극 해빙이 줄어 들면 왜 극 소용돌이가 약해지는 것일까. 해빙이 녹으면 대기와 해양 사이 온도 차이가 커지면서 대기 중으로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은 중위도 상층, 편서풍대에 존재하는 행성파(planatary wave)를 활성화 한다. 행성파는 중위도와 고위도 사이의 에너지 수송을 담당하는 파동으로, 파장이 지구 반지름에 필적하는 6000km에 달한다. 지상에서 활성화한 행성파가 성층권까지 올라가 극 소용돌이를 교란해 약화시키는 데는 약 1개월~1개월 반이 걸린다. 즉 카라, 바렌츠해에서 여름에 녹은 해빙이 가을에 덜 얼면 극 소용돌이가 약해지고, 극 소용돌이가 약해지면 해빙이 평년보다 덜 얼은 시점에서 1~2개월 뒤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로 내려오면서 한파가 발생한다.
물론 행성파는 다른 요인으로도 활성화될 수 있다. 시베리아에 눈이 많이 오면 행성파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이번 연구에서는 북극 해빙이 감소하면 행성파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나아가 극 소용돌이의 세기를 약화시킨다는 점을 추가로 밝혀낸 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최근 북반구 겨울에 불어닥친 한파가 지구온난화의 파생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2307475135423a0a8a751a.jpg)
올 겨울, 내년 겨울,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는 어떻게 전개될까. 현재 북극의 해빙은 빠르게 줄고 있다. 자연스럽게 지금보다 더 많은 열이 해양에서 대기로 방출될 수 있고, 이는 극 소용돌이를 좀 더 지속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파가 중위도에서 좀더 자주 발생하고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날씨는 북극 해빙단 하나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적도 엘니뇨나 계절 내 진동 등 수없이 많은 변수가 있다. 또 온난화가 지속되고 해빙이 훨씬 많이 녹게 되면 오히려 대기와 해양의 온도 차이가 많이 줄어들면서 극소용돌이가 약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연구에서 북극 해빙의 감소가 북극 소용돌이를 약화시키는 주된 원인임을 밝히긴 했지만, 극 소용돌이가 약해졌을 때 지역적으로 어떻게 한파를 가져오는지 작은 규모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가 궁극적으로 겨울철 한파 예측에 도움을 줄 수 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