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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팔 때 주변 흙도 쓸려나갔다”

싱크홀, 왜 석촌동에 생겼을까

싱크홀, 왜 석촌동에 생겼을까 “지하철 9호선 팔 때주변 흙도 쓸려나갔다” 8월 5일, 서울 송파구 석촌역 인근 도로가 푹 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가로 1m, 세로 1.5m, 깊이 3m 정도의 구덩이가 생겨난 것.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SNS를 통해순식간에 ‘석촌동 싱크홀’이라는 제목으로 퍼져나갔다.

괴담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인근 제2롯데월드 공사장에서 자잘한 사고가 자주 발생했던 것과 연결해 123층이나 되는 건물이 싱크홀에 빠져 무너질 것이라는 괴담마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흙을 부어 구멍을 메웠던 서울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곧장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도로가 함몰된 부분 근처에서 폭 5~8m, 깊이 4~5m, 길이는 무려 70m에 달하는 거대한 동공이 나타났다(14일 발표). 추가 조사에서도 첫 동공보다는 작지만 폭 5.5m, 깊이 3.4m, 길이 5.5m인 것을 비롯해 4개가 더 발견됐다(18일 발표). 현재까지 발견된 동공은 모두 7개다. 조사는 계속 되고 있으며 현재 석촌 지하차도 인근은 통행이 금지됐다.



싱크홀, 석회암 지대에서 많이 생겨


2010년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싱크홀. 3층짜리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테말라 정부는 지하수가 말라 지반이 무너졌다고 발표했다.

 

 

싱크홀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2010년 7월에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싱크홀이다. 20층 건물 높이만한 구멍이 생겼고, 이곳에 있던 3층짜리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테말라 정부는 지하수가 말라 지반이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과테말라에서는 2007년 깊이 100m 짜리 구멍이 생겨 집 20여 채가 빨려 들어가고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정말 지하수가 사라졌다고 깊이 100m나 되는 구멍이 생길 수 있을까. 땅속은 2.5m 내려갈 때마다 위에서 짓누르는 압력이 1기압씩 증가한다. 지하로 25m 내려가면 10기압인 셈인데, 평소에는 지하수가 이 어마어마한 압력을 버티고 있다. 지하수가 사라진다면? 당연히 빈 공간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다.

자연 상태에서 싱크홀은 보통 퇴적암, 특히 석회암지대에서 많이 생긴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지하 깊 은 곳에 단단한 암석층이 받치고 있고, 그 위를 토양이 덮고 있다. 그런데 암석이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석회암은 산에 녹는 암석이다. 산도가 pH 5.6 보다 낮은, 약한 산성비가 스며들어 만들어지는 지하수에 견디기 어렵다. 지하수에 의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던 암석이 녹으면 빈 공간이 생기고, 이 공간으로 토양이 무너져 내린다. 이것이 자연 상태에서 싱크홀이 생기는 원리다. 바하마 제도 바닷속에 있는 딘스 블루홀이 대표적인 석회암 싱크홀이다. 올해 2월 미국 켄터키 주의 콜벳박물관에서 생긴 싱크홀 역시 석회암 지대이기때문에 생긴 싱크홀이었다.

그러나 ‘석촌동 싱크홀’은 다르다. 석촌동 일대 암석은 석회암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를 제외하면 석회암 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만 봐도 관악산과 북한산 인근 지역은 화강암, 그 외 지역은 편마암 계열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과 편마암은 산성비가 심한 도시에서도 건축 외장재로 사용할 정도로 단단한 암석이다. 지하수에 거의 녹지 않는다. 그렇다면 석촌동 싱크홀의 원인은 무엇일까.


석촌동 싱크홀

8월 5일 처음으로 석촌동지하차도 인근이 무너져 내린 이후 총 7개의 동공이 발견됐다. 이 지역은 지하철 9호선 3단계 연장 공사가 진행되는 곳으로, 서울시는 ‘석촌동 싱크홀’ 사태가 지하철 공사 때문이라고 잠정 결론내렸다.

  • 발견 2014.8.5 폭 2.5m 깊이 5m 길이 8m
  • 발견 2014.8.16 폭 4.5m 깊이 2.5m 길이 13m
  • 발견 2014.8.16 폭 4.5m 깊이 2.5m 길이 13m
  • 발견 2014.8.13 폭 5m 깊이 4.2m 길이 70m
  • 발견 2014.8.16 폭 5.5m 깊이 3.4m 길이 5.5m
  • 발견 2014.8.16 폭 5.5m 깊이 3.4m 길이 5.5m
  • 발견 2014.8.16 폭 5.5m 깊이 3.4m 길이 5.5m


9호선 공사로 싱크홀이 생겼다?

한창 논란이 오고갔지만 서울시 전문가 조사단의 조사를 통해 석촌동 싱크홀의 원인은 지하철 9호선의 부실 공사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국내 언론에 따르면 조사단장인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22일 기자들과 만나 “해당 지역의 9호선 터널 굴착 과정에서 공사 잘못으로 지하 동공이 생겼다”는 잠정 결론을 밝혔다. 터널을 파게 되면 주변 흙이 무너져 내리기 쉬운데 이를 보강하지 못하면서 동공과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것이 다. 서울시와 조사단은 8월말에 최종 결론과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석촌동 주변 지역은 9호선 3단계 연장 공사가 한창이다. 보통 지하 터널을 만들 때 폭약을 이용해 발파하는데, 이곳에서는 ‘TBM 쉴드 공법’이라고 불리는 최신 공법을 사용했다. TBM이라는 지렁이처럼 생긴 기계를 조금씩 전진시키며 땅을 뚫어, 뒤를 원통형 쉴드(벽)로 마감하는 것이다. 지름이 수m 넘는 터널을 뚫어 도 지상에서는 아무런 진동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다.

사고가 발생한 석촌동 일대는 지하 깊숙한 곳은 단단한 편마암이 있지만 그 위에는 모래와 자갈이 퇴적된 충적층이 있다. 특히 잠실·석촌 일대는 한강이 가까운 습지여서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충적층이 두텁다. 충적층은 지하수가 대량으로 유입되거나 비가 많이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갈 수 있다. TBM으로 터널을 뚫을 때는 이를 막기 위해 특수 용액을 이용해 주변 지층을 단단하게 해주는 그라우팅 공법을 시행해야 한다. 현재 공사 구간은 TBM의 앞에서 칼날(커터) 주변으로 특수 용액을 뿜어 팔 곳을 굳히는 ‘수평 그라우팅’ 공법을 이용했다. 조사단은 이 수평 그라우팅 공법이 제대로 되지않아 깎지 말아야할 부분의 흙까지 쓸려 내려왔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시공사는 굴착기 커터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동안 굴착을 중단했는데, 이것도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사를 쉬는 동안 칼날과 지반 사이에 적절한 보강을 하지 않아 그 틈새로도 흙이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18일 현장 조사를 다녀왔던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하차도 기둥에 수평으로 생긴 균열이 나타났다” 고 밝혔다. 원래 지상 하중이 무거우면 수직으로, 지하에 빈 공간이 있으면 수평으로 균열이 생긴다. 이 교수는 “미리 살펴봤다면 지하에 동공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큰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보다 문제에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엔 늘 안일함이 있다

처음에는 싱크홀이나 동공의 원인이 TBM 쉴드 공법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이 공법 때문에 지반이 크게 함몰되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스위스 고타드베이스터널(57.07km),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 채널터널(50.45km)처럼 수십km에 달하는 터널도 TBM 공법으로 뚫었다. 2009 년 TBM 공법을 사용한 이집트 카이로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깊이 20m짜리 싱크홀이 생겼지만 이곳이 이름 난 석회암 산지인 만큼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도 석촌 공사장 외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을 지나는 9호선 1.5km 구간이 이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여의도도 석촌역과 유사하게 충적층이 두터운 지역이지만 아직까지 문제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지하터널을 팔 때 처음부터 잘못된 위치를 고르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 다. 이수곤 교수는 “9호선 지하터널 공사를 할 때 자갈과 모래로 쌓인 충적층과 단단한 암석 중 한 곳만 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TBM으로 터널을 파고 있는 위치는 딱 충적층과 암석의 중간 지역이다. 위로는 자갈을 파고 아래로는 암석을 파야 한다. 조금 과장하면 모래를 파내는 삽과 바위를 깨는 드릴을 동시에 써야 하는 셈이다. 이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결국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간 지역을 판 걸까. 충적층은 석촌 지하차도와 너무 가까웠고, 암석층은 너무 깊어 공사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충적층과 암석층을 동시에 팔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찾았어야 했다. 그것이 그라우팅 공법이었다. TBM 주변을 특수용액으로 굳히는 수평 그라우팅 외에도 지상에서 터 널을 뚫을 곳까지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 지반을 굳히는 ‘수직 그라우팅 공법’을 사용해야 했다고 전문가 조사단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법은 지하 공사 구간 바로 위의 지상에서도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 즉 석촌지하차도를 폐쇄하고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민들의 불편도 적지 않아 수평 그라우팅 공법을 썼지만 결과적으로 편의를 위해 잘못된 공법을 이용한 셈이다.

70m 길이의 동공이 무너져 내리기 전에 미리 발견한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나 늘 이런 천운이 오는 것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사고를 보면 가장 큰 문제는 기술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자만심과 작은 징조를 무심코 넘겨버리는 안일함이었다. 이미 석촌동을 포함해 송파 주민들은 언제 땅이 꺼질지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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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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