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제국이 숨 쉬기 시작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92272373953d5dad4c9c8d.jpg)
![지구온난화의 척후병](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92750589453d5dae0ce68e.jpg)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공항에서 꼬박 하룻밤을 샌 뒤 놈(Nome)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놈은 3층 건물조차 드문 작은 항구마을로 앵커리지에서 출발하는 세계 최대 길이(1688km)의 개썰매 경주(Iditarod)가 끝나는 곳이다. 놈에서 2시간 가까이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카운실(Council)이라는 오지가 나온다. 이곳에 2011년부터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을 비롯해 서울대, 한양대, 연세대 공동연구팀이 매년 여름 찾아와 다양한 동토층 연구를 하고 있다. 올해는 20여 명의 연구원들이 한 달 가까이 체류하며 지층 시추, 메탄가스 측정 등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지구온난화로 이곳의 영구동토가 심상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공동연구팀이 머문 '놈'의 전경](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207144710053d5dcc631327.jpg)
100년 동안 기온 1.9℃ 상승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니까요.”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이유경 극지연 책임연구원은 “왜 알래스카에 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알래스카에서 본 가문비나무는 그 말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마을에서 현장까지 2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가는 동안 숲을 이루던 가문비나무는 점점 띄엄띄엄 흩어졌다. 현장에는 가문비나무가 거의 없었다. 수목의 북방한계선에 도달한 것이다.
기자와 동행한 이은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카운실 지역은 북방침엽수림(타이가) 지역과 툰드라 지대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지구온난화의 가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라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 전체 기온은 100년 동안 0.75℃ 올랐는데 이 지역은 1.9℃나 올랐다. 2.5배나 기온 변화가 심한 것이다. 이유경 책임연구원은 “이곳을 연구하면 지구온난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느 곳보다 생생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툰드라](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60174780653d72cad71227.jpg)
![메탄의 습격?](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29436857653d5dd0f17f1c.jpg)
연구현장은 멀리 보이는 산 아래로 넓게 퍼져 있는 들판이었다. 5월까지도 길이 얼음으로 덮여 헬기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들판에는 북 모양으로 된 지름 30cm 가량의 투명한 통(챔버)이 20여 개 놓여 있었다. 채남이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박사는 “짧은 여름에 식물이 얼마나 광합성을 하고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내뿜는지 조사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식물이 광합성을 많이 하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조금이나마 줄어든다.
그러나 영구동토층에서는 또다른 온실가스인 메탄이 점점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가 21배나 높다. 노희명 서울대 농생명공학과 교수는 “툰드라 지역은 지구에서도 탄소가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며 “죽은 식물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극권의 영구동토층에는 지구 전체 유기탄소의 50%가 묻혀 있다. 박상종 극지연 박사는 “땅이 녹으면 동토에 묻혀 있던 탄소화합물이 미생물에 의해 메탄으로 방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온난화가 계속되면 메탄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지연 연구팀은 올해 메탄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처음 이곳에 설치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올해 처음으로 현장에 설치된 메탄가스 측정기(왼쪽), 박상종 연구원(왼쪽)과 채남이 연구원이 동안의 식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를 연구하고 있다.(오른쪽 아래) 오른쪽 위 사진은 토양호흡을 측정하는 장치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35255286653d5dd2aec826.jpg)
동토 2m를 시추하다
올해 시도한 또 다른 연구가 동토층 2m 시추다. 현장에 간 두 번째 날,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기자도 시추작업을 거들었다. 드릴로 금새 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깊이 1m가 넘어가자 아무리 드릴을 돌려도 땅이 파지지 않았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얼어 있었던 것이다. 남성진 연구원과 기자가 3시간에 걸쳐 작업한 끝에 지층기둥(코어) 하나가 완성됐다. 올해만 23개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노희명 교수는 “지구온난화 이후 이곳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할지 연구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민 극지연 연구원도 “동토에서 온실가스를 만드는 미생물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극지기초원천기술개발사업’의 일환이다. 현재 극지연은 알래스카를 포함해 그린란드, 스발바르, 캐나다 캠브리지베이 등 네 곳에 연구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이방용 북극환경자원 연구센터장은 “국내 최초로 북극권에 대한 종합 환경변화 측정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표”라며 “북극 연구의 범위가 툰드라 지역까지 확대돼 우리나라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45946658653d5dd4456d05.jpg)
![연구원들의 현장모습](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95108285353d5dd4fc551b.jpg)
![먹고, 자고, 대화하라](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68683628253d5dd64524b6.jpg)
오지에 간 과학자들은 1분 1초가 아까우니 ‘월화수목금금금’ 연구를 해야 할까. 기자가 머문 동안 이틀 계속 비가 오자 한 연구팀이 현장 출동을 강행했다. 계속된 비로 길이 많이 미끄러워 모두 걱정했는데 다행히 현장에서는 비가 그쳐 무사히 조사를 마쳤다. 채남이 박사는 “하루가 아까운데 악천후로 현장에 못 나가게 되면 걱정에 초조해진다”고 말했다.
숙소에서도 연구팀은 매일밤 데이터를 정리하고 다음 일정을 짜느라 늘 잠이 부족하다. 현장에 못가는 날도 실내 연구로 바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김용원 알래스카주립대 교수는 “오지에서는 잘 먹고 잘 자야 연구도 더 오래 잘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연구팀은 기자가 떠나기 하루 전 커다란 킹크랩 여러 마리를 사와 식당에서 가벼운 저녁식사를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연구팀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남성진 연구원은 “이런 오지에서 십수 명의 연구원들이 지치지 않고 갈등이 없으려면 자주 모이고 늘 대화하며 상대를 도와주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극지에 답이 있다
그래도 오지는 오지다. 박상종 연구원은 “현장에 와서 이렇게 노력했는데 데이터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때가 꽤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에 돌아갔는데 현지에 설치한 장비가 고장나면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채남이 연구원은 “전기가 없어 태양전지를 쓰는데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래 오면 방법이 없다”며 “배터리가 먹을 것보다 더 중요하다”며 웃었다.
현장에서 가장 힘든 건 ‘모기떼’였다. 바람이 약해지면 백만 모기대군이 몰려온다. 기자도 방충모자에 장갑을 겹으로 끼었는데도 하루에만 15방이나 물렸다.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아무리 뿌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 경계대상은 야생곰이다. 위성전화와 곰퇴치 스프레이를 휴대하고 항상 단체로 움직이지만 그래도 두렵다. 더구나 현장의 이름이 블루베리가 많다고 해서 ‘블루베리 힐’인데 특히 곰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이런 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왜 오는 걸까.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극지에 답이 있으니까요."
![➊ 연구원들이 머문 마을의 입구 어귀까지 내려온 사향소 무리.](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47307981053d5ddeba529c.jpg)
![➋ 사진거리로는 훌륭하지만 야생곰은 연구팀에게 공포의 대상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82706950853d5ddf468c0e.jpg)
![➌ 현장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모기떼다. 평소에는 방충모자를 쓴다. ➍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 보여 기념촬영 한 컷. 오지에서 연구하려면 자주 대화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푹 쉬고 잘 먹는 것도 비결.](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7/121485053653d5ddfd0b54e.jpg)
➊ 연구원들이 머문 마을의 입구 어귀까지 내려온 사향소 무리.
➋ 사진거리로는 훌륭하지만 야생곰은 연구팀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➌ 현장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모기떼다. 평소에는 방충모자를 쓴다.
➍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 보여 기념촬영 한 컷. 오지에서 연구하려면 자주 대화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푹 쉬고 잘 먹는 것도 비결.