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00년 전만 해도 사람은 지구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태양계의 8개 행성을 발견했고, 1995년에는 최초로 태양계 밖에 있는 외계행성을 찾아냈다. 지난해 발견한 외계행성 ‘케플러-77b’는 질량은 토성과 비슷한데 목성만큼 크게 부풀어 올라있는 거대 기체행성이다. 흔히 ‘뜨거운 목성’이라 불리는 이런 외계행성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먼저 ‘행성’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해두자. 2003년 국제천문연맹(IAU) 산하 외계행성 연구팀은 외계행성이 진짜 ‘행성’이 되려면 별이나 중성자성과 같은 별의 잔재 주위를 회전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즉 질량이나 여러 특성이 아무리 행성과 비슷해도 홀로 우주를 떠돈다면 진짜 행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성’은 별 옆에 있어야 한다.
별이 주위에 행성을 가질 확률은 수소나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인 중원소 함량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중원소가 부족한 별은 지구와 같은 암석행성뿐만 아니라 목성과 같은 기체행성조차 만들기 어렵다. 기체 행성이라도 중심핵은 중원소로 된 암석이나 금속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즉 목성 역시 암석이나 금속으로 된 중심핵이 있다. 별의 질량도 중요하다. 별이 무거울수록 크고 중원소가 많으며 무거운 원시행성원반을 주위에 거느릴 수 있다. 행성은 바로 이 원반에서 태어난다.
뜨거운 목성의 세 가지 수수께끼
외계행성이 처음 발견된 뒤 지금까지 가장 놀라운 사실은 외계항성계가 우리 태양계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었다. 태양계에서는 작은 지구형 암석행성들이 중심별(태양) 가까이에 있고, 거대한 목성형 기체행성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외계항성계에서는 중심별 아주 가까이에서 거대 기체행성이 자주 발견된다. 이것이 바로 ‘뜨거운 목성’이다. 이들의 질량은 목성의 절반에서 10배에 이르며, 중심별로부터 대략 0.1AU(1AU는 지구-태양 간 거리로 약 1억5000만km)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별 주위를 돈다. 공전 주기도 수 일에서 수십 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케플러-11 항성계는 중심별 주위에 다섯 개나 되는 행성이 수성보다 더 가까이 있다.
뜨거운 목성은 공전 궤도 방향도 여러 가지다. 태양계 행성들은 대부분 태양의 자전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공전한다. 태양 주위의 원시행성원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태양의 자전 방향과 동일한 공전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과 반대방향으로 도는 금성이나 천왕성은 다른 천체와의 충돌로 궤도가 교란된 예외일뿐이다. 그러나 뜨거운 목성은 약 25%가 중심별의 자전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돈다. 뜨거운 목성의 또다른 수수께끼는 중심별과의 자전-공전 경사각이다. 지구를 포함해 태양계 8개 행성들의 공전궤도 축과 태양의 자전축은 약 7° 어긋나 있다. 사실상 나란하게 정렬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뜨거운 목성 중에는 이 경사각이 상당히 클 뿐 아니라 아예 반대인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두 가지 탄생 이론
거듭 말하지만 태양계 행성은 원시행성원반에서 비롯됐다. 태양이 만들어진 뒤 주변에 남아있던 물질은 거대한 원반 모양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중원소를 중심으로 원반 물질이 뭉쳐 행성이 만들어졌다. 뜨거운 목성도 처음에는 이런 과정으로 설명했다. 갓 태어난 뜨거운 목성이 원시행성원반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운동에너지를 잃는 바람에 중심별 가까이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반 이동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질량이 큰 별에 가까이 있는 뜨거운 목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질량이 큰 별에서는 원반의 수명이 짧아 뜨거운 목성이 별에 다가가기도 전에 원반이 사라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행성-행성 산란 이론’이다. 항성계가 만들어진 뒤 여러 행성들이 힘을 주고받으며 서로 이리저리 튕겨낸다는 것이다. 프라이팬에 콩을 볶으면 어느 방향으로든 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이론에서는 뜨거운 목성의 궤도가 원인 것도 설명할 수 있다. 행성은 본래 타원 궤도를 갖는다. 그러나 중심별의 자전면과 행성의 공전 궤도면(자전-공전 경사각)이 일치하지 않으면, 두 천체를 이루는 물질(주로 기체)이 서로 끌어당기는 조석 운동을 하게 된다. 에너지를 잃은 행성의 궤도는 점점 별에 아주 근접한 원 궤도로 바뀌고, 중심별의 열을 더 많이 받아 온도가 올라간다. 뜨거운 목성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론은 뜨거운 목성의 이동에 시간적 여유가 많고, 중심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뜨거운 중심별을 좋아하는 뜨거운 목성
연구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덜 뜨겁고 가벼운 별들 주위에서 외계행성이 발견됐다. 관측방법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9년에 케플러우주망원경이 발사되면서(지금은 고장났다) 다양한 온도와 질량의 별들 주위를 관측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뜨거운 목성은 비교적 뜨거운 별(5500~7000K) 주위에서 주로 발견되고, 온도가 낮은 별이나 적색왜성(3000~5000K) 주위에서는 덜 발견됐다. 중심별이 뜨거울수록 행성들의 궤도도 정렬되지 않는다는 경향성도 밝혀졌다.
6250K는 행성궤도가 얼마나 정렬됐는지를 나타내는 중심별 표면 온도 기준이다. 이보다 뜨거운 별에서는 행성과의 자전-공전 경사각이 10° 이상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중심별이 태양보다 1.3배 이상 무거우면, 주위 행성들도 더 무겁고, 공전궤도도 더 크며 행성 수도 더 많았다.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질량이 큰 별 주위에는 질량이 큰 행성들이 태어나다보니 행성들이 서로 튕겨내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뜨거운 목성’의 기원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앞서 말한 원반 이동 이론은 중심별의 질량이 작은 경우에 해당하며 경사각도 작다. 반면 두번째 가설인 행성-행성 산란 이론에서는 중심별이 더 무거우므로 거대 행성도 더 많이 만들어지고 행성-행성 산란도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성 궤도도 마구 변하고 경사각도 다양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엔 다양했던 경사각이 뜨거운 목성이 됐을 때는 왜 큰 경사각만 남게 됐을까.
별의 내부는 중심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핵이 있고, 바깥으로 핵에서 생산된 에너지가 복사 형태로 전달되는 복사영역이 있으며, 표면 바로 아래에는 별을 구성하는 물질이 대류하며 에너지를 전달하는 대류영역이 있다. 별이 뜨거울수록 대류영역의 부피가 작아지는데, 경계온도인 6250K 이상에서는 대류영역이 급격히 축소된다. 대류영역이 작으면 중심별이 조석에너지를 많이 잃어버리지 않아 경사각이 잘 변하지 않고, 변해도 느리게 감소하므로 궤도들은 사실상 정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뜨거운 목성’에 대한 두 이론 중에서 최소한 중심별이 뜨겁고 무거운 경우에는 적어도 행성의 이동이 원반과의 상호작용 때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별이 무거울 경우 뜨거운 목성은 행성-행성 산란에 의해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중심별과의 조석작용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뜨거운 목성의 운명은
뜨거운 목성들은 공전궤도가 거의 원에 가깝다. 처음에는 타원 궤도였지만 중심별과의 조석상호작용이 일어나 운동에너지를 잃으며 원 궤도로 변하고, 지구의 달처럼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까지 같아진다. 이렇게 되면 행성의 한 면은 항상 낮이지만 반대편은 항상 밤이NASA므로 온도 차가 커지고 이로 인해 항상 초음속의 강한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바람은 행성 전체에 열을 분배해 밤낮의 온도차를 줄여줄 것이다.
뜨거운 목성은 중심별에 가깝기 때문에 표면 온도가 매우 높다. 질량이 목성보다 작은 행성은 중심별에서 오는 강렬한 열과 내부 열로 인한 팽창 압력을 자체 중력으로 저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찐빵처럼 부풀어 오르게 된다. 실제로 케플러-7b 행성의 질량은 목성의 절반이지만 부피는 목성의 8배에 달한다. 이러한 ‘찐빵 행성(puffy planet)’은 밀도가 토성과 비슷하기 때문에 ‘뜨거운 토성’이라고도 불린다.
또 뜨거운 목성의 바깥층을 이루는 수소와 헬륨 기체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행성을 탈출할 것이므로 마지막에는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중심핵만 남게 돼 지구형 행성과 비슷해 보일 것이다. 이 때 뜨거운 목성에서 우주로 탈출하는 대기 입자의 꼬리가 중심별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뻗치기 때문에 마치 혜성 꼬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뜨거운 목성은 위성을 갖기도 어렵다. 위성이 클수록 중심별의 조석력에 의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소행성 크기의 위성만 보유할 수 있다. 우리 태양계의 목성은 4개의 거대한 갈릴레오 위성을 비롯해 수십 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지만 ‘뜨거운 목성’은 가족 구성조차도 중심별의 눈치를 봐야 한다.
뜨거운 목성의 종말은 어떠할까? 중심별과의 조석작용에 의해 궤도 에너지를 잃게 되면 안쪽으로 더욱 끌려들어가다가 마침내 중심별에 먹힌다. 이 때문에 행성을 이루는 물질의 응집력과 조석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인 ‘로시 한계’ 근처부터는 외계행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중심별이 적색거성으로 진화하면서 부풀어 올라도 가까이 있는 행성을 삼켜버릴 수 있다. 우리 목성은 태양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태양에 삼켜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면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원조’ 뜨거운 목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있다. 태양과 목성처럼 대부분의 별과 행성은 이렇게 마지막 길도 같이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